## 김세균선생님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번역은 이정훈(고대신방)씨가 하셨다는군요. 아마 이글은 쥬빌리 사우스와 노우스(2000)으로 나뉘기전에 쒸여진듯합니다. 분열이후의 입장에 대해서는 국민행동 UNTAD 보고대회 박하순 민노정책부장 발제문을 참조하십시요.
주빌리(Jubilee) 2000 노엄 촘스키
주빌리(희년) 2000 부채 무효화 요구는 환영할 만한 것이고 지지할만한 것이지만, 검증해볼 여지가 있다.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부담하게 마련이다. 역사 기록은, 힘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명할 때 추정할 수 있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자유 기업 자본주의"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비용이 그렇듯 위험도 사회화하는 경향이 있다.
보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 책임은 빌리고 빌려준 사람에게 있다는 오래전 유행하던 방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남미 농부들(campesino), 조립공장 노동자 또는 빈민지역 거주자가 돈을 빌린 것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는 이런 차관으로 얻은 것이 거의 없으며, 실로 차관의 여파로 지독하게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방 세계의 납세자들과 함께 부채 상환의 짐을 져야 한다. - 악성부채의 책임이 있는 은행이나, 부를 외국으로 빼돌리고 자기 나라의 자산을 인수하면서 부를 늘린 경제, 군사 엘리트들이 아니라.
1982년부터 위기수준에 이른 남미 부채는, 국외로 빠져나갔던 자본이 돌아오면서 급격하게 감소될 수 있었다. -- 어떤 경우에는 극복되기도 했다. 물론 비밀스럽고 가끔은 불법적인 방식때문에 모든 수치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세계은행은 베네주엘라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1987년의 경우 대외부채보다 40%가량 많았다고 추정했다. `비즈니스위크'지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주요 8개 채권자에게 빌린 돈의 70%가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추정했다. 그것은 이후 1994년 멕시코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지만, 경제붕괴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의 인도네시아 "구제 조처"는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 규모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한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는 약 800억달러의 외국 부채 중 95%는 50명의 개인이 갖고 있다고 추정했다. 한 아시아 학자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 쓴 글에서 표현했듯 "교활한 도시에 세워진 스탈린주의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부채 때문에 고생하는 2억 국민이 갖고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채가 많은 41개 국가의 부채는 지난 몇 년동안 미국의 저축 및 대부기관의 긴급구제를 받은 것이다. 이것은 위험과 비용이 사회화되는 대부분의 경우 중 하나이다. 이는 레이건주의적인 "보수주의자"들이 가속화시켰는데, 여기에는 부채와 (국내총생산과 관련된) 정부 지출이 따른다. 남미 국가 재산 가운데 외국인 소유분은 저축 및 대부기관의 긴급구제 금융 액수보다 25%가량 많으며 1990년까지 2500억에 가까운 액수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화되며 이를 깨고 새로운 기반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최근 국제관계 연구 회의에서는 "1890년대 미국 철도산업의 외국채권 부도액과 현재 개발도상국 부채의 규모가 비슷하다"라고 지적됐다.; 영국과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930년대 미국에 대한 부채를 부도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것에 따르면 워싱턴은 이를 "탕감해줬다.(또는 잊어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상당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두쪽이 협조해 통제했다면 자금이 전후 재건설을 위해 국내에 남아있었겠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부유한 유럽인들이 자금을 뉴욕 소재 은행들에 입금하길 선호했다. 그 때문에 유럽 재건 비용은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떠넘겨졌다. 그 장치가 이름하여 "마셜플랜"이다. 마셜플랜은 주요 경제학자들이 예상했고 실제로 맞아떨어진 "예민한 해외도피 자본의 대량 이동"의 빈자리를 매웠다.
이와 맥이 닿는 다른 선례도 있다. 미국이 100년전에 쿠바를 점령할 때 부채가 "동의 없이 무력에 의해 쿠바 국민들에게 강요됐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쿠바가 스페인에 진 부채를 무효화시켰다. 후에 법학자들은 이런 부채를 "증오스런 부채"라고 불렀다. 이는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빚을 발생시킨 권력의 빚"이며, "민중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저지른" 채권자는 그 희생자(민중)에게 상환을 기대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전직 독재자가 캐나다 로열은행에게 진 부채를 무효화하는 코스타리카의 법률에 대한 영국의 문제제기를 기각하면서, 이 문제의 중재자 -- 미 대법원 판사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 는 이 은행이 전혀 "합법적인 용도"가 아닌 데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상환 요구는 "반드시 좌절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의 부채 문제 대부분에 쉽사리 적용된다; 어떤 합법적 또는 도덕적 근거가 없는 "증오스런 부채"가 민중의 동의없이 부담지워졌고 종종 그들을 탄압하는 데 쓰이며, 권력자들만 살찌운 것이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은행대출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는 "1973년 말 기름 구입비용이 크게 늘었는데도 다음 두해동안 대출이 안정화되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했다. 개발기구는 이어 "가장 결정적이며 극적인 증가는 1972-73년 -- 오일쇼크 이전 -- 주요상품 가격 급등과 관련되어있다"고 덧붙였다. 한 예는 미국 밀 수출가격이 세배가 오른 것이다. 이후 은행들이 기름으로 번 돈(petrodollar)을 돌리면서 대출은 증가했다. 기름 가격의 (일시적인) 증가는 중동 기름이 "소수 기름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전 인류를 위해 국제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진지한 요구가 제기되도록 만들었다. (월터 라케르, Walter Laqueur). 하지만 미국 농업의 국제화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미국 농업은 천연적 혜택과 오랫동안의 공공 분야 연구개발 덕분에 높은 생산성을 지니게 됐다. 물론 농지 개발 조처가 여기에 기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생산성이 시장의 기적 덕분은 아니다.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는 데 열심이었고 전망을 낙관했다. "가장 위대한 재순환자"라고 알려진 시티은행 이사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은 1982년 재앙 하루전, 남미에 대한 대출에 아무 위험이 없어, 상업 은행들이 안전하게 제3세계 대부를 (자산 비중으로) 3배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재앙이 일어난 뒤 시티은행은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았다고 느낀다"고 선언했지만 브라질의 은행 빚은 이 때까지 4년만에 두배로 늘었다. 시티은행만 해도 브라질에 자본금 전체보다 더 많은 자금을 빌려줬다. 리스턴이 주동해 만들어낸 국제적인 대출 붐이 1986년에 사그러진 이후 그는 "지난 12년동안 일어난 일은 우리(은행가)가 일(위험평가)을 합리적으로 잘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썼다; 만약 위험의 사회화를 지적한다면 이는 사실이다. 이 사회화란 정부를 경멸하고 자유시장을 추종하는 것으로 유명한 리스턴과 다른 이들이 환영하는 것이다.
국제 금융기구 역시 (빈민의) 재앙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70년대에 세계은행은 활발하게 대출을 장려했다.: 1978년 은행은 "부채를 유지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에는 어떠한 일반적인 문제도 없다"라고 권위있게 선언했다. 1982년 멕시코 위기 몇주 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 은행의 합동 출판물은 "생산성을 증가시킬수 있도록 도와주는 추가대출의 여지가 아직 상당하다"고 말했다. -- 예를 들면, 소용없는 멕시코 소재 시카르차(Sicartsa) 제철 공장이 그렇다. 이 공장은 대처주의자의 중상주의 정책 실천 차원에서 영국 납세자들이 자본을 대줬다.
기록은 현재까지 계속된다. 멕시코는 1994년 12월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자유시장의 승리이며 다른 나라의 모범이라고 칭송받았다. 이 때의 경제 위기는 대다수 멕시코인에게 "승리"의 시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줬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타이와 남한의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과 "부러울만한 회계 기록"을 칭송했다. 1997년 세계은행 연구보고서는 "가장 역동성있게 떠오르는 (자본) 시장" 곧 "한국, 말레이시아, 타이, 그리고 조금 뒤쪽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특별하게 강력한" 발전을 지목했다. 세계은행의 지도를 받은 이들 모델의 자유시장 성공은 그들이 이룬 "깊이와 유동성" 및 기타 장점에서 "두드러진다." 그 보고서는 동화가 깨져버린 것과 똑같아 보였다.
예언 실패는 죄가 아니다. 사람들은 경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힘있는 집단의 손아귀에 있다는 이유로 잘못된 생각이 넘쳐난다"는 지적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실용적인 것에 대한 확신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의해 역시 강화된다. (세계은행 핵심 경제학자 조세프 스티그리츠, Joseph Stigitz) 게다가 이 종교는 광란적인데다 위선적이다. 수세기동안 "자유시장 이론"은 `양날의 칼'같았다.: 시장 규율은 빈자와 약자에게는 정밀했지만, 부자와 권력자는 할머니같은 국가의 날개 아래 피난처를 얻는다.
부채 위기의 또 다른 요인은 1970년대 초반부터 이루어진 금융 흐름의 자유화 조처였다. 전후 미국과 영국은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반면 무역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고안하였다. 자본 통제 결정은, 자금 자유화가 자유무역을 방해한다는 믿음과, 정부의 정책결정을 약화시키고 그래서 또 국민의 대단한 지지를 받은 복지국가를 위협한다는 명확한 이해, 이 두가지에 근거해 이뤄졌다. 길고도 험난한 투쟁 끝에 일구어낸 사회계약뿐만 아니라 실질 민주주의도 자본 흐름의 통제를 요구한다.
이 체제는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를 거치면서도 제자리를 유지했다. 이 체제를 분해한 것은 영국의 지원을 엎고 나중에는 다른 나라의 지지도 받아낸 닉슨 정부다. 이것은 그 뒤 자본 흐름의 거대한 폭발을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자본흐름의 구성도 급속도로 변했다. 1970년에는 거래의 90%가 실물 경제(무역과 장기 투자)와 관련있었고 나머지는 투기적이었다. 1995년에는 대략 95%가 투기적이며 이의 대부분은 단기 투자(80%가 상환기간이 1주일 안팎이다.)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결과는 일반적으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예상을 확인시킨다. 레이건주의자들이 주도한 사회 계약에 대한 심한 공격이 나타났으며 보호주의와 다른 시장 간섭이 늘었다. 시장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위기는 더 잦아졌다. 국제통화기금은 자신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뒤바꿨다.: 금융 유동성 억제를 돕는 기능에서 "신용사회 구축자"로서 유동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 캐린 리사커스, Karin Lissakers)
당장 금융 자유화는 부유한 사회에 저성장과 저임금을 초래할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난 25년동안 성장률과 생산율은 상당히 저하되었다. 미국에서 상류 몇 퍼센트의 사람들은 상당히 번 반면 다수의 임금과 수입은 늘지않거나 줄었다. 지금 미국은 표준 사회지표(standard social indicators)로 보면 선진국가 중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영국이 근접하게 그 뒤를 따르며, 덜 극단적이지만 비슷한 결과가 경제개발협력기구 소속 국가 전체에서 나타난다.
결과는 제3세계에서 훨씬 더 냉혹했다. 동아시아 성장지역과 남미의 비교는 극명하다. 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며, 동아시아는 가장 평등한 축에 든다. 교육, 건강, 그리고 사회복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미의 수입품은 부유층의 소비를 위한 경향이 아주 강하다; 동아시아에서는 생산적인 투자를 위해 주로 수입을 했다. 남미와 달리 동아시아는 자본 해외도비를 통제했다. 브라질 경제학자 브레세르 페레이라(Bresser Pereira)가 지적하듯 남미 부유층은 사회적 의무를 면제받았다. 문제는 "국가가 부유층에 종속된 점"이다. 동아시아는 아주 다르다.
전반적으로 나쁜 실적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외인 남미 국가 칠레는 교훈적인 사례다. 피노체트 독재 아래 행해진 자유시장 실험은 1980년대 초반 철저하게 망가졌다. 그때부터 (국유화된 구리 회사를 포함한) 국가의 개입과 단기자본 흐름의 통제와 사회적 비용 확대가 결합하면서 경제는 회복되었다.
금융 자유화는 지금 아시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심각한 시장 실패, 부패, 구조적 결함과 더불어서 최근 경제위기의 중요한 요소로 널리 인정된다.
부채는 단순한 경제적 사실이 아닌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구조이다. 게다가 오래전에 이해된 것처럼 자본 흐름의 자유화는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최근 정책 결정은 신비스러운 "경제법칙"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근거하여 힘있는 자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의 최악의 영향을 완화시킬수 있는 기술적 장치는 오래전에 제안되었지만 이윤추구자들의 힘에 의해 무시되었다. 그리고 국가적, 전세계적 체제를 디자인하는 기구들은 해체된 게 다행인 과거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합법성을 증명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