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번째 글은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 소식지 13호에 실린 글이고, 두번째 글은 한겨례신문 해외논단에 실린글입니다.
■ ■ ■ IMF/세계은행을 폐쇄시키자!
- 워싱턴 행동 참가기 이창근(picis, kopa정책위원)
"나는 IMF/세계은행과 대화하기 위해 워싱턴에 오지 않았다. 나는 그 기구들을 개혁하기 위해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나는 쥬라기 시대에나 어울릴 이 낡은 기구들을 폐쇄시키기 위해 이 곳에 왔다" - '남반구연구소(Focus on the Global South)'의 월덴 벨로
이번에는 "IMF와 세계은행"이었다.
4월 16일 일요일, 워싱턴에 모인 수만의 시위대들은 그들에게 '문을 닫으라'(Shut Down)고 요구했다.
새벽 5시부터 시위대들은 IMF와 세계은행 건물로 들어가는 모든 통로를 봉
쇄하기 위해 시내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팔과 팔을 서로 묶어 크고 작은 교차로에 연좌하여 차량의 진입을 막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IMF/세계은행 춘계회의에 참석하려는 각국 대표단들의 출입을 봉쇄했다.
그러나 작년 11월, 시위대들에 막혀 WTO 각료회의 개막식을 진행시키지
못했던 시애틀의 경험이 너무 쓰라렸던 것일까?
각국 대표단들은 이미 새벽 4시부터 회의장인 세계은행 건물에 모여 들었고, IMF·세계은행 춘계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시위는 실패했다!' 워싱턴 발(發) 기사의 제목들은 일제히 이렇게 씌여졌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주도한 '50년이면 충분하다' 네트워크의 소렌 앰브로즈는 "우리는 회의 자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의를 저지한다는 것은 하나의 구호일 뿐입니다. 그 구호가 담고 있는 것은 바로 IMF/세계은행, 그리고 WTO로 대표되는 '비인간적인 세계화', '기업이윤만을 추구하는 세계화'를 막아내고 전세계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지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외환·금융위기를 빌미로 제3세계에 강요된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프
로그램'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에 대해서 긴 설명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위기를 치유하기는 커녕, 금융시장 개방·노동시장 유연화·민영화등을 강요하여 제3세계 국민경제를 파탄시켰으며, 말 그대로 빈곤만을 '세계화'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IMF/세계은행 폐쇄', '세계화 반대'라는 구호아래, 인도, 남아공, 필리핀, 태국, 멕시코 등 세계 각지의 활동가들이 워싱턴에 집결할 수 있었다.
이번 4·16 워싱턴 시위는 작년 시애틀에서 진행되었던 'WTO 반대 투쟁'
이 결코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각국 민중들은 더 이상 세계화를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 강대국과 초국적자본이 자신의 극단적인 이익을 위해 의식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임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IMF/세계은행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미국의 시민·민중들에게, 제3세계에 강요되고 있는 구조조정이 얼마만큼 재앙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이해시키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도 이번 워싱턴 시위의 커다란 성과이다.
즉, 제3세계의 이슈라고 할 수 있는 IMF/세계은행의 문제를 매개로, 북반구와 남반구 민중들이 공동의 목소리와 행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도 이번 워싱턴 시위에 참가하면서, IMF
만큼이나 초국적자본의 이윤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한미투자협정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지구의 벗'이란 환경단체의 한 활동가는 워크숍에서, "투자협정은 환경, 인권, 노동권을 파괴하며, 그 이면에서 초국적기업의 이윤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하면서, 향후 '국민행동'과 공동 대응을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기로 했다.
시애틀에서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국제민중연대투쟁의 많은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세계화 반대 투쟁'의 앞길에는 아직 많은 난제들이 산적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초국적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들은 세계화반대세력을 분열시키고, 대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NGO와 노동조합들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기구 속으로 포섭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수십명의 NGO출신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고, 대부분의 프로
젝트가 NGO와의 협력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
다.
IMF도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기구의 명칭을 [구조조정향상기구]에서 [빈곤감축 및 성장기구]로 바꾸면서, NGO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IMF/세계은행의 '빈곤퇴치 프로그램'은 기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국제적 '구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NGO의 자선사업에 불과하다.
즉, 자의적인 NGO 구호활동에 근거한 빈약한 '사회 안전망'으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프로그램에 다름아니다.
이처럼 WTO/IMF/세계은행 등에 대한 어설픈 '개혁론'은 오히려 그것의 정
치적 정당성과 합법성을 강화시켜줄 뿐, 민중들의 삶과 권리의 향상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WTO/IMF/세계은행 등 세계화의 주도자들이 NGO 및 노동조합 포섭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입장의 정립과 대응이 필요할 때이다.
■ ■ ■ [해외논단] 승리 거둔 '워싱턴시위'
지난달 16~17일 미국 워싱턴에 모인 시위자들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의 봄철 연례회의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전술적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커다란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 이번 워싱턴 시위는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68년의 구정공세와 비슷하다. 설날을 기해 펼쳐진 베트남인들의 공세는 어떤 지역을 탈환해서가 아니라 침략자들의 전쟁승리 의지를 치명적으로 꺾어놨다는 점에서 베트남인들의 승리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시위자 수는 3만여명이었고, 그 가운데 1300명은 경찰에 체포되기를 자청했다. 언론매체들은 1주일에 걸쳐 브레튼우즈 기구로 통칭되는 IMF와 IBRD의 현재 모습, 그리고 두 기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두 기구에 대한 `워싱턴 봄 공세'를 조직한 사람들은 시위가 끝난 뒤 일제히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해 같은 회의 때 시위자 수가 단지 25명 뿐이었던 점에 비춰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미국인들의 정치의식에 두 기구의 문제점을 각인시켰다”는 평가도 나왔다.
워싱턴 시위는 IMF와 IBRD의 사기가 점점 더 떨어지는 시점에서 벌어졌다. 이미 IMF는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폭넓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무차별적인 자본자유화를 밀어붙여 금융위기를 조장했고, 위기국에 대한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은행과 투기세력의 채권만 보호해줬으며, 가혹한 금융·재정 긴축 프로그램을 부과해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IMF의 대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적용해 성장을 둔화시키고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킨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재판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2월 타이 방콕에서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총회에 참석했던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가 얼굴에 크림파이 세례를 받은 것은 그동안 IMF에 대해 쌓이고 쌓인 세계적인 분노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IBRD는 제임스 울펀슨 총재의 지도 아래 최근 몇년간 빈곤퇴치기구로서 새로운 대중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IMF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미국 의회에서 IMF와 IBRD 등 국제금융기구들의 실적 평가 및 개선책 검토를 위해 구성한 `국제금융기구 자문위원회'가 지난 3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로 인해 무력화됐다. 위원장인 카네기멜런 대학의 앨런 멜처 교수의 이름을 따 `멜처위원회'로 불리는 이 자문위원회는 IBRD 재원의 80%가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부유한 극소수의 국가들에게 돌아갔고, 프로젝트가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비율은 65~70%나 된다고 지적했다.
멜처위원회 보고서는 이밖에도 IMF와 IBRD에 대해 여러가지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IMF는 성장을 촉진하기는 커녕 경제침체를 제도화하고 있고, 현재의 IBRD는 빈곤 해소라는 목적에 적절치 못한 기구로 진단됐다. 두 기구가 선진7국(G7)의 정치·경제적 이익, 특히 미국의 금융적 이익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그 운영은 빈곤감축과 성장촉진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수요가 아닌 두 기구 내부의 관료적 제국 건설 욕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들어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대규모 시위를 가능하게 했던 최대 요인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초에 걸쳐 벌어진 시애틀 시위의 성과였다. 시애틀 시위는 뉴라운드를 출범시키기에 앞서 의제설정을 목적으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좌초시켰다. 이는 광범위하게 잠재돼 있던 세계화에 대한 분노를 겉으로 표출시킨 벼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 뿐 아니라 IMF와 IBRD도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촉진시키는 주역으로 인식된 것은 당연했다. 반면 IMF와 IBRD의 `기술관료들' 사이에서는 그들 직장의 정통성과 신뢰성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고조됐다. 이들은 지난 몇달간 자신들이 포위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느낌은 워싱턴의 대규모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울펀슨 IBRD 총재는 워싱턴 시위를 앞두고 직원들의 사기저하를 걱정한 나머지 “우리는 빈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 직원들은 세계의 그 누구보다 더 헌신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내용의 메모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기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은 비슷한 시점에 울펀슨 총재와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그는 두 기구의 기능에 대한 비판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자신도 동의하며, 두 기구를 축소조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은 이제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기아퇴치 단체인 `푸드 퍼스트'의 아누라다 미탈은 말했다.
IMF와 IBRD의 오만함과 파괴적인 기능을 폭로하는 데 오랜 세월 노력해온 사람들로서는 이번 워싱턴 시위와 그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동안 IMF와 IBRD는 파괴불가능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일립스 광장의 연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IMF나 IBRD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워싱턴에 오지 않았다. 두 기구를 개혁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다.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공룡과 같은 이 두 낡은 기구를 폐쇄시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때 수만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하던 모습은 아직도 현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세상은 그동안 뒤집어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