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진보강좌 1강>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와 금융 세계화
박상현
마르크스와 {자본}의 역사-경제 법칙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에 대한 착취에 근거한 생산양식'이다. 이러한 명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과학적 비판'. 과학적 비판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본주의가 착취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의 경향을 가진다는 것.
(why? 자본주의는 언제나 과잉착취를 향한 경향을 가지며, 언제나 자본의 계급투쟁이 선행한다(알튀세르) --> 자본은 언제나 '잉여가치 착취'을 통한 축적(확대재생산)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착출은 언제나 물리적-문화적-정치적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생산 및 기술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와 '특별잉여가치'를 추구한다. 그런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평균'의 수준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는 '일반적 이윤율' 혹은 '사회적 평균 이윤율'을 저하시킨다. 동일한 잉여 가치율과 동일한 축적율을 상정할 때, 어떤 축적 경로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이윤율 저하는 이윤량의 증대(지속되는 축적에 따른)에 상쇄될 수 있지만, 특정 시점에서 그러한 상쇄는 불가능해진다. 여기서 자본의 과잉(과잉축적)과 노동의 과잉(궁핍화)가 동시적으로 발생한다({자본}1권 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자본}3권, 3편 이윤율의 저하경향의 법칙). 따라서 착취에 기반을 자본주의는 붕괴의 경향을 가지며, 그런 면에서 일시적-이행적 성격을 가지는 생산양식이다(자본의 전반적인 운동은 잉여가치 개념이 내포된 이윤율에 의해 경향적으로 조절된다: 브뤼노프).
(cf. 서구 맑스주의 내 도덕주의적 전통: 과학적 비판과 도덕적 비판을 혼동 - 특히 영국의 인간주의-도덕주의적 전통, 프랑크푸르트도 마찬가지. 도덕적 비판을 통한 저항 의지의 조직화 - 의지의 실패 이후 철학-문화적 비판으로 후퇴. 의지는 지성에 다름아님. 의지와 지성을 대립시키고,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방기. 이는 경제학 비판과 반-경제학을 혼동하는 네그리식 접근의 경우도 마찬가지)
cf. 서구 맑스주의 내 과소 소비설과 불비례설의 논쟁 및 케인즈주의의 수용. 자본주의의 위기는 과소 소비 혹은 생산 부문간 불비례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 양자는 모두 '시장 문제'에 집착하고, 케인즈주의의 도래 이후 시장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전향. 자본주의의 조절 가능성(안정화 테제)를 제시. 로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출현 가능성 봉쇄 -- 이후 좌파적인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걸림돌)
cf. 소위 '노동의 인간학'이라는 틀 속에서 마르크스의 문제설정을 아담 스미스, 리카도 등의 고전파 일반과 동일시하는 접근은 맑스의 과학적 문제설정과 부르조아 과학 혹은 불철저한 과학의 취약한 문제설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론적 무능력.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핵심은 '가치 일반'이 아니라 '잉여 가치'라는 개념. 잉여 가치라는 개념에 의해 당대의 경제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역사 과학을 향한 새로운 문제설정이 구축됨(알튀세르). 잉여 가치는 단순한 회계적 논증으로 환원되지 않음. 노동력 상품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생활의 모든 양상을 지칭.
cf. 맑스의 붕괴이론은 붕괴를 하나의 경향에 대한 연구. '경향적 법칙'의 의미. 경향적 법칙은 결코 역사의 사건들이 그것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의미(발리바르). 경향은 우발적이기 때문에 예견할 수 없는 하나의 길을 취한다(알튀세르). 따라서 현실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상쇄요인들이 존재한다. 상쇄 요인에는 논리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이 존재한다. 논리적 요인으로는 잉여가치율 상승이나 자본 회전의 가속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억제 등. 역사적 요인으로, 자본 plan의 여타 요소들, 즉 국가, 대외무역 등 존재. 그러나 마르크스의 관심은 이러한 반-경향이 결국은 경향에 종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지 않으며,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존재함을 분석해야 한다(발리바르/아리기/뒤메닐).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주의 내에서 생산관계의 전화를 통한 생산양식의 변이 가능성.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마르크스의 일반이론과의 접합)
역사적 자본주의의 동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세계체제적 전망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봉건제에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내적으로 진화해온 것이 아니다. 중국제국의 일반적 위기와 이에 따른 봉건제의 일반적 위기 --> 절대왕정+상인자본주의. --> 산업 자본주의라는 진화의 도식. 세계 자본주의는 체계적 축적 사이클의 역사 = 헤게모니 국가의 역사: 이는 '영국 자본주의'라는 {자본}의 이념적 평균과 일치.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주의는 영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를 '이념적 평균'으로 자본 일반의 법칙을 도출한 것.
보다 일반적인 역사적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결과, 체계적 축적 사이클이 발견된다. 그 사이클은 '물질적 팽창 국면과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된다. 물질적 팽창 국면은 일정한 시점에 도달하면, 이윤율 저하로 인한 위기(징후적 위기: signal crisis)에 부딪힌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위기가 이윤량이 0에 도달하는 지점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훨씬 이전에 '금융적 팽창'으로 전환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금융적 팽창이 결국에는 최종적 위기(terminal crisis)에 도달. 이 시기에 야만의 지속이냐 새로운 헤게모니적 축적 사이클의 등장이냐, 혹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냐는 문제가 격렬하게 대두됨(기존 일반적 위기론의 쇄신: 기존 일반적 위기이론은 미국이라는 대안적 헤게모니 형성을 고려하지 못함
--> 제2인터네셔널의 사후 복수).
물질적 팽창의 국면은 가치/잉여가치 생산의 확대로 특징지워지고, 여기서 지배적 자본분파는 산업 자본, 반면 금융적 팽창의 국면은 잉여가치 분배구조의 변화로 특징지워지고 여기서 지배적 자본분파는 (초국적) 고도 금융. 특히 체계적 카오스(systemic chaos)시기에 기존의 발전 노선에 대한 신경질적 거부로 특징지워지는 '반-정치'의 출현(헤게모닉 트라우마 혹은 발전의 종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생태주의 & 니체주의의 출현).
19세기 이래 자본주의의 역사는 두 개의 세계 헤게모니의 역사 -- 세계 헤게모니는 지정학적 측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 그 자체의 특성. 영국 헤게모니: 개인(보다 정확하게는 가족) 기업 자본주의 + 자유방임주의, 미국 헤게모니: 법인 자본주의 + 케인즈주의.
19세기 초반 ~ 1860년대: 물질적 팽창 국면 ==> 1870/80년대 장기불황(signal crisis) ==> 19세기 말 ~ 20세기 초 Belle epoque ==> 1930년대 대공황(terminal crisis): 미국 자본주의의 출현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몰락했을 것.
1945~1970년대 초: 전후 장기 호황, 물질적 팽창 국면 ==> 1970/80년대 선진국 장기불황과 개도국의 외채 위기(signal crisis) ==> 90년대 Belle epoque에 돌입. 당분간 지속 가능. 그러나 새로운 축적 사이클
은 존재하는가? 동아시아는 새로운 헤게모니의 중심? 미국의 헤게모니적 트라우마와 민족-국가간 체계의 해체(근대 세계체제 자체의 해체)?
cf. 엥글로-색슨 모델 vs 게르만 모델 vs 일본식 모델 등에 근거한 이른바 비교자본주의론: 각각의 모델이 위계적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각 모델을 자율적 실체로 인식. 자본주의 모델 논쟁의 출발은 유럽 사민주의의 쇠퇴(ex) 프랑스 미테랑 하에서 엄격한 케인즈적-사민주의적 전략 실패)와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논쟁에 있음. 따라서 자본주의 모델 논쟁 혹은 비교 자본주의론의 기본적 문제설정은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냐 라는 데 있음. 이러한 문제틀은 현재 더 이상 자본주의적 대안이 조직되지 못하고, 금융세계화로 축적 형태가 수렴되고 있음을 무시. 정책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적 개혁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음.
cf. 국제관계론의 논쟁: 이상주의 vs 현실주의 --> 새로운 이상주의(Held, Giddens, Habermasian) vs 신자유주의 vs (비판적) 정치경제학적 접근(IPE): 이상주의적 전통은 국제 사회가 영구평화를 향해 나가가야 한다는 칸트적 믿음에 근거해서 국제적 규범을 확보하려는 시도. 이는 현재 세계 시민사회론으로까지 발전(이른바 Held의 삼중적 민주화론 -- 정책으로는 국제적 케인즈주의와 친화).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부정. 고전적인 현실주의 국제관계론은 국가만을 국제관계의 실체로 파악, 따라서 국제관계를 베스트팔렌 시대의 힘의 균형원리로 이해. 헤게모니 국가의 구조적 성격을 무시하고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국가를 지나치게 실체화. 오히려 국제 정치경제적 접근에서 현실적인 헤게모니 재구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조셉 나이 등). Cox 등의 비판적-정치경제적 접근의 경우도 세계적 축적 체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여.
1970년대 이후 금융 세계화 분석
미국 자본주의는 몇 가지 역사적 요인의 결합을 통해,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형성(체계적 축적 사이클의 형성). 이는 생산 관계의 전화를 통한 헤게모니 이행을 의미. 그 역사적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축, 즉 법인 자본이라는 새로운 자본의 조직형태와 케인즈주의라는 거시적 경제 정책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자본의 흐름이 생산적 부문으로 재전환되면서, 동시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를 급속하게 상쇄할 수 있었다.
법인자본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조직 혁명'에 근거. 법인 기업의 조직 혁명은 슬로언주의(소유경영분리, 다사업부제와 수직 통합 등) + 테일러주의(미숙련 노동자 대중에 근거한 대규모 표준화된 공장).
==> 자본가들은 주식 시장으로 후퇴(주식시장 활성화), 장기적인 이윤의 합리화를 조정하는 전문 경영인 등장, 생산 및 조직 관리를 담당하는 광범위한 중간 관리층의 등장(부분적으로 몰락한 자본가층, 부분적으로 노동자 층에서 충원), 법인적 소유 구조와 법인적 계급 구조 형성. 생산과정의 재조직화와 거래비용의 내부화. 이들 미국 법인 기업은 애초부터 대륙적 규모에서 활동 -- 손쉬운 세계화(2차 대전 이후 유럽, 캐나다, 남미 등지로 FDI추진, 마샬 플랜을 비롯한 냉전-발전주의는 TNC의 형성을 용이하게 함, 미국의 FDI는 과거의 것과 달리 1차 자원 부분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정교한 내구 소비재 중심: 자유기업 제국주의)
케인즈주의는 이러한 법인 자본의 축적에 걸맞는 경제 정책을 수립(20세기초 미국의 대공황은 법인자본에 걸맞는 거시경제적 변화와 사회적 관계의 재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의 결과).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금리 생활자의 안락사', 즉 국가의 재정 정책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 있는 수요 예상을 창조해서 산업적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을 극대화시킴으로서 위기를 탈출하는 것. 케인즈주의의 원리는 (1)국가는 사적 기업 활동(법인 기업활동)에 개입하지 않으며 (2)국가 개입은 거시경제에 초점을 맞춘다(화폐정책과 재정정책, 재정정책의 우위 하에서 정책 혼합: 화폐 및 노동력 관리). 이 경우도 국가가 시장 질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 경제의 1주체로 참여하는 것. (3)금융활동의 통제(특히 주식시장, 국제 거래와 자본 흐름의 통제) (4)완전 고용(노조의 통합) (5) 국가의 교육 및 연구 작업 지원 확대. ==> 경제 정책과 사회정책의 형성.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일반적 이윤율 저하라는 조건 속에서 두 가지 상쇄 요인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고, 그 결과 다른 형태로 변화함을 의미. 법인자본의 금융세계화와 케인즈주의 정책의 신자유주의로의 대체. 이러한 대체의 출발점은 80년대 초반의 신보수주의 반혁명. 신보수주의의 반혁명: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에 대한 최초의 분석은 역설적으로 보수주의의 국가 실패론에서 시작.(그러나 국가 실패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 문제는 체제 실패, 즉 이윤율의 저하를 더 이상 상쇄할 수 없는 체제 자체의 모순.) 재정정책 포기, 조세 삭감, 고금리, 고달러 등의 화폐정책 활용. 이는 금융세계화의 첫 번째 국면: 60년대 형성된 역외 금융시장 + 오일 달러 --> 70년대 TNB --> 1980년대 외채위기, 1979-82년 공황, 레이건(고금리/고달러) -- 고도 금융의 뉴욕으로 이동. 그러나 지속되는 외채 위기와 미국 내 S&L의 파산. 결국 신보수주의는 경제 정책 면에서는 퇴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cf. 맑스주의 내 위기이론 논쟁 재촉발. 당시 위기 양상은 이윤율 저하 --> 투자 저하 --> 성장률 저하 -> 실업 + 인플레: 이는 케인즈주의나 과소소비론으로 설명되지 않음. 당시 위기는 가격하락과 이윤율 저하가 연결되지 않음. 원인에 대한 논쟁에서 임금 상승 이론(이윤 압박설: 강력한 노조 or 노동에 대한 과잉축적) vs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근본주의).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체계적으로 전개되지 못함.
신보수주의 정책에 따른 금융위기와 외채위기 속에서 미국의 외채전략은 수정된다. 미국의 외채 전략과 워싱턴 컨센서스: liquidity vs solvency(초기에는 liquidity 문제로 이해: 베이커 플랜 ==> 이후 solvency로 이행(브레디 플랜) --> 정책 개혁 --> emerging market --> w.c(외채문제 해결) -->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 여기서 solvency 문제 해결 방법: 민간 base로 해결하지 않고, IMF주도로 구제금융 등장, 외채의 증권화(스와프, 브래디 본드) --> emerging market(주식시장과 그것의 배경이 되는 포트-폴리오 시장으로 구성). IMF 및 여타 국제 기구들은 모든 나라에 금융적 규범(주식시장 활성화, 기업지배구조 조정, 금융자유화, 재정 및 산업 정책 무효화 등)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강제.
이와 같은 변화는 미국 내에서 90년대에 주식시장의 재활성화와 TNC의 금융화와 함께함. 80년대 금융화는 주로 LBO방식. 1980년대 기업 인수는 10%의 신규 소유주 출자와 30%의 정크 본드, 60%의 은행 대출. 정크 본드의 문제와 단기주의 문제가 극심. 90년대 주주행동주의를 등에 엎고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화. 이를 위해서 기업지배구조 조정.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사외이사제 강화, 경영투명성과 최고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압력 강화. 각종 기금(연금 기금, 뮤추얼 펀드, 헷지 펀드 등)이 주식 시장의 주요 기관투자자로 등장(소수 주주 운동).
TNC의 금융 세계화: 이미 2차 대전 이후에 세계화된 양상을 가진 미국 중심의 법인 기업들이 이윤율 하락 속에서 급격하게 금융적 팽창의 주체로 전환. 그 지표는 다음과 같다. (1)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금융적 팽창 -- FDI와 포트폴리오 투자의 모호성 (2) FDI자체의 성격 변화 -- 1990년대 중반 미국계 TNC의 FDI의 비율은 금융서비스 중심으로 재편(1차 산업12%, 제조업 35%, 서비스부문 53%). (3)TNC를 중심으로 한 금융화의 파트너로서 각종 펀드(연금기금, 뮤추얼 펀드, 헤지 펀드 등) --> TNC와 펀드의 결합으로서 Financial Group?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50%의 FDI.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배제)
케인즈주의의 새-케인즈주의로의 대체. 새 케인즈주의는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에 대한 화폐주의적 신보수주의의 도전(이른바 공급측 경제학)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했다. 이들은 화폐주의가 내세우는 이른바 '정부의 실패'에 대해 '시장의 실패'를 다시 강조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케인즈주의에 대해서는 정책 개혁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새 케인즈주의는 화폐주의와 마찬가지로 화폐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인플레 억제)를 중시하지만, 화폐주의와 달리 고금리가 아니라 저금리 정책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여기서 창조되는 '금융소득'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조하려 한다. 동시에 새 케인즈주의는 전통적 케인즈주의와 달리 완전고용을 포기한다(완전고용을 통한 유효수요 확보전략 포기). 대신 이들은 NAIRU를 수용하면서
일정 수준의 실업율은 자연적인 것(보통 3%의 자연실업률의 수용)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직업 훈련과 일을 위한 복지가 결합되어 정치적-통치성을 지속적으로 유지.
cf 자유 무역 vs 금융적 규범의 강제. 제3세계는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매혹적인 상품 시장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서 최고의 시장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존재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제 상품 교역의 대다수는 중심부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WTO나 IMF가 상징하는 것은 '무역 개방'이 아니라, 금융 자유화에 있다. 그것은 개별 국가 내에서 초국적 법인자본의 자유로운 투자 및 기업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애초 기업활동의 자유는 보호무역을 돌파하는 수단, 무역 자유화는 일부 부문의 요구).
한국 자본주의 분석과 신자유주의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조건: 동아시아에서의 냉전. 발전의 쇼케이스로서 NICs라는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 전략의 결과. 동아시아 국가는 남미와 달리 TNC의 진출이 없었고, 일본을 전후 경제 성장의 중심축으로 형성시킴(소위 '역전된 코스'). 동아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면서 수출 주도형 산업화를 권고. 정치적 헤게모니 전략으로서 '발전-반공주의'. 경제보다는 정치-군사적 요인이 우선.
일본의 성장과 그 배후지로서 NICs. 한-일수교는 이러한 맥락에서 '권고'된 것. 이후 일본은 일본식 기업방식, 직접투자가 아니라 하청 및 공급 계약 형태의 생산연쇄 확장 전략을 통해 NICs와 NIE에 진출.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중복투자 정책 -- 발전국가에서 발견되는 '산업 정책'과 재벌체제를 특징으로. 재벌체제와 과잉축적의 위기를 낳음. 따라서 경제는 잘했지만, 정치는 못했다는 박정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명백한 주객 전도. 이 속에서 형성된 '재벌'의 전략은 축적 위기와 이윤율 저하를 이윤량 확장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90%에 이르는 축적율 --> 이윤율 급감, 붕괴를 앞당김). 70년대 말 위기의 폭발. 79-80년 위기는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동시에 외환위기와 외채위기가 발생. --> 전두환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노력(80-83년 정책 개혁). 축적율을 하락시키고, 과잉축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 3저 호황(86-88년). TNB의 대출처 전환, 플라자 협정 이후 엔고에 따른 일본 자본 및 기술의 도입 등으로 인해 구조적 위기의 유예. 재벌구조는 80년대 말 역으로 팽창. 결국 90년대 후반에 위기 폭발.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형식적으로는 법인 기업의 형태, but 소유-경영 분리가 없고 수평 통합의 성격이 강하다(일본식 자본형태로 법인 자본주의에 미달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출현). 이로부터 소유-경영 분리 및 기업지배구조의 문제와 선단식 경영에 따른 기업 내부거래의 문제가 출현. 그것의 연원은 산업정책의 수혜를 받기 위한 강력한 리더쉽(관치금융 문제)에 따른 것. 기업 자본의 조달 경로는 정부의 후견(산업정책)을 전제로 한 은행 및 제2금융권 여신. 따라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한 기업 평가와 자원조달은 자연스럽게 미발달.
재벌 구조조정은 과잉자본처리와 금융화를 위한 미시적 조정의 성격. '빅딜'을 통해 과잉자본을 처리하고, 자동차, 전기전자, 정보통신, 금융 등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재편. 특히 '신-경제'의 환상 속에 정보통신 및 벤쳐 산업이 주목을 받음. 그러나 이는 기존의 산업구조 재편과는 다른 현상이며, 주식시장을 매개로한 '금융화'에 대한 사고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금융구조조정과 기업지배구조 조정은 결국 한국 사회에 주식시장 중심의 자원조달 및 금융화를 가능하게 하는 '신흥 시장'을 창출하는 것. 제3세계에서 민영화의 문제는 이러한 신흥 시장 창출 전략과 맞물림. 그것은 단순한 재정적자의 문제나 시장주의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음.(정통 새-케인즈주의는 자연독점을 인정하고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사고함(크루그만)). 산업정책은 사실상 철회되고 경쟁정책으로 대체, 완전고용이 아니라 NAIRU가 채택되고 저금리 반인플레 등 화폐정책이 중심에 놓임. 한국의 자본은 장기적으로 금융세계화에 편승.(자본도피로서의 해외주식시장 상장, 국부유출로서의 외국인투자유치). 이러한 형태의 구조조정 과정은 필연적으로 노동의 불안정화와 실업의 구조화를 양산.
몇 가지 전략적 함의
- 자본주의의 위기 혹은 붕괴와 이행이라는 쟁점: 자본주의의 붕괴가 곧 바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증하지 않는다. 또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지성의 위기와 문명의 위기를 동반해왔다. 결국 체계적 카오스의 지속과 이에 따른 야만의 지속 가능성. 헤게모니 이행, 생산 양식 이행, 야만의 지속이라는 길이 존재.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는 대안적 헤게모니의 형성을 봉쇄하면서, 근대적 축적체제의 조건, 예컨대 민족-국가를 통한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 민족-국가 그 자체를 해체시키는 경향(더 이상 글로벌 시티는 방어를 위한 배후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헤게모닉 트라우마와 울트라 헤게모니(국경없는 세계와 담장쳐진 도시. 글로벌 시티와 신중세적 무질서). 여기서 특히 대중의 과학적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과학적 인식의 부재가 도덕적 비난으로, 도덕적 비난이 미학적-문화적 탈주와 자기-게토화로 연결되기 때문(배제된 자들의 자기-게토화 가능성. vs 과학적 인식에 기반을 새로운 혁명적 보편주의, 새로운 야만인가
국제주의인가?).
--> 레닌주의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획의 필요성. 중요한 것은 맑스와 레닌을 넘어서는 것이 그것을 미달하는 것으로의 대체는 아니라는 점. 레닌주의 기획은 자본주의 위기를 전위당 사상과 결합시킴. 정정의 쟁점. 전위는 대중운동의 외부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대중운동의 전위인가(아방가르드와 벵가드의 차이: 소수자주의 vs 다수자주의). 맑스주의 조직은 언제나 '지적 체계'를 동반해왔다. -- 부르조아 이데올로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 못함(따라서 종종 맑스주의 조직을 종교적 조직과 유비. 그러나 이는 천만 부당). 여기서 민주주의는 결국 사상의 통일에 다름 아님. 모든 개인의 공통적 개념에 근거할 때 그것이 민주주의. 그러나 당-조직 형태의 지식-체계는 이론-정치 양자의 일괴암성으로 인해 양자를 왜곡시킴. 이론은 정치에 의해 규정되고, 정치는 '진리의 정치'를 주장. 결국 또 다른 형태의 혁명적-과학적 지식과 대중운동의 융합 프로젝트가 고민되어야 할 듯. 그러나 반-지성주의나 실용주의는 이러한 고민의 부재로 특징지워진다. (진리와 오류의 기준은 진리이다).
--> 강령의 형성은 계급-대중적 요구의 구체화. 이는 정세적 특질을 띠어야 한다. 노동권, 여성권, 지식에 대한 권리가 현재까지 발견된 대중적 권리. 이를 재접합하는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해야 한다. 생태의 문제는 현재로서는 '주체없는' 문제이며, 문명의 문제인 듯. 특히 심층-생태론의 반-지성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는 듯. 이러한 재접합을 위해서는 대중운동과 맑스주의 전반이 전화되어야 할 듯. 특히 여성권의 경우 새로운 쟁점을 제기(평등 속의 차이의 권리) but 이 또한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할 경우 위험이 존재 & 교양있는 맑스주의의 필요성(맑스주의 미학, 페미니즘 등은 존재하지 않음 --> 결국 미학이나 예술에서의 혁명적 전통과 페미니즘의 혁명적 전통과 교통할 필요성).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라는 현재적 국면에서 이러한 권리와 요구들을 구체적 분석과 결합시킬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