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경제위기설 논란에 대하여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인가, 위기를 재생산하는 구조조정인가-
제2의 경제위기설의 확산
투신사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추가투입문제에 관한 논란이 한참이던
지난 5월10일,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에 4쪽의 팩스를 보내왔다.
이글에서 무디스는 지난 2년간 한국의 구조조정은 한낱 ‘겉화장
(cosmetic)’에 불과했다고 평가하고, 보다 강도높은 기업·금융구
조조정의 재개만이 살길이라고 충고했다. 시장은 동요했고,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하여 '제2의 외환위기의 재발은 없다'
면서 시장의 불안을 수습하고자했으나, 바로 그날 새한그룹은 워크
아웃을 신청했고, 미국 S&P와 ESCAP(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
회이사회)의 초강력 경고가 이어졌다. 22일에 정부는 한국투신과
대한 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조기투입을 골자로하는 증시안정화 대
책을 발표했으나, 그날 종합주가지수는 700선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코스닥도 동반 하락했다.
국제유가의 재급등, 그나마 믿어왔던 무역수지의 악화전망.... 미국
증시의 불안과 인도네시아발(發) 동남아시아 통화가치 폭락위기, 중
국의 자본시장개방과 다가온 위안화 평가절하... 원화 환율은 상승
되기 시작했고, 제2의 경제위기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가
정부측의 발표대로라면, 올해 1/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12%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총외채대비 단기외채비율 32%, 단기
외채대비 외환보유고 193%로 외환 방어능력에는 별다른 위기의 징
후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가.
위기의 원인는 미국증시의 침체와 한국경제에 대한 국외 투자자들
의 신뢰도 하락에서 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
는다. 그것은 첫째, 미국증시의 침체가 우리나라 증시의 폭락세와
무슨관련이 있는가이며, 둘째, 외국인투자자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의
소위 '신뢰도'라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사실 미국증시와 한국증시가 동조화될 관련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현실에서 우리나라 증시는 미국증시에 완전히 종속되어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심각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
루전 미국주가의 움직임은 몇시간 뒤에 한국주가에 고스란이 반영
되며, 이는 한국주가의 사활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주가 동조화 현상은 미증시가 오를때보다
내릴떄에 보다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증시의 약23%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이다. 이들은
동아시아 시장과 한국시장을 구분하지않으며 미국증시의 변동에 긴
밀하게 반응한다. 주로 기관투자자들인 이들 외국투자자들의 움직
임에 대한 예상과 기대로 인해 한국증시의 주가는 미국증시의 등락
에 따라 덩달아 오르내리게되고 그 변동폭은 몇배로 불안정한 양
태를 띠게되는 것이다.
무디스나 S&P와 같은 미국소재 신용평가기관들의 몇마디가 한국경
제의 희비를 좌우해버리는 현상 역시 주가동조화와 같은 맥락에서
작동된다. 소위 '신뢰도'라는 애매모호한 정신학적 용어가 정치/경
제를 지배하게된다. 지난 1차 외환위기와 그 해결책으로 도입된 1
차 구조조정의 결과 우리는 극도의 불안정성과 동물적 군집성에 의
해 지배되는 개방화된 종속적 금융경제체제를 가지게되었고, 이제
다시 제2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구조조정과 위기의 악순환은 어떻게 순환되는가
이번 제2 경제위기설을 가동시키고있는 신뢰도 추락의 주요쟁점은
2차 기업·금융구조조정의 지체였다. 재벌개혁의 지지부진함과 7
월중 실시예정인 채권시가평가제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문제, 은
행권 합병방안의 미확정에 따른 불안심리가 국내외 투자자들의 혼
란을 가중시키고 증시침체의 원인이되었다는 것이다. 총선을 경유
하는 일정시기동안 개혁(=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춰잡을 수밖에 없
었던 김대중 정부와 야당간의 신경전, 또 그러한 정치적 틈새를 비
집고 벌어진 재벌-정부간의 줄다리가 2차 구조조정으로의 중단없
는 전진을 불투명하게 했다고 볼수도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에 대한 시장의 심리는 22일 발표된 S&P의 "책
임전가하기 : 한국의 투신, 은행, 재벌의 깨지기쉬운 삼두동맹"이라
는 무시무시한 보고서의 제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결국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현재 벌어지고있는 '제2 경제위기 소동'은 지체되
고있는 제2차 구조조정의 개시 필요성을 납득시키기위한 강제수단
인 것이다. 공적자금 추가 투입에대한 여야간의 합의와 재벌개혁
에 관한 재벌-정부와의 일정한 타협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다. 오락가락하던 정부내 각 경제팀간의 이견들이 조
속히 통합되면서 추가공적자금 투입 규모, 시기, 금융지주회사 설
립방안등 구조조정 현안의 대강이 '시장설득'의 명분으로 매우 빠
르게 진척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국과 초민족자본, 재벌과
여야 각당간의 우열과 대립/의견차이는 결국 위기극복과 구조조정
의 가부를 따지고자하는 쟁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위기-구조조정-
위기-구조조정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적 위기(정세)를
가동시키는 동력일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기는 극복되거나
해소되지않고 반복되며,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둘러싼 초민족자본과
제국, 정부와 재벌간의 다툼은 그 시기와 형태, 강도를 결정짓는다.
이 과정은 마치 금단증세와 마약투여를 반복하는 마약판매상과 마
약중독자간의 '거친 거래'를 연상케한다.
위기중독증과 구조조정의 종식만이 우리가 갈 길이다.
부실은행 퇴출과 국유은행 사유화 및 금융지주회사 설립으로 요약
되는 2차 금융개혁과 소유-경영의 분리, 자본시장 중심적 금융구조
를 핵으로하는 2차 기업지배구조 개혁(재벌개혁), 이것이 제2의 경
제위기를 앞두고 또다시 유일한 대안으로 강요되고있는 위기극복
책, 2차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처방은
제3의 경제위기를 불러올것일뿐임을.
먼저 투신사 퇴출과 부실은행통합의 과정에서는 1차 금융구조조정
에 버금가는 인원감축이 이루어질 것이며, 국유은행의 사유화에
따른 금융시장의 자유화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또다
른 위기의 발단을 양산할 것이다. 또한 재벌개혁으로 포장된 2차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미국식의 자본시장 중심적 기업경영-금융구조
를 구축함을 의미하는 바, 이는 결국 경영구조변화에 따른 노동규
율의 강화/고용의 불안정화를 가속화할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의 확
대와 투기적 경제의 확산으로인한 또다른 위기의 원인을 재생해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채 마무리되지않은 공기업 사유화/해외매각
이 재개되고, 국민연금 이원화나 추가적인 노동부문 개혁등이 줄
줄이 대기중이다.
2차 구조조정의 저지와 금융세계화 반대, 생존권사수투쟁의 고삐를
다시금 다잡아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