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등 기간산업의 분할민영화·해외매각에 반대하는 전국교수선언
그간 정부는 공기업의 부실과 도덕적 해이를 과장하면서 민영화를 주장해왔다. 우리는 공공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며 공기업의 올바른 개혁이 민간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998년 공기업경영혁신 방침 이후 정부는 공기업개혁을 민영화와 동일시하면서, 특히 공익산업의 성격이 강한 전력, 통신, 가스등의 경우 자산규모 때문에 해외매각을 추진해 왔다. 이 때, 민영화는 곧 재벌이나 해외 대자본에 매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경쟁을 도입한다기보다 국내외 독과점 자본에 공익·기간산업의 지배력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한편 우리 공기업이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등 일정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하여, 이렇듯 모든 문제를 감내하면서까지 당장 팔아치워야 하는 부실덩어리인가? 부채의 절대규모가 엄청나다는 이유를 들어 민영화를 주장하지만 이는 설비건설 등 공기업의 산업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특히 한전은 올 상반기 순이익 1조1,400억, 8월 현재의 부채비율 98.1%로서, 재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건실하다.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가 세계적 추세라고 하지만, 에너지자원을 거의 백퍼센트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이와 동일한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이미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해 온 나라들은 과점기업 간의 가격담합과 건설투자 기피, M&A 등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또 공기업 민영화가 이미 IMF와 약속한 사항이며 IBRD차관공여의 조건이기 때문에 이를 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기구와 국민적 공감도 없이 무원칙하게 양허한 사항이 반드시 지켜야 되는 구속력을 갖고 있는가? 나아가 정부는 순조로운 해외매각을 위해 이미 외국자본에게 전기요금 및 통화요금 인상을 비롯하여 현행 투자보수율의 획기적 인상을 보장해 준 바 있다. 도대체, 국제기구의 압력 하에서 초국적 자본에게 온갖 특혜를 약속해 주면서도,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공기업의 부실만을 과장하는 이런 민영화가 진정한 개혁으로 귀결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공기업의 경영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소유구조의 개혁을 의미하는 민영화보다는 공공성을 유지하는 지배구조개선(전문책임경영)이라고 본다. 그나마 취약한 공적 국가서비스를 이윤추구의 사적서비스로 전환함으로써, 민중적 생활악화를 가속화하려는 무책임한 정부의 처사를 수용할 수 없다. 그간 우리 공기업은 사장의 임기도 보장받지 못할 만큼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어 왔으며, 독립책임경영이 되지 못해왔다. 지금까지 공기업이 비효율적이었던 것은 '공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책임한 경영구조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낙하산인사를 통한 그간의 방만한 경영을 전문책임경영으로 바꾸고, 공공의 감시 감독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기업의 경영구조를 효율화해 갈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우리 교수일동은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안)' 및 외국인 소유 한도 확대(33%-49%)를 위한 '전기통신사업법'의 개정 등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철도산업 민영화와 인력감축 정책, 가스산업 분할 민영화 정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국민적 논의절차를 충분히 거쳐 올바른 공기업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전력 등 기간산업의 분할민영화와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전국 서명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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