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분이 읽으셨고 갖고 계시겠지만
요새 읽으면 시의성이 있을 것 같아 영문판 후기를 발췌해 올립니다.
원래는 번역도 좀 손보려 했는데
그냥 아주 사소한 부분만, 그것도 전반부만 고쳤습니다.
담에 시간이 되면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발리바르의 이 당시 입장과 지금의 입장은
아마 몇 가지 핵심적 지점에서 변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기점', 혹은 차라리
그런 변화를 추동한 객관적 '문제들'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동맹', 'PT 헤게모니', '국가소멸'
등에 대해서 그가 어떤 견해를 제시하는지 주목할 만 합니다.

이 중에서도 '국가소멸' 문제는
게시판에서 최원님께서 제기하신 쟁점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국가의 거부'가 결코 아니라
국가에 대한 (부르주아적 제한을 훨씬 뛰어넘는) 민주화의 기획,
따라서 부르주아 국가장치에 대한 해체 및 그것에 대항하여 혹은 대체하여
구성될 또다른 국가장치(그것을 '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부르든 그렇지 않든)
가 민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구성원리에 대한 사고, 그 핵심으로서
제도 그 자체의 핵심에 새겨지는 '봉기적 보편성' 및 그것을 지속적으로 재활성화하고
또한 개조/전진시킬 '대중(혹은 사회)운동' 등의 복합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대중(사회)운동에 대한 강조가 反제도적인 태도 혹은 제도에 대한 非사고
쪽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면,
기존의 제도가 갖는 모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인식과 함께
제도 내외부에서 대중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강제'될 수 있는 경로
에 대한 사고 및 행위가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예컨대 남한에서의 의회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회의적 판단을
곧 국가와 제도 일반에 대한 회의주의/무정부주의로 왜곡하는 등의 마타도어를
소극적으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최원님의 문제제기가 그 실정적 '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형식' 면에서
정세적 의의를 갖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즉 그는 논점을 제도 對 비제도로 제기하지 않고 제도 對 제도로 제기하였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제도가 갖는 내용의 핵심 중 하나로
기존 제도에 대한 '해체'(및 대중들의 국가로의 직접적 진출)를 포함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입장은
무정부주의적이지도 않지만 동시에 국가주의적이지도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좀더 토론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제기되는 '형식'은 최원님의 그것이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이런 논의가 내부에서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고
저 역시 그런 식으로 사고를 전개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