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4.03.18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민주노총이 되길

정세워크숍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남전략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지상중계

김영진 (회원,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
작년 연말(2023년 12월 26~3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남관계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남사업부문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화해협의회,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등 대남 관련 기구, 인원들을 정리하고 외무성으로 이전했다.
 
또한 해당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을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핵무기 고도화를 선언한 이래 핵무기 법제화, 전술핵탄두 공개,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남한에 대한 핵전쟁 위협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남한과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작년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을 채택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는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하여 지원된다’를 명기했다. 이후 한미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여 한반도 인근에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를 늘리고 있다. 2023년에만 전략자산이 17회나 한반도 인근에 전개되었는데, 2022년도 5회와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 8월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 때는 한국 정부도 참여해서 미국의 핵 보복 시나리오를 함께 훈련할 예정이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 핵위협 강화와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고조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사회운동 세력인 민주노총은 북한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양경수 집행부는 ‘한반도 군사적 대결을 막기 위한 반전평화·세계비핵화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한다는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전 세계에서 비핵화를 하기 전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을 사업계획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 2월 5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유회) 당시 ‘세계비핵화’를 ‘한반도 비핵화’로 수정할 것을 요청하는 수정동의안이 제출된 바 있다. 3월 18일 다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북한의 핵무장, 핵위협을 어떻게 볼 것인지, 무엇을 할지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지난 3월 14일 사회진보연대에서 공개 정세 워크숍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남전략 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최했다. (유튜브 실시간 영상보기)
 
 
 
북한의 핵 전략·태세는 어디까지 왔으며, 왜 위험한가?
 
발제를 맡은 사회진보연대 임필수 정책교육실장은 북한의 핵무력 진행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그 함의가 무엇인지 분석하며 왜 북한의 핵 전략이 위험한지를 설명했다. 우선 임필수 실장은 북한의 핵무력 전략, 태세를 평가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인 비핀 나랑의 분석틀을 소개했다. 나랑 교수는 미국과 소련 같은 초강대국이 아닌 핵무장국의 핵전략을 ① 촉매형 ② 확증보복형 ③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나누었다. 촉매형은 신뢰할 수 있는 후원국이 존재할 때,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받기 위한 전략이다. 확증보복형은 적의 공격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살아남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는 능력(2차 타격 능력)을 갖추고 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적의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비대칭적 확전형은 우월한 상대의 재래식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비교적 위임된 지휘체계(하급 지휘관에 상대적으로 높은 권한 부여)를 가진 가장 공격적인 전략이다.
 
나랑 교수의 분석틀을 통해 근래 북한의 행보를 분석했을 때, 임필수 실장은 북한의 핵전략을 ‘확증보복형’과 ‘비대칭적 확전형’의 결합으로 봤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전략을 추구할 분명한 이유가 없음을 지적했다. 일례로 대표적인 ‘확증보복형’사례인 중국과 인도의 핵무장은 중국의 적극적인 현상변경(대만통일, 영토확장) 시도와 중국, 인도 간 국경분쟁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1990년대 탈냉전 분위기, 즉 미군 전술핵무기 철수,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 햇볕정책 장기지속의 조건에도 핵개발을 진행했다.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과시하는 2020년대 초반을 보더라도 당시 한국정부였던 문재인 행정부가 특별히 북한에 군사적으로 호전적이지도 않았다. 따라서 군사적, 외부적 이유로 북한의 핵무장을 설명할 수 없다.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임필수 실장은 북한의 핵무장 이유에 대해, 외부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나 4대 세습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논자들의 분석을 소개하면서, 덧붙여 한국에 대한 협박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일종의 ‘조공국가’가 되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도 북한의 핵무장을 긍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북한의 최근 2020년대의 핵 전략, 태세는 더욱 위험하다고 보았다. 비대칭적 확전전략에서 북한은 현상변경을 위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 위임 체계에서 핵사용의 임계점이 낮아져 우발적 핵전쟁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핵개발을 남북한 민중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하고 긍정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최근 남북관계 방향 전환 및 통일정책 변화에 대해 임필수 실장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선 북한은 남한 정부가 (진보, 보수정부를 막론하고) 흡수통일론을 주장하고 있기에 연방제통일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수사를 보이나, 사실은 북한이 한반도 2국가 체제를 적어도 1990년대 초부터 수용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후속으로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한국 측의 국가연합안과 마찬가지로 남북이 각각 내정, 국방, 외교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전제하기에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단관리’로 볼 수 있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2000년대 후반 북한이 ‘김일성 민족’을 내세운 점을 그러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내 주요 주체들은 북한의 통일론 공식 폐기에 어떤 반응일까? 최근 한국의 통일운동은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에 다양한 반응을 드러냈다. 일부 논자들은 북한의 무력통일론을 유일한 통일론으로 승인하는 입장을 보였고,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을 고수하는 입장을 보이는 논자들도 있었다. 한편, 반미, 친북을 유지한 채 ‘평화적 2국가 체제’를 주장한 논자도 있었다. 임필수 실장은 위 입장들을 소개하면서도 첫 번째 입장은 수용할 수 없으며, 연방제 통일론 고수 역시 북한이라는 파트너 없이 동력을 확보할 수 없으며, 평화적 2국가 체제 주장도 핵을 보유한 북한과, 그런 북한과 경제교류를 하는 남한 모두 세계적 제재를 받는 ‘실패한 국가’로 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에 대항해 3.1절 경축사에서 통일을 유독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 추구가 ‘헌법적 책무’임을 강조했고 8월에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대해 흡수통일론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임필수 실장은 이를 흡수통일론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체제 변경을 인위적으로 추진하거나 무력으로 영토완성을 하는 것을 흡수통일론으로 볼 수 있는데, 흡수통일을 실행할 의지나 수단이 한국정부에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장기적인 햇볕정책(분단관리)’이 사실상 남한의 보수정당이든, 민주당이든, 심지어 진보정당도 수용한 실질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다만, 햇볕정책의 이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 노동자의 노동권, 북한 인권 문제나 탈북민 문제에 입장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전반핵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운동을 만들어내자
 
발제 후에 이어진 토론에선 주로 북한의 대남전략, 핵무력 고도화에 민주노총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했다. 토론자 모두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를 반전반핵평화위원회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전쟁은 어느 국가건, 그 나라의 노동자 민중의 대규모 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한민족의 통일이라는 낭만에 대해 충분한 성찰과 변화한 정세에 대한 분석이 없음을 반성하며 민주노총의 통일위원회를 반전반핵평화위원회로 재편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기영 평등의 길 집행위원장 역시 핵무기는 군인,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절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를 반전평화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 내용의 궤도 수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전반핵문제에 상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
 
권수정 부위원장은 아울러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성찰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활동가들이 그간 자신들의 현안으로 바빠 북한, 통일문제에 대해 상식적인 논의를 하지 못했고 회피했음을 지적했다. 부위원장은 북한의 개성공단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 사례를 언급하면서 “2016년 개성공단 철수 시 북한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이 잔업특근 포함해 73.8달러인 반면,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은 월 116만 원이었다. 이런 차이는 통일시, 북한 노동자 착취 및 노동자 간 경쟁 속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고착할 수 있다”며 이런 문제를 성찰하지 않고 통일을 주장해온 통일운동에 반성을 촉구했다. 그리고 북한 관련 문제에 회피가 아닌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했다.
 
진기영 평등의길 집행위원장.
 
진기영 집행위원장은 핵무기에 대한 둔감해진 분위기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장했다. 집행위원장은 한국일보, 한국리서치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상 불가능한데 설문조사 결과 67%의 한국인들이 핵무기 보유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면 전쟁 발생 시 최대 피해자는 노동자,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며 반전반핵문제에 노동자, 시민을 대변하는 사회운동으로서 민주노총이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반전반핵문제에 대한 관심 촉구는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의 사업계획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남한에 사용할 것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의 민중에게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각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에 3월 1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수정동의안 통과가 중요하다는 점에 발제자, 토론자 모두 뜻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한다’는 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북한이 핵 위협을 고조하고 통일이 아닌 2국가 체제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민주노총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토론이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반공 냉전논리에 이용될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수정동의안 통과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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