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24.03.20
“금속노조가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을 만나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2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13기 1년 차의 첫발을 내딛었다. 《사회운동포커스》는 3월 15일, 금속노조 위원장실에서 장창열 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금속노조 앞에 놓인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창열 위원장은 시종일관 “노동조합의 원칙”을 강조했다.
지난 금속노조 13기 임원선거에서 큰 표 차로 당선이 되었는데요, 선거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올해로 금속노조가 출범한 지 23년 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속노조의 사회적 위상이 20년 전과 같이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노동운동을 해온 과정이 참 쉽지는 않았는데, 그런데도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은 금속노조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에 입사한 지가 33년 차, 노동운동 한 지가 벌써 32년이 됐습니다. 처음 노동조합을 하면서 경험한 것과 지금은 크게 다릅니다. 예전에는 노동조합이 깃발을 꽂고 있으면 누가 모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는데, 지금은 깃발만 나부낍니다. 제가 2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분을 바꿔낼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금속노조 기풍을 새롭게 세워내야 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금속노조를 지금 제대로 세워내지 못하면 5년, 10년 뒤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 같다는 우려가 컸기에 절박함을 가지고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1. 산업전환 대응
(2021년 금속노조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일하는 사람 모두의 대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공동결정법’ 제정 입법청원 운동을 시작으로 산업전환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목표한 인원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노동조합이 회사의 경영전략에 참여하겠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 이번 13기 집행부에서는 산업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현대차지부에서 미래변화대응 TFT 1팀장을 했던 경력이 눈길을 끕니다.
당시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전기차 전환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습니까? 현대차 역시 2025년까지 계획을 발표했고 그에 발맞춰 노동조합도 준비를 했습니다. 내연 기관을 전동화 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엔진 변속 쪽의 고용 문제이고, 전동화 과정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오면 플라스틱 재질로 변화한다든지 해서 다른 부분까지 고용 축소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고요. 더 나아가 도심항공교통(UAM)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을지까지 포함해 미래 먹거리를 어떻게 확보할지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사측이 놀랄 정도로 노동조합이 2년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조합의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기에 노동조합이 앞장서 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죠.
산업전환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으로서 주목하고 발언할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산업전환이 이뤄지려면 결국은 기술과 돈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품사가 산업전환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부품사는 대체로 돈이 없기에 사실상 무대책인 상황입니다. 이럴수록 노동조합에서 얘기해야 할 바는 부품사와 함께하지 않으면 완성차도 성장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산업에 속한 금속노조 조합원 비율이 50%가 넘습니다. 완성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품사, 지역의 유관 사업장들입니다. 모두 지켜내지 못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지금까지 부품사의 생태계를 통해 혜택을 누려온 완성차를 강제해서 재원을 끌어내고 그 재원이 부품사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금속노조가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실제로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지려면, 산업전환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의 고용보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져야 합니다.
제가 항상 회사에 했던 얘기가 “지금이 터닝 포인트다. 너희가 지난 10년 동안 무분별한 외주화를 통해서 구축해 놓은 구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니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준비를 상당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책적인 부분은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길게 보고 가야 합니다. 2년 임기 동안에 기틀을 닦으면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단계적으로 하나씩 채워나가 산업전환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조직되지 않은 수많은 부품사 노동자를 포함해 금속노조 차원에서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더는 늦추면 안 될 과제이고 올해 준비를 철저히 할 계획입니다.
자동차 사업장 외에도 관련한 계획이 있나요?
조선, 철강 부분도 기후위기와 연관이 큽니다.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계속 강화할 것이기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업종별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노동조합이 산업별로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조합원에게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를 챙겨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적으로도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은 부분들을 금속노조가 솔선해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선제적으로 사업장에서 탄소배출을 절감하도록 요구하고자 합니다.
2. 좋은 일자리 창출
2024년 금속노조 통일요구 첫 번째 의제가 “좋은 일자리 창출”인데요. 고용보장 투쟁을 넘어 노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을 교섭 요구안으로 내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고용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현대차만 하더라도 단협에 정년퇴직자에 해당하는 정규직 신규인원을 충원하도록 되어있지만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는 산업전환 시기 고용 감축이 이뤄질 상황을 대비해 매년 2천 명씩 퇴직하는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 감축을 달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꾸준히 신규채용을 주장해왔고, 작년에는 10년 만에 700명을 채용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앞으로도 회사를 상대로 신규채용에 대한 교섭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사실 한국 노동시장이 참 열악하고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역발상으로 노동조합이 좋은 일자리를 요구하고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연감소 인원만큼은 신규채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자리는 여성, 청년, 환경친화적인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요구안을 결정했습니다.
<좋은 일자리 창출 요구안>
① 회사와 조합은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노동조합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신규채용 확대에 적극 협력한다.
② 회사는 퇴직으로 인해 자연감소된 인원은 신규 채용한다. 이때 여성 퇴직으로 감소한 인원은 여성으로 충원한다.
③ 노사는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저감과 사업장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직무를 합동으로 조사하고, 회사는 조사결과에 따라 신설한 직무를 수행할 노동자를 신규 채용한다. 기존 노동자가 탄소배출 저감 등 직무로 전환하는 경우 빈 자리를 충원한다.
④ 회사는 기간제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가 있는 부서에서 신규채용을 하게 되는 경우 기간제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 중 결격사유가 없는 자에 대하여 사내 채용절차에 따라 우선 채용한다.
⑤ 회사는 연간 신규채용 시 제2항부터 제4항에 의한 채용인원과 회사의 노동자 분포를 감안하여 만 29세 이하의 청년을 50% 이상 채용하도록 한다. 단, 특수직종의 경우 노사협의로 한다.
요구안을 관철시켜야 하는 현장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올해 핵심 투쟁의 첫 번째 의제도 “불평등 해소와 제조업 미래를 위한 고용 의제 투쟁”입니다. 이를 선언하기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금속노조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맞는 건지 하는 의문도 나왔습니다. 현장에서는 잘 와닿지 않을 수 있겠죠. 그러나 고용 문제가 시대적 과제가 된 상황에서 이제 노동조합에서도 고용 문제를 적극적으로 발언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미래 세대가 선순환 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3.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
금속노조가 기업별 교섭 틀을 넘어 산별노조적 실천을 강화하기 위해 어떠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까?
올해 당장 금속노조의 기업별 투쟁 관행을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봤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내부의 질서도 극복해야 하고 제도적 환경과 노사관계까지 동시에 바꿔야 하는 문제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산별을 넘어서는 공투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산별교섭 실현 투쟁본부’를 만들자는 선거 공약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경험해 보니까 금속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섬, 보건, 공공과 함께 산별 법제화를 위한 여러 노력을 모아내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사측이 산별교섭의 형태를 원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나올 의사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산업단위 노사관계가 바뀌면 노조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길 테니까요.
산별교섭 법제화 경로 외에 금속노조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중앙교섭, 지부집단교섭 등 기본 교섭체계를 노조 내부적으로 세밀하게 진단하는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1년 차에는 이런 것들을 준비해서 2년 차에는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방안을 한번 세워볼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산별교섭의 핵심은 조건이 다른 여러 기업의 노동조건을 기업의 벽을 넘어 집단적으로 조율하는 작업입니다. 금속노조는 전통적인 중앙교섭, 지부집단교섭 외에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초기업교섭을 지원하고 활성화해 산별교섭의 맹아를 만들고 키워 나가야 합니다. 지회별로 생각하는 것이 조금씩 다른 상황에서, 또 지회와 조합원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도 공동교섭을 어렵게 끌어가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초기업 교섭 시도를 계속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벽에 막혀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산별노조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우회해 새로운 시도를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이러한 시도가 쌓이면 산별교섭 법제화로 갈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섭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어차피 회사도 자기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교섭에 참여할 것이기에, 어떻게 잘 꾀어낼까 작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정책실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이 있으니 이를 기반으로 내부적으로도 다양하게 토론을 많이 해볼 생각입니다.
4. 회계공시 거부와 타임오프제
(2024년 대의원대회에서 금속노조는 ‘회계공시 거부와 윤석열 정부 노조탄압 대응 투쟁 결의’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노조의 자주적 운영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조합원 세액 공제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더불어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개선 노사공동 대정부 요구’를 통일요구로 내걸었다. 금속노조가 이 두 가지를 대정부 투쟁의 핵심 요구로 걸게 된 배경을 들어보았다.)
지난 대의원대회 때 회계공시 거부를 결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현장은 회계공시를 거부하자는 안에 상당히 반대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아무래도 조합원들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정서가 있다 보니, 각 지부장이나 지회장이 회계공시 거부 결정에 부담을 갖는 것이 현실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에 시행령을 개정해 1천 명 이상 사업장의 회계공시를 강제한 데 이어, 지난 1월 18일에는 자동차, 조선, 철강 업종과 1천 명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확대해 타임오프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끝나면 또 뭐가 들어오겠습니까? 회계공시는 시작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회계공시를 받아들여 하나를 내주면,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두 개, 세 개를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따라서 회계공시 문제는 언제까지 금속노조가 방침 없이 계속 노동부에 끌려다닐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비록 조직 내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고 토론도 치열했지만, 마지막 결정은 제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거부합시다. 금속노조가 중심에 서서 원칙을 세워야 지부와 분회까지도 금속노조를 믿고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맨날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고 얘기하면서 지금까지 한 게 뭡니까. 수세적인 상황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며 결단했습니다.
이 결정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이번 기회에 다시 세우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세액 공제되는 금액을 받지 않아도 금속노조는 충분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에게도 아주 큰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부의 회계공시 결정이 노동조합의 자주권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는 상황에서, 19만 금속노조가 그냥 가만히 있다니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금속노조가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오히려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임오프제 폐지 투쟁을 노사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타임오프제 투쟁도 내부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하러 나오니까 시늉할 뿐이지, 뒤로는 다 노조와 합의한 대로 제공하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회사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조합에서는, “지금 잘하고 있는데 굳이 산별노조에서 판을 키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가” 하는 불만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선 타임오프제에 따라 지금까지 노사가 자율적으로 만들어 온 관행에 정부가 개입하는 문제에는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장별로 조건이 다르겠지만,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는 정도가 상당히 심각한 경우가 있습니다. 모트라스, 유니투스의 경우 기존에 상근자 50명의 규모를 14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도 현원 41명을 11명으로 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타임오프제 문제는 단순히 상근자 수의 문제가 아니라 산별노조의 생명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금속노조를 산별노조답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간부가 중앙의 전임자로 올라와 미조직사업도 진행하고 노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한다고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타임오프제라는 악법을 폐기하기 위한 법 개정 투쟁과 대정부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금속노조는 3월 20일 투쟁선포식을 기점으로 힘 있게 정부를 상대로 붙어볼 생각입니다.
5. 민주노총의 진보당 지지철회
(작년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에 따라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에 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공공운수노조와 화섬식품노조, 그리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진보당 지지철회를 결정한 바 있다.)
금속노조에서도 진보당 지지철회 논의가 진행 중인가요?
오늘 아침에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서울본부 본부장과 함께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작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이미 총선방침을 결정했고, 진보당이 이걸 위반한 상황에서 진보당 지지철회는 당연하다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양경수 위원장은 진보당을 넘어서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습니다. 양경수 위원장은 진보당 당원이지만 동시에 민주노총 위원장 아닙니까. 저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주문했던 것입니다.
진보당 지지철회와 관련해서 금속노조 중집에서도 벌써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습니다. 긴 논의 끝에 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 의견이 다수이지만 소수의 이견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3월 1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이후에는 금속노조 역시 방침을 확정하기로 한 상황입니다. 우리 내부에도 진보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상당히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 내의 논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가야 하는지 고민이 깊습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가야 하겠지만, 이번 건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총선 이후에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방침 논의를 지속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노동조합이 일관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차기 금속노조 중집에서 최대한 설득과 토론을 이어가겠지만, 끝끝내 표결하게 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하는 집행부 입장에서는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결정을 하게 되면, 현대차지부가 과연 금속노조 중앙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힘 있게 붙어줄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노동조합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결정되는 대중조직이라는 소신 때문입니다. 조직의 결정에 이견이 있더라도 토론 과정이 보장되고 민주적 절차가 충분히 이뤄진 상황이라면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기본적인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건 원칙의 문제입니다. 4년 전과 똑같은 상황인데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식의 태도는 원칙을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해석을 달리할 것 같으면 원칙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이 세워졌다면, 그 원칙을 다시 논의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제 철칙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조직의 기풍을 세우고 원칙과 기준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13기 위원장으로서 금속노조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정년이 3년 남았는데 여기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습니까?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노조활동을 해왔던 열정이 있기 때문에 출마했던 것입니다. 제 공을 세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위원장 임기 2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봉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후배들에게, 일단 역할을 맡으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 있기에 주저하지 말고 뭐든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위원장을 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금속노조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2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통이었습니다. 특히 현장과의 소통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운동을 하며 현장에 가보니까 12기 때는 서울 상경투쟁이 너무 많았다는 불만을 들었습니다. 당시에 열심히 정권 퇴진을 외쳤지만, 그에 반해 정권 퇴진의 실제 내용이나 노동 의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조합원이 의지를 가지고 상경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집중 투쟁도 배치할 생각입니다. 선거운동 첫날 한국옵티칼지회 투쟁에 갔고 당선 후에도 옵티칼지회를 찾아갔습니다. 첫 중집도 그곳에서 했고 금속노조 결의대회도 개최했습니다. 하나씩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면, 현장에 가장 가까웠던, 약속을 지켰던 위원장으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