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포퓰리즘 비판
| 2024.10.10
3. 정파적 이익을 위해 역사를 악용하는 민주당의 위험한 친일몰이
민주당의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 당론 발의를 규탄한다
지난 8월 28일, 더불어민주당이 역사 왜곡행위를 미화·정당화하거나 이에 동조한 사람을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장으로 임용할 수 없게 하는, 이른바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헌법부정 및 역사왜곡행위자 공직임용금지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 법안의 제안자로는 발의의원 김용만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170명이 전원 참여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표는 “신친일파 척결! 뉴라이트 거부!”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윤석열 정권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친일’로 덧칠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반복된 뉴라이트와 친일 논란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광복절을 전후로 절정에 달한 시점에서 발의되었다. 민주당은 법안 발의 이유로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두둔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미화 혹은 정당화하는 행위가 자행되고, 이러한 인사들이 공직이나 공공기관 등에 임용되고 있는데, 이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특정한 역사 인식을 근거로 공직 임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민주이고 진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인식을 법으로 강제하고 독점하려는 민주당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역사 왜곡행위’는 “일제의 지배 또는 친일·반민족 행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 “러일전쟁(1904~1905년)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과 전쟁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행위를 비방” “독도 영유권의 역사적 사실과 헌법이 정한 영토 규정을 날조해 유포하는 행위” 등이다. 특히 독도 영토에 대해서는 ‘오기(誤記)와 누락’도 ‘날조’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국회 입법으로 공직 임용을 제한하는 요건이라기에는 역사 왜곡행위라는 기준이 너무나 모호하다.
또한, 이 법안은 역사왜곡 방지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헌법부정·역사왜곡 방지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관이 특정 인사를 임명하려면 이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각 3인 지명하고 국회가 5인 지명하도록 했다. 그리고 위원 과반인 6명이 찬성하면 의결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다수당임을 내세워 국회에서 보인 행태를 고려하면, 공직자 임명이나 국회 몫 위원 지명 문제를 두고 친일 논란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며 정쟁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아니더라도, 대통령과 국회 다수를 차지한 세력이라면 특정한 역사 인식을 근거로 공직 임명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이전에도 ‘역사왜곡처벌 특별법’(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비롯해 특정한 과거사에 대해 역사왜곡 행위를 할 경우 이를 형사처벌하는 법안을 습관처럼 내왔다. 실제로 2021년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그러한 시도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으며, “향후 집권세력의 역사인식에 반하는 사상과 표현은 처벌되는 ‘21세기 종교재판’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의 “역사왜곡처벌법” 당론 채택을 규탄한다”, 2020년 10월 29일.) 다시금 강조하자면, 역사 인식은 국가에 의한 사법적 처벌이나 규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상과 학문의 자유로운 교환으로 토론되어야 할 문제다.
이번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에서 놀라운 점은, 민주당이 이제 역사 인식의 문제를 역사적 사실을 넘어 “헌법적 실체를 부정·왜곡하는 행위”로까지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친일적 역사 인식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을 위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헌법과 헌정질서의 핵심은 국가의 정통성을 찾는 데 있다기보다는, 정부 권한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함으로써 시민의 생명·자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있다. 이에 따르면, 특정한 역사 인식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자 대한민국의 헌법적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러한 역사 인식을 가진 자는 공직 임용을 제한하거나 형사 처벌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법 관념이야말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反)헌법적 인식이자 민주당이 그토록 비판하던 군사독재와 거울쌍 모습인 것은 아닌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대표 비공개 회담에서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이재명 대표가 “그러면 북침론자도 공직 배제 법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는 이재명 대표의 유치한 화법을 넘어, 시민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민주당의 몰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사회운동은 역사를 정쟁에 악용하는 민주당을 비판해야 한다
민주당이 마구잡이로 벌이는 친일 논란이 늘 그렇듯, 이번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 논란도 어느새 휘발되어 여론의 관심에서 한 발 멀어진 모습이지만, 야권과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9월 11일 주관한 ‘윤석열 정권의 역사쿠데타 뿌리는 어디인가!!’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역사왜곡, 인권침해 부인 내지 경시 언동을 금지하는 ‘부인주의자들 처벌조항’ 규정과 관련 공직자의 취업금지 등을 포함하는 ‘헌법부정 및 역사왜곡행위자 공직임용금지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 역시 자신이 주관한 8월 21일 ‘윤석열 정권의 역사인식과 극우인사의 공직진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극우 인사들이 공직에 한 명이라도 더 진출하는 것을 두고 볼수 없”다고 말했고,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지금 윤석열 정부는 ‘극우총궐기’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야권과 사회운동이 반윤석열 투쟁을 위해 가장 공통점을 찾기 쉬운 반일·반보수 역사 인식을 매개로 친일과 뉴라이트 논란에 앞장서서 기름을 붓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양상은 가까이는 지난해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논란과 문재인 정부의 반일 민족주의 운동에서부터, 멀리는 2000년대 초 뉴라이트 논쟁부터 반복됐다. (이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비판은 링크의 글을 참고하라.) 2000년대 초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식민지수탈론을 비판하는 식민지현대화론을 내세우며 촉발된 한국현대사 논쟁은 2010년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 논란과 문재인 정부의 반일 민족주의 운동을 거치며 더 이상 학문적, 사상적 논쟁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둘러싼 정치투쟁과 문화전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역사 인식에 대한 국가적 개입으로 지지자를 모으고 반대 세력을 ‘반국가세력’이나 ‘헌법부정세력’으로 공격하는 행태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확산하는 현상은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지름길이다.
민주화 세력을 자임하는 민주당은 오늘날 그러한 민주주의 퇴행의 지름길에 누구보다 앞장서 있다. 집권세력의 역사 인식에 반하는 사상을 갖거나 표현하는 자를 처벌하거나 공직 임용에 제한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법 관념은 과거 군사정부나 반공주의의 법 관념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나아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에 대해 ‘국가가 획일화된 역사 인식을 주입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행위’라며 격렬히 반발했던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운동은 이러한 민주당의 인식과 행태에 대해 놀랍도록 무비판적이다. 반윤석열·반보수 투쟁을 위해 진실과 정의를 혼동하는 민주당의 역사전쟁과 ‘21세기 종교재판’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과연 ‘민주’이고 ‘진보’인지, 오히려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민주주의 파괴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건 아닌지, 사회운동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