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5.01.22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왜 정치의 시간은 오지 않는가

만성적 헌정 위기에 맞서 사회운동은 정치의 시간을 열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사회진보연대는 이제 ‘사법의 시간’이 도래한 때에, 어떻게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살펴보며 정치제도의 결함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법의 시간, 그럼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운동포커스》 2024년 12월 19일.) 그러나 이후 한 달여 간의 정국은 비상계엄 선포 전후보다 더욱 극심한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와 구속에 이어 대통령 지지자의 법원 습격이라는 ‘초유의 연속’에서, 정치의 시간은 그야말로 온데간데없이 실종되었다. 이제는 비상계엄 사태가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는지와 함께,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어째서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더욱 극심해지는지 역시 살펴보아야 한다.
 

위험천만한 정치적 내전을 조장하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사태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달은 데에는 무엇보다 법적, 정치적 책임을 내팽개치고 지지자를 직접 선동한 윤 대통령의 행태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전말이 점입가경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위헌적·불법적 비상계엄 선포가 “야당에 대한 경고성”이었다고 발뺌하면서도, 계속해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려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에도 일절 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반성 없이 사법적 절차만을 탓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일이든 불사할 것을 지지자에게 선동하는 윤 대통령의 망국적 행태는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와 구속을 자초했으며, 결국 초유의 법원 습격이라는 사태마저 초래했다. 법원 습격 사태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여전히 조사에 불응하면서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과 정당성을 밝히겠다는 옥중 입장문을 발표하며 지지자를 결집하고 있다. 정치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해진 선거불복의 정치문화를 사법불복과 물리적 폭력에 의한 법치 파괴로까지 악화시킨 윤 대통령은 이제 법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지기는커녕, 이러한 윤 대통령의 행태에 부화뇌동하며 극단적 갈등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절차적 문제만을 물고 늘어지며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서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윤상현과 같은 일부 핵심 중진의원은 오히려 윤 대통령을 따라 보수 유튜버와 지지자를 선동하는 데 앞장섰다.
 
심지어는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지난 주말 법원 습격 사태에 대해서도, 여당 지도부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노총 시위대였다면 (경찰이) 진작에 훈방으로 풀어줬을 것”이라는 후안무치한 발언을 한 데 이어 민주당이 고소한 보수 유튜버 10명에게 설 선물을 보내겠다는 경악스러운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윤 대통령과 강성 지지층의 위험천만한 행태를 방조하고 선동한다면, 초유의 법원 습격 사태와 같은 위험천만한 사태가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당은 결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기대선에 몰두하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대하는 민주당

 
민주당 역시 당리당략만을 앞세우며 헌정 질서 회복과 거리가 먼 길을 걷기는 매한가지다. 애초 민주당은 총선 전후로 국회 다수당 지위를 악용해 저강도의 헌정 파괴를 일삼았다. 대통령 거부권을 유도하기 위한 무리한 입법을 강행하고, 탄핵을 남발하며, 여야 합의 없이 단독으로 감액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입법부를 행정부와의 극단적 대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수사를 담당한 검사를 터무니없는 사유로 탄핵하며 법치를 위협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빠져들고 있는 극성 유튜버와 지지자를 동원하는 행태의 원조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스스로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보수 세력을 척결하자는 데 앞장서는 한편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무화하기 위해 조기 대선을 앞당기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무리하게 첫 번째 탄핵소추안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성을 문제 삼는 문구를 넣고, 두 번째 탄핵소추안에 중대 사유로 넣었던 내란죄를 철회하면서 탄핵 심판 과정에 대한 논란을 자초했다.
 
내란 특검법 제정 과정에서도 한동안 무리하게 외환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넣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실제 특검 출범이 늦춰지는 데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수사 불응 행태와 별개로, 내란죄 수사 초기 벌어졌던 검경과 공수처의 수사경쟁 과열과 이후 공수처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 역시 문재인 정부 시기 민주당이 주도한 검찰개혁이 남긴 입법공백과 혼란의 결과라는 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너진 정치와 헌정의 복원을 위해 대통령 탄핵과 수사 과정은 신중하면서도 엄정하게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위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며 정치적 갈등을 격화하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데 일조한 셈이다. 윤 대통령 체포와 구속 이후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야 지지율이 역전되고 심지어 정권 연장과 교체 여론이 비등해지는 현상은 보수층이 결집한 영향도 있겠지만, 여론이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 ‘방탄’에만 몰두하며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대하는 세력으로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이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만성적 헌정 위기에 맞서 사회운동은 정치의 시간을 열어야 한다

 
문민화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이 정도로 의회와 정당의 정치가, 나아가 법치와 헌정이 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던가.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극단화한 정치양극화가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윤 대통령 체포·구속 국면을 거치며 말 그대로 만성적인 ‘내전’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진보와 변혁의 가능성보다는 민주정의 퇴보와 붕괴가 우려되는 오늘날의 정세는 특정 개인이나 어느 한쪽 세력만의 문제로 인해 도래한 것이 아니다. 왜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총체적인 기능부전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정치양극화의 한 축을 자임하거나 체제의 반대파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치와 헌정을 복원하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지를 숙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와 헌정이 어떻게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가 진중하게 살펴보고, 한국 정치의 제도적 결함으로 지적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고 의회정치를 뿌리내리게 할 변화를 모색하는 정치의 시간을 열어가야 한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운동이야말로 그러한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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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제왕적 대통령제 비상계엄 법원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