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2.09.27
비범죄화가 기준이다,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7대 요구 및 행동계획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보건복지부로 향한다.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의 1차 결과를 정부에 직접 전달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권리보장 조치를 실시하는 데 정부가 마땅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위 서명운동은 9월 27일까지 취합한 서명부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할 것이다. 그 이후로도 서명운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서명하기 ▶https://campaigns.kr/campaigns/751
지난 8월 17일 출범한 ‘모임넷’은 여성, 장애, 건강, 인권, 노동, 보건의료단체 등 26개 단체로 구성된 연대체로서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에도 여전히 안전한 임신중지가 법·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바꿔내는 실천을 목표로 한다.
“비범죄화가 불러온 변화는 분명합니다. 비범죄화 이후 한국의 시민들은 임신중지를 하나의 권리로서, 의료서비스로서 보장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료현장의 변화도 조금씩 싹트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처벌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병원을 찾는 심리적 장벽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보건의료인들 또한 안정적으로 임신중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보건의료인들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임신중지는 보편적인 삶의 일부이며, 의료는 이 과정의 필수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의료인프라 확충, 의료진 교육이 우리의 요구입니다.”
출범기자회견에 참가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이나연 활동가는 “임신중지는 의료행위이자 누구에게나 확보되어야 할 건강보장의 영역”이라며 보건의료시스템의 조속한 개선을 촉구했다.
“큰 병원을 가면 좋다고 하여 임신을 하여 찾아간 대학병원조차 의료진들은 당황하며 ‘지울거죠?’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네, 제가 임신을 유지할 수도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임신을 중단하고자 할 때 저는 어떤 지원과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원은 방문 시마다 동행한 남편에게 ‘고생한다’, ‘착하다’고 했지요. 장애 여성에게 맞는 시설(체중, 혈압 측정 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의사들도 장애와 장애 여성의 임신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것이 바로 모두의 안전한 재생산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제가 경험한 일들입니다. 모자보건법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여전히 우생학적 사유로 강제 불임시술이나 낙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장애차별적 조항이 있는 나라,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3년이 지난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장애여성공감> 서지연 활동가는 중증장애여성으로서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모두가 부정당해왔던 삶을 토로하며 정부와 국회의 위선과 책임방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비범죄화부터 권리보장까지 오로지 직진,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혀 출범기자회견을 뜨겁게 달구었다.
출범기자회견 기조발언으로 <사회진보연대> 문설희 활동가는 ‘모임넷’의 7대 요구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는 다음의 일곱 가지 변화를 요구합니다.
하나,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는 보편적인 건강권입니다. 임신중지와 관련한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이 그 어떤 조건 없이, 전면 적용되어야 합니다.
둘, 약물적 방법의 임신중지는 이미 전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이용해 온 의료서비스입니다. 유산유도제를 조속히 도입하고 접근성을 확대해야 합니다.
셋,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체계적인 보건의료서비스가 갖춰져야 합니다. 적합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간 연계체계, 임신중지 당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적합한 교육상담체계의 구축 등이 필요합니다.
넷, 임신중지는 가족과 국가, 교회 등 그 누구의 허락 혹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임신당사자 스스로 온전히 행하는 권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을 요구합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편견없고이 없는 유용한 정보에 누구나 적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서는 예비보건의료인과 보건의료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 교사, 상담사, 통/번역사, 활동보조인, 일터의 관리자 등들에 대한 권리보장 교육이 필수입니다. 각 현장에 적합한 교육 시스템 마련 및 정기적 교육을 조속히 실행해야 합니다.
여섯, 임신중지에 관한 사회적 낙인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벽입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사회적 낙인의 잔재를 하루빨리 해소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시행해야 합니다.
일곱, 우리는 이미 법적 효력이 사라진 형법상 '낙태의 죄' 조항의 완전한 삭제를 요구합니다. 모자보건법, 의료법, 약사법, 근로기준법 등 관계 법령의 개정이 따라야 합니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이제, 처벌과 허용의 패러다임을 넘어 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도로 새로운 진전을 만들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오늘 출범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섭니다.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정부에 직접 전달할 것입니다.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그 결과를 직접 전하기 위해, 오는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에 보건복지부 앞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국회에도 직접 전달할 것입니다. '입법공백' 핑계는 더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비범죄화가 바로 기준입니다. 모두의 성 재생산 권리와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하여 행동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해나갈 것입니다.”
지난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는 비로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왜곡된 논쟁 역시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문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바, 여성의 임신중지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으로 엄연한 재생산권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개정 입법 시한도 지나, 형법상 '낙태의 죄'는 법적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2021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더이상 임신중지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임신중지는 권리이다. 2022년, 여성의 건강권과 성·재생산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더 크게 뭉친 ‘모임넷’과 함께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참가 단체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노동당, 노동해방투쟁연대, 녹색당,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전망모임, 사회진보연대, 서울여성회, 성노동자해방행동주홍빛연대 차차,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당 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플랫폼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