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23.03.07
부평공단지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위해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이재영 지회장, 김윤섭 수석부지회장 인터뷰
미조직사업,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
불황기엔 고용안정 요구를 우선시해야
2023년, 전 조합원 간부화가 목표
3월 첫째 날,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이재영 지회장과 김윤섭 수석부지회장의 인터뷰를 위해 부평공단지회를 다시 찾았다. 갓 당선된 이재영 지회장과 인터뷰했던 작년 초와 비교해보니 새로운 사무실과 휴게공간이 생겼다. 노동조합 4년 차.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부평공단지회의 초심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부평공단지회는 사업장 명칭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여타 노동조합과 달리, 해고와 고용불안이 만연한 공단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로리오토부품사지회에서 명칭을 변경했다. 1년 전 인터뷰에서 부평공단지회는 미조직사업을 노동조합 활동의 중심에 두고 전 조합원이 미조직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소양을 갖춰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회운동포커스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공단에서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가다> (2022.01.27.) 참고) 이번 사회운동포커스에서는 그동안 실제 추진했던 사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성과가 나타났는지, 집행부가 바라본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현재 부평공단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현실과 함께, 부평공단지회가 그리고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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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목표가 미조직사업을 전면에 두고 지회 운영을 하는 것과 임단협을 성공적으로 체결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난 1년간 목표한 바를 이뤘나요?
김윤섭 수석부지회장: 임단협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요. 애초에 목표를 크게 잡아서 원안을 모두 관철하지는 못했지만, 집행부와 조합원들이 고생했고 모범단협에 가까울 정도로 따낸 것도 많아요. 아쉬운 점은 숙제로 남기고 다음 임기를 기약해야죠.
지난 1년간 교육선전부장님들이 심혈을 기울인 것이 부평공단 소식지에요. 디자인도 교육선전부장님이 직접 하고 있고,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나가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이게 될까?’ 싶었는데, 공단에 있는 노동자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근처 카페에다가 따로 비치해두는데 지난 호는 거의 다 나갔을 만큼 많이들 가져가시더라고요. 고생한 만큼 성과를 내는 거죠. 이번 달에는 여성의 날 특집호로 나갈 예정입니다. 설문조사 할 때 커피 할인권을 연계해서 카페와도 약소한 협약 같은 것을 맺어 보려고요.
이재영 지회장: 미조직사업은 항상 고민이 많아요. 단기간에 성과가 잘 나지 않기도 하고요. 저희 사업장 도급업체를 조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 상담이 들어오긴 했어요. 앞으로 사업장에 직접 방문해서 공격적으로 소식지를 나눠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요. 전반적으로 11기에 비해서 12기에 확실히 활동력이 높아졌어요.
조합원들에게는 임단협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전면 파업 투쟁을 진행했거든요. 임금보다는 조합 활동 보전과 노동안전 의제에 치중했죠. 원래 임신 시에 유급 휴가가 없었는데 이번에 만들기도 했고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조합이 사업적으로 주도해보자는 목표가 있어서 실제로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기 안전보건교육,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모두 노동조합이 직접 진행하고, 3월부터는 위험성 평가에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려고 합니다. 웬만한 일을 회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하고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사실상 우리가 인수해도 운영하는 데 큰 문제 없겠다고 얘기하기도 하죠.
노동조합 간부들이 공단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법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추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상담을 해봤을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김윤섭 수석부지회장: 솔직히 누구나 처음이잖아요. 노동법 학습부터 시작해서, 어떤 자세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눈높이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는가 하는 상담 방법도 알아야 해서 처음에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아직도 부담됩니다. 실제로 산재 관련 상담을 했을 때 어려운 질문을 받았는데, 확실한 대답을 못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구나!’ 반성하게 되었어요. 물론, 반성하고 부담을 느끼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부평공단 내에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보다는 활동을 하는 제가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부분이 있을 테니 함께 나눠야죠. 노동자의 권리를 알리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보람도 느껴요.
그런데 생각보다 다가오시는 분이 드물어요. 그렇다고 먼저 다가가기도 주저되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면 한발 물러서게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지회장이 얘기한 것처럼 조금은 공격적인 마케팅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담 부스를 설치해볼 수도 있고요. 그만큼 제가 더 잘 알아야지 조직도 잘 할 수 있겠죠.
이재영 지회장이 이번 총연맹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요구인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공단 노동자들이나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그렇게 발언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이재영 지회장: 최근 민주노총이든 금속노조든 노동자의 대폭 임금인상이 첫 번째 투쟁 요구입니다. 아무래도 인플레이션 영향이 있겠죠. 기술력이나 자본이 있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공단에는 단순 조립, 가공 포장 같은 일을 하면서 잔업 특근 없이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거든요.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총의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을 때 회사가 어려워지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대부분 원청회사가 단가 책정을 할 때 제2도급까지 내려오면 오로지 인건비만 남도록 운영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계속 오르면 업체들이 도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부평공단지회도 시급을 금속산업 최저임금에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 그 시급조차도 회사가 허덕입니다. 단가는 정해져 있는데 인건비가 늘어나니까요.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휴게실 확보든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 조치든 돈 없어서 못 한다는 식으로 나오기 일쑤예요.
부평공단을 보면 전통적으로 오래된 사업장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웃소싱이고 해고가 일상인데, 최근에는 폐업도 잦아서 부유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만 해도 공단에서 10번 넘게 해고당하고 폐업도 4번 경험했죠. 원청에서 임금을 올리면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보다는 공단 전체가 금속산업 최저임금으로 맞출 수 있도록 원청의 불합리한 단가 구조를 해결한다든가, 고용이나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임금 실태조사를 제대로 해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4대 보험도 들지 않은 비공식 노동인구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이죠.
그동안 노동조합 운동이 노동자 간 임금격차 문제를 간과해왔다는 사실은 뼈아픈 대목입니다. 임금격차 문제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네요.
이재영 지회장: 우선 임금격차가 유지되는 공단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단에서는 노조활동 자체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노동조합이 생겨서 임금인상, 처우개선을 요구하면 회사가 도산하거나 물량 배정을 못 받게 됩니다. 최저임금만 올려도 휘청거리는 회사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보면 인원 감축도 모자라 사장도 라인 타다가, 결국에는 사업장을 몇 개로 쪼개서 5인 미만으로 운영하는 꼼수도 자행되어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하니까 공단 노동자들이 들었을 때 혹하기 쉬운 건데, 노동조합이 이런 부분들을 잘 이해해서 대안도 제시하고 그래야 노동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거죠.
임금격차 축소가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원청에서 임금 인상분으로 하청 단가를 개선하든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방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산업 전환에 필수적인 문제가 인력 문제인데요. 전기차 시대가 되었을 때 인력이 줄어들 공산이 크고 노동조합은 이에 대응해야 할 텐데요. 이때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분을 적정 인원 확보에 쓴다면 몇 명이라도 함께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최근에 보면 거꾸로 적정 인원을 포기하고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지회들도 꽤 있더라고요.
사업장 간 격차 축소의 방안을 산별차원에서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일단 사업장 내에서라도 여러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항상 도산을 걱정하는 저희 사업장에도 작년에 상여금이 처음 생겼어요. 그런데 “6개월 동안 상여금을 반납할 테니, 그 사이에 너네도 단가 협상 더해 와라, 그리고 두 명 더 고용하자”라고 했거든요. 조합원들도 노동조합 활동이 단순히 내 임금이 오르고 내 삶이 나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는 것이구나를 깨달아가고 있어요.
불황기에는 임금인상 요구보다는 고용안정 요구가 우선이라는 얘기인가요?
이재영 지회장: 지금도 노동조합 선배님들은 15%, 30%씩 임금인상했던 1987년 얘기를 많이들 하셔요. 당시는 호황이었으니까 가능했지만, 지금은 1.5% 인상만 돼도 저희 같은 영세 사업장들에 의미가 커요. 이런 현실을 노동조합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죠. 사업장별로 몇 퍼센트 임금인상 했냐, 상여금 얼마를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시기 노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쟁점도 많고 어찌 보면 욕도 먹을 수 있지만 이런 목소리가 없으면 노동조합이 점점 더 공단 노동자들에게 외면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 번의 폐업과 휴업을 겪다 보니, 노동조합을 만들 때 저희는 잘리지 말고 안정적으로 일해보자는 목표가 제일 컸어요. ‘우리가 근속수당이나 상여금을 계속 올릴수록 회사에서는 인원을 줄이자고 할 거고 그럼 내 옆의 동료는 잘릴 수도 있다.’ ‘다 같이 오래오래 일하려면 동등하게 받자’는 생각을 조합원들이 많이 하세요. 올해 열 세분이 정년인데, 이렇게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나가는 걸 굉장히 명예롭게 생각하십니다. 지금도 원청이 한국지엠이라 회사의 앞날이 불안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건 신규 사업 유치에요. “어떤 거라도 따와라, 포장을 하든 무엇을 만들든 가지고만 와라, 너네도 지속가능 하려면 기술 쌓을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라며 계속 가보자는 제안을 하는 상황이에요.
작년에 한국지엠 부평2공장이 폐쇄되었는데, 다른 협력사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김윤섭 수석부지회장: 사실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일상이라 어찌 보면 특별한 것은 없어요. 이미 사내하청은 많이 줄었고 사외에 있는 협력사들도 코로나 터지면서 도산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같은 직서열 외에 사출같이 재고를 쌓아두는 곳은 일용직을 쓰는 추세라고 합니다. 알바 구해서 물량 1천 개 만들어 놓고 일주일 쉬고 이런 식이에요. 그나마 기술력이 있고 자본이 있는 회사는 굴러가긴 하지만 그 외의 사업장들은 폐업을 많이 했습니다. 개별 조합원들이나 과거에 조합원이었다가 다른 곳에 가신 분들과도 연락하는데, 얘기를 듣다 보면 경제 전체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황인 와중에 제조업 경기가 최악인 것을 느낍니다. 안정적으로 일할 만한 곳이 거의 없어요. 키오스크, LED 전구 제작 이런 곳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역부족이에요. 원래는 제조업 공장이었는데, 이제는 물량이 줄어서 비제조를 겸하는 사업장들도 생겨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올해 부평공단지회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재영 지회장: 장기적으로 부평공단에 있는 영세 사업장들을 아우를 수 있는 지역지회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업장별로 노동조합 사업이나 단협은 알아서 해도 임금은 금속산업 최저임금으로 맞춰서 지역지회에서 공동교섭을 하고 공단에서 시기를 맞춰서 공동투쟁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래서 올해 계획은 세 가지인데, 첫 번째로는 지역지회 TF를 꾸리고 공단에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상담할 수 있는 풀을 늘려가기 위한 정기적인 모임을 하고, 찾아가는 상담 부스나 사업장을 타기팅 한 선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고용안정인데, 사실 회사가 올해 폐업을 고민하는 것 같거든요. 인원 감축 얘기를 꺼내는데 부품사에서 매년 반복되는 문제죠. 이 부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지회 내의 조합원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교육을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지회는 이 정도 기풍은 가지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지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통일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려고요.
김윤섭 수석부지회장: 올해 목표는 미조직사업과 지역지회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확대간부 동지들이 역량을 갖추는 게 목표에요. 저희가 공단소식지도 만들고 있지만 사실 우물 안 개구리거든요. 12기 1년 차에는 간부들이 담당하는 일에 대한 능력을 갖췄던 시기라면 올해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게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좀 만나보고 직접 상담도 해보고 직접 취재도 나가야 해요. 소식지를 처음 만들 때 개별 조합원 인터뷰를 제가 혼자 다 했었거든요. 이제는 교육선전부장님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깨지고 나면 더 단단해지고 굳건해지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13기 때 본격적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이재영 지회장: 실제로 지역지회까지 가려면 전 조합원의 간부화가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이 공단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 간의 격차 축소나 연대의식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어야 지역지회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회사로부터 사무실을 하나 더 제공받았는데, 지역지회 사무실 겸 상담소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동조합 간부 활동뿐만 아니라 공단의 미조직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두고 싶었어요. 내년 말쯤 되면 지금보다도 더 성장하고 발전한 부평공단지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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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공단지회의 활동을 보면, 선전물 제작부터 사업장 안전교육, 미조직 노동자 상담까지 조합원들이 제 손으로 관여하지 않은 게 없다. 노동조합과 일터에 대한 주인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 칭했지만, 부평공단에 봄을 알리는 개구리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부평공단지회가 그리는 목표를 향해 멋지게 도약할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