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3.13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투쟁하는 이란 여성들을 만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재한 이란 여성 토크 콘서트

사회진보연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리는 날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해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투쟁하는 여성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왔다. 2023년 현재,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여성들로는 이란의 민주주의와 자유, 여성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란 여성들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은 2023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홍대입구역 인근 팀플레이스에서 재한 이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여 개최했다. 오늘날 여성의 권리를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현실을 당사자에게서 더 자세히 듣고, 그 투쟁에 연대하고자 했다.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한국 사회에 이란 시위를 알리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이란 여성들을 패널로 초청했다. 행사에는 오프라인으로 40여 명이 참여했다. 사회진보연대 유튜브 채널을 통한 실시간 중계도 진행했다.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2022년 9월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간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십 년 동안 쌓인 이란 사회의 문제들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적인 시위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지금도 이란에서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반정부 투쟁이 5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란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직후인 9월 22일 재한 이란인들의 시위가 열렸고, 이 싸움도 계속되고 있다. 본국의 상황을 보고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나선 이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패널로 참여한 박씨마, 니우샤 샤릴루, 아이사 이마니 씨의 모습이다(왼쪽부터).
 
패널로 참여한 세 명의 이란 여성은 박씨마, 니우샤 샤릴루, 아이사 이마니 씨다. 박씨마 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1979년에 한국으로 이주했고, 현직 목사이다. 니우샤 씨는 이란에서 의생명공학을 전공했고 3년 전에 한국에 왔다. 현재 국립암센터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아이사 씨는 카이스트에서 테크노 MBA를 전공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 정도 됐다. 세 사람은 재한 이란인 시위를 통해 만나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한국인들에게 이란의 상황을 알리고 싶어 시위, 언론 인터뷰, 온라인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란 여성의 삶, 1979년 전후로 완전히 달라져
 
먼저, 패널들은 이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나누었다. 아이사 씨는 이란에서는 항상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는 남성들로부터 언제든 협박이나 공격을 당할 수 있고, 그런 일을 당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여성의 잘못이라고 반응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린 소녀들은 학교에 다니기 위해 6살 때부터 히잡을 쓴다. 여성의 역할은 집안일과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여겨지며, 어떤 일자리에 적격한 남성이 없을 경우에만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아이사 씨는 여성에게 자유가 없는 이란 사회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양말 하나 고르는 것조차도 부모님, 선생님들과 싸워야만 했다”고 묘사했다.
 
 
니우샤 씨는 이란에서 학교에 다니던 2016년,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옷차림을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다. 평소에 입던 대로 평범한 옷을 입었을 뿐이라 경찰서로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을 때에도 가족들이 ‘장난치지 말라’라고 반응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경찰이 문제로 삼으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시간 뒤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니우샤 씨는 그때의 경험 때문에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마흐사 아미니에게 생긴 일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박씨마 씨는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억이 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1979년에 한국으로 이주해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마 씨가 기억하는 1979년 이전의 이란은 여성 장관, 여성 국회의원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로운 복장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였다. 박씨마 씨는 “내가 이란에 살 때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1979년 이후에 갑자기 히잡 착용이 의무가 됐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여러분도 이렇게 자유롭게 옷을 입다가 하루아침에 오늘부터는 한복만 입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물론 한복은 (히잡보다) 훨씬 낫지만요”라고 말했다.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는 ‘혁명’으로서 이란 시위
 
전 세계에 무슬림 국가는 수십 개가 있지만, 히잡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국가는 단 세 개뿐이고 이란이 그중 하나다. 이란 시민 입장에서는, 심지어 원래 있었던 자유를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빼앗긴 것이다. 그렇기에 이슬람 공화국 수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히잡 의무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는 꾸준히 있어 왔다. 그렇지만 2022년에 벌어진 시위는 어느 때보다 이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박씨마 씨는 한국 언론이 지금 이란에서 벌어진 시위를 ‘히잡 시위’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란인들은 단순히 히잡 의무 착용에 저항하는 것을 넘어, 이슬람 정권 자체를 몰아내기 위한 ‘혁명’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투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마 씨는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현재 이란의 상황을 한국의 역사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원전 500년경에 페르시아 키루스왕이 인권을 말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란이라는 나라가 세계 최초로 인권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란 이슬람 혁명 후에 이란 안에서 인권은 없어졌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란에 사는 것은 정부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로봇으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80년대에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 많이 터질 때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한국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란 사람들은 지금 그 투쟁을 하는 겁니다.”
 
현재 이란 시민들은 거리 시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부에 저항하고 있다.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파업이 석유산업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일어나고, 시민들은 은행에 있는 돈을 인출해서 은행을 마비시키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의 강경한 탄압으로 많은 시위 참가자가 다치고 실종되었으며, 지금까지 최소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에 10대~20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사망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상당수 포함된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신에 대한 반역’ 죄를 적용하여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다. 최근에는 이란 각지의 여학교 200여 곳에서 독가스 테러가 연달아 발생했는데, 이 역시 10대 여성들의 시위 참여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이란에서는 매일 같이 믿기 힘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연대를 요청하며
 
아이사 씨는 재한 이란인 시위와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두 번째 일’이라고 표현했다.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주중에는 각자 학교와 직장에 나가야 하기에 주말에 시간을 맞춰 시위를 한다. 아이사 씨는 밤늦게까지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는 이란 시위에 관한 기사를 번역해 기자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런 게 효과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친구들이 목숨을 걸고 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나도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해요.”
 
 
니우샤 씨는 2년 전에 이란의 역사나 문화, 자연을 알리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니우샤 씨가 올리는 영상들은 이란에서 왜 이런 시위가 벌어지는지 알리며 세계인들의 연대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그녀는 “이란에 있는 사람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란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란에 있는 가족에게 언젠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계속 살기 위해 이주해 온 이란인들도 물론 있지만,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본국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각오하고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를 맡은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 맞서 싸우는 재한 이란인들뿐만 아니라, 최근 국제정세가 요동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재한 러시아인들, 중국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하는 재한 중국인들도 한국 사회 안에 있다”라며, 한국 사회운동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세계 시민들의 싸움에 응답하여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재한 이란인들은 2022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전쟁과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재한 러시아인 단체, 한국에서 ‘백지 시위’를 이어가고자 하는 재한 중국인들과 공동 집회를 하기도 했다. 2023년 2월 24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기자회견과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하는 것을 규탄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은 국경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는 당연한 권리”라며 우크라이나 민중의 싸움에 대한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 규탄 세계시민 평화촛불집회 <사회운동포커스>(2023.02.27.))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아이사 씨는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세계 어떤 나라가 여성을 차별하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저렇게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불공평한 일이 생기면 다 같이 소리를 치고, 그냥 조용히 있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니우샤 씨는 지금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억하고, 이 혁명을 여성 혁명이나 이란 혁명으로 인정하고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마 씨는 한국도 과거 일제에 맞선, 군부 정권에 맞선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자유를 쟁취한 것처럼, 이란도 지금 그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내에 동결된 이란 원유 대금이 이슬람 공화국 정부로 넘어가 탄압에 쓰이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촉구했다.
 
 
“(전략) 우리는 이란의 상황과 여성으로 사는 삶, 해외에서 투쟁하는 재외동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어려움 속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시대정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인권을 말려 죽이는 정부에 대항한 온 국민의 혁명이라는 것을, 이란 여성들의 가슴에 도도하게 흐르는 자유인의 정신이 혁명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우리의 투쟁과 승리는 결코 우리만의 것이 아닌, 모든 억압자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이 될 것임을 알렸습니다. 이날의 행사를 계기로 우리가 모두 서로의 상황을 깊게 공감하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기를 기원합니다.”
 
 
주제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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