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3.04.17
4.24 임대에 상정될 정치방침·총선방침은 민주노총의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총선방침을 반대한다
1.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총선방침
오는 4월 2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 및 총선방침”이 다뤄질 것이라 한다. 수많은 중집 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이 단독으로 상정하는 안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이 같은 시도에 우리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정치방침은 노동운동의 핵심 전략을 정하는 것이고 그 어느 것보다도 광범위한 합의에 기초해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 정치의 분화는 엄존하는 현실이다.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개시된 북핵 찬반 논쟁이 진보정당 분화의 이념적 출발점이었고 민중운동 내 각 정파의 견해차는 여전히 크다. 북핵은 한반도 민중의 생명과 평화가 걸린 사안인데, 2022년 북한 핵무력 법제화, 남한을 목표로 하는 전술핵 군사 훈련 이후에는 입장 차이가 더 첨예해졌다.
2012년 19대 총선 대응을 위해 민주노동당 잔류파와 진보신당 탈당파, 그리고 국민참여당이 급조해 만든 통합진보당도 비례대표 부정 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이석기·김재연 제명안 부결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좌초하고 말았다.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종파주의가 당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었지만, 합의된 평가가 있거나 정파 간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당의 분화를 촉발했던 계기에 대한 성찰도 없고, 북핵처럼 핵심 쟁점에 대한 견해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노동 중심’이라는 말로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봉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치방침·총선방침은 민주노총을 도리어 분열시킬 수 있다.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없었던 만큼 제출될 안에 정치적 권위가 서지 않을 것이고, 섣부른 정치방침·총선방침 안이 잠복한 갈등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 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나 다름없는 정치방침·총선방침
이번에 상정될 안의 핵심은 “민주노총은 … 노동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정치방침 5항)와 “2024년 총선에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을 만들어 지역과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추진한다”(총선방침 2항)이다.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2024년 총선에서 진보대연합 정당을 만들어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도약하겠다는 의미다.
언뜻 보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의 단결을 독려하고, 가설정당이라도 만들어서 총선에 공동 대응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정의당과 녹색당, 노동당은 이 안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이고, 진보당만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추진되면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에 진보당만 참여할 공산이 크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집행부의 태도를 보면, 진보당만 참여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자고 몰아갈 가능성도 있다.
가설정당 방안을 추진하려면 민주노총과 제 진보정당 간 협의는 필수다. 선거연합에 대한 공감대는 전제다. 총선을 둘러싸고 정당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의찮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당장 2022년 대선 당시에도 선거인단 모집 등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합의하지 못해 후보 단일화 시도가 결렬된 바 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데다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는 총선용 가설정당에 누가 참여하겠는가? 이대로라면 4.24 임대에 상정될 정치방침, 총선방침은 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3.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엄중한 평가 없는 정치방침·총선방침
이번 정치방침, 총선방침에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어떠한 진단과 평가도 담겨 있지 않다. 하다못해 민주노동당 분당이나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평가도 없고,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선거방침이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진단도 없다.
민주노동당 분당의 계기가 된 북핵에 대한 입장과 패권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보대연합 정당’은 어떤 해법이 있는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진보정당의 분열”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을 막고 “각자도생 방식으로의 선거 대응”으로는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없으니, “민주노총이 책임지고 진보정당과 제 민중 세력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분열, 정파의 분립 자체가 정치세력화의 걸림돌이라는 일면적인 평가로는 아무것도 혁신할 수 없다.
나아가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선거연합 정당을 만들어도 2010년대식 ‘야권연대’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진보대연합 정당' 역시 대안세력으로서 어떠한 정치적 지위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진보당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하고, 전주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성희 후보는 ‘민주당 고마워요’라는 현수막을 내걸며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총선용 선거연합 정당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면,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에서도 헤어 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 손을 들어주고 민주당에 의존했던 진보정당의 행적을 엄중히 평가하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연합이라 해도 그것이 곧 진보 정치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4. 민주노총 집행부의 정치방침·총선방침을 반대한다
사회운동 주체로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새로운 정치적 표상을 획득할 수 있는지,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진보정당 운동이 자신의 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지,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위한 활동가와 조합원의 광범위한 토론이 동반되어야만, 그 정치방침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민주노총 집행부의 정치방침·총선방침은 이에 한참 미달한다. 심지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정치방침·총선방침이 대의원대회에서 표결되어 가결된다면, 그 자체로 민주노총 분열의 기폭제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치방침·총선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총선방침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