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3.05.25
건설노조와 건설산업 바로 알기①: 한국 건설현장 제도화에 앞장서 온 건설노조
노조탄압 와중에도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건설현장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이 화두다.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것은 문재인 정부 말기였지만 본격화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건설노조가 화물연대본부의 2차 총파업에 대해 지지와 동조파업을 선언한 것이 기점이었다고 평가한다. 경찰의 1,000명이 넘는 소환조사, 16명에 대한 구속이 이어진 끝에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까지 발생하면서 노조탄압에 맞선 건설노조의 투쟁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건설산업의 이슈는 노조만이 아니다. 수십 년을 건설현장에서 일해 온 사람들도 의아하다 할 정도로 대형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2021년 광주 학동 철거현장 참사, 2022년 광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참사가 발생한 데 이어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기 하루 전인 4월 30일 검단 안단테(GS건설) 지하주차장의 천장이 붕괴하더니 5월 8일에는 미추홀 경남아너스빌의 옹벽이 붕괴했다. 그 외에도 새로 입주한 아파트 벽에 금이 갔더라는 이슈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안전하게 작업하자는 문제를 넘어서 건축물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검단 안단테의 경우 운 좋게 휴일에 무너져서 인명피해가 없었고, 추가 건축물이 올라가지 않은 공간인 덕분에 본층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코로나로 철근 파동이 일었던 2020년~2021년 건축물들에 철근이 덜 들어갔다는 말은 이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23년 봄은 앞으로 무슨 일이 더 터지기 전에 빨리 시공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에 언제보다도 빠르게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슈는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호황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 연평균 54만 6천 호가 공급되었는데 이는 이명박 정권기보다 52.9%, 박근혜 정권기보다 21.3%가 많다. 즉 건설산업이 팽창할 대로 팽창했다는 것인데, 작년부터 경기가 침체되면서부터 규모가 빠르게 줄고 있다. 대량 실업과 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코로나가 풀리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더 유입되고 있다.
건설현장은 왜 이럴까. 본 글에서는 건설노조와 건설산업이 최대의 화두가 된 지금 건설산업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인지, 그 구조 속에서 건설노조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인지, 정부의 탄압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 등을 3부에 걸쳐 총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온갖 불법 속에서 정확한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필자가 건설노조에서 활동하며 체득한 정보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 일부 언론이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건설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서 건설산업의 구조와 노동조건: 다단계 하도급과 일용노동
건설산업의 여러 군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설산업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특징은 선주문 후생산, 목적지 생산, 공정의 보편성으로 요약된다. 건설산업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축 분야를 기준으로 하여 최대한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겠다.
대부분의 건축 생산물은 주문이 이루어지고 2~4년 뒤에 생산이 완료된다. 하지만 가격은 주문 시점에 결정이 되기 때문에 건설사는 그사이에 물가변동이나 천재지변이 발생해도 그 가격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건설사는 입찰을 위한 최소한의 고용규모를 유지하다가 일감을 수주하면 필요한 숫자의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가 공사가 끝나면 내보낸다. 산업 차원으로도 스스로가 생산량을 결정할 수 없어 산업의 역량과 관계없이 물량을 준다.
목적지 생산이기 때문에 당연히 외부작업이고 공간에 따른 변수가 많아 각종 리스크가 발생한다. 또한 컨베이어벨트 같은 작업라인이 없기 때문에 획기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이 어렵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이런 숙련도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데, 어떤 회사가 시공하건 아파트가 지어지는 과정은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전국 어디에서나 노동조건이 비슷하다. 추가로, 외부작업이고 고소작업(사람이 넘어져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높이 이상의 장소에서 작업)도 많다 보니 안전사고의 위험도 더 높다.
이런 조건 속에서 불법하도급 구조가 발생한다. 건설사는 시공보다 입찰능력이 중요하고, 시공능력을 상시 보유할 필요가 없으니 수주한 뒤에 전문업자를 구해야 하는데, 수주를 따낸 건설사가 다시 갑이 되기 때문에 그 업자들은 다시 단가 경쟁을 하게 된다. 이게 바로 재하도급이다. 이렇게 되면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리스크도 외부화된다. 현장을 따낸 하도급업자는 노동자를 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역시 팀 단위로 작업량을 나눠서 하도급을 내린다.
일용직이라 불리는 건설노동자들은 하나의 건설사에 상시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구하면 취업하고 끝나면 실업이 되는 프로젝트 고용의 형태를 띠게 된다. 한 현장에 고용 기간이 길어야 6개월로 짧고, 요일별로 다른 현장을 오가는 노동자들도 많아 퇴직금, 해고예고수당, 부당해고구제신청 등 노동법 조항이 의미가 없다. 불법하도급에 기반한 임의적 고용관계가 고착됐기 때문에 각종 법정 수당을 따지기보다 단순히 일당에 작업 일수를 곱해서 월급을 받는 ‘공수제’가 보편화 되어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많은 권리가 애초에 건설 일용직에게는 적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해고제한도 없기 때문에 구직을 위한 노동자 간 경쟁은 극대화된다. 특히 팀장을 따라서 여러 현장을 오가며 일하면서 매일 정해진 작업량을 무조건 해주고 나와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지금으로서는 팀 단위 도급이 가장 현실적인 고용구조다. 상용직을 기준으로 구성된 근로기준법은 건설현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노동조합이 단협체결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도 그 현장에서 일이 끝나고 나면 단협도 끝나버리기 때문에 창구단일화 기간만큼도 고용유지가 안 되는 건설노동자에게는 노조법도 제약된다.
마지막으로, 위의 구조 속에서 한국의 건설산업에는 저생산성이 고착된다. 노동자가 한 회사에 고정되어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들은 노동자에 대한 훈련을 신경 쓰지 않게 되고 팀별로 이루어지는 도제식 훈련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마저도 청년들이 현장에 유입되지 않아서 재생산이 끊겨있는 상황이다. 마땅히 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기능훈련과 재생산을 고민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처음 현장에 진입하기 위한 교육 외에는 전무하다. 그리고 건설사들도 시공보다 입찰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지 않아 자본생산성도 정체된 상태다.
분양가가 높다고 아우성인데 상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으로 기술향상(노동자의 숙련이든 공법의 발전이든)과 중간에 새는 돈 막기(불법하도급 근절)는 도외시한 채로 노동조합 때문에 인건비가 올랐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건설노조의 의미: 불법하도급 근절과 건설 일용노동자의 노동권 구축
이런 조건에서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막기 위한 활동과 건설일용직의 특성에 맞는 노동권을 재구성하는 활동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건설노조는 실제로 그렇게 활동해왔다.
우선 건설노조는 2007년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면서 다단계하도급을 불법화하고 원도급인 종합건설업체와 하도급인 전문건설업체까지만 인정하는 기본 골격을 만들어냈다. 물론 현실에서는 재하도급을 받던 업자들이 전문건설업체에 이사로 등록되어 성과급을 받는 등 편법적 구조로 전환되었지만 어쨌건 법적 기틀은 잡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건설노조는 중앙임단협을 통해 노조법을 건설현장에 현실화한다. 토목건축분과와 타워크레인분과가 사용자단체와 임단협을 체결하면서 어느 지역에서 언제 조합원이 고용되더라도 임단협이 적용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회사가 조합원을 고용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을 넣어 현장이 만들어지면 현장 여건에 맞춰서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는 현장별 협약 활동을 벌여왔다.
현장에 조합원이 고용되어 더 나은 조건에서 노동하게 되면 당연히 건설노동자 보편의 노동조건이 향상되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고용활동의 의미는 고용 이후의 노동조건이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일단 불법하도급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한다. 조합원은 작업에 며칠이 걸리건 그만큼 일당을 줘야하고 일당이 임협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도급을 통한 인건비 후려치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용활동은 곧 건설노동자가 건설사에 무한히 복종해야 했던 핵심 고리인 노동자 간 경쟁을 끊고, 노동조합을 통한 대안적인 고용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노조에서 순번에 따라 공정하게 현장을 배치하고, ‘노무관리’에 관련한 신의성실을 어느 정도 보장해준다고 하면 인맥과 노동조건을 가지고 무한 경쟁을 벌이던 건설산업 노동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
건설산업의 노동시장은 항상 열려있다. 누구든 인력사무소에 찾아가면 매일은 아니어도 한 달에 열흘 정도는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숙련되고 소속될 팀을 찾으면 건설산업의 일원으로 남는 것이다. 문제는 일자리의 숫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노동자가 유입되면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쟁도 치열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노동시장을 통제해야만 한다.
건설노조가 구축한 제도는 그 외에도 많다.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연차나 병가를 쓸 수 있도록 실업 조합원들이 대타로 일해주고, 단협으로 일요휴무, 8월 첫째 주 하계휴가를 만들어서 많은 건설노동자가 덩달아서 쉴 수 있게 만들었다. 건설기계분과도 체불임대료 받아주는 활동으로 노동부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회전당 운반비를 받는 레미콘들은 같은 공장의 노동자들이 똑같은 회전수를 기록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토목건축 노동자들은 토요일 특근수당이 없는 대신 2시간 단축근무를 한다. 나아가 당장 도급철폐-직고용 전환을 이루어내기 어려운 직종에 대해서 어떤 권리를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법제화된 부분으로는 일한 날수만큼 퇴직금을 적립하는 퇴직공제부금으로 퇴직금을 대체했고,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원청이나 발주처가 임금을 직접 주는 직불제도 일부 시행되고 있다. 건설기계의 경우는 수급조절을 통해 무분별한 노동자 유입을 막고 있고, 임대료 체불의 대안으로 운영되는 지급보증제도 역시 매우 부실하긴 하지만 유의미하다. 노동안전에 관한 여러 법제화 성과나 현장에서의 활동성과들도 무수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건설현장
이렇게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아서 노동자들 스스로가 만들어온 제도들이 파괴되고 있다. 고용교섭은 거의 중단됐다. 경찰을 등에 업은 건설사들은 고용교섭 자체를 거부하거나 교섭을 하더라도 본인들이 인력 구하기 어려울 때 조합원을 받아주는 정도다. 심지어 대놓고 단협적용 포기하고 도급으로 들어오라는 망언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단협으로 만들어놓은 제도들은 당연히 무력화되고, 법적 권리들 역시 현장에서 무시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장관, 그리고 경찰은 그 무엇도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노조탄압만 자행하고 있다.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방어해내지 못한다면 건설노동자들의 조건은 과거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탄압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함께 싸울 뿐 아니라 기존에 건설노조가 구축해왔던 것을 넘어서 모든 건설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대안적 고용질서를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