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다
| 2023.06.01
건설노조와 건설산업 바로 알기③: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과 건설노조가 나아갈 방향
《사회운동 포커스》는 건설노조와 건설산업이 최대의 화두가 된 지금 건설산업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인지, 그 구조 속에서 건설노조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인지, 정부의 탄압은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건설노조 활동가의 글을 3부에 걸쳐 연재한다. 정부와 자본, 일부 언론이 왜곡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건설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2부 ‘건설노조와 건설산업 바로 알기②: 건설현장 불법하도급의 실체와 정부의 헛다리 짚기’(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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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에서 욕하면 협박죄?
첫 번째 연재 글을 통해 건설노조가 건설일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건설기계)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제도적 기반을 스스로 구축하기 위해 투쟁해왔다고 평가했다. 건설노조는 근로기준법상의 법정수당이나 퇴직금 같은 권리들을 대체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현실에 안착하기 위해 노동조합으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한, 조합원의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도, 노동조합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건설산업 특성상 고용에 관한 교섭권을 가져가는 것이 곧 노조할 권리를 지키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자율적 노사관계 속에서만 존재한 것이지 법제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은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하필 건설노조를 집중적으로 탄압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설노조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특히 골조공정을 중심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전문건설업체가 이윤을 조금 포기하는 수준에서 정리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으로 원청 건설사들이 정부에 탄압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는 건설노조의 활동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공략하고 있다.
물론 최근 경찰의 작태를 보면 법적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집시법, 근기법, 노조법 등 노동조합 탄압을 위해 필요한 기초상식이 전무한 광역수사대 강력계 형사들은 노조와 조폭을 구분하지 않는다. 노조의 교섭이나 집회는 그 자체로 조폭의 협박이고, 노조 측 교섭위원 수가 많았다는 점을 조폭이 우르르 몰려가서 위협했다는 맥락으로 해석한다. 5월 31일 현재 총 19명이 구속됐는데 많은 수가 협박, 강요, 공갈 혐의다. 그동안 집시법 위반이나 업무방해로 처벌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협박죄’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반대급부로 해악을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 당연히 도둑이 들었을 때 안 나가면 신고하겠다고 해악을 알리는 것이 협박죄가 되지는 않는다. 기준은 ‘그 요구나 고지된 해악이 사회적 통념상 부당한가?’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상대방에게는 해악으로 느껴질 수 있는 행위라 하더라도 법적 권리에 기반하여 행한 행위라면 협박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통념이다. 투쟁이 격렬해져서 물리적 충돌까지 이어진 경우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용을 요구하는 교섭, 통상적인 집회, 현장의 불법행위를 신고하는 행위들이 각각 사회 통념에 저촉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모두 구속수사 단계이기 때문에 향후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미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해주고 있기 때문에 큰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허구한 날 경찰에 소환당하고 있는 건설노조 간부들의 체감으로는 회사랑 말다툼 좀 했다고 구속영장을 치고 있으니 이게 단지 건설노조의 고용교섭이 법적 기반이 약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통상적인 사업장별 교섭에서도 노측이 언성을 높이고 파업하겠다고 위협하면 똑같이 탄압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단 이런 우려는 멀리 있다고 차치하고, 또 검경의 과잉수사, 강압수사, 증거 조작까지도 일단은 제외하고 생각했을 때 관건은 결국 건설노조의 고용 요구와 이를 위한 투쟁이 노조법상 권리로 제도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특수고용노동자 탄압도 심각하다. 특고의 임금협약이나 다름없는 임대료 인상을 담합으로 간주하고, 분규가 있는 현장과 계약하는 것을 집단으로 거부하면 집단적 거래거절이라고 보고 있다. 심지어 사업장 단위로 묶여서 활동하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임단협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애초에 노조할 권리가 보장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사업자단체라고 주장한다.
건설노조가 나아가고자 했던 길
건설노조가 지금까지 빠르게 성장해온 기반은 중앙임단협과 현장별 고용교섭, 그리고 현장투쟁이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조활동의 대부분이 교섭과 현장집회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간부와 조합원 모두의 헌신을 요구했고, 집회가 격렬해지면 법적 문제도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부 단위 활동가들은 조합원의 고용문제 이상으로 고민을 진척시킬 수 없었다. 건설노조 활동의 부산물처럼 등장한 어용, 조폭단체들도 큰 장애물이었다. 그들은 건설노조가 조직하지 못한 공간들로 빠짐없이 파고들었고, 노조가 그 분야를 조직하려고 할 때 사측은 적극적으로 이들을 이용하여 건설노조를 저지했다.
이런 문제는 현재의 건설노조 규모가 만들어진 2020년쯤부터 지속해 제기되어왔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건설노조가 형틀, 철근, 타워크레인 등 기존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모든 건설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 공정에서는 이미 상당수 조직화에 성공했고, 더는 조직률을 높일 곳이 없었다. 다른 공정과 직종으로 조직을 확대하려고 하니 그래도 현장 하나 잡으면 3~6개월 고정으로 일할 수 있는 형틀, 철근과는 또 다른 노동조건을 확인했고, 기존 방식을 그대로 확장하는 차원으로는 그들을 조직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건설노조는 큰 틀에서 두 가지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매일같이 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도록 고용 질서를 제도화해서 더는 소모적인 현장별 투쟁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건설노조가 지금까지의 성과를 안착시키고 안정적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고, 현장 내 안전문제라던지 일상적인 교육사업 등 더 많은 것들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노사정이 이런 합의를 만들 수 있다고만 한다면 어느 정도 임금 삭감도 결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통해 고용을 규율하는 법을 만들자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았고, 현실에서 고용 투쟁이 아닌 방식으로 고용 질서를 노동조합이 형성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로 논의되던 것이 생산성 문제였다. 한국의 건설산업은 그 누구도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을 추구하지 않는 곳이기에 건설노동자의 숙련도도 역시 정체되어있었다. 건설노조가 비조합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숙련의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보유한다면 고용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될 터였다. 이를 위해 기능학교를 확대하는 방향, 그리고 지부에서 팀 관리를 강화해서 도제식 교육을 보다 체계화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었다.
둘째는 원청과 교섭하자는 것이었다. 전문건설업체는 이미 많이 삭감된 예산을 가지고 교섭에 임하기 때문에 한계적이고, 결국 원청과 교섭해야 더 폭넓은 교섭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면 예산, 공기, 공정(공법) 수준에서의 교섭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노동자를 비인간적으로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공정과 공기를 설계단계에서부터 바꾼다는 것이다. 문제는 건설노조가 원청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냐는 것인데, 결국 그 힘을 갖추기 위해 핵심 공정들을 더 조직해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도출된다. 그것이 바로 건설노조가 최근 3~4년 공들이고 있는 타설공정 조직화였고, 현재 건설자본이 가장 큰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열사정신 이어받아 노조탄압 박살 내고 고용안정 쟁취하자!
노조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고사하고 건설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활동의 조건이 과거와 같지는 않을 것이고, 당장은 최악을 상정하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최근 건설노조는 엄청난 조직력과 성장세를 보여주며 거침없이 나아갔지만 홀로 투쟁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딱히 연대를 많이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지만 건설기계가 특고 활동하는 것 말고는 그냥 건설은 건설대로 활동해왔다. 많은 활동가가 건설노조의 활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진지하게 함께 토론해줄 사람은 별로 없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덕분인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노조가 대표로 정부와 싸우고 있는 형국에서 모두가 왜 건설노조가 저러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궁금해한다.
건설노조는 이 시점에 더 많은 토론을 제기해야 한다. 현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가 건설현장에 정상적인 고용 질서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건설노조 내에는 노조탄압으로 고용교섭이 어려워지고, 조합원들이 빠르게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을 위한 대안 마련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활동가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오히려 외부의 시각이다. 상용직을 기준으로 한 노동법에 적용되지 않는 직종은 기존의 건설, 화물 산업을 넘어 플랫폼까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단지 윤석열이 나빠서 지지율 올리려 탄압하고, 자본이 나빠서 이윤을 늘리려고 탄압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해당 직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고민하면서 주변에 알려야 한다.
그리고 건설노조는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일자리 소개소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건설현장을 바꿔나간다는 긍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를 위해 조합원들에게 당장 노조가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계속 함께할 동기를 부여하고 간부들의 앞장선 실천으로 투쟁을 선도해야 한다. 그리고 긍지 높은 노동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정화작업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고강도 노동에 대한 통제를 넘어서 생산성이 과도하게 저하된 일부 팀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건설노조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생산성과 공정의 수준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내부에 존재하는 각종 일탈 행위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엄격히 조치해야 한다.
건설노조는 노조탄압과 열사투쟁을 계기로 여러 경로의 대화창구를 열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노‧사‧정‧당‧학계가 함께하는 토론회를 수차례 진행했고, 열사의 명예회복과 고용대책을 위한 정책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 내내 토목건축분과와 타워크레인분과의 2023년 임단협, 임단투가 진행되면서 사용자단체와 긴밀하게 대화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노조탄압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건설노조는 더 이상 임시적인 노사관계 속에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확대되었다. 게다가 건설산업 시장규모도 위축되고 있어 일자리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건설노동자의 고용방식에 대안을 만들고 불법하도급과 거기서 비롯된 각종 불법행위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