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외국인 투자, 산타클로스인가 날강도인가
- 외국인 투자유치론의 허구성 -
금융세계화 흐름에 편입되는 한국경제
제2의 경제위기설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 요즈음 국정 홍보처는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단지 'IMF 국난극복'이 약효가 떨어지자 내세운 말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딘지 섬뜩한 면이 있어보인다. 이제 정부는 과거 개발독재정권과는 다르게 외국자본의 국내침투, 종속의 문제를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공공연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더많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로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수출지향 공업화에서 적극적인 외자유치와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한국경제의 생존조건이 된 것이다.
실제로 IMF위기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 투자는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기업 경영에 참가하기 위해 투자하는 직접투자도 지난해 크게 증가했지만, 특히 증권 채권 등의 투자상품에 투자해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포트폴리오 투자(portfolio investmenr)가 급증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순유입이 시현돼 올 상반기 중에만 100.1억 달러가 순유입되었으며, 1999년 순유입규모 55억달러를 두배 가까이 상회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30%를 외국인이 점유하고 있고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들이 연간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국내 제조업 총 부가가치의 21%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1, 2차에 걸쳐 100% 이루어진 정부의 자본시장개방정책의 결과이다. 연·근해 어업과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업 등 4개 업종을 제외한 모든 산업·경제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규제도 자유화되었고, 그 중 종이기저귀·생리대, 폴리우레탄 연료 등 5개 품목관련 기업들은 70%이상이, 씨앗묘목, 일회용건전지, 필름, 복사기 등 7개품목 관련 기업은 50%이상이 외국자본에게 넘어갔다. 김대중 정부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외국투자자들에 대해 무한정 권한을 부여해주는 한미,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준비중이다.
이처럼 급증하는 외국인 투자는 과연 한국경제를 구원해주는 산타클로스인가, 아니면 경제주권과 민중생존을 위협할 날강도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은 결국 한국경제의 새로운 생존조건이 되어버린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노동자 민중에게 무엇인지에 답하고, 초민족 자본과 김대중 정권이 강요하는 개혁·개방의 미래를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의 논리의 허구성
기회있을 때마다 김대중은 강조하곤 한다. 외국인 투자유치는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하는 외채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가 종속되는 일로 볼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기술이전 및 투명한 선진경영 도입, 막대한 외화자금과 해외수출시장을 선사해주는 한국경제회복의 일등공신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외국인투자 기업은 우리 근로자를 고용하여 봉급 주고 우리나라에 세금 내면서 우리나라의 국부를 창출하는 우리기업이라고까지 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가채무논쟁이 이른바 국부유출 논쟁으로 번져나가자, 정부는 우리나라의 외국인투자가 GDP 대비 7.8%에 불과(세계평균 11.7%)하다고 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외국인투자의 비중이 커서 외환위기를 모면했다는 것, 국제신인도, 국가안보 차원에서의 이점 등 이미 온갖 근거와 논리를 동원하고 발명해낸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GDP대비 외자비율은 이미 9.9%대를 넘어서는 빠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월말 현대증권의 1억달러 외자유치껀에서도 보여지는 바와 같이, 아직 굵직굵직한 재벌개혁·은행매각·공기업 (지분)매각일정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게다가 그 체결/제정이 임박한 한미·한일 투자협정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부의 외자비중 확대 목표치인 20%(!)는 언제 초과 달성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처럼 빠르고 높은 외자비중 증가세와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개방정책 기조하에서 '아직 세계평균보다 낮다'는 식의 근거는 그리 큰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더욱이 1997/1998년 위기의 본질을, 금융세계화로의 강제적 편입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충격이라고 보았을 때, 외자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식의 근거는 본말이 전도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초민족화된 금융자본의 지배력 아래 더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초민족 자본의 적대적 공격 또는 배제(외면)를 피하기 위한 한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위기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같은 '순종'은 더 크고 어떤 주체적 대응도 불가능한 위기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선택일 수 있다. 요컨대, IMF사태는 자본시장이 미개방, 미성숙되어있던 관계로 터지게 된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IMF사태는 자본시장을 개방시키고 금융세계화로 편입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현재의 지속적인 위기상황은 구조조정의 미흡한 진전으로 인해 시장의 신뢰가 상실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개혁, 개방조치들의 결과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정책이, 위기를 막아주는 우산이 아니라 내리는 비를 폭풍으로 바꾸어주는 프로펠러임을 드러낸 것이다.
외자유치가 기술이전의 이점을 가진다는 주장 역시 말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개 이전기술은 세계적 하청계열구조상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수되는 기술이며, 여기에는 그 수준에 걸맞는 수많은 제약조건과 대가가 지불되기 마련이다. 기술의 이전이 기술종속적 산업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욱이 대개의 다국적기업(자본)들은 기업 내부거래를 중심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내부거래를 통해 현지 지사에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갖가지 방법들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 좋은 예로, 수출입가격을 조작함으로써 세금이 싼 나라로 소득을 전가시키는 전형적인 탈세유형인 '이전가격'의 조작 여부에 대해 국세청 세무조사가 여러 번 있어왔다.
이같은 현실에서는, 핵심 우량기업과 국가기간산업들이 외국자본에 의해 점차로 장악되면서 기술이전은 고사하고, 중저급 제품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걱정만 더할 뿐이다.
선물은 없다 : 외자유치와 고용창출
결국 김대중 정부의 외자유치 전략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근거이자 외자유치론의 마지막 보루는 고용창출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외자유치는 고용유지 혹은 창출의 효과가 없다.
우선 우리는 현 외국인투자가 주로 삼성전자, 한국통신 등 이미 잘 돌아가는 핵심 우량기업의 지분투자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외국인투자를 통한 신규 고용창출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투자자들이 더 이상 고용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도, 고용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예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외국인투자자들이 핵심 우량기업을 인수하여, 기존의 고용구조를 파괴하고 고용 불안정화와 노동탄압을 일삼는 사례는 매우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흑자 우량기업으로서 국내 자동차부품업체의 핵심인 만도기계가, 한라그룹 부실로 외국에 분할 매각되어 심각한 고용불안과 자동차산업의 종속을 야기한 사례, 세계적 흑자기업이며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업체였던 중석 독점업체인 대한중석이, 거평그룹에 의해 사유화된 후 그룹 부실로 해외매각되어 심각한 고용불안과 노동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예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외자유치/대외신인도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같은 외자기업들의 횡포를 묵인하거나 정부가 직접 공권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의 생존권투쟁을 탄압하기 일쑤이다. 대한중석, 만도기계 등의 사례들은 단지 본격적인 외자도입의 초기국면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빚어진 예외적 경우로 볼 수는 없다. 외국자본의 힘을 빌어 기업과 경기를 살려내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철저히 관념적인 공상이고 헛된 예외적 바램일 것이다. 외자유치가 우리에게 풀어놓을 선물은 없다.
선진경영기법이란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를 야기
외자유치가 고용창출효과를 가질 수 없는 또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외국인투자의 대부분은 실제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나 고용의 증대와는 상관이 없다. 아니면 정반대로 생산비 절감, 고용축소를 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이득을 올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장단기를 막론한 금융투기자금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종종 단기투기자본에 비해 외국인직접투자가 건전하다고 강조하지만, 본래 포트폴리오와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분명하게 나뉘어질 수가 없다.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직접투자는 5년 이상의 차관, 10% 이상의 지분확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포트폴리오 투자와 구분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약 어느 투자자가 11%지분을 2%씩 낮추거나 높였을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이 구분이 얼마나 현실로부터 무력한 개념구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점차 나날이 복잡하고 교묘해지는 금융기법과 파생금융상품들 역시, 그같은 개념구분을 무력화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어떤 자본이 장기투자자금인지 단기자금인지를 가리는 일 역시, 현재와 같이 완전히 개방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상황 아래에서는 사후적인 통계집계상의 의미라면 모를까, 어떤 의미있는 정책적 판단 근거로서 사용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설사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직접투자의 경우라도, IMF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직접투자방식의 대부분이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려서 이득을 취하는 M&A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에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초민족 자본이 주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수·합병으로 인한 주가의 등락이며, 두번째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이를 통한 기업가치의 등락액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외자유치를 통한 이른바 선진 경영기법의 도입이라는 것의 실체가,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 통제강화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일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례를 들어 자본개방화 이전인 지난 1996년, 국내 외자기업들이 제조업부분에서 차지하던 매출액, 부가가치, 고용인원면에서의 비중은 각각 5.5%, 4.6%, 3.8%였고, 이는 현재 각각 18.5%, 21.2%, 9.7%로 변화되었다. 즉 총매출액과 부가가치량이 약 3.4배, 4.6배로 늘어난데 비해 고용인원은 2.5배가량만이 증가했을 뿐이다. 재료비와 인건비, 대손상각부담액 등의 지속감량이 기본이 되는 선진 경영기법, 다운사이징과 주기적인 리스트럭처링의 덕분이다.
이 와중에서 그나마 잘리지 않은 노동자들 역시, 선진적인(!) 연봉제와 스톡옵션과 같은 유연화된 임금체계, 실적주의(좋게 말해 능력주의)적 경영관행 아래에 철저하고 새로운 노동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
외국인투자 증대와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대
지난 1990년 1.7%에 그쳤던 국내 총상장 주식 중 외국인 주식소유비중은 2000년 9월 현재 30%대를 넘어섰으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은 올해 상반기 중에만 지난해 순유입규모의 두배를 넘어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경제위기 회복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회복의 증거라고 이야기할 테지만 진실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우선 한가지 드는 의문. 올 초 대비 주가는 34%가 넘게 폭락했고, 코스닥은 60%나 하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순유입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올 들어 증권시장은 두번의 블랙먼데이와 두번의 서킷브레이크 사태를 겪었다. 매번 주가폭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매도이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국내투자자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언제 들고 빠지는지, 그리고 무엇을 사고파는지에 따라 투자패턴을 정하였고 그들의 움직임은 수십 수백배의 파장을 그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외국인투자자들은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고, 주가가 폭락하고 폭등할 때마다 언제나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주가차익이외에 환차익까지 추가로 거두어들이는 이석이조의 이득을 보게 된다. 이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달러를 유입하게 되면 환율과 주가는 오르고, 이들이 주식을 팔면 주가와 환율은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시장은 더욱더 불안정해고 이들의 영향력과 이득은 더욱 커져가는 것이다. 이들이 폭락하는 시장에서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만도 아니고, 이들이 선진적인 투자기법과 분석능력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주식·채권·환율시장 등 투기적인 자본금융시장의 비중과 중요성을 확대하고 시장의 불안정성 확대-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목적이며, 이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윤 원천인 것이다.
위기와 구조조정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외국인투자가 우리에게 줄 선물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자본의 위기가 구조조정을 낳고, 구조조정은 당장 위기가 폭발되는 것을 지연시키면서 위기의 지속, 심화와 이로 인한 또다른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운명적인 악순환. 만약 초민족 자본의 유입이 중단된다면 우리가 잃을 것은 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악순환이고, 얻을 것은 경제주권과 민중생존권일 것이다.
결국 줄 선물도 없으면서 보따리만 큰 놈이 있다면 놈의 정체는 날강도가 아니겠는가. 외국인투자는 한계에 다다른 이윤창출의 어려움을 피해 국경을 넘은, 그래서 스스로의 존재규정마저 뒤엎어버린 자본의 초민족화, 금융화의 결론일 뿐이다. 그리고, 그같은 자본의 이동이 가속화하는 금융적 축적방식으로의 전환은 비용절감, 고용의 불안정화/노동통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혁신/구조조정, 경제주권의 상실만을 야기할 뿐이다. 이같은 외국인투자의 본질은, 이들 초민족 자본을 위해 정부와 자본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면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구조조정이, 실은 위기의 유일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금융세계화 흐름에 편입되는 한국경제
제2의 경제위기설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 요즈음 국정 홍보처는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단지 'IMF 국난극복'이 약효가 떨어지자 내세운 말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딘지 섬뜩한 면이 있어보인다. 이제 정부는 과거 개발독재정권과는 다르게 외국자본의 국내침투, 종속의 문제를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공공연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더많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로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수출지향 공업화에서 적극적인 외자유치와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한국경제의 생존조건이 된 것이다.
실제로 IMF위기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 투자는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기업 경영에 참가하기 위해 투자하는 직접투자도 지난해 크게 증가했지만, 특히 증권 채권 등의 투자상품에 투자해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포트폴리오 투자(portfolio investmenr)가 급증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순유입이 시현돼 올 상반기 중에만 100.1억 달러가 순유입되었으며, 1999년 순유입규모 55억달러를 두배 가까이 상회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30%를 외국인이 점유하고 있고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들이 연간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국내 제조업 총 부가가치의 21%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1, 2차에 걸쳐 100% 이루어진 정부의 자본시장개방정책의 결과이다. 연·근해 어업과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업 등 4개 업종을 제외한 모든 산업·경제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규제도 자유화되었고, 그 중 종이기저귀·생리대, 폴리우레탄 연료 등 5개 품목관련 기업들은 70%이상이, 씨앗묘목, 일회용건전지, 필름, 복사기 등 7개품목 관련 기업은 50%이상이 외국자본에게 넘어갔다. 김대중 정부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외국투자자들에 대해 무한정 권한을 부여해주는 한미,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준비중이다.
이처럼 급증하는 외국인 투자는 과연 한국경제를 구원해주는 산타클로스인가, 아니면 경제주권과 민중생존을 위협할 날강도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은 결국 한국경제의 새로운 생존조건이 되어버린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노동자 민중에게 무엇인지에 답하고, 초민족 자본과 김대중 정권이 강요하는 개혁·개방의 미래를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의 논리의 허구성
기회있을 때마다 김대중은 강조하곤 한다. 외국인 투자유치는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하는 외채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가 종속되는 일로 볼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기술이전 및 투명한 선진경영 도입, 막대한 외화자금과 해외수출시장을 선사해주는 한국경제회복의 일등공신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외국인투자 기업은 우리 근로자를 고용하여 봉급 주고 우리나라에 세금 내면서 우리나라의 국부를 창출하는 우리기업이라고까지 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가채무논쟁이 이른바 국부유출 논쟁으로 번져나가자, 정부는 우리나라의 외국인투자가 GDP 대비 7.8%에 불과(세계평균 11.7%)하다고 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외국인투자의 비중이 커서 외환위기를 모면했다는 것, 국제신인도, 국가안보 차원에서의 이점 등 이미 온갖 근거와 논리를 동원하고 발명해낸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GDP대비 외자비율은 이미 9.9%대를 넘어서는 빠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월말 현대증권의 1억달러 외자유치껀에서도 보여지는 바와 같이, 아직 굵직굵직한 재벌개혁·은행매각·공기업 (지분)매각일정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게다가 그 체결/제정이 임박한 한미·한일 투자협정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부의 외자비중 확대 목표치인 20%(!)는 언제 초과 달성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처럼 빠르고 높은 외자비중 증가세와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개방정책 기조하에서 '아직 세계평균보다 낮다'는 식의 근거는 그리 큰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더욱이 1997/1998년 위기의 본질을, 금융세계화로의 강제적 편입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충격이라고 보았을 때, 외자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식의 근거는 본말이 전도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초민족화된 금융자본의 지배력 아래 더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초민족 자본의 적대적 공격 또는 배제(외면)를 피하기 위한 한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위기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같은 '순종'은 더 크고 어떤 주체적 대응도 불가능한 위기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선택일 수 있다. 요컨대, IMF사태는 자본시장이 미개방, 미성숙되어있던 관계로 터지게 된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IMF사태는 자본시장을 개방시키고 금융세계화로 편입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현재의 지속적인 위기상황은 구조조정의 미흡한 진전으로 인해 시장의 신뢰가 상실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개혁, 개방조치들의 결과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정책이, 위기를 막아주는 우산이 아니라 내리는 비를 폭풍으로 바꾸어주는 프로펠러임을 드러낸 것이다.
외자유치가 기술이전의 이점을 가진다는 주장 역시 말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개 이전기술은 세계적 하청계열구조상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수되는 기술이며, 여기에는 그 수준에 걸맞는 수많은 제약조건과 대가가 지불되기 마련이다. 기술의 이전이 기술종속적 산업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욱이 대개의 다국적기업(자본)들은 기업 내부거래를 중심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내부거래를 통해 현지 지사에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갖가지 방법들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 좋은 예로, 수출입가격을 조작함으로써 세금이 싼 나라로 소득을 전가시키는 전형적인 탈세유형인 '이전가격'의 조작 여부에 대해 국세청 세무조사가 여러 번 있어왔다.
이같은 현실에서는, 핵심 우량기업과 국가기간산업들이 외국자본에 의해 점차로 장악되면서 기술이전은 고사하고, 중저급 제품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걱정만 더할 뿐이다.
선물은 없다 : 외자유치와 고용창출
결국 김대중 정부의 외자유치 전략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근거이자 외자유치론의 마지막 보루는 고용창출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외자유치는 고용유지 혹은 창출의 효과가 없다.
우선 우리는 현 외국인투자가 주로 삼성전자, 한국통신 등 이미 잘 돌아가는 핵심 우량기업의 지분투자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외국인투자를 통한 신규 고용창출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투자자들이 더 이상 고용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도, 고용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예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외국인투자자들이 핵심 우량기업을 인수하여, 기존의 고용구조를 파괴하고 고용 불안정화와 노동탄압을 일삼는 사례는 매우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흑자 우량기업으로서 국내 자동차부품업체의 핵심인 만도기계가, 한라그룹 부실로 외국에 분할 매각되어 심각한 고용불안과 자동차산업의 종속을 야기한 사례, 세계적 흑자기업이며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업체였던 중석 독점업체인 대한중석이, 거평그룹에 의해 사유화된 후 그룹 부실로 해외매각되어 심각한 고용불안과 노동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예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외자유치/대외신인도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같은 외자기업들의 횡포를 묵인하거나 정부가 직접 공권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의 생존권투쟁을 탄압하기 일쑤이다. 대한중석, 만도기계 등의 사례들은 단지 본격적인 외자도입의 초기국면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빚어진 예외적 경우로 볼 수는 없다. 외국자본의 힘을 빌어 기업과 경기를 살려내 신규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철저히 관념적인 공상이고 헛된 예외적 바램일 것이다. 외자유치가 우리에게 풀어놓을 선물은 없다.
선진경영기법이란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를 야기
외자유치가 고용창출효과를 가질 수 없는 또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외국인투자의 대부분은 실제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나 고용의 증대와는 상관이 없다. 아니면 정반대로 생산비 절감, 고용축소를 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이득을 올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장단기를 막론한 금융투기자금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종종 단기투기자본에 비해 외국인직접투자가 건전하다고 강조하지만, 본래 포트폴리오와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분명하게 나뉘어질 수가 없다.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직접투자는 5년 이상의 차관, 10% 이상의 지분확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포트폴리오 투자와 구분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약 어느 투자자가 11%지분을 2%씩 낮추거나 높였을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이 구분이 얼마나 현실로부터 무력한 개념구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점차 나날이 복잡하고 교묘해지는 금융기법과 파생금융상품들 역시, 그같은 개념구분을 무력화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어떤 자본이 장기투자자금인지 단기자금인지를 가리는 일 역시, 현재와 같이 완전히 개방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상황 아래에서는 사후적인 통계집계상의 의미라면 모를까, 어떤 의미있는 정책적 판단 근거로서 사용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설사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직접투자의 경우라도, IMF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직접투자방식의 대부분이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려서 이득을 취하는 M&A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에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초민족 자본이 주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수·합병으로 인한 주가의 등락이며, 두번째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이를 통한 기업가치의 등락액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외자유치를 통한 이른바 선진 경영기법의 도입이라는 것의 실체가,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 통제강화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일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례를 들어 자본개방화 이전인 지난 1996년, 국내 외자기업들이 제조업부분에서 차지하던 매출액, 부가가치, 고용인원면에서의 비중은 각각 5.5%, 4.6%, 3.8%였고, 이는 현재 각각 18.5%, 21.2%, 9.7%로 변화되었다. 즉 총매출액과 부가가치량이 약 3.4배, 4.6배로 늘어난데 비해 고용인원은 2.5배가량만이 증가했을 뿐이다. 재료비와 인건비, 대손상각부담액 등의 지속감량이 기본이 되는 선진 경영기법, 다운사이징과 주기적인 리스트럭처링의 덕분이다.
이 와중에서 그나마 잘리지 않은 노동자들 역시, 선진적인(!) 연봉제와 스톡옵션과 같은 유연화된 임금체계, 실적주의(좋게 말해 능력주의)적 경영관행 아래에 철저하고 새로운 노동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
외국인투자 증대와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대
지난 1990년 1.7%에 그쳤던 국내 총상장 주식 중 외국인 주식소유비중은 2000년 9월 현재 30%대를 넘어섰으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은 올해 상반기 중에만 지난해 순유입규모의 두배를 넘어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경제위기 회복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회복의 증거라고 이야기할 테지만 진실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우선 한가지 드는 의문. 올 초 대비 주가는 34%가 넘게 폭락했고, 코스닥은 60%나 하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순유입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올 들어 증권시장은 두번의 블랙먼데이와 두번의 서킷브레이크 사태를 겪었다. 매번 주가폭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매도이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국내투자자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언제 들고 빠지는지, 그리고 무엇을 사고파는지에 따라 투자패턴을 정하였고 그들의 움직임은 수십 수백배의 파장을 그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외국인투자자들은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고, 주가가 폭락하고 폭등할 때마다 언제나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주가차익이외에 환차익까지 추가로 거두어들이는 이석이조의 이득을 보게 된다. 이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달러를 유입하게 되면 환율과 주가는 오르고, 이들이 주식을 팔면 주가와 환율은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시장은 더욱더 불안정해고 이들의 영향력과 이득은 더욱 커져가는 것이다. 이들이 폭락하는 시장에서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만도 아니고, 이들이 선진적인 투자기법과 분석능력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다. 주식·채권·환율시장 등 투기적인 자본금융시장의 비중과 중요성을 확대하고 시장의 불안정성 확대-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목적이며, 이들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윤 원천인 것이다.
위기와 구조조정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외국인투자가 우리에게 줄 선물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자본의 위기가 구조조정을 낳고, 구조조정은 당장 위기가 폭발되는 것을 지연시키면서 위기의 지속, 심화와 이로 인한 또다른 구조조정이 반복되는 운명적인 악순환. 만약 초민족 자본의 유입이 중단된다면 우리가 잃을 것은 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악순환이고, 얻을 것은 경제주권과 민중생존권일 것이다.
결국 줄 선물도 없으면서 보따리만 큰 놈이 있다면 놈의 정체는 날강도가 아니겠는가. 외국인투자는 한계에 다다른 이윤창출의 어려움을 피해 국경을 넘은, 그래서 스스로의 존재규정마저 뒤엎어버린 자본의 초민족화, 금융화의 결론일 뿐이다. 그리고, 그같은 자본의 이동이 가속화하는 금융적 축적방식으로의 전환은 비용절감, 고용의 불안정화/노동통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혁신/구조조정, 경제주권의 상실만을 야기할 뿐이다. 이같은 외국인투자의 본질은, 이들 초민족 자본을 위해 정부와 자본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면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구조조정이, 실은 위기의 유일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