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0.9호
첨부파일
.txt

한반도 문제와 카오스 이론

고지훈 |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카오스 운동이 지배하는 어떤 系(system)에서는 초기조건들을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직후의 운동에 대한 예측은 약간의 시간만 지나더라도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비선형과학(nonlinear science)에 관한 상투적인 의문들] 中에서


1992년이던가, 아니면 1993년이던가 헐리우드가 만든 영화 한편이 초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외신이 소개되었다. 현대가 자동차를 수십만대 만들어 꼬불친 이익을 영화 한편이 가볍게 눌러버렸다고 화제가 되었다. '쥬라기 공원'이다.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을 영화제작의 필수테크닉으로 만든 계기가 되었던 이 영화는 또한 최신 과학 이론을 소개한 것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특히 카오스 이론은 이 영화 덕에 대중적인 관심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새로운 과학이론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카오스 이론은 화학, 물리학, 열역학, 생태학, 기상학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과학분과에 의해 발전되었고, 사회과학과 인문학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남한에서 이 카오스 이론이 대중화된 것은 스필버그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뒤를 이어 카오스 이론을 다루는 대중서들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론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였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필자처럼.


초기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

이 카오스 이야기에는 인문학도의 우둔한 시선을 끌어잡을 만한 대목이 한가지 있었다. 바로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sensitive dependence on initial conditions)'이란 개념을 이끌어 냈던 과학적 가정들이다. 카오스 이론을 다루는 대중서들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이 전문용어는, 용어의 어색함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기상학자들이 상투적으로 인용하는 '나비효과'는 이러한 개념을 예로 든 것인데,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서부해안에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과학자는 산꼭대기에 불안정하게 놓여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운동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바위덩어리의 부피, 질량, 강도와 산의 기울기, 굴곡, 나무의 위치와 표면의 마찰력 등에 대한 완벽한 데이터를 갖고 있더라도 바위가 어디로 굴러내릴지 예측할 수 없다. 바위가 아래로 굴러갈 것이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떨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바위의 하강 운동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그 작은 변수 하나하나는 운동 전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적인 마인드가 빵점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 간단한 카오스 이야기를 보고 한가지 가정을 해본다. 조건(변수)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더라도 장기적인 운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곧 불가지론으로의 탈출은 아니라고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으니 섣불리 예단하지는 말자. 아무튼 규칙적인 운동을 하게끔 되어 있는, 즉 결정론이 지배하는 系(system)에서도 외부로부터의 어떤 작용력이 없이 운동은 그 자신의 내적 논리에 의해 불규칙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쓰잘데기 없는 푸념을 늘어놓기 위한 방편치고는, 너무 거창한 이론을 끌어다 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성과 합리로 대표되는 뉴튼적(결정론적) 세계관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던 거대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초기조건이 중요해진 한반도 문제

현대사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접어들어 가시화된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자극받아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 민중운동이 제기한 시대의 화두는 다양했지만, 알기 쉽고 말하기 쉽게 구호로 정리하자면 '반제 반독점'(혹은 반제반파쇼, 아니면 반제반봉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현장과 학원 등 각지에서 진행된 조직운동은 이러한 시대의 화두를 투쟁현장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슬로건들로 대중들을 조직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분단과 통일 또 제국주의만큼 많이 외쳐진 단어들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현대사 연구의 흐름을 인도했던 것 또한, 분단과 분단을 야기했던 제국주의의 문제였다.

사실 분단이나 제국주의처럼 현실의 고통을 굴절 없이 반영해주는 프리즘은 없는 듯 했다. 증명하기도 쉽고 또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기 용이한 이슈였으니까.
임진각에 가보거나, 허리 잘린 간단한 한반도 그림만 봐도 분단이란 이미지는 쉽게 체득된다. 물론 그래서 살 속에 박힌 총탄처럼 고통을 못 느낄지는 몰라도, 아무튼. 분단은 그래서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논문주제였고, 또 독자적인 史論으로 지위가 상승되기도 한다. 마치 분단의 해소가 모든 고통을 해소시켜줄 것처럼 보였던 때에, 또 그것을 위해 많은 이들이 태극기를 온 몸에 감싸고 있을 때에, 경향 각지의 연구실에서는 일종의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만악의 근원인 분단이란 놈의 유전자 배열구조를 낱낱이 해명하고자 하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도대체 분단을 야기시킨 주역은 누구인가,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왜 하필이면 38선인가, 38선이라고 콕 찍었던 놈은 누구인가, 왜 남한은 미국이고 북한은 소련이었던가, 한반도의 배를 가르는데 일조했던 정치인은 누구인가, 그들은 또 왜 그에 동조했는가 등등등. '분단구조 해명 강박증'이라고 부를만한 이 지나친 초기조건에 대한 집착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미국의 남한 점령에 관한 일종의 관찬 사서인 "American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 War Policy and the First Year of Occupation : 1941∼ 1946"이란 글이 있다. 태평양전쟁 이후 미국의 대한정책 전개에서부터 점령 직후 1년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 글은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좌익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기 직전의 상황까지 기술되어 있다. 당연히 1945년 이전의 미국이 가진 한국에 대한 정책과 초기 점령정책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이 국내에 번역 간행되면서 책제목은 엉뚱하게 "한국분단보고서"로 바뀌었다. 필자의 무지 때문이었지만, 점령초기에 관한 석사논문을 준비할 때 이미 번역되어 있는 이 글을 다시 한번 번역해야 하는 수고를 겪기도 하였다.

통상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分斷'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1945년 미국과 소련 점령이 38선을 경계로 했던 것은 '分割'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반도분할보고서'라고만 역서의 제목을 달았더라도 옥수저를 두고 거친 나무를 깎아서 밥을 먹는 수고로움을 겪진 않았을 텐데. 누구에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쪽팔리는 이야기이다.(사실은 필자가 번역했던 원문 역시 '분단사자료집'이란 영인본에 수록되어 있으니 할말은 또 없어진다) 강박증이란 용어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은데, 현대사 연구를 인도했던 중요한 주제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이렇듯 분단은 현실의 민중운동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번역서의 제목마저 바꿀 정도로 엄청난 중력으로 많은 탁월한 연구자들을 빨아들였다. 그 이후 현대사에 관한 연구가 그 폭을 넓혀오면서 차츰 분단 이후의 정치사회상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분단과 외세라는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분단구조'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이처럼 분단의 과정 뿐 아니라, 분단의 찌꺼기로 살찌는 일부 반민족분자들의 스토리까지 포함되었단 것을 의미한다. 이로서 분단해명프로젝트는 發生學을 벗어나 현실 해명을 위한 動學으로 다시 전화하게 된다. 어설프게 갖다 붙이자면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陽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라고나 할까? 어쨌건… 분단이란 화두는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작업이 보완되어, 현재 남한사회를 해명하기 위한 거대한 이론틀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되먹임 과정은 그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분단구조에 기반한 다이나믹스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시 초기 조건에 대한 더욱 철저한 조사가 요구된다. 그래서 이 초기조건은 다시 중요하게 된다. 애초 초기조건에 대한 완벽한 데이터를 확보하기만 한다면 이후의 결과들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는 것이 가정되었다. "뉴턴에게 맡겨보자구!" 이 초기 조건을 알려줄 정보에 관한 접근이 어려웠다는(손에 넣기 어렵다는 것과 그것이 유용할 것이라는 나아가서 참(眞)일 것이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美人을 상상해 보라) 점은 사태를 더 긴장시켰다.

가해자로 지목된 미국의 정보 은폐{{)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문서들이 비밀해제되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나마 엄격한 '살균작업(sanitized -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문서들을 제외한 자료들만을 공개한 것을 비유하는 용어)'을 거치고 난 후였다.
}}가 이를 부채질한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 현대사 연구 붐은 많은 연구자들을 渡美케 하였고, 이들에 의해 연구는 몇 보 더 나아가게 된다. 일말의 양심은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미국은 자신의 현재를 옥죌지도 모를 과거를 정보공개법 제정을 계기로 많은 양의 문서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비밀해제되지 않고 있는 자료가 더 남아 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의문들이 해소되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38선 분할과 분단정부의 수립을 전후한 소위 '초기조건'에 대한 상당량의 정보를 다시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다시 분단구조에 기반한 動學을 정교화시키게 될 터이다. 희랍의 한 수학자가 충분히 긴 지렛대만 준다면 지구를 들 수 있다고 호방하게 외쳤던 것처럼, 초기조건에 대한 정보는 한국판 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열쇠로 보였다.


붕괴된 인과율과 카오스에 빠진 한반도

모든 질서가 분단이라는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었던 한반도라는 系(system)에서도 요동, 그래서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일어난다. 7.4 공동성명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김일성과 YS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뚜 노릇을 한 것도 그렇다. 평양 공항에 내린 DJ의 모습을 보면서도 심하게 흔들린다.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할 것이라는 합의사항 역시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발악하는 조선일보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들은 분단과 통일이라는 법칙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그들처럼 변함없이 빨간색에 "으악~"하며 비명을 질러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지배권력의 행동은 어떤가? 물론 지금 현재 지배권력이란 디제이 일인을 제외한 실체가 분명해 보이지 않지만, 어쨌건. 최근 우리를 둘러싼 변화들은 분명 '분단/통일'이란 인과율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혼란스런 상황이다.

"통일을 위해서도 미군의 주둔은 허용되어야 한다"

복원된 역사에 의하자면 한반도가 분단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던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중간파의 통일방안은 '미소양군의 즉각적인 철수와 자주적인 통일정부 수립'이었다. 그러나 單政세력(뒤에는 좀더 포괄적 개념인 분단세력으로 대체됨)들에게 미군의 철수는 밥숟가락 놓으란 말과 같았다. 이처럼 분단세력의 해소가 곧 분단의 해소라는 1세대 통일운동의 방침은 4.19 직후에도, 또 1980년 이후의 통일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군'이 아니라 '미군'으로 바뀌긴 했지만.

한데 이제 통일은 오히려 미군을 원한다. 동북아 정세의 안정과 통일로 야기될 급격한 세력균형의 와해를 위해서 이제 '분단/통일'의 도식은 결별하려 한다. 분단을 야기한 원죄는 통일에 대한 지원이라는 대가를 지불해 준다면 눈감아줄 수 있다? 아직 진행 중에 있는 사건이니, 좀 더 차분히 두고볼 필요는 있을 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搖動은 한반도라는 系 전체를 뒤흔들어버릴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는 남한 주민보다 북한 인민들을 더 심하게 흔들어 댈지 모른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남한보다 훨씬 더 분단/통일의 인과율이 잘 적용되는 곳이 북한이었다. '미군의 계속 주둔'을 교시로 내려보낸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적 공황이 잠재워질까? 한겨레신문처럼 작금의 상황으로 "정신적 공황"을 겪는 이들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보수 집단일 뿐이라고 쉽게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 곰곰히 따지고 보면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아마도 북한 인민들에게서 발견될 것이다.


카오스에도 질서가 숨어있다지만

분단이 야기한 고통에 시달리던 이들의 처참한 사정을 몰라서도 아니고, 통일에 헌신한 투사들의 단심을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들었던 현대사 연구자들의 열정 역시 간단한 몇 마디 말로 무시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또 통일이 가져다 줄 지 모르는 사소한 불편{{) 한가지 예를 들자면 남북 단일 축구팀과 같은 거다. 만일 월드컵에 단일팀을 구성해야 된다면 누굴 포기할 건가? 지금 현재도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즐비한데, 거기에 북한 선수들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면? 그 정도쯤이야 우리 축구광들도 참을 수 있다. 그런 사소한 불편들 쯤이야....}}이 싫어서 내뱉는 넋두리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系는 '분단/통일'이라는 기계적 인과율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미미한(?) 변수들의 운동을 포함하고 있으며, 系 전체의 운동은 그러한 작은 움직임들 각각이 야기할 수도 있는 변화의 가능성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도 적용되는 명제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자면 현실상황이 다시 분단과 관련한 연구를 강화하는, 앞서의 되먹임질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문제는 통일의 과정에서 해소되어야 할 '분단/통일'의 인과율이 왜곡된 형태로, 더 강력하게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분단과 통일의 광채에 눈멀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을 복원시키는 것은 현실의 문제나 과거지사나 무시될 수 없다는 점을 카오스 이론에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카오스 이론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말이다.
주제어
태그
미국 미군 전쟁 평택 한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