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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11-12. 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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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의료개혁과 한국의 의료민영화

은주 | 보건의료팀
오바마의 의료개혁

오바마 정부가 의료개혁 추진에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선당시 선거 공약으로 의료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고 6월부터 구체적으로 의료개혁 법안 작성과 통과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도 만만치 않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의료보험업계의 방해 작업이 극심하다. 지난 10월 13일, 본회의로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의료개혁안이 가결되어 올해 내로 최종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처음의 의도가 변질되었다는 평이다.
한국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통해 미국 의료 모델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지금, 오바마가 미국의 최대 개혁 과제로 꼽고 있는 미국 의료체계가 무슨 문제를 갖고 있는지, 오바마의 의료개혁안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취임 초기 60%를 상회하던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이 50%아래로 떨어지기까지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무슨 일을 벌여왔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의료체계와 의료개혁의 역사

미국 총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2007년 기준 GDP의 16.0%이다. 이는 OECD 가입 국가의 평균인 9.1%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며 2위인 프랑스의 11.0%와도 큰 차이가 난다. 2009년에는 GDP의 1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비 부담으로 매년 2백만 명이 개인 파산하며, 이는 미국 전체 개인 파산의 50%에 달한다. 중소기업이 의료보험비용으로 인해 파산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역시 과도한 의료보험비용이 경영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막대한 의료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평균 수명은 OECD 국가 중 24위, 천 명당 영아사망률은 27위로 보건의료수준은 매우 낮으며, 전 국민 15.3%(4,570만 명, 2007년)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자유경쟁시장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미국만은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민간 보험이 중심이 되고 국가는 65세 이상의 노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이드만을 운영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보험료는 연평균 12,680달러(직장보험 가입자, 가구당, 2008년)로 너무 비싸서 대기업에 고용되어 있거나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8.9%(2007년)에 불과하다. 즉,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보장해주지 않지만 민간 보험료를 낼 여유가 없는 15%의 영세자영업자, 소규모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 실직자들은 의료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건강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 미국의 의료비는 너무 높아서 질병이 곧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민간보험의 문제는 높은 가격뿐 만이 아니다. 가입자의 병력을 들어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가 하면, 보험료가 저렴할수록 보장성도 낮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료비로 인한 개인 파산자의 75%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것은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이 ‘보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의료를 민간에서 담당함으로써 나타나는 모순들은 이미 미국 사회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차례 의료개혁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미국 의료개혁의 첫 번째 시도는 1900년대 초부터 1917년까지 유럽에서 사회보장 및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때는 미국 사회 전반에 진보적 정치·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로 의료보장이 최초로 논의되었고 상당히 강력한 수준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초기에 전 국민 의료보험에 대해 찬성하였던 의사협회가 의료보험을 정부가 통제하는 문제와 인두제에 반발하여 반대로 돌아서게 되었다. 노동자 단체의 경우에는 정부가 중앙집권적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두고 정부, 사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노동조합은 흑인,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백인 숙련공 중심의 조직으로 기업적 조합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성격은 이후에도 고용을 기초로 한 민간보험이 확산, 정착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정적으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전 국민 의료보장은 공산주의 혹은 독일과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어 반대 여론이 급속히 확산됨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두 번째 시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로저벨트 대통령의 주도로 의회에 상정된 사회보장에 대한 법률에 의료보험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농민, 노동자, 실업자, 여성 등의 지지를 얻어내었으나 의사협회와 기업들의 반대와 압력으로 의료보험을 제외한 다른 사회보험들만을 포함한 사회보장법안이 통과되었다.
세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트루먼에 의해 추진되었던 의료개혁이다. 1910년대와 달리 노동조합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중적인 참여나 대중운동의 역할을 고려하기보다는 상층 정치권 내에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추진하였다. 반면 의사협회는 조직적으로 대대적인 광고와 환자들에게 편지쓰기 운동 등을 통해 전 국민 의료보장운동을 사회주의로 낙인찍는 데 성공하였다. 심지어 의료보장 정책을 추진하는 개인을 소련이나 국제노동기구의 앞잡이로 공격하는 일도 빈번하게 있었다. 결국 의사협회는 1950년 선거에서 전 국민 의료보장 법안을 지지하던 의원 80%를 낙선시킴으로써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마지막으로 클린턴-힐러리의 의료개혁이다. 백악관은 보험료나 급여를 정부가 규제하지만 지역별로 구매자 조직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민간보험을 구매한다는 내용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비교적 온건한 개혁안을 가지고 정부의 사활을 걸고 추진했다. 그러나 보험회사, 제약회사의 강력한 의회로비, 이념논쟁 등 소모적인 논쟁 끝에 결국 무산되었다.
이렇게 전 국민 의료보장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동안 의료보장의 주된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 사용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형태의 민간보험이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민간보험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개별 교섭을 통해 성취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이렇게 미국 의료보장체계의 뼈대를 이루게 된 민간보험은 전 국민 의료보장으로의 개혁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미국 의료체계의 성립과 의료개혁 실패의 역사를 들어 오바마의 의료개혁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안

오바마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전 국민을 (공공보험이든 민간보험이든) 의료보험에 가입시킨다.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메디케이드의 가입 자격을 연방정부 빈곤선 133%까지 확대하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의료보장(SCHIP)을 제공한다. 연방정부 빈곤선 133% ~ 400%까지는 의료보험에 가입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보험 미가입자에 대해서는 수입의 2% 이상의 벌금을 물린다. 모든 중규모 이상의 사업장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않는 대신 부가적인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고용주에게는 의료비 지출이 일정금액을 초과할 경우 50%까지 환급해준다. 공공보험을 신설하고, 가입자들의 합리적인 보험 선택을 지원하기 위해 보험 상품 거래소(NHIE)를 만들어 공공보험과 일정 자격을 갖춘 민간보험이 경쟁하도록 한다. 공공보험의 보험료, 진료비 보상방식과 수준은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메디케어를 기본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 보험료는 정부의 강력한 협상력을 기반으로 민간보험보다 저렴할 것이다. NHIE에 등록된 민간 보험은 연방공무원보험에 준하는 보장내역을 제공해야 하며, 현 질병유무를 들어 보험가입을 거부할 수 없다.
둘째, 의료비 지출을 절감한다. 오바마는 미국의 높은 의료비가 제약회사와 민간보험회사가 지나친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에서 연방정부가 직접 약가를 협상하고 복제약을 수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현재 유럽보다 50% 이상 비싼 약값을 낮춘다. 유럽의 나라들이 약가를 통제하는 제도들을 갖추고 있는 반면, 미국은 부시 집권 당시 연방정부와 제약사의 약가협상을 금지하는 2003 메디케어현대화법(MMA)을 도입했었는데 이를 폐기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NHIE에서 공공보험과의 경쟁을 통해 민간보험의 보험료를 낮춘다. 또 전자의료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검사의 중복 등을 줄여 비효율적인 의료비 지출을 없앤다.
셋째, 예방의학 및 공공보건을 강화한다. NHIE에 등록되는 민간보험은 모든 필수적인 임상 예방서비스를 의무적으로 보험화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있다.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감염성 질환의 예방, 퇴치 프로그램을 만든다. 특히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은 저소득층 환자에 대한 보험적용을 확대하고, 에이즈 환자의 주거, 교육, 생활환경개선 정책과 연계하여 시행한다. 에이즈 퇴치 국제펀드를 조성하고, 후진국 전염병 확산 방지 대책을 수립하며, TRIPS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복제약 생산을 지지한다.
이 의료개혁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첫 해 860억 달러, 향후 10년간 1.6조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는 이를 부시정부가 시행했던 부유층 감세정책의 중지, 전자의료 시스템 도입을 통한 효율 향상, 그리고 메디케어 운영의 효율화를 통해 조달할 것이라 밝혔다.
이 개혁안에서 공공보험을 신설하고 전 국민을 의료보험에 가입시키겠다는 내용은 개혁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특히 그 동안 의료개혁의 가장 큰 방해자였던 제약회사와 민간보험회사들에게 전면적 대응을 선포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타협한 지점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 의무가입 대신 민간보험과 경쟁하는 공공보험을 신설하여 가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며, 이마저도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기구로 둔다는 것이다. 단지 이윤을 내지 않고,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줄여서 그 혜택을 보험가입자에게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과거 의료개혁 실패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해 왔던 국가주도의 전 국민 의료보험을 사회주의로 연결시키는 이데올로기와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는 비대한 정부에 대한 미국 특유의 반발 정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계적인 의료개혁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의 이념논쟁과 제약자본, 민간보험자본 등의 반발로 진행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의 진행 현황

의료개혁에 적극적으로 반대 여론을 일으키고 있는 한 축은 보수 정치 세력이다. 오바마가 의료개혁에 승부를 건 만큼 선거에서 패배한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 세력의 저항이 극심하다. 미국 상, 하원 의원들이 여름휴가기간 동안 주요 쟁점 안에 대한 여론 수렴을 목적으로 지역에서 소규모로 진행한 타운 홀 미팅은 보수 진영 인사들의 집단적 방해로 난장판이 되었다. 이들은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사회주의 의료라고 칭하면서 자극적인 구호들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대선에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노인들이 5년마다 주치의와 필요한 의료지원에 대해 상담하는 ‘사전의료상담’이라는 제도에 ‘데스 패널’(death panel, 사망판정위원회)이라는 이름을 붙여 “노인들에게 ‘데스 패널’에 출석해 자신이 의료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증명이라도 하라는 말이냐”고 매도했다. 이후 극우 성향의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데스 패널’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노인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생사를 관장하려 한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장애아들의 운명이 공무원의 손에 달려 있다’, ‘영국 NHS에서는 치아가 부러지면 본드로 붙인다’는 등의 낭설로 여론을 흔들었다.
이에 오바마는 지난 9월 9일 상하 양원 합동 회의 국정 연설에서 50분 남짓의 연설시간을 모두 의료개혁에 할애하였다. 오바마는 초기에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를 강조했던 입장과 달리 이 연설에서는 의료개혁에 대한 반대 논리와 왜곡된 비판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는 입장을 보였다. 8월 한 달 간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던 의료개혁에 대한 왜곡된 논의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6월까지만 해도 72%에 달했던 의료개혁안에 대한 지지율이 8월을 거치면서 53%까지 떨어졌으나 9월 합동 회의 연설 후에는 67%로 높아졌다. ‘초당적 합의’를 위해 너무 오랫동안 논쟁을 끌어왔다는 비판도 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반대 세력은 미국 의료개혁의 실패의 역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왔던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사협회 등 이익단체들이다. 오바마는 의료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로 제약회사 및 보험회사를 지목하면서 “거대 제약사 및 보험사의 개혁저항을 끝내겠다. 지난 10년간 그들은 개혁 저지에 10억 달러를 사용했다”고 말했는데, 이번에도 그들은 의회로비를 통해 의료개혁 법안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다 하고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에 따르면 현재 의료개혁 이슈와 관련해 등록된 로비스트는 약 3,300명으로 이는 의회에 등록된 전체 로비스트의 4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전체 535명인 상·하원 의원 수를 고려하면 의원 한 명에 로비스트 6명씩 달라붙어 있는 셈이다. 이들이 올해 상반기에만 로비 활동 자금으로 사용한 돈이 2억 6,340만 달러에 이른다. 의회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과 전략 고문 등을 포함할 경우 로비 규모는 약 3배로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의료개혁의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연구에 돈을 대고, TV 광고를 통해 의료개혁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의료보험 업계를 대표하는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의료보험계획(AHIP)은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의료개혁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기 하루 전인 10월 12일, 의료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벌금과 의보비용 인상률이 커질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TV 광고를 통해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의약품 구입 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어 플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보험의 주 수혜자인 노인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려는 의도다. 미 언론들도 최대 관건은 오바마 대통령과 보험회사 간 ‘전쟁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한편 의회예산국(CBO)은 10월7일 오바마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이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상원 재무위원회의 법안대로라면 앞으로 10년 동안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810억 달러 줄 것이며 재정적자 감소효과가 2019년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연방정부가 지출해야 할 보건의료 예산은 8,290억 달러로 추산되며, 10년 후 의보 수혜 대상은 현재 전 국민의 83%에서 94%로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써 의료개혁에서 비판의 지점이 되어왔던 재정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지난 10월 13일, 본회의로 가기 전 마지막 법적 관문이었던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의료개혁 법안이 가결되었다. 재무위 통과와 함께 상·하원 해당 상임위의 모든 공식 심의절차는 종료되었다. 의료개혁 법안은 하원상임위와 상원 보건위원회를 통과한 법안과 합쳐져 마지막 조율 작업을 거치게 되고, 여기서 도출된 합의안은 상·하원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다.
하지만 이를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공공보험이다. 정부에서 보험료가 저렴한 공공보험을 제공할 경우 민간 보험 역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윤 또한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보험 조항이 사라지고, 전 국민이 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오히려 민간보험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 규모만 커지는 것이다. 당연히 공공보험 창설이 의료 개혁의 핵심으로 꼽혔으나 민간보험회사 등은 막대한 로비를 통해 공공보험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재무위원회에서 가결시킨 법안에서 공보험이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의료보험 의무가입 조항은 살아있으니 이대로라면 정부가 국민들을 민간 보험 회사에 강제로 가입시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아직 마지막 조율 작업과 본회의 표결이 남아있지만, 현재까지는 처음의 의도와는 반대로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보험을 신설하되 주정부들이 시행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민간보험을 구입하기 어려운 계층에게만 공공보험 가입자격을 부여하도록 제한을 둔다는 등 새로운 절충방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공보험을 어떤 형태로든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지기반 내에서 강하고 국민의 지지여론도 늘고 있지만 민간보험회사의 로비와 여론 호도, 보수 의원들의 방해 속에서 공공보험 조항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이후 상원 전체회의와 상·하원 간 복잡한 절충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의료체계와 의료민영화 정책

오바마는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훌륭하다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미국에 비하면 전 국민이 가입되어 있는 국가 주도의 의료보험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보장성이 50%에 불과하고, 의료의 공급은 90%이상 민간에 의해 이루어지다보니 의료가 ‘건강 증진’의 목적 보다는 ‘이윤 추구’의 목적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 또 공공재정이 이윤추구 행위의 대상이 되다보니 보장성 증가에 비해 의료비 증가의 문제도 심각하다. 건강과 생명이 달려있어 꼭 필요한 의료를 민간에서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은 공공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는 반대로 공공병원 구조조정, 영리의료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의료 채권 및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설립 허용 등의 각종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통해 의료를 자유경쟁시장으로 적극 포섭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미국에서 보인다. 자유경쟁은 독과점으로 이어져 제약자본과 민간보험자본은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이윤을 늘리고, 그에 따라 의료비 지출은 상승하지만 보장성은 오히려 낮아져서 비싼 의료비를 내지 않고서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번 의료의 민영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오바마의 의료개혁 추진의 행보에서 알 수 있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초국적 제약자본과 민간보험자본이 한번 얻은 이권을 다시 내어줄 리 없다. 미국의 상황이 지금 우리가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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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건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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