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5-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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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생운동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이지윤 |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전국학생행진 회원
위기에 대한 대응과 시도

최근처럼 20대에 대한 관심이 전 사회적으로 넘쳤던 때가 있었던가?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의 유행과 더불어, 요즘 20대를 해석하고자 하는 각종 세대론이 넘치고 있다. 또한 운동진영 안에서도 ‘학생운동이 과거의 영광을 더듬을 것이 아니라 20대 문제 해결에 힘쓸 때’라는 짐짓 진지해 보이는 충고도 들려온다.
모두 알고 있듯이 대학사회와 대학인은 변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의 변모와 경제위기의 심화 속에서 대학생은 자신이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더 이상 과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실업이 상징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라는 조건은 대학생이 입학과 동시에 취업준비생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몰두하도록 부추긴다. 당연히 학생운동 역시 변화를 겪었다. 대학사회에서 정치가 가능하게 하는 기본 공간인 과ㆍ반 학생회, 동아리, 학회 등 자치공동체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호소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만큼 소위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들의 수나 영향력도 부침을 겪고 있다.
어떻게 대학사회에서의 정치를 복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관해, 학생운동 위기담론이 팽배했던 1990년대부터 수많은 담론과 실험이 있었다. 그 중에는 학생운동이 학생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대중적 친화력을 높여야 한다는 일면 타당한 문제의식이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학생운동 경향의 부상과 쇠락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학생운동의 위기를 과도한 정치투쟁에서 찾고 ‘학생회에서 정치투쟁을 축소하고 학생복지 개선과 같은 일상적 개혁운동을 강화한다면 대학인이 새로운 운동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 경향도 명멸을 경험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생운동은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이러한 모색을 중간 결산하며 남은 경향의 하나가 이른바 ‘20대 당사자의 경제적 이해에 기반을 둔 운동’이다. 이러한 경향은 학생운동 진영 안에서 상당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청년실업 해결 및 청년노동권 보장’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은 등록금 투쟁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대 당사자 이해를 중심에 둔 실천을 학생운동의 주요역할로 설정하자는 주장은 대학인의 정치 활동을 협소화할 우려가 크다. 또한 그것은 역사적으로 ‘전체운동과 함께 (할 때만이) 상승하는 운동’으로서 학생운동의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등록금 투쟁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등록금 투쟁은 등록금을 전국 대학생의 문제로 전면에 내걸고 대표적인 민생문제로 격상시킨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실천이다. 과도하게 높은 등록금 인상은 교육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교육상품을 구매하는 학생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등록금 폭등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로서 교육의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수년에 걸친 운동으로 등록금은 이제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 문제로 정치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등록금 투쟁을 학생운동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등록금 투쟁을 통해서 대학과 교육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고 대학 전체의 변화가 필요함을 인식하기 위한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가시적인 제도적 성과를 따내는 실리주의적 운동이 지배적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대학생들이 자기 문제를 넘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주체로서 성장 고리를 밝히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부정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세는 청년실업운동?

지난 금융위기를 계기로 등록금 인상률이 주춤해지고, 한계적이나마 취업후상환제가 도입되면서 더 이상의 등록금 투쟁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의견이 대부분이다. 불행하게도 언제부터인지 학생운동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등록금 투쟁 역시 한 순환을 마감한 시점이다. 그래서 더욱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청년실업운동이다. 과연 이것이 학생운동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을까?
사회진출을 예비하는 취업준비생으로서 대학생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 구직의 문제에 맞춰져 있으며 그들은 일상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실업의 문제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이미 IMF 시기에도 학생운동에서는 청년실업의 심각함과 그 구조적인 원인을 선전하고, 예비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청년실업운동본부’ 운동을 펼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대학생의 가장 큰 고민인 현실의 고단함 자체를 폭로하는 것으로 ‘당사자’들이 운동에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들이 처한 불안한 삶을 공감하면서도 오히려 도서관을 향하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청년실업운동, 청년노동권 운동과 관련해 각계의 기대가 크지만, IMF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벌어진 실업운동에 대한 평가를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청년층에서 실업인구가 많아지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운동은 현실을 폭로하는 유효한 매개나 투쟁과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불안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서관’이 아닌 ‘저항’을 제안할 것인가? 이에 대해, 눈에 보이는 운동의 ‘성과’를 우선 고려하여 청년의 지지를 붙들겠다는 방식으로 청년실업운동을 구상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즉, 청년의무고용 할당제나 청년고용예산 확충을 통해 청년의 취업률을 실제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무고용할당제를 요구하는 운동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청년의 배타적인 이해관계를 옹호하며 기존 취업자와 청년구직자를 분할하여 대립시키는 효과를 남길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청년실업 담론은 운동세력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도 누구보다 많이 강조하는 문제이다. 청년실업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청년인턴제를 실시하고, 유연한 일자리를 늘리며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산하는 데 청년실업 담론을 이용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정부와 자본은 “청년들이 취업도 못하고 있는 판에 파업이 웬 말이냐”며 청년실업담론을 정리해고나 노동 신축화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쓰고 있다. 따라서 청년실업운동은 20대와 장년층을 분할하고 대립시키는 논리와 명확하게 단절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오히려 실업이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위기 책임전가로 인해 모든 민중의 문제라는 사실로부터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학생운동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학생운동이 발 딛고 있는 대학생이라는 집단의 분노지점을 적절히 파악하고 그들이 처한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연관 지어 폭로함으로써 대중을 규합, 조직하는 것은 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여타 문제를 자기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고 집단적 실천을 조직할 때만이 그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다. 특정 집단의 고통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맞닿아 있는 보편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특정 이익집단 간 충돌을 넘어서는 사회운동이 출현할 수 있다.
3월 달에 등록금 집회를 하면 수천 명이 모이지만 같은 달에 있는 반전 집회에는 그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수가 모이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일단 학생들의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서야 이후를 모색할 수 있다는 단계적인 구상에 따르면 이러한 현실은 그다지 문제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이해에 중점을 둔 운동은 자칫 사회운동과의 연결고리를 흐릴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더욱 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오늘 같은 때일수록, 대중의 요구는 근본적인 해방을 지향하기보다는 당장 생존하기 위해서 타인과 배타적인 이해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함께 동결되는 학교 노동자의 임금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거나, 구직활동에 힘겨워하는 청년이 기존 취업자를 적대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한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도외시하기도 쉽다. 따라서 대학생이 처한 현실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대학생이 벌이는 운동이 사회변화에 어떻게 일조할 수 있을지 더욱 철저히 고민해야한다. 그렇지 못했을 때, 청년실업운동, 등록금투쟁에서 드러난 한계가 의도치 않게 현실 운동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지만 사회운동을 통해 권리를 쟁취한 경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 이러한 때일수록 대중의 정치역량을 복원하기 위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이슈파이팅을 넘어 정치역량을 복원한다는 것은 대중이 자신의 공간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지식을 접하고 함께 인식하고 실천을 벌여내기 위한 기틀을 세운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지식을 집단적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으로 대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생들의 정치역량 강화, 유권자 운동으로 가능한가?

학기 초에 진행한 등록금 투쟁이 유야무야 정리된 후, 현재 주류 학생운동 진영은 6월 지자체 선거를 염두에 둔 실천으로 모든 태세를 변경하고 있고 특히 대학생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유권자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1988~90년대의 청년과 대조되게 요즘 청년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식의 분석이 곧잘 내려지는 마당에 2008년 촛불을 경험한 젊은 층이 이번 선거에서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그에 따라 선거 결과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야말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 20대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려는 계획은 핵심을 누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20대의 정치참여를 대대적으로 여론화하고 대학에서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고 주소지 옮기기를 유도하는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여서 88만원 세대의 88% 투표율을 조직한다는 것이 선거 국면을 앞두고 벌이는 정치실천의 주된 부분이 될 수는 없다. 청년층이 기질적으로 중장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이기에 일단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는 분석인가? 젊은 층의 투표율 상승이 진보정당 지지율 상승을 보증할 수는 없다. 또한 주류 학생운동 진영은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몇몇 부패한 개인의 낙천을 주도하는 데 그쳤던 그 운동의 한계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다시 들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 있는 한나라당 인사를 뽑지 말자’는 운동의 성과는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또한 유권자의 권리로서 허락된 한 표 행사를 주장하는데 그치기 쉬운 유권자 운동이라는 방식은 선거라는 공간의 정치적 가능성을 개방하기보다는 운동을 제도권 정치 내로 제한하기 쉽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유권자 운동이라는 운동의 형식보다 오히려 그 내용이다. 20대만의 권리를 모아서 투표율로 조직한다고 할 때, 여기서 유권자로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내용이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은 20대 후보 5명이 출마선언을 했고 진보신당도 20대 후보 3명이 출마할 예정이라 한다. 20대의 탈정치화가 이들을 대변할 정치인이 부재해서였을까?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20대 후보 전략은 등록금, 청년실업을 쟁점으로 대학생과 20대의 특수한 이해와 요구라는 관념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다.
오히려 지금 운동 주체는 대학생, 또 대학생으로 한정되지 않는 전체 대중의 전반적인 경향인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부터 문제 해결의 입구를 찾아야한다. 지금 대중의 정치적 환멸이 곧 개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 운동 일반에 대한 거부나 무관심을 포함하고 있다면, 집단적 운동의 경험과 이를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설득하기 위한 운동세력의 태세는 어떠해야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를 ’표’로 조직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밑천이 바닥난 운동을 어디서부터 복구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전제하지 않은 지금의 대학생 유권자 운동으로는 결코 대학가의 정치적 냉기류를 역전할 수 없다.

전국학생행진의 활동과 계획

2010년 전국학생행진은 ‘대학기업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학생사회에서 공유하고자 노력하였다. 등록금만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학과 통폐합, 실용적 학문 위주의 교육내용 변화, 기업식 대학운영 등 대학교육 체계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상황에서 실리주의적 편향을 넘어 변화하는 대학의 방향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육투쟁을 기획하고자 했다. 설문조사, 토론회, 강연회와 같은 사업이나 ‘대안대학평가’를 통해 대학과 대학교육이 어때야하는가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전국 곳곳에서 마련하였다. 이는 대학인들이 교육에 대한 권리가 대학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운동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편 전국학생행진은 4월 현재 ‘대학생 공동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공동행동은 노동절의 의미와 현 시기 노동자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지할 수 있는 지적 기반과 공감대를 학생사회 내에 형성하고자 한다. 각 대학에서는 노동자-학생 간담회와 포럼이 열리고 있다.
학생운동은 노동권 쟁취투쟁과 개악노조법 분쇄투쟁을 벌이면서 우리의 투쟁이 지자체 선거 국면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다못해 민중운동에 대한 지지조차도 자신 있게 표하지 못하는 대학생 유권자운동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고, 이번 지방선거라는 정치적 계기를 반민중, 반노동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할 보수정당과 지배세력에 단단히 맞서며 대중 투쟁력을 복원할 수 있는 장으로 전환시켜내야 한다. 지금처럼 선거쟁점이 ‘밥’, ‘강’ 사안에 갇혀서는 허구적으로 민생복지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하등 차별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다시금 경제 불안정을 들먹이며 여론을 반노동 정서로 몰아가려는 자본과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야 하고, 유연근무제, 퍼플잡 등 정부의 기만적인 고용실업정책에 비판을 가해야 한다. 분명하게 해고와 임금삭감을 막아내는 투쟁전선을 형성하면서 연대운동을 정립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의 재건과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주제어
교육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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