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제3차 노동법개악, 어떻게 임할 것인가?
1990년대에 이어 노동법 개정은 계속되고
2000년 하반기 들어 '노동법 개정'이 정해진 일정으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노동자 보호, 모성보호, 복수노조 하에서의 단체교섭창구 일원화 방안, 단체협약 이행강제방안,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히 노동관계법의 구조와 성격을 변화시킬만한 중요한 쟁점들이 '제정' 또는 '개정'의 주어진 일정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개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부는 " 11월까지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합의 도출, 12월에 국회 상정, 2월까지 처리"한다는 일정표를 잡아놓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련의 노동법 개정사안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의 제도적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1990년대 중반 이래의 노동법 개정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다. 최근 언론을 장식했던 노동법 개정작업 중 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합의'와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이다.
'노동시간단축 합의'의 숨겨진 전제들 : 근로기준법의 탈규제화
10월 23일 노사정위원회는 본회의를 열고, 정부가 법정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한다는 내용의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노사정은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실노동 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이고, 관련 임금, 휴일·휴가 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날 합의는 올 하반기 최대의 노동개혁과제로 부각된 노동시간단축문제에 대해 노사정이 최초로 단축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합의문의 핵심은 바로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기준에 걸맞도록 관련 임금, 휴일· 휴가제도를 개악(!)"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는 이전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를 연동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종래 '노동시간 단축'을 결사 거부해왔던 경총은 지난 6월, 월차휴가 및 생리휴가 폐지, 가산수당 50%에서 25%로 인하, 연차휴가 축소, 유급주휴일 폐지, 근로시 간제 탄력화 도모, 근로시간 및 휴일·휴게 비적용범위 확대, 법정 노동시간 단축 실시시기 유예기간 설정 등 7가지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같은 시도를 드러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노동연구원과 노동부도 경총의 요구안을 거의 수용한 내용의 노동시간 단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는 위와 같이 노동시간단축과 연동하여 노동시간 탈규제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노동법 개악 시도의 연장선상에 정확히 위치해 있다. 이번 합의에서는 노동 시간단축에 있어 임금삭감 여부, 그 실시 시기 및 단계적 실시 여부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여 노사정간에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반면, 합의문 곳곳에는 "관련 임금, 휴일·휴가 제도의 개선" 혹은 "개선된 휴일·휴가제도의 효과적 활용" 등을 적시하여 노동법상의 관련 조항의 대폭 개정을 시사했다. 여기서 '개선'의 기준으로 제시한 소위 '국제 기준'과 관련해서 그간 정부와 재계는 근로기준법상의 각종 휴일·휴가제도는 우리나라에만 특유한 것이라며 그 축소 및 폐지를 줄곧 주장해왔던 터였다.
결국 이는 휴일·휴가제도의 대폭 축소 및 폐지라는 개악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개혁' 이라는 포장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상품성으로 인해, 노동법단축합의에 담긴 비밀이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라는 노동법 개악 시도라는 사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
불안정노동을 양산·고착화하는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
'보호대책' 내지 '개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부와 자본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4일 정부가 경제 정책조정회의를 거쳐 확정키로 한 소위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의 내용은 근로계약기간을 3년까지로 연장하고,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의 도입 등을 담고 있다. 정부는 근로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면 계약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이 3년까지 가능하므로 고용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기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유기(有期)근로계약이 1년 내지 그 미만 단위로 반복 갱신되어 온 경우, 기간을 정해두지 않은 상시근로계약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런데, 유기근로계약이 3년까지 자유롭게 허용된다면, 기업으로서는 번거로운 계약 갱신 대신 3년까지 계약직을 사용하고 이후 아무 책임없이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직노동의 상시사용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또한 정부방침은 위장 자영업자 형식으로 인해 현재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 보아, 해고 및 임금 등의 일부 규정을 적용하여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사용자와 종속 관계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이 전면 적용되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미봉책에 불과 하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하위개념에 묶어두어,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노동법의 적용 배제를 정당화하고 고착화시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한편 파견법의 경우도 노사정위의 논의를 통해 파견허용업무와 파견허용기간에 대한 제한 완화를 골자로 하는 파견법 개악안이 정부 입장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유연화정책이 노동개혁으로 포장되는 상황
일련의 정부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노동력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라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또한 1996-1997년 노개위를 통한 노동관계법의 새 틀짜기, 1998년 노사정 합의를 통한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 등이 구조조정, 외주화 등의 노동 유연화를 활성화시켰다면 이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제반 노동보호 해체와 비정규직 양산 구조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그에 이은 '제3차 노동법 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노동 유연화를 제도적으로 승인하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비정규직에 대한 강도높은 착취를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노동시간단축'과 연동된 '노동시간 탈규제화'의 경우, 그 효과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감소로도 나타나겠지만 무엇보다도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실로 파괴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기준도 비정규직노동자에게는 남의 이야기인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의 기준 자체가 완화 내지 해체되었을 때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바닥을 모르고 삭감될 것이고 이로 인해 장시간 노동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이같은 비 정규직의 확산은 정규직의 일자리를 더 빠른 속도로 잠식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각종 조사에서 사용자들은 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면 임시·파견노동자를 쓰거나 외주·분사화로 대처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에 대한 운동진영과 사회의 긴장감이나 이해 정도는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노동 개혁'으로 포장되고,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내지 '비정규직 보호'로 미화되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지금 상황은 운동진영이 힘의 우위에 입각하여 노동법 개정투쟁을 추진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철저히 정부와 자본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에 입각하여 노동법 개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임을 명심해야 한다.
'제3차 노동법개악' 공세,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 말자
현재 상황의 심각성은 비단 노동법 개악의 내용과 성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996-1997년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년의 노사정위원회가 노동법 개악의 정당성을 승인해 준 기능을 했다면, 현재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속에서의 일정한 타협을 통해 정권의 노동법개악의 하위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형근로자 종합대책'이나 '노동시간 단축합의'에 대해 한국노총은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정권이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한국노총과의 합의'라는 추상적 명분을 지켜주는 한에서, 그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같은 몇 가지 실리와 교환하는 한에서 여타의 노동법개악을 승인해 줄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정부의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노동시간 단축 관련 노사정 합의에 대해서도 비판 성명을 내면서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근무제 도입법안을 제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이 또한 정부의 일관된 노동법 개악시도를 총체적으로 저지하는 입장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입법을 하되 그 과정에서 노동조건이 후퇴되서는 안 된다는 청원적 투쟁이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시도되는 노동시간 탈규제화, 노동보호기준 해체를 전면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를 승인하면서 정규직 핵심 노동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단축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동유연화 반대'의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나아가 정부의 비정규직 양산방침을 반대하고 비정규직 보호입법 청원을 넘어, 비정규직 양산의 주역인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노동법 개정국면에서의 투쟁 경험을 평가하여 이 투쟁의 목표를 노동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분명히 하고, 노동대중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맞추어야 한다. 1996-1997년, 1998년의 투쟁의 패배가 노동운동진영의 방향성의 혼란과 노동대중 내부의 분열로 연결되었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투쟁의 정세가 불리할수록 당장 눈 앞의 명분과 모호한 실리가 아니라, 이후의 투쟁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교두보들을 확보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1990년대 이래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 아니던가?
2000년 하반기 들어 '노동법 개정'이 정해진 일정으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노동자 보호, 모성보호, 복수노조 하에서의 단체교섭창구 일원화 방안, 단체협약 이행강제방안,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히 노동관계법의 구조와 성격을 변화시킬만한 중요한 쟁점들이 '제정' 또는 '개정'의 주어진 일정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개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부는 " 11월까지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합의 도출, 12월에 국회 상정, 2월까지 처리"한다는 일정표를 잡아놓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련의 노동법 개정사안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의 제도적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1990년대 중반 이래의 노동법 개정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다. 최근 언론을 장식했던 노동법 개정작업 중 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합의'와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이다.
'노동시간단축 합의'의 숨겨진 전제들 : 근로기준법의 탈규제화
10월 23일 노사정위원회는 본회의를 열고, 정부가 법정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한다는 내용의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노사정은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실노동 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이고, 관련 임금, 휴일·휴가 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날 합의는 올 하반기 최대의 노동개혁과제로 부각된 노동시간단축문제에 대해 노사정이 최초로 단축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합의문의 핵심은 바로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기준에 걸맞도록 관련 임금, 휴일· 휴가제도를 개악(!)"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는 이전부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를 연동시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종래 '노동시간 단축'을 결사 거부해왔던 경총은 지난 6월, 월차휴가 및 생리휴가 폐지, 가산수당 50%에서 25%로 인하, 연차휴가 축소, 유급주휴일 폐지, 근로시 간제 탄력화 도모, 근로시간 및 휴일·휴게 비적용범위 확대, 법정 노동시간 단축 실시시기 유예기간 설정 등 7가지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같은 시도를 드러냈다. 이에 화답하듯 한국노동연구원과 노동부도 경총의 요구안을 거의 수용한 내용의 노동시간 단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는 위와 같이 노동시간단축과 연동하여 노동시간 탈규제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노동법 개악 시도의 연장선상에 정확히 위치해 있다. 이번 합의에서는 노동 시간단축에 있어 임금삭감 여부, 그 실시 시기 및 단계적 실시 여부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여 노사정간에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반면, 합의문 곳곳에는 "관련 임금, 휴일·휴가 제도의 개선" 혹은 "개선된 휴일·휴가제도의 효과적 활용" 등을 적시하여 노동법상의 관련 조항의 대폭 개정을 시사했다. 여기서 '개선'의 기준으로 제시한 소위 '국제 기준'과 관련해서 그간 정부와 재계는 근로기준법상의 각종 휴일·휴가제도는 우리나라에만 특유한 것이라며 그 축소 및 폐지를 줄곧 주장해왔던 터였다.
결국 이는 휴일·휴가제도의 대폭 축소 및 폐지라는 개악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개혁' 이라는 포장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상품성으로 인해, 노동법단축합의에 담긴 비밀이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라는 노동법 개악 시도라는 사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
불안정노동을 양산·고착화하는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
'보호대책' 내지 '개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부와 자본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4일 정부가 경제 정책조정회의를 거쳐 확정키로 한 소위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의 내용은 근로계약기간을 3년까지로 연장하고,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의 도입 등을 담고 있다. 정부는 근로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면 계약직 노동자의 고용기간이 3년까지 가능하므로 고용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기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유기(有期)근로계약이 1년 내지 그 미만 단위로 반복 갱신되어 온 경우, 기간을 정해두지 않은 상시근로계약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런데, 유기근로계약이 3년까지 자유롭게 허용된다면, 기업으로서는 번거로운 계약 갱신 대신 3년까지 계약직을 사용하고 이후 아무 책임없이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직노동의 상시사용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또한 정부방침은 위장 자영업자 형식으로 인해 현재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 보아, 해고 및 임금 등의 일부 규정을 적용하여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사용자와 종속 관계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이 전면 적용되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미봉책에 불과 하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하위개념에 묶어두어,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노동법의 적용 배제를 정당화하고 고착화시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한편 파견법의 경우도 노사정위의 논의를 통해 파견허용업무와 파견허용기간에 대한 제한 완화를 골자로 하는 파견법 개악안이 정부 입장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유연화정책이 노동개혁으로 포장되는 상황
일련의 정부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노동력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라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또한 1996-1997년 노개위를 통한 노동관계법의 새 틀짜기, 1998년 노사정 합의를 통한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 등이 구조조정, 외주화 등의 노동 유연화를 활성화시켰다면 이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제반 노동보호 해체와 비정규직 양산 구조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그에 이은 '제3차 노동법 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노동 유연화를 제도적으로 승인하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비정규직에 대한 강도높은 착취를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노동시간단축'과 연동된 '노동시간 탈규제화'의 경우, 그 효과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감소로도 나타나겠지만 무엇보다도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실로 파괴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기준도 비정규직노동자에게는 남의 이야기인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의 기준 자체가 완화 내지 해체되었을 때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바닥을 모르고 삭감될 것이고 이로 인해 장시간 노동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이같은 비 정규직의 확산은 정규직의 일자리를 더 빠른 속도로 잠식하게 될 것이다. 이미 각종 조사에서 사용자들은 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면 임시·파견노동자를 쓰거나 외주·분사화로 대처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에 대한 운동진영과 사회의 긴장감이나 이해 정도는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노동 개혁'으로 포장되고,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내지 '비정규직 보호'로 미화되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지금 상황은 운동진영이 힘의 우위에 입각하여 노동법 개정투쟁을 추진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철저히 정부와 자본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에 입각하여 노동법 개악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임을 명심해야 한다.
'제3차 노동법개악' 공세,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 말자
현재 상황의 심각성은 비단 노동법 개악의 내용과 성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996-1997년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년의 노사정위원회가 노동법 개악의 정당성을 승인해 준 기능을 했다면, 현재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속에서의 일정한 타협을 통해 정권의 노동법개악의 하위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형근로자 종합대책'이나 '노동시간 단축합의'에 대해 한국노총은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정권이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한국노총과의 합의'라는 추상적 명분을 지켜주는 한에서, 그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같은 몇 가지 실리와 교환하는 한에서 여타의 노동법개악을 승인해 줄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정부의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노동시간 단축 관련 노사정 합의에 대해서도 비판 성명을 내면서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근무제 도입법안을 제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이 또한 정부의 일관된 노동법 개악시도를 총체적으로 저지하는 입장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입법을 하되 그 과정에서 노동조건이 후퇴되서는 안 된다는 청원적 투쟁이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시도되는 노동시간 탈규제화, 노동보호기준 해체를 전면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를 승인하면서 정규직 핵심 노동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단축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동유연화 반대'의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나아가 정부의 비정규직 양산방침을 반대하고 비정규직 보호입법 청원을 넘어, 비정규직 양산의 주역인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노동법 개정국면에서의 투쟁 경험을 평가하여 이 투쟁의 목표를 노동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분명히 하고, 노동대중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맞추어야 한다. 1996-1997년, 1998년의 투쟁의 패배가 노동운동진영의 방향성의 혼란과 노동대중 내부의 분열로 연결되었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투쟁의 정세가 불리할수록 당장 눈 앞의 명분과 모호한 실리가 아니라, 이후의 투쟁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교두보들을 확보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1990년대 이래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