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의 북한여성노동자들
베를린장벽의 붕괴과 다른 전율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처럼 요즘의 남·북한 정세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을 듯 싶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던 우리들 대부분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시민들의 손에 의해 무너져 내렸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전율을 맛보았으리라. 북한 동포들이 우리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집단이 아니라, 살을 맞댈 수 있는 체감거리에 있는 혈육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면서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드러난 희생자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통일된 독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많이 변하였다. 독일통일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몇몇 정치인들은 1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냉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고, 통일 이후에 나타난 사회통합의 후유증으로 구 동독인들과 구 서독인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통독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남북통일도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도 치밀한 준비가 꼭 필요한 과정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통독의 경험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통일 이후의 정치통합, 사회통합 그리고 경제통합 등의 여러 문제들은 결코 보편적 범주로서의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으로 특화된 '여성들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독인들 스스로가 "2등 국민"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고 "(동독인들과 서독인들 사이에) 외부의 장벽은 없어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여러 사회집단들 중 구 동독의 여성들이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과 사회적 소외감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동독국영기업의 95%가 사유화되면서 대량실업을 겪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동독 여성과 아동, 그리고 청소년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보고가 많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1989년 동독 여성들의 취업율은 약 85%이었고 전체근로자의 48.9%가 여성이었다.
하지만 1994년 여성 실직율은 남성 실직율의 거의 두 배로 육박했고 동독경제가 급격한 경제조정을 겪으면서 기술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생산직에 근무하던 여성노동자가 가장 큰 희생자 집단이 되었다.
'경제적 한계인'이 되어버린 독일여성
그렇다면 동독인들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스스로 어떠한 평가를 내리는가? 좀 더 구체적인 예로, 통일 5주년이 되던 1995년 슈피겔지(紙)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살펴보자. 이에 의하면 87%의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기 전 동독체제하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훨씬 더 높았다고 응답했다. 이는 1990년 통일 직후에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 보여준 67%의 응답률보다 20%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보장제도에 대하여도 92%의 응답자들이 통일 이전의 동독체제가 더 낫다는 응답을 했고 이 항목도 1990년의 65%보다 27%나 증가했다. 독일 민족사의 큰 획을 그은 통일이라는 일대사건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누리던 동독 여성들의 기반을 빼앗았고 그들을 '경제적 한계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지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한반도 통일이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앞서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먼저 조명해보자.
북한 사회주의에서의 여성은
북한의 사회주의경제체제 하에서 여성의 노동참여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주의 건설의 필수요소로서, 거시적으로는 여성들이 공적 서비스와 정치 생활에 참여하고 미시적으로는 완전하고 조화로운 자아발달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북한 구 헌법의 22조 1항에서는 "여자는 국가, 정치, 사회, 문화생활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남자와 동등하다"고 규정지었고 북한 노동법 강령에도 제 6항에서는 남녀동일임금 보장을 그리고 제 9항에서는 "여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과 노동법에서도 남녀평등의 원칙을 명시하고 그 영역과 국가의 보장의무와 구체적 보호에 이르기까지 이를 밝히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여성노동력의 극대화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여진다.
북한 사회주의에서 여성은
하지만 북한의 법이나 사회주의 이념으로 정당화되던 여성의 노동권도 경제적 현실 앞에선 다양한 색깔로 윤색되어 왔다. 예를 들면 북한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추이는 북한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1980년 초까지 50%가 넘도록 증가했다. 하지만 그 이후 경제사정의 악화로 여성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런 여성실업에 대한 대책으로 북한정부는 모성과 복고적 가족의 기능을 강조하는 '탈사회주의적 가족정책'을 추진해 왔다. 즉 전반적인 경제 사정의 악화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할 때 여성노동자의 경우, 모성과 가족의 보호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더 높은 실업율을 기록하게 된다. 더군다나 1997년에 극에 달한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출산율과 영아사망률이 증가하자, 북한정부는 여성들에게 다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구조적인 요소 이외에도 북한여성들의 재생산 활동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모습이다.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현실적, 경제적 필요가 정치이념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시킨다.
'여성의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여성들의 삶을 보면,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중 착취를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남녀평등의 구체적인 실현이 "전 여성을 가정 일에서 해방시키자"라는 슬로건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육아와 가사 일로부터의 면제,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노동활동의 강조라는 단순화된 측면만 강조된 경향이 짙다. 하지만 북한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족적 전통의 수호"라는 구호 하에 사적인 영역에서의 '여성다움'의 덕목을 강요받고 있다.
음주나 흡연처럼 여성다움에 위배되는 행위들은 심한 사회통제의 대상이고 집안 일도 집밖의 일처럼 척척 다 해내는 "혁명적 여성상"이 칭송을 받고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제도하에서 직장에서 1교대를 뛰고 퇴근 후 집안 일을 하면서 2교대를 뛰는 남한 여상노동자들의 삶의 패턴과도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북한의 "혁명적 여성상"이나 남한의 "수퍼우먼 신드롬"은 결국은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호칭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북한여성노동자의 삶도 그 억압기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한여성노동자의 삶과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교류가 전혀 없이 분단되어 이질화된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는 유사점보다는 상이점이 더 부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독여성들의 경우처럼 북한여성노동자들의 "경제적 한계인화" 현상은 불 보듯 환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통일이후를 예비하는 근본처방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책은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직업훈련이다. 경제통합 이후 필연적으로 발생할 남북한간의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절대다수의 북한여성들은 실업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북한여성들 상대로 한 다양한 형태의 직업훈련은 꼭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지금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북한지역의 "특구화" 논의는 남과 북을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철조망으로 갈라놓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런 대안들은 통일 후 북한여성들의 실업률 감소에는 도움이 될 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그리고 배타적 민족적 정서로 뭉친 우리 민족이 '다름'을 수용하고 같이 화합할 수 있는 기본가치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된다. 무엇보다도 조금 더 가진 자가 좀 덜 가진 형제, 자매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아량과 사랑의 실천까지도 이 가치교육에 포함시킨다면 통일 이후 남북한의 여성노동자들은 독일이 겪은 시행착오를 비껴갈 수 있을 것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처럼 요즘의 남·북한 정세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을 듯 싶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던 우리들 대부분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시민들의 손에 의해 무너져 내렸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전율을 맛보았으리라. 북한 동포들이 우리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집단이 아니라, 살을 맞댈 수 있는 체감거리에 있는 혈육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면서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드러난 희생자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통일된 독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많이 변하였다. 독일통일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몇몇 정치인들은 1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냉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고, 통일 이후에 나타난 사회통합의 후유증으로 구 동독인들과 구 서독인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통독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남북통일도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도 치밀한 준비가 꼭 필요한 과정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통독의 경험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통일 이후의 정치통합, 사회통합 그리고 경제통합 등의 여러 문제들은 결코 보편적 범주로서의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으로 특화된 '여성들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독인들 스스로가 "2등 국민"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고 "(동독인들과 서독인들 사이에) 외부의 장벽은 없어졌지만 마음의 장벽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여러 사회집단들 중 구 동독의 여성들이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과 사회적 소외감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동독국영기업의 95%가 사유화되면서 대량실업을 겪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동독 여성과 아동, 그리고 청소년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보고가 많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1989년 동독 여성들의 취업율은 약 85%이었고 전체근로자의 48.9%가 여성이었다.
하지만 1994년 여성 실직율은 남성 실직율의 거의 두 배로 육박했고 동독경제가 급격한 경제조정을 겪으면서 기술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생산직에 근무하던 여성노동자가 가장 큰 희생자 집단이 되었다.
'경제적 한계인'이 되어버린 독일여성
그렇다면 동독인들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스스로 어떠한 평가를 내리는가? 좀 더 구체적인 예로, 통일 5주년이 되던 1995년 슈피겔지(紙)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살펴보자. 이에 의하면 87%의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기 전 동독체제하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훨씬 더 높았다고 응답했다. 이는 1990년 통일 직후에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 보여준 67%의 응답률보다 20%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보장제도에 대하여도 92%의 응답자들이 통일 이전의 동독체제가 더 낫다는 응답을 했고 이 항목도 1990년의 65%보다 27%나 증가했다. 독일 민족사의 큰 획을 그은 통일이라는 일대사건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누리던 동독 여성들의 기반을 빼앗았고 그들을 '경제적 한계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지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한반도 통일이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앞서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먼저 조명해보자.
북한 사회주의에서의 여성은
북한의 사회주의경제체제 하에서 여성의 노동참여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주의 건설의 필수요소로서, 거시적으로는 여성들이 공적 서비스와 정치 생활에 참여하고 미시적으로는 완전하고 조화로운 자아발달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북한 구 헌법의 22조 1항에서는 "여자는 국가, 정치, 사회, 문화생활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남자와 동등하다"고 규정지었고 북한 노동법 강령에도 제 6항에서는 남녀동일임금 보장을 그리고 제 9항에서는 "여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과 노동법에서도 남녀평등의 원칙을 명시하고 그 영역과 국가의 보장의무와 구체적 보호에 이르기까지 이를 밝히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여성노동력의 극대화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여진다.
북한 사회주의에서 여성은
하지만 북한의 법이나 사회주의 이념으로 정당화되던 여성의 노동권도 경제적 현실 앞에선 다양한 색깔로 윤색되어 왔다. 예를 들면 북한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추이는 북한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1980년 초까지 50%가 넘도록 증가했다. 하지만 그 이후 경제사정의 악화로 여성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런 여성실업에 대한 대책으로 북한정부는 모성과 복고적 가족의 기능을 강조하는 '탈사회주의적 가족정책'을 추진해 왔다. 즉 전반적인 경제 사정의 악화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할 때 여성노동자의 경우, 모성과 가족의 보호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더 높은 실업율을 기록하게 된다. 더군다나 1997년에 극에 달한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출산율과 영아사망률이 증가하자, 북한정부는 여성들에게 다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구조적인 요소 이외에도 북한여성들의 재생산 활동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모습이다.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현실적, 경제적 필요가 정치이념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시킨다.
'여성의 일상'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여성들의 삶을 보면,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중 착취를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남녀평등의 구체적인 실현이 "전 여성을 가정 일에서 해방시키자"라는 슬로건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육아와 가사 일로부터의 면제,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노동활동의 강조라는 단순화된 측면만 강조된 경향이 짙다. 하지만 북한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족적 전통의 수호"라는 구호 하에 사적인 영역에서의 '여성다움'의 덕목을 강요받고 있다.
음주나 흡연처럼 여성다움에 위배되는 행위들은 심한 사회통제의 대상이고 집안 일도 집밖의 일처럼 척척 다 해내는 "혁명적 여성상"이 칭송을 받고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제도하에서 직장에서 1교대를 뛰고 퇴근 후 집안 일을 하면서 2교대를 뛰는 남한 여상노동자들의 삶의 패턴과도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북한의 "혁명적 여성상"이나 남한의 "수퍼우먼 신드롬"은 결국은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호칭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북한여성노동자의 삶도 그 억압기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한여성노동자의 삶과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교류가 전혀 없이 분단되어 이질화된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는 유사점보다는 상이점이 더 부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독여성들의 경우처럼 북한여성노동자들의 "경제적 한계인화" 현상은 불 보듯 환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통일이후를 예비하는 근본처방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책은 북한여성노동자들의 직업훈련이다. 경제통합 이후 필연적으로 발생할 남북한간의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절대다수의 북한여성들은 실업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북한여성들 상대로 한 다양한 형태의 직업훈련은 꼭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지금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북한지역의 "특구화" 논의는 남과 북을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철조망으로 갈라놓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런 대안들은 통일 후 북한여성들의 실업률 감소에는 도움이 될 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그리고 배타적 민족적 정서로 뭉친 우리 민족이 '다름'을 수용하고 같이 화합할 수 있는 기본가치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된다. 무엇보다도 조금 더 가진 자가 좀 덜 가진 형제, 자매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아량과 사랑의 실천까지도 이 가치교육에 포함시킨다면 통일 이후 남북한의 여성노동자들은 독일이 겪은 시행착오를 비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