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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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11-12.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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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비아캄페시나』

임성우 | 회원
한국 사회에서 농민운동은 세계화 흐름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 농민운동은 주로 수입개방 반대, 농가소득 보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특히 최근에는 WTO, FTA 반대 투쟁이 주를 이루었다. 세계화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큰 분야가 농업분야인 만큼 격렬한 반대투쟁이 전개되었다.
세계적 흐름도 유사하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저항의 최전선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단체는 비아캄페시나라는 국제 농민조직이다. 비아캄페시나는 산업적 농업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저질러온 사회와 환경의 파괴에 맞서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비아캄페시나』(한티재, 2011)는 농업의 근대화, 세계화 과정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비아캄페시나의 탄생과 발전을 살펴봄으로써 농업, 농민운동이 나아갈 바를 보여주고 있다. 값싼 외국 농산물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농업의 발전, 생태계 파괴에 맞서는 농업을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농업, 농촌, 농민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농업 근대화와 세계화

농업의 근대화는 기술혁신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개조하기 위해 노력해온 민간 기업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트랙터가 농장의 축력을 대신하고, 합성비료가 거름을 대신하고, 육종된 종자가 농부의 종자를 대신하고, 마가린이 버터를 대체하고, 고과당옥수수시럽이 사탕수수를 대체했다. 특히 종자와 관련한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종자회사들은 과거의 농민들의 방법 대신 고수확 변종종자를 개발함으로써 생산 과정에 직접 개입해왔다. 이런 과정은 농산업 기업들이 농민들의 손에서 종자를 효율적으로 탈취하여 산업자본의 축적을 부양하는 일종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의 근대화로 인해 농업은 산업투입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농민들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전락했으며 농민들이 택할 수 있는 영농 행위의 범위는 다국적 농산업 기업이나 국가가 그들에게 제공한 투입 선택권과 상품시장에 한정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농업 안에서 자연은 기계에 적합하도록 개조되었고 소위 ‘과학적’ 지식들이 농민들의 현장 지식과 지역적 행위들을 대체하였다. 농업에 기업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투영되고 그것에 집중된다는 것은 농민들이 점차 산업적 투입물에 의존하게 되고 가족농은 자연에 가까운 생산단계만을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농부들의 자율성 다시 말해, 생산을 결정하는 능력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은 생산 결정에 대한 자율성은 완전히 상실한 채 지속적으로 위험 부담을 감수하게 되었다.
사실 농업의 근대화는 자급자족했던 농민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자급에 대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지역문화와 지식에 기초한 전통적인 영농행위를 전적으로 폄하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농민들을 서구 기술과 지식 양자 모두에 보다 의존적으로 만들고 산업적 투입물과 상품들을 수입하게 함으로써 농민들이 생계형 농업에서 상업적 농업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했다.
농업은 거의 전적으로 이윤을 위해 생산을 증대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녹색혁명이라는 가장 분명한 형태로 다른 문화권에 수출되었으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핵심 외교정책이었다. 세계 전역에서 녹색혁명은 소작농 공동체의 후진적이며 원시적인 영농행위에 대한 근대적이며 과학적인 해결책으로 제안되었다.
최근 농업 분야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생명공학의 기술혁신과 세계적 차원의 농업 세계화이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세계적인 농산업 기업들은 종자에 대한 통제를 통해 농업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종자가 갖는 농업에서의 중요성으로 인해서 종자를 통제하면 농업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화학기업, 종자 및 농약기업, 농식품 기업, 농업 소매업체들 간의 인수합병이 물결을 이루고 종자와 관련된 개발이 주를 이룬다.
농업생명기술 산업에서 대부분의 연구와 개발은 살충제 내성을 지닌 종자의 개발에 투여되고 있는데, 몬산토의 라운드업레디, 레디카놀라, 레디소이빈, 레디면화나 Bt감자, 면화, 옥수수와 같은 살충식물들이 대표적이다. 거대 농산업 기업들은 불임씨앗을 생산하거나 지적재산권 보호를 통해 더 많은 소유권과 통제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산업화된 농업모델의 세계화는 촉진되었다.

농촌사회의 붕괴

농업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인 접근에 종속됨에 따라 농촌의 인프라 건설과 농민친화적인 시장구조는 무너졌고, 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해체되었다. 책의 내용을 보면 몇 가지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는 농업의 경제자유화의 가장 좋은 사례이다. 멕시코는 2000년 당시 24개국과 8개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었다. 이 중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1994년에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의 농업조달 조항으로 인해 멕시코는 기본 곡물들의 수입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쌀 수입량은 1992년 50만 톤에서 1996년 700만 톤으로 증가하였고, 일반 콩은 1999년에 97%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과도한 수입은 농민들을 위한 보장 수매가격의 해체와 보조금 지급의 실질적인 감소도 가져왔다. 보조프로그램은 붕괴하고 싼 가격의 식량수입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토지에서 쫓겨나고 빈곤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의 농민들은 가장 경쟁력 있고 효율적인 농민들로 인정받았지만 농업의 무역자유화 흐름에서 더 이상 경제적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토지에서 방출되었다. 캐나다 전국농민연합(NFU)의 사무처장인 다린 퀄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998년 캐나다가 캐나다-미국 간 무역협정에 서명한 이래로 캐나다의 농식품 수출은 거의 세 배가 되었다. 캐나다 농민들과 수출업자들은 ‘시장 접근성’을 획득하고 수출을 늘리는 데 성공해왔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과 무역협상가들이 예상했던 농가의 번영은 오지 않았다. 1988년 이래로 농가의 순소득은 정체되었다.”
농업 투입요소의 가격상승으로 이윤 마진이 감축되면서 농부들은 비용 대비 가격압박에 시달렸지만, 농산물 가격은 급감하였다. 1996년에서 2001년 사이 농산물 가격은 27% 하락한 반면, 투입요소 비용은 8.5% 증가하였다. 실질적인 농가부채는 235억 달러에서 2000년에 380억 달러로 최고조에 달했다. 농가소득 하락은 농촌의 인구공동화와 농촌 지역사회의 퇴락으로 이어졌다. 1971년에서 1996년 사이 캐나다 농가 수는 20%까지 줄어들었고 1996년에서 2001년까지 농가 수는 또 10.7%가 줄었다.
자유무역 옹호자들은 수출용 생산량이 늘고 농업무역의 수준이 증대되어 농민들은 혜택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신자유주의적 농업정책은 농업분야 다국적기업들에게만 혜택이 되었을 뿐이다. 또한 거대 농산업 기업들이 지배하는 농식품 체제는 유전적 자원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농업생산의 획일화를 강요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저항, 비아캄페시나

농업의 근대화와 세계화로 인한 폐해는 농민들의 저항을 불러왔고 전 세계 농민들의 저항은 비아캄페시나라는 국제적 연대 조직으로 모아졌다. 비아캄페시나는 근대적인 농산업모델의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 농민들이 토지와 종자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는 시기에 등장했고, 그것의 등장으로 세계화에 균열이 생기고 농민들을 위한 대안적 발전의 탐색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아캄페시나의 뿌리는 사회변화를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농민운동의 오랜 역사를 반영한다. 이미 지역이나 지방 수준에서는 다수의 조직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전국적 조직으로 수렴되고 대륙 수준의 조직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대륙을 넘어서고 있었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1992년 5월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서 개최된 전국농민연합 제2차 대표회의를 거쳐 1993년 5월 세계 전역의 46명의 농민지도자들이 벨기에 몽스에 모여 비아캄페시나를 공식 출범시켰다. 공식 출범과 함께 공식성명서로 제출된 「몽스선언」을 보면 이 조직이 신자유주의 농업 정책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며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범 의미에 걸맞게 이 조직은 제네바, 시애틀, 도하, 홍콩 등 WTO가 언제 어디에서 모이든 현장에서 반대 투쟁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전 세계를 무대로 투쟁을 전개해온 비아캄페시나는 현재 69개국 148개 조직을 포괄하는 단체가 되었다.
비아캄페시나는 범지구적 산업형 농업모델이 식량무역의 자유화를 촉진시키고, 생물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 지역 곳곳의 빈곤화를 가중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비아캄페시나는 8개의 핵심주제에 활동을 집중한다. 식량주권 개념, 농업개혁, 유전자원과 생물의 다양성, 인권, 성평등과 농촌개발, 지속가능한 소농모델 개발, (도농간 및 국제적) 이주, 농업노동자의 인권. 비아캄페시나는 이상의 이슈들이 모든 지역 혹은 모 든 비아캄페시나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일 수는 없음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지역들이 전세계 농민들을 위해 이러한 문제들의 중요성과 정당함을 인지하고,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한 투쟁을 지원하는 데 자신들을 헌신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비아캄페시나에서 이야기하는 식량주권은 ‘각 국들이 문화적, 생산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이며 ‘민중이 자신의 농업 및 먹을거리 정책을 규정할 권리’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식량주권 개념을 기반으로 대안적 농업을 건설하는 것이 비아캄페시나의 주된 목표이다.
비아캄페시나가 추구하는 대안적 농업은 다각적 영농으로 단작을 대체하고, 다양성으로 단일성을 극복하고 있다. 천연비료와 생물학적 해충방제를 통해서 농민들은 더 많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게 된다. 대안 농업 패러다임은 탈집중화, 독립, 공동체, 자연과의 조화, 다양성, 규제(혹은 안전장치)의 특성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근대적 농업 패러다임과 차이를 보인다.
또한 대규모 기업농 보다 소농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소농의 유지는 경제학적인 범주를 넘어 공동체와 사회적 안녕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수반하므로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비아캄페시나는 소농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업영농에 대한 대안을 구성하고 소작농과 소농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비아캄페시나는 기업이 주도하는 지구적 산업모델에 대항하여 지역중심적인 농민이 주도하는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땅의 사람들’이라는 강력한 집단 정체성과 지역 농촌에서 곡식을 기르며 생계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그들의 권리에 대한 단호한 신념으로 무장한 비아캄페시나는 다름 아닌 존재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는 단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와 문화는 물론이고 식량주권, 즉 국내소비용 식량을 자국의 문화에 맞추어 적절한 방식으로 생산하겠다는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비아캄페시나 운동의 의미

비아캄페시나의 운동은 상품이 아닌 먹을거리로서의 식량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에 대한 농민의 자주적인 접근과 통제를 강조한다. 또한 근대화와 세계화가 파괴한 지역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 생태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의 회복 과정을 모색한다. 토지와 종자 등 자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식과 기술에 대한 민중들의 통제권, 재생산에 관한 여성들의 권리, 토지개혁, 의료와 교육에 대한 민중들의 접근권, 생명의 종 다양성 보존 등 비아캄페시나가 제시하는 다양한 원칙과 내용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또한 비아캄페시나는 동일하지만은 않은 다양한 농민들 간의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며 스스로의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아캄페시나의 회원단체들은 세계화와 그 영향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우리들만 투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세계화는 지역공동체 대다수의 빈곤화를 의미한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공동체들이 이 같은 경제적 세계화의 심대한 영향을 받으면서 압도당하고 파괴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정의를, 지역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투쟁을 세계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거대한 자본가들이 경제를 세계화하는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지역공동체들의 이러한 투쟁을 세계화할 필요가 있다.”
농민과 농민단체들은 비아캄페시나를 형성해 나가면서 효과적으로 초국가화하였고, 국제적 영역 속에서 성공적으로 공간을 창출해내었다. 비아캄페시나는 기업적 농업모델의 강요에 저항하는 노력 속에서 농민들의 요구와 대안을 표출하면서, 농민들의 목소리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비아캄페시나의 운동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연대와 단결은 ‘또다른’ 농업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하자”

한국의 농업은 WTO체제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농가 수, 농가 인구 수의 급격한 감소, 고령화, 전업농가 감소, 식량자급률 하락, 농가부채 증가, 도농 간 소득격차 확대 등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한미 FTA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한국 농업을 완전히 말살할 것이 뻔하다. 농가소득 감소, 농가부채 증가, 고령화된 농촌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미 FTA 체결은 농업 전반의 붕괴, 농촌 지역사회의 해체를 불러올 것이다. 나아가 환경파괴, 농민의 빈민화, 도시 빈민의 증대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며 사회 전체의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다.
이제 한국 농업은 현재의 WTO체제와 한미 FTA를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적 농업 자체를 변혁하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비아캄페시나의 경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미 한국의 주요 농민운동단체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비아캄페시나 회원단체로 활동 중이다. 비아캄페시나의 대안적 고민을 바탕으로 한국 농민운동이 수입개방 반대를 넘어서는 대안농업 건설의 고민을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부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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