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개발사업의 폭력과 강제퇴거,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하자!
2011년, 여전히 멈춰버린 시간
“새벽 다섯 시, 명동 마리 침탈. 여섯 시, 포이동 대치 중. 2011년 8월 2일 서울, 용역 천국.”
- 2011년 8월 3일 새벽, 배우 김여진 씨의 트위터(@yohjini)
“(세입자대책위원회(이하 세대위) 위원장이) 용역에게 주먹으로 얼굴만 7대 맞으셨고요. 각목으로 머리를 두 대 더 맞았어요. 위원장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해서 결국 병원에 실려갔어요.”
- 2011년 8월 4일, 명동 마리에서의 용역폭력 증언 중
#1. 2011년 8월 3일과 4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 명동 거리에서는 ‘시가전’, ‘고지전’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철거용역과 세입자들 간의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세입자들이 농성 중인 카페 ‘마리’를 놓고, 밤사이 4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 이어졌다. 용역들은 각목을 휘두르고 소화기 분말을 뿌리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고,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50대의 세대위 위원장은 각목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마리’에 연대하던 시민과 세입자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2. 8월 12일에는 부천 원미구 중3동 재개발지구에서,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강제퇴거와 철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집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웃 철거민이 강제퇴거를 저지하기 위해 집 담벼락 아래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있었지만, 그대로 철거가 진행되면서 철거 잔해들이 차 위로 떨어지고, 차 안에 고립되었다. 차량은 심하게 파손되었고, 하루아침에 집에 구멍이 생긴 이는 그날 이후 반파된 집 벽을 대충 틀어막고 한 달 반 정도 거주하다가, 9월 30일 완전히 철거당했다.
#3. 8월 25일, 용산구청 앞에 새 집이 하나 뚝딱하고 세워졌다. 2008년 전세 500만 원에 살던 집에서 강제퇴거와 철거를 당한 이후 3년째 천막농성 중인 신계동의 여성 철거민 혼자서, 여름내 해진 비닐천막을 보수하여, 몸 누일 곳을 만들었다. 이미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천막에서 홀로 보냈지만, 여전히 외롭고 힘든 고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1년, 여전히 대한민국 철거민들의 시간은 청소차량에 실려 강제로 이주당한 1971년 광주대단지에, 20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불타 죽고, 맞아 죽고, 건물잔해에 깔려 죽은 1980년대에, 그리고 2009년 1월 20일 용산에 멈춰져 있다. 반복되는 강제퇴거는 ‘법’적으로 이루어지고, 강제퇴거 과정에서 용역깡패에 의한 폭력은 ‘법’적 절차로 진행되는 업무를 방해하는 철거민들에 대해 허용된 물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명동, 부천, 용산에서도 재정착 가능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강제퇴거가 자행되었고, 소위 용역깡패라 불리는 철거용역들의 폭력이 빈번했으며, 철거민들만이 ‘법적 절차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범법자가 되었다.
폭력의 시간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집을 둘러싼 탐욕의 추구라는 욕망과 그 탐욕을 부추기며 소수 자본에 이익을 독점시키던 정부 정책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때문에 용산참사 직후부터 참사의 근본원인인 강제퇴거의 현실과 잘못된 개발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대중적 요구가 확산하였고, 이에 정부와 서울시, 정치권에서도 제도개선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한국 강제퇴거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우려와 유엔의 권고로도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비준된 유엔 사회권규약에서는 강제퇴거를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므로 각국 정부가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해 입법조치의 채택을 비롯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는 1995년부터 한국정부의 사회권 관련 세 차례의 심사에서 모두 ‘한국의 강제퇴거 실태에 대한 우려와 이를 위한 예방 조치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참사발생 3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최근 명동 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의 ‘마리 카페’에서의 사건으로 다시금 용역폭력을 방지하자며 ‘경비업법’ 개정의 목소리가 뜨겁지만, ‘경비업법’ 개정안은 벌써 5~6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퇴거와 퇴거 종용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유린을 막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경비업법’을 개정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욕설과 폭력, 용 문신을 드러내는 것들을 금지한다고 해서 개발사업에서의 강제퇴거와 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철거민들이 ‘버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버티면서 절규하며 이야기하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대책을 마련하고 철거하라’, ‘대책 없이 내쫓지 마라’는 것이다.
법적 절차로 진행된 퇴거는 ‘강제퇴거’가 아닌가?
결국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대책이 얼마나 잘 보장되어 있고, 비자발적인 퇴거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가 ‘강제퇴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그런데 빈번한 강제퇴거의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시행주체나 구청 등 공공기관에서는 ‘법적인 대책을 다 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철거민들이 ‘떼잡이’가 아니라면, 이 법적인 대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발사업에서의 세입자 대책은 크게 이주대책마련과 손실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주대책마련으로 임대주택 및 대체상가 등이 있고, 손실보상으로 주거이전비 및 영업손실보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책은 개발사업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사업성격으로 구분하면 공익사업과 민간개발사업으로 구분하여 나뉜다. 쉽게 말해 공익사업에는 쥐꼬리만 대책이라도 있지만, 민간개발사업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사업과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인 간의 문제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일면 타당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착시들이 존재한다.
‘민간개발’, ‘사인 간의 문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그렇다.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외침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가 했던 말들이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용산 철거민 대책과 관련해서는 ‘사인간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상가세입자들에게 좋은 사례가 된 홍대 두리반에 대해서도 오 전 시장은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이지 재개발, 뉴타운과 무관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용산4구역의 경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로 앞서 말한 공익사업에 속하며, 공익사업법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진 곳이다. 어디는 민간에서 땅을 사들여 하는 민간개발이라 안 된다더니, ‘공익사업법’에서 규정하는 공익사업지구인 곳도 ‘사인 간의 문제’라니……. 결국 지금까지 공익적 목적의 사업마저도 민간의 이윤놀음에 내맡기고 진행해 온 것에 대한 인정이거나, 무지 혹은 약자들에 대한 공공의 책무를 외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착시를 주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착시도 있다. 민간개발은 사적이익에 관한 것이기에 공공에서 책임 없다는 논리는 사적이익 추구에서 철저히 외면되고 파괴당하는 약자들, 세입자들의 현실을 교묘히 감춘다. 예를 들어보자. A 지역에서 20년간 살거나 영업해 온 주거/상가 세입자와 B 지역에서 똑같은 조건과 기간으로 살거나 생계를 꾸려 온 세입자 있다. 두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며 개발바람이 분다. 두 지역 세입자 모두 제2의 고향과도 다름없는 우리 동네가 발전한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공간과 조건에서 살거나 장사하게 될 거라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A 지역은 주택재개발조합이 결성되었고, B 지역은 지역주택조합이 결성되었다. ‘어쨌든 재개발되니 우리 동네 좋아지겠네’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아뿔싸! A 지역 세입자에게는 주거이전비와 순환형임시주택, 임대아파트 입주자격 그리고 이사비가 주어지는데, B 지역 세입자에게는 달랑 이사비 몇 푼 받고 나가란다. 상가세입자도 마찬가지다. A 지역은 영업손실보상이라도 있는데, B 지역은 그냥 철거해 버리고 끝이다. 주택재개발은 공익사업이고, 조합주택개발은 민간개발이기 때문이란다. 똑같은 세입자인데, 똑같이 살아온 사람인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와 가족의 미래가 결정된다.
굉장히 드문 예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같은 단어로 착각하며 사용하는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말도 사실 앞의 예와 같다. 재개발이 되면 세입자 대책이 있고, 재건축이 되면 전혀 없다. 그런데 개발세력들의 주판알 계산에 따른 요청에 의해 아주 작은 조례의 변경만으로 재개발이 재건축지역으로 되고, 재건축이 재개발지역으로 되는 둔갑술을 발휘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종류의 개발이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 건 간에, 바로 그곳에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옹기종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애써 감추려는 논리가 ‘사인 간의 문제’라는 궤변에 숨겨져 있다.
이런 식으로 ‘법적인 대책’을 다 했다며, 퇴거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비록 민간에 의한 사업 일지라도 퇴거를 수반하고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라면, 퇴거를 당해야 하는 이들이 이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살거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재정착 대책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한 보장 없이 이루어지는 퇴거는, 우리가 단호히 거부해야 할 ‘강제퇴거’이다.
도심개발사업은 노동자들에게 닥칠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해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무협지 대사와도 같은 위 내용은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2008.12.15),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여당 대표(박희태)가 나눈 이야기이다. 이명박 시대를 상징하는 뉴타운 도심 광역개발은 수많은 이해당사자, 특히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문제가 되었다. 특히 그 규모와 속도에서 이례적인 뉴타운 개발사업은 도시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을 전세 난민 혹은 불안정한 잠재적 철거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발 구역간의 보다 빠른 개발 경쟁이 불붙어서, 세입자들을 보다 빨리 쫓아내고자 용역 깡패를 이용한 폭력의 양상이 더욱 극심해졌다. 최근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부동산 침체로 PF방식의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주춤하는 상황을 정부와 서울시는 소규모 개발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개발의 활성화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러한 현실은 또 다른 용산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관련 법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퇴거를 막기 위한 대안적인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국내법으로는 처음으로 주거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강제퇴거가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관계, 삶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이기에 개발로 삶과 생존의 공간을 빼앗기는 이들의 삶이 개발사업 이전수준과 동등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강제퇴거를 금지하자는 것을 기본 골간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강제퇴거 금지법은 다양한 개발사업과 그 사업에 따라 적용되는 다른 법체계들에 의해 대책이 달라지는 현실, 그리고 두리반처럼 법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개발 사업으로 분류조차 되지 못하는 무대책상태의 개발사업을 관통하여,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발사업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강제퇴거금지법은 재산권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행 개발관련 법체계의 균열과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이 만능이 될 수 없고,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막대한 개발이득을 목전에 둔 세력들에게는 무시하면 그만일 수 있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처럼 개발법에 의해 보호되는 폭력, 합법화된 폭력을, 불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철거민이 불법세력이나 도심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법 집행을 빌미로 휘두르는 저들의 폭력과 대책 없이 남발하는 강제퇴거가 불법이고, 지역 주민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강제퇴거의 책임은 공공에 있다
용산참사 당시 희생된 故 이상림(당시 72세) 열사의 유품에는 망루에 오르면서 품에 지니고 있었던 용산구청의 공문이 있었다.
“세입자 보상계획에 대한 협의가 없다고 해서 관리처분계획인가 등을 중단할 수 없는 사항임을 회신하오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용산구청장
법에 따른 관계인의 보상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협의가 완료될 때까지 '관리처분인가(철거 직전 마지막 인가단계)'를 중지해 달라는 고인의 민원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으로, 용산구청은 “관리처분을 중단할 수 없다”며 거절을 통보했던 것이다.
한강갈비에서 레아호프까지 용산4구역 한 자리에서만 30년 가까이 생계를 꾸리고 살아온 서울시 용산구의 주민으로서의 마지막 절박한 요구마저 거절당한 구청 공문을 품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막내아들과 함께 하늘 끝 망루에 올랐다.
그런데 원통하게도 거절당했던 그 요구에 대해 2010년 11월 초, 서울고등법원이 절차상 중대한 위반이 있었다며 “용산4구역 관리처분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검이 되고 땅속에 묻힌 후에야 말이다.
이처럼 용산구청은 용산4구역에 조합과 세입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적당한 재정착 계획을 요구하기 위해 용산구청에 여러 차례 항의집회를 열고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용산구청은 세입자들에게 중요한 사항에 대해 “세입자와 협의할 사항이 아닙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으며, 심지어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을 구청 입구 측면에 걸기에 이르렀다. 공공기관인 용산구청의 이러한 행태는 세입자들로 하여금 공공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일으켜 구청이나 조합과 합리적으로 협의할 가능성이 없음을 인식하고 절망하게 한다.
비록 세입자이지만 수십 년 지역에 살아오고, 지역의 상권을 발전시켜온 지역 ‘주민’이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는 순간 ‘철거민’이 되고, 구청은 ‘철거민’을 더는 지역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지역 주민의 민원이 아니라, 그저 귀찮고 시끄럽게 하는 ‘떼잡이’들의 ‘생떼거리’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을 건 저항은 ‘도심 테러’로 매도된다.
용산은 이 시대의 개발 현실을 참혹하게 각인시켜주었다. 개발로 새롭게 탈바꿈할 명품도시에 걸맞지 않은 이들을 짝퉁 취급하며 쓸어버리고, 쓸려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잔혹한 개발사는 7~80년대 판자촌 철거에서부터 90년대의 달동네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2000년대 뉴타운 건설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철거민이 되어 강제퇴거의 상황에 놓여 쫓겨나거나, 저항하거나, 죽임당해야 했다.
무너질 수 없는 삶. 강제퇴거금지법, 우리의 힘으로 제정하자
강제퇴거를 예방하고, 재정착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공의 책임이 무엇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용산4구역 개발사업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리처분 무효판결’이 있었지만, 그 잘못된 개발사업의 인가로 인한 죽음의 책임은 철거민들만 지고 있다. 주검이 된 이상림 열사의 막내아들,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 갇혀있다.
망루에 오르기 전 마지막 거절당한 요구가 정당했음이 판결되었지만, 끔직한 참사를 부른 강제퇴거를 수반하는 개발사업을 밀어붙인 그 누구도 책임 지지 않고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철거민들은 주검이 되어 땅속에, 그리고 감옥에 갇혔지만, 잘못된 개발을 밀어붙이고 인가한 이들은 여전히 또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퇴거에 내몰린 철거민으로 만들고 있다. 때문에 강제퇴거금지법은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이제 입법을 위한 발의를 앞두고 있다. 국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이 발의될 수 있도록 1만 명의 제정 촉구 선언을 모으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강제퇴거금지법은 한국사회 개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할 수밖에 없기에, 개발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현 정치구도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의 법제화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입법의 역사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용산참사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은 우리들이 그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누구도 집에서 사람을 함부로 쫓아내서는 안 된다. 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폭력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개발, 오래 살아온 동네와 집,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는 개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어제의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올 내일의 용산을 막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은 내일의 용산을 막아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새벽 다섯 시, 명동 마리 침탈. 여섯 시, 포이동 대치 중. 2011년 8월 2일 서울, 용역 천국.”
- 2011년 8월 3일 새벽, 배우 김여진 씨의 트위터(@yohjini)
“(세입자대책위원회(이하 세대위) 위원장이) 용역에게 주먹으로 얼굴만 7대 맞으셨고요. 각목으로 머리를 두 대 더 맞았어요. 위원장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해서 결국 병원에 실려갔어요.”
- 2011년 8월 4일, 명동 마리에서의 용역폭력 증언 중
#1. 2011년 8월 3일과 4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 명동 거리에서는 ‘시가전’, ‘고지전’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철거용역과 세입자들 간의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세입자들이 농성 중인 카페 ‘마리’를 놓고, 밤사이 4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 이어졌다. 용역들은 각목을 휘두르고 소화기 분말을 뿌리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고,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50대의 세대위 위원장은 각목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마리’에 연대하던 시민과 세입자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2. 8월 12일에는 부천 원미구 중3동 재개발지구에서,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강제퇴거와 철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집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웃 철거민이 강제퇴거를 저지하기 위해 집 담벼락 아래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있었지만, 그대로 철거가 진행되면서 철거 잔해들이 차 위로 떨어지고, 차 안에 고립되었다. 차량은 심하게 파손되었고, 하루아침에 집에 구멍이 생긴 이는 그날 이후 반파된 집 벽을 대충 틀어막고 한 달 반 정도 거주하다가, 9월 30일 완전히 철거당했다.
#3. 8월 25일, 용산구청 앞에 새 집이 하나 뚝딱하고 세워졌다. 2008년 전세 500만 원에 살던 집에서 강제퇴거와 철거를 당한 이후 3년째 천막농성 중인 신계동의 여성 철거민 혼자서, 여름내 해진 비닐천막을 보수하여, 몸 누일 곳을 만들었다. 이미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천막에서 홀로 보냈지만, 여전히 외롭고 힘든 고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1년, 여전히 대한민국 철거민들의 시간은 청소차량에 실려 강제로 이주당한 1971년 광주대단지에, 20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불타 죽고, 맞아 죽고, 건물잔해에 깔려 죽은 1980년대에, 그리고 2009년 1월 20일 용산에 멈춰져 있다. 반복되는 강제퇴거는 ‘법’적으로 이루어지고, 강제퇴거 과정에서 용역깡패에 의한 폭력은 ‘법’적 절차로 진행되는 업무를 방해하는 철거민들에 대해 허용된 물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명동, 부천, 용산에서도 재정착 가능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강제퇴거가 자행되었고, 소위 용역깡패라 불리는 철거용역들의 폭력이 빈번했으며, 철거민들만이 ‘법적 절차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범법자가 되었다.
폭력의 시간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집을 둘러싼 탐욕의 추구라는 욕망과 그 탐욕을 부추기며 소수 자본에 이익을 독점시키던 정부 정책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때문에 용산참사 직후부터 참사의 근본원인인 강제퇴거의 현실과 잘못된 개발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대중적 요구가 확산하였고, 이에 정부와 서울시, 정치권에서도 제도개선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한국 강제퇴거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우려와 유엔의 권고로도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비준된 유엔 사회권규약에서는 강제퇴거를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므로 각국 정부가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해 입법조치의 채택을 비롯한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는 1995년부터 한국정부의 사회권 관련 세 차례의 심사에서 모두 ‘한국의 강제퇴거 실태에 대한 우려와 이를 위한 예방 조치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참사발생 3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최근 명동 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의 ‘마리 카페’에서의 사건으로 다시금 용역폭력을 방지하자며 ‘경비업법’ 개정의 목소리가 뜨겁지만, ‘경비업법’ 개정안은 벌써 5~6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퇴거와 퇴거 종용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유린을 막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경비업법’을 개정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욕설과 폭력, 용 문신을 드러내는 것들을 금지한다고 해서 개발사업에서의 강제퇴거와 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철거민들이 ‘버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버티면서 절규하며 이야기하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대책을 마련하고 철거하라’, ‘대책 없이 내쫓지 마라’는 것이다.
법적 절차로 진행된 퇴거는 ‘강제퇴거’가 아닌가?
결국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대책이 얼마나 잘 보장되어 있고, 비자발적인 퇴거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가 ‘강제퇴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그런데 빈번한 강제퇴거의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시행주체나 구청 등 공공기관에서는 ‘법적인 대책을 다 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철거민들이 ‘떼잡이’가 아니라면, 이 법적인 대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발사업에서의 세입자 대책은 크게 이주대책마련과 손실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주대책마련으로 임대주택 및 대체상가 등이 있고, 손실보상으로 주거이전비 및 영업손실보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책은 개발사업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사업성격으로 구분하면 공익사업과 민간개발사업으로 구분하여 나뉜다. 쉽게 말해 공익사업에는 쥐꼬리만 대책이라도 있지만, 민간개발사업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사업과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인 간의 문제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일면 타당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착시들이 존재한다.
‘민간개발’, ‘사인 간의 문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그렇다.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외침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가 했던 말들이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용산 철거민 대책과 관련해서는 ‘사인간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상가세입자들에게 좋은 사례가 된 홍대 두리반에 대해서도 오 전 시장은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이지 재개발, 뉴타운과 무관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용산4구역의 경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로 앞서 말한 공익사업에 속하며, 공익사업법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진 곳이다. 어디는 민간에서 땅을 사들여 하는 민간개발이라 안 된다더니, ‘공익사업법’에서 규정하는 공익사업지구인 곳도 ‘사인 간의 문제’라니……. 결국 지금까지 공익적 목적의 사업마저도 민간의 이윤놀음에 내맡기고 진행해 온 것에 대한 인정이거나, 무지 혹은 약자들에 대한 공공의 책무를 외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착시를 주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착시도 있다. 민간개발은 사적이익에 관한 것이기에 공공에서 책임 없다는 논리는 사적이익 추구에서 철저히 외면되고 파괴당하는 약자들, 세입자들의 현실을 교묘히 감춘다. 예를 들어보자. A 지역에서 20년간 살거나 영업해 온 주거/상가 세입자와 B 지역에서 똑같은 조건과 기간으로 살거나 생계를 꾸려 온 세입자 있다. 두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며 개발바람이 분다. 두 지역 세입자 모두 제2의 고향과도 다름없는 우리 동네가 발전한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공간과 조건에서 살거나 장사하게 될 거라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A 지역은 주택재개발조합이 결성되었고, B 지역은 지역주택조합이 결성되었다. ‘어쨌든 재개발되니 우리 동네 좋아지겠네’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아뿔싸! A 지역 세입자에게는 주거이전비와 순환형임시주택, 임대아파트 입주자격 그리고 이사비가 주어지는데, B 지역 세입자에게는 달랑 이사비 몇 푼 받고 나가란다. 상가세입자도 마찬가지다. A 지역은 영업손실보상이라도 있는데, B 지역은 그냥 철거해 버리고 끝이다. 주택재개발은 공익사업이고, 조합주택개발은 민간개발이기 때문이란다. 똑같은 세입자인데, 똑같이 살아온 사람인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와 가족의 미래가 결정된다.
굉장히 드문 예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같은 단어로 착각하며 사용하는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말도 사실 앞의 예와 같다. 재개발이 되면 세입자 대책이 있고, 재건축이 되면 전혀 없다. 그런데 개발세력들의 주판알 계산에 따른 요청에 의해 아주 작은 조례의 변경만으로 재개발이 재건축지역으로 되고, 재건축이 재개발지역으로 되는 둔갑술을 발휘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종류의 개발이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 건 간에, 바로 그곳에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옹기종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애써 감추려는 논리가 ‘사인 간의 문제’라는 궤변에 숨겨져 있다.
이런 식으로 ‘법적인 대책’을 다 했다며, 퇴거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비록 민간에 의한 사업 일지라도 퇴거를 수반하고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라면, 퇴거를 당해야 하는 이들이 이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살거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재정착 대책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한 보장 없이 이루어지는 퇴거는, 우리가 단호히 거부해야 할 ‘강제퇴거’이다.
도심개발사업은 노동자들에게 닥칠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해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무협지 대사와도 같은 위 내용은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2008.12.15),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여당 대표(박희태)가 나눈 이야기이다. 이명박 시대를 상징하는 뉴타운 도심 광역개발은 수많은 이해당사자, 특히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문제가 되었다. 특히 그 규모와 속도에서 이례적인 뉴타운 개발사업은 도시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을 전세 난민 혹은 불안정한 잠재적 철거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발 구역간의 보다 빠른 개발 경쟁이 불붙어서, 세입자들을 보다 빨리 쫓아내고자 용역 깡패를 이용한 폭력의 양상이 더욱 극심해졌다. 최근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부동산 침체로 PF방식의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주춤하는 상황을 정부와 서울시는 소규모 개발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개발의 활성화로 돌파하려고 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한다
이러한 현실은 또 다른 용산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관련 법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퇴거를 막기 위한 대안적인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국내법으로는 처음으로 주거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강제퇴거가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관계, 삶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이기에 개발로 삶과 생존의 공간을 빼앗기는 이들의 삶이 개발사업 이전수준과 동등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강제퇴거를 금지하자는 것을 기본 골간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강제퇴거 금지법은 다양한 개발사업과 그 사업에 따라 적용되는 다른 법체계들에 의해 대책이 달라지는 현실, 그리고 두리반처럼 법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개발 사업으로 분류조차 되지 못하는 무대책상태의 개발사업을 관통하여,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발사업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강제퇴거금지법은 재산권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행 개발관련 법체계의 균열과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이 만능이 될 수 없고,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막대한 개발이득을 목전에 둔 세력들에게는 무시하면 그만일 수 있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처럼 개발법에 의해 보호되는 폭력, 합법화된 폭력을, 불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철거민이 불법세력이나 도심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법 집행을 빌미로 휘두르는 저들의 폭력과 대책 없이 남발하는 강제퇴거가 불법이고, 지역 주민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강제퇴거의 책임은 공공에 있다
용산참사 당시 희생된 故 이상림(당시 72세) 열사의 유품에는 망루에 오르면서 품에 지니고 있었던 용산구청의 공문이 있었다.
“세입자 보상계획에 대한 협의가 없다고 해서 관리처분계획인가 등을 중단할 수 없는 사항임을 회신하오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용산구청장
법에 따른 관계인의 보상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협의가 완료될 때까지 '관리처분인가(철거 직전 마지막 인가단계)'를 중지해 달라는 고인의 민원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으로, 용산구청은 “관리처분을 중단할 수 없다”며 거절을 통보했던 것이다.
한강갈비에서 레아호프까지 용산4구역 한 자리에서만 30년 가까이 생계를 꾸리고 살아온 서울시 용산구의 주민으로서의 마지막 절박한 요구마저 거절당한 구청 공문을 품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막내아들과 함께 하늘 끝 망루에 올랐다.
그런데 원통하게도 거절당했던 그 요구에 대해 2010년 11월 초, 서울고등법원이 절차상 중대한 위반이 있었다며 “용산4구역 관리처분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검이 되고 땅속에 묻힌 후에야 말이다.
이처럼 용산구청은 용산4구역에 조합과 세입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적당한 재정착 계획을 요구하기 위해 용산구청에 여러 차례 항의집회를 열고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용산구청은 세입자들에게 중요한 사항에 대해 “세입자와 협의할 사항이 아닙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으며, 심지어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을 구청 입구 측면에 걸기에 이르렀다. 공공기관인 용산구청의 이러한 행태는 세입자들로 하여금 공공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일으켜 구청이나 조합과 합리적으로 협의할 가능성이 없음을 인식하고 절망하게 한다.
비록 세입자이지만 수십 년 지역에 살아오고, 지역의 상권을 발전시켜온 지역 ‘주민’이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는 순간 ‘철거민’이 되고, 구청은 ‘철거민’을 더는 지역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지역 주민의 민원이 아니라, 그저 귀찮고 시끄럽게 하는 ‘떼잡이’들의 ‘생떼거리’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을 건 저항은 ‘도심 테러’로 매도된다.
용산은 이 시대의 개발 현실을 참혹하게 각인시켜주었다. 개발로 새롭게 탈바꿈할 명품도시에 걸맞지 않은 이들을 짝퉁 취급하며 쓸어버리고, 쓸려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잔혹한 개발사는 7~80년대 판자촌 철거에서부터 90년대의 달동네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2000년대 뉴타운 건설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철거민이 되어 강제퇴거의 상황에 놓여 쫓겨나거나, 저항하거나, 죽임당해야 했다.
무너질 수 없는 삶. 강제퇴거금지법, 우리의 힘으로 제정하자
강제퇴거를 예방하고, 재정착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공의 책임이 무엇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용산4구역 개발사업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리처분 무효판결’이 있었지만, 그 잘못된 개발사업의 인가로 인한 죽음의 책임은 철거민들만 지고 있다. 주검이 된 이상림 열사의 막내아들,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 갇혀있다.
망루에 오르기 전 마지막 거절당한 요구가 정당했음이 판결되었지만, 끔직한 참사를 부른 강제퇴거를 수반하는 개발사업을 밀어붙인 그 누구도 책임 지지 않고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철거민들은 주검이 되어 땅속에, 그리고 감옥에 갇혔지만, 잘못된 개발을 밀어붙이고 인가한 이들은 여전히 또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퇴거에 내몰린 철거민으로 만들고 있다. 때문에 강제퇴거금지법은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이제 입법을 위한 발의를 앞두고 있다. 국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이 발의될 수 있도록 1만 명의 제정 촉구 선언을 모으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강제퇴거금지법은 한국사회 개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할 수밖에 없기에, 개발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현 정치구도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의 법제화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입법의 역사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용산참사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은 우리들이 그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누구도 집에서 사람을 함부로 쫓아내서는 안 된다. 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폭력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개발, 오래 살아온 동네와 집,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는 개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어제의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올 내일의 용산을 막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은 내일의 용산을 막아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