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11-12.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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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야권단일화’의 수렁에서 벗어나자

변혁적 대중운동 복원과 반자본대안세계화 운동 강화로!

정영섭 | 운영위원
1% 대 99%

전 세계가 ‘Occupy!(점거하라)’ 시위로 뜨겁다. 자본주의 체제의 탐욕을 규탄하고 노동자 민중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한 ‘분노의 가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에는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 80여 개 나라, 1,000여 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지난 수십 년 간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막대한 부를 금융자본과 대재벌, 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시켰고 그 결과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급증, 실질소득의 감소와 빈곤의 확대, 복지 축소로 이어져 도저히 대다수 민중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힘들어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더욱이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위기를 극복할 대안도 없이 광범위한 인민 대중을 삶의 나락으로 빠트리며 긴축과 궁핍만을 강요하고 있다. 부를 움켜쥔 1%의 지배계급에 나머지 99%의 다수자가 저항과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행동이 “우린 노예가 아니다, 사람이다”, “분노하라”, “자본독재가 아닌 진짜 민주주의를!”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전 세계를 들썩이고 있다.

야권단일화만이 살길?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과 그에 대한 투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 현대를 필두로 한 30대 재벌의 순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노동자, 농민, 학생, 도시빈민, 자영업자 등 다수 대중들의 생활수준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상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5.1배로 미국보다 심하다.

[표 1] 30대 재벌 순익
연도 2008 2009 2010
액수 33조 원 46조 원 79조 원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저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부터 부산 영도, 각 지역과 서울의 장기투쟁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를 민중들의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노동 대중을 대표한다는 운동정치세력들은 이러한 대중 투쟁을 고무하고 확대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2012년 총선 대선을 핑계로 ‘묻지마 야권단일화’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명박에 반대하면 다 같은 편’이라는 무원칙한 반MB야권연대 논리는 지난 해 62 지방선거부터 올해 427 재보선에 이어 1026 재보선에서도 어김없이 채택되었다. 노동 대중이 아래로부터 스스로의 힘과 의제로 조직화하고 투쟁하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러한 운동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질서를 갈아엎어서 생산의 주인,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세력화의 원칙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노동운동, 대중운동은 배제되고 정당이 상층에서 협상을 통해 단일화를 하고 노동 대중은 거기에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건 아니다 싶은 활동가들도 일단 야권단일화 틀이 작동하면 그 속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분출하기 힘들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수렁에서 벗어나라!

이는 노동자 민중운동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의 이념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끊임없는 민주당과의 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시도, 집회 때 마다 등장하는 ‘야5당’의 연설은 대중들로 하여금 운동의 지향을 헷갈리게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내내 생겼던 열사들, 구속되고 투옥된 동지들, 양산된 비정규노동자들, 한미 FTA에 관한 책임문제는 온데간데없고 반MB를 위해 이제는 무조건 손을 잡으라고 하니 이 무슨 우경화에 기억상실증이란 말인가.
둘째,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진출의 폭을 협소하게 만든다. 야권단일화라는 미명하에 노동 대중이 엉뚱한 이들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노무현정권에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이나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진압했던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한 반면 진보정당 후보로 나선 노회찬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발생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야권단일화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정작 노동자 민중을 대표한다고 하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지지층의 지지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초라한 득표에 그쳤다. 자기 이념과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투쟁력을 키워 독자적인 행보를 해야 위상도 높아지고 그 힘으로 제도정치에 대한 강제력도 커질 텐데 미리부터 접고 들어가니 들러리 신세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십수 년 간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을 해 온 ‘정신적인 민주당원’ 박원순 후보에 대해 왜 민주노총이 전 조직적 지지선언을 하고 정치후원금을 모으고 투표운동을 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하는가. 독자적인 노동자 계급정치 대신에 야권연대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셋째, 그렇지 않아도 허약해진 대중투쟁, 대중운동을 선거정치에 더욱 종속시켜 약화시킨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조법 개정, 한미 FTA 폐기, 제주 해군기지 반대, 장투사업장 승리, 수많은 현장의 노동탄압 문제 등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안들에 대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더욱 투쟁력을 모으고 문제제기를 확산시켜야 하는데 투쟁과 괴리된 선거 정치에만 매몰되고 만 것이다. 상층부에서는 기층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핑계로 더 시민단체나 자유주의 정당과의 연대에 기대고 이것이 다시 기층운동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 야권 단일화로 쏠린 노동운동의 대응 유감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야권 단일화 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후보를 민주노총 지지 후보로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3일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적극 참여한 데 이어 17일에는 박원순 후보 지지를 위해 노동희망특위를 결성했다(상임위원장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희망특위는 ‘10만 노동희망 지킴이, 30만 노동가족 조직화 운동’과 ‘희망의 씨앗 5억 정치후원금 모금운동’, 투표 참여 운동 등을 전개했다. 산별연맹들은 박원순 후보 측과 정책협약을 체결했다(그러나 박원순은 서울시 산하기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와 해고자 복직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타적 지지 관계에 있는 민주노동당이 참여하는 야권후보 단일화 틀에 별 문제제기 없이 갇히는 순간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이 아닌 후보를 결과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 몬 것이다.
민주노총과 산하조직은 서울시 각 구별로 노동상담을 진행하는 ‘노동복지센터’ 설치, 노정간 안정적인 협의기구 구성, 도시철도공사 등에서 오세훈 시장의 노동탄압으로 해고된 노동자 복직, 국립중앙의료원 매각축소이전 반대 등 현안과 사회공공성 강화와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노정협의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의 의지 이외에 얼마나 노동조합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있냐는 것이 문제다. 결국 그것은 노동운동의 대중적 힘과 투쟁력이 될 것이다. 시장 당선을 위해 노력했으니 우리가 요구하는 걸 내놓을 것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집단적으로 조직하여 이를 조합원 대중의 단결과 물리력으로 제기하여 관철시켜야 하지만, 선거국면에서는 지지운동 외에 다른 실천을 하지 못했다. 당장 절박한 해고자 복직 등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해당 노조가 요구를 제기하고 관여하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 운동 진영 전체가 민주노총의 이름을 걸고 나설 때라면 훨씬 신중해야 한다.

헛다리 짚는 민주노총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방향 보고서’

이러한 상황은 정치세력화에 대한 민주노총의 안이한 인식에 따른 것이다. 지난 8월 민주노총 중집수련회에 제출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방향’ 보고서(이하 보고서)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 없이 노동자 운동을 정당에 동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진보집권’이라는 시대인식에 따라, 첫째,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통해 강화된 당의 힘으로 법제도적 제약으로 인한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고, 둘째, 당의 노동중심성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당원 가입('문턱없는 당비 납부제 도입', '현장당원 활동체계 구축') 및 지도체계 참여를 강화하고 정권교체기금으로 100억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가 제시한 제2의 정치세력화(안)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첫째, 보고서는 ‘수권정당’의 운동에 맞게 산별노조운동을 개조하자는 역발상의 제안을 한다. 임금, 고용 문제는 기업단위에 맡기고, 사회적 임금이라 명명된 정당의 ‘복지’의제 실현을 위해서 산별노조가 지원체계를 갖출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임금과 고용투쟁이 기업단위노조에만 맡겨져 임금고용방어도 실패하고 임금격차 축소에도 실패했다는 기간의 평가를 부정한다. 이는 총연맹과 산별노조운동이 연대임금, 연대고용 투쟁을 통해 노동자단결을 확대해야할 과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둘째, 보고서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과반을 노동자 당원으로 채우면 노동중심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이 대중참여형으로 바뀌는 마당에 집단적으로 당원 가입운동을 전개해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당원의 양적 확충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념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립정부구상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현재 진보정당의 이념과 정체성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즉,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노동해방이라는 이념적 토대를 강화해나가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고서에는 정치세력화 운동 재설계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진보정당 운동의 우경화는 묻어둔 채, 노동자 당원의 수적 증가가 곧 노동자정치라는 기계적 논리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이번 보고서가 산별운동에 대한 기존 평가를 부정하는 논리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추진위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보다는 자유주의 정당세력과의 정치연합에 의존해 노동조합 운동의 새 출구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 보고서의 제안에 따라 2011년 하반기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기반 및 실천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노동자 정치인지를 외면한 채, 힘 있는 정당에 대한 의존과 당원의 수적 배가라는 방책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방책은 지금도 만연해 있는 노동조합 내 실리주의적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연대를 더욱 약화시킬 뿐이다. 제2의 정치세력화 방안은 완전히 재론되어야 한다.

대중투쟁 복원, 반자본대안세계화 운동 강화로

노동자 민중 정치의 실종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야권단일화의 종착역은 내년 대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운동진영 일각에서 ‘민주연립정부’를 말하며 대선에서 민주당 등과 연합하여 정권을 교체하자고 하는 것을 우리는 ‘진보적 정권교체’로 볼 수 없다. 설사 그렇게 정권이 교체되어 진보정당 출신이 노동부장관이나 보건복지부장관을 한다고 해도 득보다는 실이 크다. 경제위기 속에서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민주당 정권 유지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투쟁을 억압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민주노동당이 포함된 공동정부가 운영되면 당장 맞이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오히려 노동자 민중운동의 독자성을 키우고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변혁적 대중운동을 복원하고 투쟁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2011년 아랍 지역의 민중혁명, 스페인과 그리스 등 유럽의 노동자 총파업과 일련의 대중 저항, 미국에서 시작되어 퍼지고 있는 점거운동의 물결에서 보듯이 정의와 평등을 위한 도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또한 야권단일화를 당연히 전제하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투쟁과 괴리되는 정치, 운동과 괴리되는 선거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야권단일화가 원칙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진영의 단결과 연대가 원칙이다. 이러한 흐름이 반자본대안세계화 운동의 강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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