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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6.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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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위기와 변모에 관한 한 연구

피터 메이어, 『정당과 정당체계의 변화: 접근과 해석』(도서출판 오름, 2011)

김태훈 | 정책위원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 과반을 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안철수 교수는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아닌 제3의 세력 규합을 통한 대선 출마 가능성을 높이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왜 선거를 통한 정당체계의 전면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왜 박근혜의 대항마로 지지받는 안철수는 기성 정당과 다른 길을 가려하고,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선거를 하라는 주장을 하고, 그러한 행보가 일정한 지지를 받는 것일까.
정당, 정당체계의 변화와 생존의 문제는 비교정치학의 주제 중 하나다. 비교정치학은 세계 각국의 정치 현상들을 어떤 방식으로 비교 분석할 것인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연구한다. 『정당과 정당체계의 변화: 접근과 해석』(도서출판 오름, 2011)은 ‘카르텔 정당론’을 제기한 아일랜드의 비교정치학자 피터 메이어의 기존 연구들을 정리한 책이다. 1997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었는데 2011년 말에야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1, 2부에서 비교정치학의 주요 개념, 이론과 쟁점들을 검토하며 자신의 입장을 전개한다. 그는 고국 아일랜드에서부터 서유럽 전반으로 관측 범위를 넓혀가면서, ‘정당의 위기’ 담론이 팽배했던 1970년대를 경과하면서 오히려 오래된 정당이 역설적으로 생존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카르텔 정당론을 포함한 정당의 동학, 정당 조직의 변모과정, 그로 인해 형성되는 정당체계의 특징을 분석한다.
이러한 메이어의 분석은 공간적·시간적 차이로 인해 현재 우리 현실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선을 앞둔 우리의 정당 정치 현실에 일정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의 논지를 따라 정당의 역설적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정당의 변모 양상 및 정당체계의 특징을 살피겠다.


정당의 변화와 지속

피터 메이어는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정당 현상에 있어서 지속적인 것, 오래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정당과 정당체계가 주어진 환경에 맞춰 ‘동결’하는 방식, 즉 기성정당들이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고 나아가 상황을 통제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표인 것이다.
지금 서유럽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유동적 선거 결과를 보이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선거 유동성이 통상적 정치 패턴의 종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일시적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 이는 부차적인 논의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수준에서 변화가 나타났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현상이 공존한다. 일반화된 이데올로기적 경향(정체성)과 일반화된 정치적 배열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서유럽 정당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역사적으로 정립된 다양한 정체성과는 차이가 있다. 가령 정당 정체성이 특이하다고 평가받는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분리주의나 종교관련 정책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산업사회 이전 시대의 균열구조에서 탄생했던 서유럽의 정당들은 초기의 쟁점이 일정 정도 해결되면서 정당의 역할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수립했다. 이제 정책 경쟁의 중심은 경제 정책이다. 흔히 정부의 경제 규제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정당들의 좌우 대립은 정책 경쟁 패턴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독일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 사이의 대립과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의 대립은 분명히 태생적 차이가 있으나, 두 나라의 유권자들에게 제시되는 정책 경쟁은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좌우 기준의 흡입력이 ‘신정치’라 불렸던 생태주의나 여성권 등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집합적 선거 결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령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선거 결과 추이를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좌파블록(노동당, 공산당, 평화사회당, DS70)에 대한 전반적 지지는 오랫동안 놀랄만한 안정성을 나타내는데 반해 블록 내부에서는 상당한 유동성을 보인다.
선거 유동성이 ‘이데올로기의 위기’, ‘계급의 위기’와 무관한 ‘정당의 위기’라는 것이 이러한 현상에서 도출되는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리더십 요인, 구체적 정책 요인, 조직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치는데, 메이어는 이 중 조직 요인에 초점을 맞춘다. 조직 요인에 있어서 위기의 원인은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조직적 연결고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당의 변화 단계와 카르텔 정당의 등장

정당의 조직적 연계가 약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이어는 대중정당 모델을 정당의 표준으로 설정하고,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당을 분류, 이해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신 그는 대중정당을 계속되는 과정 속의 하나의 단계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당과 국가 간의 공생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는 경향을 파악하면서 그는 이것을 카르텔정당이라는 새로운 정당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메이어는 정당의 진화과정을 4단계로 요약한다. 이 과정에서 키르크하이머의 포괄정당론, 파네비앙코의 선거전문가 정당론의 논의를 수용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카르텔 정당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단계는 간부정당이다. 간부정당이란 19세기 후반, 선거권이 제한되어 있을 때 분화되지 않은 국가와 시민사회에 모두 발을 걸친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 지역 안의 자본가, 소자본가들을 조직해 의회 내에서 이익을 추구했으므로 특별한 조직적 편제 없이 개인적 연결망을 통해 소통했다.
두 번째 단계는 대중정당이다.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거대해진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분화가 생겨난다. 대중정당은 이렇게 분리된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교가 된다. 또한 노동자와 같이 참정권이 없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발언권을 얻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조직적 당원제도와 정형화된 구조와 모임을 가지고 등장해서 결국 국가 지배구조를 점령했다. 대중정당은 지지자와 당원의 수에 의존하고, 또 개인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당원에게서 소액의 당비를 받는다. 대중정당의 정치적 기반은 정부가 아니라 원외정당이라 불리게 되는 외부 조직에 있었으므로 정치적 의제에 대한 강한 행동력은 간부정당보다 더욱 강한 결속력과 규율을 따르게 되었다. 정당은 자신이 대표하는 사회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표출하는 공론장이 되었다. 규율은 실질적, 경험적 특징일 뿐 아니라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
대중정당은 기존 간부정당을 위협했다. 대중정당 모델이 보편화되면서 간부정당이 대표할 수 있는 남겨진 사회 구성원은 농민, 기업가 등 명백히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원외 조직이 주도권을 갖는 것은 이미 정부 내 기반을 잡은 세력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개인 기부액, 정부 재산을 취할 수 있어서 재정적 의존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유권자를 동원할 필요는 있으므로 형식적으로 대중정당과 비슷한 조직을 만드는 경향을 보였다. 대중조직의 매개체로서의 원내정당의 역할이 강조되기보다는 원내정당의 지지자로서의 대중조직의 역할이 강조됐다. 이처럼 우파 정당이 새로운 ‘포괄’ 모델을 적용하는 동시에 좌파 역시 대중정당의 성공으로 인해 오히려 대중정당의 기반을 잠식당하게 된다. 복지의 확대와 같은 내부 단결의 매개였던 정책 목표가 실현되면서 단결의 필요성이 오히려 약화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자들은 정부 안에서 과거의 적들과 타협하는 한편, 계속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포괄적으로 지지기반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정당들은 20세기 중반부터 포괄정당이라는 세 번째 형태로 수렴하였다.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약해진 정당은 국가의 브로커 같은 존재, 정부기관 내의 정치국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당원의 사회적 동질성을 강조하고 한정된 지지자를 동원, 유지하는 전략 대신 개별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원으로 받아들인다. 정당 간 이념적, 정책적 구분은 모호해진다.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핵심 지지자를 주된 표적으로 의사소통하던 과거와 달리 전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선거전에서의 즉각적 승리를 노리는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여기서 메이어는 중재자로서의 정당 모델을 통해서 정당이 시민사회나 국가의 이익이 아닌, 정당 자신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익을 위해 유권자를 모으는 것 뿐 아니라 국가를 조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조종할 수 있는 정당들은 국가 재정원조를 준비하고 제도화했다. 국고보조금은 1970년대 이후 큰 폭으로 늘었다. 국고보조금은 정당 활동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를 나타낸다. 이제 정당은 준국가기관이 되었다. 이러한 전략의 위험은 선거에서 패배해 국가에서 배제될 경우 과거와 달리 자원마저 사라져 정당의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 조건은 모든 정당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이다. 선거 승자와 패자 간의 물질적 격차가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정당이 국가 기구 안에 일정부분 들어와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경우 재야 정당 역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카르텔 정당으로의 변화는 국가 별로 균질적이지 않다. 정당 간 협조의 전통과 정당에 대한 정부 지원이 풍부하고, 공직 임용에 대한 정당의 특권이 있는 선진국에서 잘 나타난다.
선거 경쟁의 양상도 변해간다. 개인적 접촉에 의지하던 간부정당에서 선거 운동은 큰 필요가 없었으나 대중정당은 노동집약적 구조로 당비와 기부를 통해 독자적 의사소통 채널을 개발했다. 포괄정당은 비당파적 의사소통 연결망에 접속하기 위해 자본집약적으로 경쟁하면서 선전 담당자와 매체 전문가를 고용한다. 선거전문가 정당화 되는 것이다. 카르텔 정당은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화되어 국가의 보조금과 각종 특권에 크게 의지하게 되었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사례를 보면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는 원내정당 직원이 중앙당 직원 수에 비해 3~4배의 증가 속도를 보인다. 중앙당 역시 공공 장려금을 제도화하거나 직원들을 임시적으로라도 관료로 채용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자원에 의해 성장했다.


카르텔 정당에 대한 도전

메이어는 카르텔 정당이 엘리트주의적 자유주의나 변화되는 민주주의 모델과 조응하는 측면을 밝힌다. 민주주의란 대중의 개입이 아니라 대중의 기호를 엘리트들이 조율해 가는 것이 되고, 정당은 전문가의 연합이 된다. 민주주의는 사회 변화보다 사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되며, 시민사회가 국가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변한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인 1990년대, 정당의 쇠퇴 현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참여적이고 자주관리적인 민주주의로 향하는 긍정적 변화로 간주했던 입장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 기구로서 정당의 역할은 축소되었으나 국가기구, 공직자로서 정당의 기능은 강화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우선 정당 쇠퇴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에 대한 환멸, 둘째, 정당과 일체감을 느끼는 투표자 비율의 감소, 셋째, 유럽 정당의 상대적인 당원 감소. 이러한 대표 기구로서 정당의 쇠퇴는 목적을 가진 행위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약화시켰다. 메이어는 1983년부터 10년간 유럽의 주요 좌파 정당과 중도우파 정당의 이념 격차가 줄었다는 연구결과와 무차별 야합 양상이 심해졌다는 각국의 정당 연구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쇠퇴는 국가기구로서의 기능은 쇠퇴하지 않은 부분적 위기이다. 혹은 역설적 위기, 정당의 새로운 독자적 적응 방법을 만들고 성장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가 국가기구로서의 정당 기능의 강화, 즉 카르텔 정당이다.
그러나 카르텔 정당이 정당 간 경쟁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경쟁이 최소화될수록 유권자들의 불만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이것은 앞서 말한 대표 기구로서의 쇠퇴를 확대시키는 순환을 만든다.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은 카르텔의 테두리 밖에서 도전이 일어나는 여건을 형성하게 된다. 신생 정당은 기존 정치의 틀을 깨자는 주장을 바탕으로 지지를 호소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신생 정당은 기존 체계에 편입되거나 이것이 좌절될 경우 더욱 급진적 불만세력을 만들게 된다. 메이어는 특히 카르텔 정당이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웨덴의 신민주주의당처럼 서유럽에서 금기시되는 비민주적 가치와 외국인 혐오사상을 가지는 극우정당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또한 카르텔 정당의 모습은 프랑스 구체제에서 귀족 계급을 몰락시킨 대중과의 무관계성과 공공적 특권 간 불균형의 맹아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카르텔 정당론의 한계와 의의

2011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9%로 경찰과 함께 최하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불신하던 18대 국회를 구성했던 기성정당들은 다시 원내정당이 된 반면 신생정당들은 대다수 정당지지율 2%를 넘지 못하고 정당법에 따라 해산했다. 피터 메이어의 카르텔 정당론은 대중의 정당,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기성 정당의 지속의 공존이라는 역설적 현상을 정당 조직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국의 정당은 독일 사민당처럼 대중정당적 기반으로부터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카르텔 정당이라는 개념이 분석틀로 사용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정당들이 카르텔 정당과 유사한 외형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1965년 정치자금법이 제정되면서 국회의원 비율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이 정당에 간접적으로 제공되었고, 1980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에는 국고보조금이 정당에 직접 지급되었다. 한국의 정당들은 국가에 의존적인 형태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카르텔 정당론을 비롯해서 포괄정당론이나 선거전문가 정당론 등 서구에서 정형화된 유형으로 한국 정당 정치를 곧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타나는 정치 불신 및 정당 위기 현상은 이에 선행하는 서구의 정당정치 위기에 관한 연구를 돌아보게 만든다. 피터 메이어의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결코 작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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