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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1-12.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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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복지 정책 분석

김태훈 | 정책위원
지난 10월 24일 새누리당 김무성 선거총괄대책본부장은 안철수 후보의 복지정책에 대해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사회를 주창하면서 쓴 슬로건”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복지는 성장의 반대말이고 진보의 동의어처럼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이슈가 되면서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복지에 대한 입장으로 나눠지는 듯 했다.
그러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라는 지금의 대선 후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박근혜의 ‘좌클릭’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박근혜는 허구적인 가짜 복지고 야권 후보가 진짜 보편 복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복지국가 운동이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보수에서 중도로 바꿨다는 평가도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복지 그 자체의 성격이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유력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인 사회투자국가를 모델로 하고 있어서 현재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대통령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여야의 후보들의 공약이 비슷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각 대선 후보의 복지 공약을 살펴보고 이들의 공약이 사실상 수렴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하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과 재정건전성이라는 제약이 복지 정책을 사회투자국가론으로 수렴시키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음을 살펴본다. 끝으로 대선 이후를 전망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과 생존에 관한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민중운동의 과제는 무엇일지 검토한다.


주요 후보 복지 공약 평가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국가

박근혜 후보가 발표한 복지공약은 ‘한국형 복지체계의 구축’이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010년 12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 법률안」 공청회를 주최하여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플랜을 제시했고, 이는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공약이 되었다.
한국형 복지국가의 핵심적 키워드는 생활보장이다. 서구의 실패한 모델인 소득보장 국가가 노인세대 중심, 빈곤층 중심, 현금이전 중심, 시장대체형 국가역할을 중심으로 한다면, 한국형 생활보장 복지국가의 원칙은 생애주기별 균형, 전 국민 대상의 수혜 균형, 현금이전과 사회서비스의 균형, 공사역할 분담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균형이라는 수사가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실은 인적자본 중심의 사회투자전략, 노동연계복지, 민간이 공급하는 사회서비스의 확대가 강조되고 있다. 이는 한국형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위기 속에서 변형되어 온 유럽의 복지국가 구상 일부를 수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표 1] 한국형 복지국가 (박근혜 후보)

한국형 복지국가는 첫째, 경제 친화적 복지와 인적자본 투자를 강조한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으로 잘 알려진 생애주기별 복지는 유럽 복지국가의 연금보험과 같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소득보장 복지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이로부터 소득보장 복지가 추구한 ‘결과적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담보하기 위한 인적자본 투자를 강조하게 된다. 이는 보육과 교육이 집중되는 아동기와 직업훈련과 재교육을 필요로 하는 청장년기의 복지욕구를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한국형 복지국가는 비용의 최소화를 통한 지속가능성, 재원조달 가능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보장은 축소하고 자활지원을 통한 노동시장 참여 확대에 집중한다. 복지 공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때, 획기적으로 도입되는 제도가 부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셋째, 한국형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를 우선시하고, 서비스 제공자로서 시장의 역할을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 이는 재정 확대 없이 인적자본 투자를 하기 위함이다.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에서 국가의 역할은 사회서비스 공급의 규제자이자 조정자에 국한되고 따라서 현재 민간 중심의 보육시설, 요양기관, 의료공급기관의 문제는 애초부터 국가의 책임과 무관한 것으로 다뤄진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민간 투자를 통한 복지전달체계를 촉진시키려 하고, 이 과정에서 저임금, 불안정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문제점, 특히 여성노동의 저평가와 일-가정 양립의 이중부담 문제는 간과된다.
나아가 한국형 복지국가는 다층적 사회보장 안전망 체계 원칙을 주장하며 연금보장 및 의료보장을 위한 보험시장 육성을 지향한다. 세계은행이 주장해 온 다층 안전망 개념은, 세대 간 재분배 기능을 가지는 사회보험으로 공적연금 및 공적의료보험 부문과 사적연금 및 사적의료보험 부문을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산층 이상의 욕구를 수용하고, 보험시장 활성화를 도모한다.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국가 플랜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복지에 대한 입장 변화로 이해되어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공약을 주장했던 박근혜가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은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의 요구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정된 정강정책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후보는 ‘시장과 효율성에 가치를 둔 국가발전이 국민의 행복과 연결되지 못했고, 국민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겠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의 ‘좌클릭’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한국형 복지국가와 이명박 정부의 5대 국정지표 중 하나인 ‘능동적 복지’는 총론적 차원에서 차이가 없다. 능동적 복지는 ‘평생 복지기반 마련’, ‘예방 맞춤 통합형 복지’, ‘시장기능을 통한 서민생활의 안정’ 등을 주요 구성요소로 하고 있는데 한국형 복지국가와 정확히 대응된다. 한국형 복지국가의 생애주기별 균형, 현금이전과 사회서비스의 균형 이라는 표현은 노년의 소득보장 뿐만 아니라 보육, 급식처럼 인적자본투자를 위한 현물서비스 복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예방 맞춤 통합형 복지’와 같은 의미이다. 전 국민 대상의 수혜 균형 역시 보편적 복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평생 복지기반 마련’과 유사하다. 공사역할 분담 역시 ‘시장기능을 통한 서민생활의 안정’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국형 복지국가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기회의 평등만 강조한다면 노년층의 문제는 저평가되어 노동자들의 노후에 대한 대책은 부차화 될 것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상황이지만 연금 정책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기초노령연금의 잔여적 성격만 강화하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또한 요양시설, 어린이집, 병원과 같은 복지를 제공하는 기관의 사적 소유를 확대하는 정책은 결국 복지 영역마저 자본의 투자처로 만들어 주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도 난립해 있는 민간 복지 기관들은 복지의 질을 나쁘게 하고, 비효율적인 비용을 유발하며,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국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의 창조형 복지국가

민주통합당 보편적 복지위원회는 지난 2012년 2월 ‘보편적 복지구상과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민주통합당은 ‘21세기 변화된 상황과 한국의 실정을 반영한 한국 고유의 창조형 복지국가’를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창조형 복지국가의 정책과제로는, 2010년 ‘뉴 민주당 플랜’에서부터 제시되었던 ‘보편적 복지 3+1 정책’(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반값등록금)에 일자리 복지와 주거복지를 추가한 ‘3+3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공약을 일컬어 ‘탄탄한 보편적 복지망을 갖춰 경제주체들의 혁신과 창의를 촉진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구상이라고 소개한다.

[표 2] 민주당의 창조형 복지국가 (문재인 후보)

선관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적 복지 강화로 무상보육 실시, 아동수당 도입, 고교의무교육 및 무상급식, 연간 의료비 100만 원 본인부담상한제, 관련 국공립 시설 확충. 둘째, 돌보는 복지 강화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등 어르신 복지 강화, 장애인연금 인상 등 장애인 복지 강화, 방과 후 돌봄체계 구축 등 아동청소년 복지 강화, 다문화 복지 강화. 셋째, 민생복지 강화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반값 등록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주거복지 확충. 넷째, 성평등 복지 강화로 양질의 여성일자리 창출 및 일생활 균형 지원 강화 등. 그리고 복지 강화에 소요될 재원조달 방안으로 재정개혁, 복지개혁, 조세개혁이라는 3대 개혁을 제시한다. 그 실 내용은 재정 지출 효율화, 부자감세 철회와 같은 세금제도 정상화 등이다.
창조형 복지국가 구상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로 대표되는 보편복지를 확대할 계획을 제시하고, 보육과 의료부문과 같은 복지전달체계에서 공적 공급의 확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박근혜의 한국형 복지국가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강한 복지국가’라는 슬로건을 선거운동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창조형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투자와 균형재정이라는 원리에 입각해 현물중심의 복지제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국형 복지국가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 창조형 복지국가의 지향과 목적은 사실 한국형 복지국가와 매우 유사하다. 두 모델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에 초점을 두고 핵심투자 분야로 보육, 교육, 고용, 주거, 보건을 지정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의 복지모델이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국가론과 민주통합당의 복지 모델을 차용했고, 민주통합당 역시 ‘무상복지 3+1’을 주장하다가 새누리당의 복지모델이 고용과 주거까지 포괄하자 ‘보편적복지 3+3’으로 공약을 바꾼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보편적 복지 3+3’의 구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창조형 복지국가 역시 현물 서비스 중심의 복지 확충을 강조한다. 창조형 복지국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정 및 강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해소와 급여의 실질적 인상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 낮춰버린 국민연금 급여수준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강조하는 창조형 복지국가론은 예상 재원의 규모와 재원 마련 방식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민주당은 이러한 논쟁에 대응하여 상세한 재정 추계와 재원 마련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이나 의료의 경우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와 보육종사자 처우 개선,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재정 추계는 되어 있지 않다. 이는 공약의 실현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또한 재원마련방안에 있어서 현재의 재정 지출을 일정 수준 절감하겠다는 계획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구체적인 절감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또한 창조형 복지국가론은 ‘부자감세’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조세에 대한 입장과 원칙을 밝히는 것을 회피한다. 전국 71개 상공회의소 회장들이 “14만 기업의 뜻을 담았다”며 증세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처럼, 증세에 반대하는 자본의 눈치를 보는 민주통합당은 조세개혁과 같은 우회적 표현을 재원마련 방안으로 제시하고 부유세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재정이 계급역관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이 자본의 반대에 맞서 소득재분배를 위한 재정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실력과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철수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안철수 현상’을 일으키며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복지, 정의, 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미래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안철수는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아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의미에서 복지사회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안철수의 공약을 살펴보면, 보육, 주거, 건강, 노후 걱정 없는 공동체 구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시한다. 첫째, 노인형 일자리 확충, 기초노령연금 평균소득 10% 수준으로 인상,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 둘째,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아동수당제 도입, 보육종사자 처우 개선. 셋째, 의료 민영화 반대, 저비용 저급여 의료보험체계의 적정부담 적정급여 체계로의 개선, 생애주기별 건강관리시스템 도입. 넷째, 공공임대와 민간임대 확대를 통한 주거문제의 해결.
이와 같은 안철수의 공약은 문재인의 공약과 차이가 거의 없다. 따라서 문제점과 한계를 따로 지적할 필요도 없다. 안철수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정책의 차별성보다는 기성 정당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과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보편적 증세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 차이점이었으나 이마저도 최근에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캠프에서 혁신경제포럼을 총괄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교수가 “내년 국내외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고려해 증세만이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증세 카드를 꺼내기 전에 조세 및 재정개혁을 통한 재원 확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캠프 내 원칙으로 정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부 예산의 자연 증가분을 우선 사용하고, 불필요한 사업에 대한 예산 축소를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복지 공약의 수렴과 그 배경

사회투자국가론으로 수렴되는 각 공약

여야후보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정치적 쟁점을 만들고 차이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세 후보의 공약을 검토한 결과, 각자 강조점의 차이는 있으나 취약계층의 특수한 욕구에 대응하는 선별적 공공부조 프로그램과 기본적 욕구에 대응하는 보편주의 프로그램이 보완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주의를 강조하는 민주당 역시 자신의 공약에 대해 ‘선택적 보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세 후보의 공약은 사실상 수렴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인적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득보장보다 현물급여의 보장을 강조하며, 재정건전성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세 후보들의 복지공약은 그 유사성으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붕어빵 공약’이라는 비판마저 듣고 있다. 제시하는 복지 공약에 비해 재원 마련 방안은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말잔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복지국가 모델은 모두 사회투자국가론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재정건전성을 우선시하고 복지국가의 기초인 소득보장에 대한 개혁을 도외시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잔여적 유형에 머물고 있는 한국 복지국가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약이 보편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득보장의 필요성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것을 들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별 근거가 없다. 이들 공약의 이론적 기반이 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사회투자담론의 또 다른 판본인 사회투자전략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과세와 지출 대신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소득보장을 선별적으로 제공하면서 복지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정의한 반면, 사회투자전략론은 사회권과 같은 전통적 복지의 개념은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복지지출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모델은 모두 신자유주의적 통화정책과 균형재정, 노동신축화를 수용하면서 그로 인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선별적이거나 보편적인 복지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체적 복지 프로그램 내용면에서도 배치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실천적으로는 더욱 차이가 없다. 영국과 북유럽의 차이처럼 집권정당에 따라 보장범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세 후보의 복지국가 구상은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주요 후보 복지공약의 수렴

수렴 현상의 배경

이렇게 유력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수렴되어온 배경을 살펴보면서 대선 이후를 전망해 볼 수 있다. 공약 수렴의 정치공학적 배경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지자체선거 패배 이후 집권여당의 복지정책 기조 변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면서 이러한 기조가 대선으로도 이어졌다. 한편 민주통합당의 경우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우경화하고 총선 이후 분열되면서 기존의 야권연합 프레임으로 기능하던 복지국가담론의 필요성이 감소된 측면이 있다. ‘선한 이명박’과 ‘능력있는 노무현’의 절충점으로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이러한 중도 수렴 현상의 정점에 있다.
그럼 이제 이러한 수렴 현상이 나타난 구조적 배경을 살펴보자. 2007년 이래 미국, 유럽을 진원지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이미 1997년 위기 이후 만성적인 불황 상태에 있던 한국경제의 불안전성은 더 커져가고 있고, 신자유주의 하 노동자 민중의 빈곤과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노인빈곤율, 자살률,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OECD국가 중 1위, 특히 여성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42.7%로 OECD 조사 국가들 중 가장 높으며 평균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라는 똑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여야가 경쟁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747 선진화’ 공약처럼 성장이라는 비전만으로는 더 이상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 후보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상황에서, 이들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복지 정책도 경제위기와 재정건전성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 적자재정은 국가의 재정적 역량을 침식했고, 정부의 적극적 지출정책이 경제회복이나 성장을 낳으며 그 효과는 정확히 측정, 관리될 수 있다는 관념이 기각되었다. 신자유주의 재정정책 하에서 균형재정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자율 하락에 기여하고, 낮은 이자율은 주식시장을 상승시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념이 이를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재정위기라는 형태로 경제위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 근저에는 국채 발행 등 국가 재원 조달에 있어서 과거의 차관 방식과 달리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의존이 커졌고, 따라서 국가신용등급의 안정적 유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는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올해 말부터 예금보험공사(예보) 등 민간관리기금 20개와 근로복지공단 등 비영리 공공기관 145개의 부채를 국가부채에 합쳐 ‘일반정부부채’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게 되면 국가부채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을 공기업의 부담으로 넘기고,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공기업의 부채를 눈덩이처럼 늘려왔다.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2010년 165.1%에서 2011년 196.9%로 급증하고, 올해는 부실기업으로 분류되는 부채비율인 200%를 초과했다. 향후 공기업의 부채가 정부부채로 합산되어 추계될 경우 높은 부채비율 문제가 불거지며 공기업 민영화, 복지 축소가 거론될 것이 분명하다.
케인즈주의 시기 완전고용과 성장의 선순환을 통해 경제정책과 통합되어 있던 사회정책은 분절화된 형태로 경제정책에 종속되었다. 사회정책은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기 위해 더 신축적인 형태로 변형되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렇게 변형된 사회정책을 정당화하는 담론이다. 박근혜의 공약인 ‘생애주기별 복지’가 그러한 사회정책의 변형을 잘 표현한다. 박근혜의 생애주기별 복지는 이러한 신축적 변형의 전형적 형태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가족임금의 해체는 노동자들의 생애 전 주기에 걸쳐서 새로운 사회적 위협을 생산한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낙오자들을 선별하여 부족한 점을 보육, 교육, 주거, 건강 정책들을 통해 분절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는 복지에 대한 민중의 요구를 더 강화시켰다. 그러나 세 후보가 말하는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보완하는 사회정책인 사회투자국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박근혜가 이명박 정부와 다른 복지정책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또한 야권연대를 통해 복지국가를 실현시키는 것이 노동자민중의 요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빈곤과 불평등에 맞선 민중운동의 과제

한국은 선진 복지국가 시대에 돌입했다는 농담이 돈다. 모든 유력 후보가 복지국가를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사회투자국가론을 기반으로 한 복지정책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인 조건은 복지 정책 실현에 일정한 제약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보편복지를 위해서는 ‘좋은 균형재정’을 요구하는 ‘증세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여야 후보 모두 부자증세, 조세감면 철회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인 설계 없이 원론만 반복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재원마련방안과 지출방안을 설계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증세를 요구하는 대중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특정 시민들을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요구의 주체로 만들어야 된다는 주장에는 구체적인 복지를 요구하는 계층과 계급들이 연대할 수 있는 전략과 계획이 빠져있다. 이러한 논의는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통해 주체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과정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일례로, 자발적 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처럼 복지동맹론은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연합을 압박하는 데 동원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운동 일부가 주체적 역량 강화보다 야권연합과 정권교체에 매몰되는 경향을 만들기도 했다.
가족 부양의 부담과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빈곤과 실업으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기도 하는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의 권리와 생존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에 맞선 민중의 요구는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복지국가 정책으로 수렴될 수 없다.
기초생활보장, 국민연금, 보건의료체계 등에 대한 민중의 요구와 공동행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기초수급 탈락통보를 받은 거제 70대 할머니의 음독자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차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새로마지 2015플랜)’에서도 사적연금 활성화만 강조할 뿐, 국민연금의 강화를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 또한 영리병원 추진의 시초가 될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 모든 대선 후보가 복지국가를 말하면서도 현 정부의 역행을 그 누구도 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존권과 노동권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를 가지고 투쟁의 주체를 형성해가야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등은 지난 8월 21일부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투쟁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등이 참여하는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국민연금의 급여지급 확대와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인천지역운동 조직은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안을 폐기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철도, 공항, 전기 등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투쟁, 사회서비스 시장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이 확대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생존권과 노동권의 확대를 위한 노동자 민중운동의 주체적 역량도 강화될 것이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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