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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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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리고 제2의 경제위기설

김성구 | 정책위원장, 한신대 경제학부 교수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결코 새로운 위기가 아니다. 이 위기는 제국주의에 종속적인 자본주의발전의 길을 걸어온 국가들의 보편적 위기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1980년대 제3세계 자본주의국가들의 대외채무누적과 외채위기 그리고 대외적 파산을 가져온 종속적 발전 메커니즘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자본주의도 이미 1975년, 1980년 심각한 외채위기, 외환부족사태를 겪은 바 있다. 물론 1980년대의 외채위기와 달리 1990년대 외환위기로 축적의 위기가 표출된 것에는 새로운 조건, 변화가 개재되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1980년대이래 세계적인 구조불황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그에 따른 대외개방, 자유화의 급진전, 투기적 금융자본의 세계적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위기로서 외환위기

한국자본주의의 대외종속적 발전은 제국주의 자본의 수입에 의존하여 한편에서 제국주의 국제분업에의 편입과 적응, 다른 한편에서 대외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동원체계의 구축을 통해 가능하였다. 세계시장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열악한 경쟁력조건에서 이 발전모델이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국제분업의 재편,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열악한 경쟁력조건을 만회하기 위해서 노동력의 초과착취와 중소기업이나 농업, 자영업 등 비독점부문의 수탈, 정부의 강력한 재벌지원 정책(금융, 세제, 산업, 통상정책 등) 그리고 이를 위한 파시즘적 억압체제가 필요하였다. 그럼에도 이 발전모델은 자본과 생산력의 대외종속에서 비롯되는 대외부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만성적인 국제수지의 적자와 대외채무의 누적 그리고 외채, 외환의 위기는 그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국가동원적 종속적 발전 메커니즘의 위기 위에 독점재벌의 축적위기가 중첩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양자의 종합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나아가 김영삼정부에 의해 추진된 세계화와 개방화정책의 직접적 효과, 즉 대외위기 관리 수단의 상실 위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따라서 과잉자본에 대해서는, (독점)자본주의 일반만이 아니라 대외지향적 자본축적에서 비롯되는 위기와 관련하여 그 특수성을 파악해야 한다. 즉 과잉자본과 과잉생산은 이윤율 저하의 표현인데, 여기서 이윤율 저하는 수출주력상품의 세계적인 과잉생산과 수익률 하락에서 크게 기인했다. 그 위기는 결코 주기적 위기가 아닌 구조위기였고, 종속적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걸어온 국가의 특수한 구조위기였다. 그 위기가 주기적 공황이나 구조불황의 형태가 아니라 외환위기의 형태를 취한 것은 다름아닌 이런 성격의 표현이다.


IMF 프로그램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IMF와 김대중정부는 관치경제(우리의 개념으로 번역하면, 대외종속적-독점재벌적 축적 메커니즘을 유지해 왔던 국가의 경제개입)에서 위기의 근원을 찾았다. 하기에 국가 개입을 배제하고 재벌지배체제를 개혁하여 시장질서를 확립한다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기극복책으로 제출하고 실행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곧 국가동원적 발전모델을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로 대체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었고 대내외적인 자유화와 개방화를 통해 실로 국가동원적 개입체계를 점차 해체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외종속적-독점재벌적 축적 메커니즘은 오히려 강화하였다.

즉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이 정책을 통해 한국자본주의는 지금까지의 대외종속적 발전메커니즘을 해체하고 선진자본주의로의 도약을 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부자본(차관) 중심의 종속적 발전으로부터 외국자본의 직접투자에 의해 지배되는 남미형 종속모델로 전환하여 대외종속은 심화되었다. 더욱이 투기적 금융자본의 무제한적 운동 하에서 이루어진 이 전환은 극도의 불안정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차관의존적-독점재벌적 국가동원형 발전모델은 외환위기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직접투자의존적-독점재벌적 신자유주의 발전모델로 전환하였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발전모델에서 국가는 무역과 외환, 자본의 자유화조처와 함께 이에 대한 개입수단도 상실하였고 금융기관의 해외매각으로 금융지원수단도 상당히 상실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재정수단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가동원적 개입체계는 크게 훼손되었더라도, 국가개입 자체가 완전히 해체된 것은 아니며 또 아무리 시장주의 정책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해체될 수도 없는 것이다. 한국 재벌을 위한 국가동원적 개입체계의 훼손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시장원리 및 시장규율의 강화를 통한 노동자착취의 자유 증대에 의해 일정하게 보상되었다. 그것은 외국자본의 지배확장과 착취도 증대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 정책에 대한 외국자본과 국내 재벌간의 공통적 이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독점재벌은 한편에서 금융지원 등 국가의 지원체계의 일정한 해체, 대외개방의 강화에 따른 외국자본과의 경쟁 위협의 증대라는 부정적 측면과, 다른 한편에서 사적 지배영역의 확대와 노동자착취의 자유 증대 그리고 세계시장 확대의 기회라는 긍정적 측면이 교차함으로써 그 대차대조표는 불안정하거나 또는 위험스런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위기의 심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도 아니었고, 외환위기의 근저에 있던 부실과잉자본을 청산할 수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정책은 모순적이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정책이었다.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던 대외종속적 축적메커니즘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기에, 국제수지의 위기와 새로운 외환위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수지의 대규모 흑자는 기본적으로 수출경쟁력의 증대가 아니다. 이는 한편으로 환율 급등과 경제성장의 희생에 따른 대규모 수입축소, 다른 한편에서 대외개방에 따른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달성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회복과 함께 국제수지의 적자로의 전환과 외국자본의 동요 속에서 새로운 외환위기가 전개될 것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의 회복과 또 한번의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외환위기의 근저에 있던 부실과잉자본을 청산하고 이윤율조건을 개선해서 새로운 축적조건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모든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제는 재벌지배체제를 개혁하고 시장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 위에서 부실과잉자본을 청산하고 생존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조정은 시장경제의 경쟁질서를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독점부문을 희생하면서 독점화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독점화를 촉진하는 불황기의 구조조정은 오늘날 국가의 개입 없이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시장주의 정책이라는 선전과는 달리, 국가의 개입 하에 과잉부실자본의 청산비용을 노동자계급과 대중에게 전가시키고 그들의 희생 위에서 독점재벌과 외국자본의 축적조건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고도로 발전한 독점자본주의단계에서, 과잉자본의 청산은 고전적 공황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장의 자발적인 힘에 위임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것이다. 하기에 국가를 통한 청산비용의 사회화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리해고와 임단협의 악화를 통해 노동자착취의 정도를 현저하게 제고하여 이윤율 조건을 개선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독점재벌과 자산계급에게 부실과잉자본 청산의 부담을 면제해주고 그 부담을 국가와 대중에게 전가시킴으로써 과잉자본의 근본적 청산에는 실패하였다. 기업과 금융의 부실은 국가의 부실로 전가되었을 뿐이었으며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의 규모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개선되지 못했다.

그 결과 새로운 축적조건은 창출될 수 없었다. 이러한 언급이, 독점재벌과 자산계급에게 부실과잉자본의 청산 부담을 강제했다면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이 성공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조조정은 이미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이 아니기 때문이며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는 실현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점재벌과 금융기관 수익률의 일정한 개선은 분명 경제회복의 하나의 토대였겠지만,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고도성장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지속적으로 제2의 외환위기설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과잉자본의 미청산과 그에 따른 기업 및 금융부문 위기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따라서 현재 위기의 지속과 심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직접적인 효과로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장주의 방식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국가개입으로도 과잉자본을 청산할 수 없다는 딜레마. 급진적인 시장주의 방식으로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을 대거 퇴출시킬 수도 없고(또 설령 퇴출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퇴출을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부실기업과 금융기관들에 대해 공적자금을 끊임없이 투입할 수도 없다는 이 딜레마야말로, 위기극복을 위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적 대안을 넘어가는 진보적 대안의 불가피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수적 저항이나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적 저항 때문에 DJ 개혁정책이 강도높게 관철되지 못한 결과라고 왜곡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층 강화를 선전하는 것은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실현하기도 어려운 이데올로기 선전일 뿐이다. 실제로 이런 선전과 선동은 다만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강도높은 시장주의 구조조정을 관철하기 위한 일종의 획책에 다름 아니다.


진보적 대안은 독점금융자본의 사회화

외환위기와 대외종속적-독점재벌적 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가오는 새로운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종속적 축적 메커니즘을 해체하고 과잉부실자본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국가동원적 종속적 발전모델을 민주적이고 자립적인 발전모델로 전환시켜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진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자산계급 부담 하에서의 과잉부실자본 청산과 금융독점자본의 사회화,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그리고 국내시장 중심의 자립적인 재생산연관의 창출, 이것만이 진정한 진보적 대안이다. 이런 정책전환은 곧 국가권력의 전화를 포괄하는 것이고 정책전환을 위한 투쟁은 반제국주의적-반독점적 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위한 정치투쟁과 결합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화대안은 자본주의를 넘어가는 반자본주의적, 이행기적 대안이며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이 대안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정치적, 강령적 요구로서 제출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개별 기업과 산업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조합주의 운동을 넘어, 계급전체의 요구를 대변할 정도로 성장한 단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현 시기 한국에서 이 대안이 논쟁적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노동운동이 그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회화대안을 비현실적인 급진적 대안이라는 우파적 비판도, 이 대안이 개량주의적인 사민주의 대안이라는 좌파적인 비판도 결국은 조합주의운동의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는 현실 노동운동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실의 결과는 불행하게도 사회화와 사회개혁에 대한 개량주의 투쟁으로 경사되는 우파적 흐름과 이를 거부하고 생존권투쟁에 전념하는 좌파적 흐름의 대립이었다. 이 대립은 민주노조운동역사 속에서의 경험과 실천에 기반하였던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경험과 운동지형, 논쟁구도가 거꾸로 사회화대안에 대한 논쟁을 크게 왜곡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화 대안의 현실화과정은 노동자계급운동의 높은 발전단계와 낮은 발전단계 또는 변혁기와 퇴조기를 기계적으로 단절하여 이분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화대안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정치적 요구로 발전하는 과정은 변증법적 과정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경제적 이해를 위한 투쟁과 이행요구를 위한 정치투쟁간의 변증법에서 발전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만 노동자운동은 보다 높은 단계로 고양되고 발전될 수 있다. 물론 변혁기와 퇴조기에 이 변증법은 불균등하게 발전하고 그만큼 정세인식의 중요성은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변혁기에는 이행투쟁, 퇴조기에는 직접적 요구투쟁이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번영기와 불황기를 기계적으로 단절하여 사고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불황기에는 특히 과잉자본의 처리를 위해 한편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생존권 공격이 격화되고 다른 한편에서 국가개입하의 자본주의적 사회화(워크아웃)가 실행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생존권투쟁과 사회화투쟁의 결합 및 사회화에 대한 요구투쟁이 고양될 조건이 창출된다.
여기서 사회화투쟁은 자본주의적 워크아웃의 계급적 내용을 진보적으로 변화시키자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될 수 있다. 즉 부실자본처리비용의 자산계급으로의 전가와 공적자금 최소화, 공기업화와 공기업의 사수, 정리해고의 저지와 계획적이고 점진적인 산업구조조정, 노동시간단축과 고용창출, 재정확장과 조세개혁, 공기업의 민중적 통제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진보적 대안의 현실성을 문제삼고 종속적 신자유주의 모델을, 그에 대한 불가피한 차선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모델은 결코 진보적 대안에 대한 차선의 대안일 수 없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모델은 국가동원적 종속적 발전모델과 비교해서 그래도 진보적인 대안이 아니라 두 개의 나쁜 발전모델이라고 해야 한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하나의 나쁜 모델로부터 또 하나의 나쁜 모델로의 전환일 뿐이다.
또 종속적 신자유주의 모델은 진정으로 진보적인 대안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중간단계를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모델은 오히려 진보적 대안으로 길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미형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해서 그러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경사되어 있는 독일형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형 신자유주의 모델이 영미형 신자유주의 모델에 비해 온건하고 민주적이라 할 지라도, 양자는 모두 신자유주의로서 공통의 특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종속적 신자유주의로서의 성격을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와 개혁을 둘러싼 현재 3개의 전선론, 즉 보수적인 재벌에 대항한 DJ 신자유주의(또는 독일 신자유주의)와 진보진영의 연대전선, DJ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보수 재벌파와 진보진영의 연대전선, 그리고 보수 재벌파와 신자유주의 양자에 대항하는 진보진영의 사회화전선 중 세 번째 전선만이 진보진영의 올바른 대응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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