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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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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지되는가?: 경제부문을 중심으로

패트릭 본드(Patridk Bond) |
-패트릭 본드(남아프리카공화국 Witvatersrand대학 교수)-

이미 시작되기도 전부터, 조지 부시의 통치기간이 이전에부터 미국을 지배해왔던 것처럼 짧고 야만적이며 폭력적이라 예견하는 것이 편파적이지는 않다. 플로리다에서(그의 동생 제프 부시가 도지사로 있는) 계획적인 투표조작을 통해 뻔뻔스럽게 선거를 도둑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라. 아니면, 2001년 1월 그가 발표한 섬뜩한 언급을 주목하라 ; 재무부장관으로는 혹평과 분노를 일으킨 경력이 있는 거대 기업인; 법무장관으로는(그 나라의 主검찰관으로서) 19세기 중반 인종차별적인 동맹분리운동의 지지자 ; 환경보호국의 수장으로서, 가장 오염이 심한 주(州)의 행정관료 ; 노동부장관으로서는 극우보수주의자 등등.

그렇지만 미 중앙은행장 앨런 그린스펀의 단기적인 임시원조를 제외하고는 - 일시적인 경기후퇴와 재발하는 월가의 공황을 억제하기 위한 저금리 형태의 원조 - 부시는 가혹한 경기침체를 역전시키거나 늦추거나, 심지어 버틸만한 위치에 서 있지는 못하다. 미국회사의 이윤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으며, 소비자와 회사의 채무수준은 유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치솟았고, 미국의 국제무역과 차용적자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이다. 미국 내에서, 그리고 이와 교류하는 세계경제에서 자본의 '과잉축적'이라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상품의 과잉생산과 현재의 구매력 수준(심지어 신용카드에 의해 그 수준이 높아진)이 주어지는 단계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수익율을 높이기 위하여 제조업분야의 생산보다는 금융투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경제퇴조는 일반적으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따라서 금융자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생산이 없는 이상, 그 체계는 항상 채무불이행과 파산의 상태가 되기 쉬운 것이다.

미국에 의해 발발한 1929∼33년 형태의 금융격변과 연이은 대공황이 임박해있는 것인가? 그러한 위기의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계자본주의의 지난 두 세기는, 1815∼48년, 1873∼96년, 1917∼48년 등 침체-투기-추락-퇴조-회복이라는 국제적인 사건에 의해 방점이 찍혀져 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의 세계적 성장국면에서 침체가 발생하였던 것을 포함하는 이런 순환은, 경제적인 정화와 부활하는 자본축적에 앞서, 금융혼란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그러한 순환을 '뒤틀린 평형상태를 잠깐 동안 복구하는, 현존 모순의 강력한 폭발이자 폭력적인 해결'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 볼 수 있었던, 작고 불연속적인 파산들은 회복을 위한 조건들을 복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과거 3번의 장기적인 순환은, 즉각적으로 성장을 다시 촉진시키는 금융 공황 - 1873, 1882, 1890, 1893 ; 1920, 1929, 1931 ; 1980∼90년대의 다양한 위기 - 에 의해 방해받았다. 무엇보다 대공황은 세계대전 때문에 종료되었다. 이 세계대전은 1945년 이후 축적의 또 다른 순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말라죽은 경제적 요인을 일소하고 생산·소비관계를 다시 구축하였다.

1998년의 와해를 불균등하게 경험했던 동아시아의 기록과 같이, 금융파산에 뒤이은 회복이 일어나는 곳에서, 공황은 순수하게 투자한 회사, 노동자,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재정적, 사회적, 생태적인 피해를 야기했다. 당대의 투기꾼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이 "두 방향으로 한 무리의 패션처럼 움직인다, 과잉투자는 항상 과잉팽창으로부터 시작하며 그 방향은 항상 고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금융자산의 1/3 혹은 그 이상을 폭발적으로 파괴하는 가장 최근의 과잉확장된 투기거품은, 미국 달러의 추락(1970년대), 금과 은 가치의 격동(1970-80년대), 미국 농가가치의 붕괴(1980년대), 에너지 기금 충격(1980년대 중반), 국제 주식(1987년)과 자산(1991-93) 시장의 추락, 일본 금융 거품의 폭발(1990), 그리고 뉴욕의 junk bonds(1990-92), 상품가격(석유를 제외한)과 이와 관련된 유가증권의 장기적인 하락(1973-2000), 그리고 2000-2001년 나스닥 첨단기술 주식시장의 붕괴 등을 포함하였다.

신흥시장은 1990년대 후반 금융공황의 놀랄만한 사례를 제공하였는데, 여기에는 멕시코(1995년 초반), 남부 아프리카(1996년 초반부터 1998년 중반), 동남아시아와 남한(1997-1998), 러시아(주기적이지만 특히 1998년 중반), 브라질과 에콰도르(1999), 그리고 터키와 아르헨티나(2000)를 포함된다.(2)
그러나 이 사례들은, 미국 제국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파괴적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과거 4 반세기동안, 혁신적인 위기관리를 위한 워싱턴기구 내에서 그러한 고조를 목격하였다. 워싱턴기구는 거만한 미국 소비기구가 국제경제체제에서 정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심지어 국제적 금융시장이 1990년대 후반동안 붕괴될 위협에 처해 있을 때조차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반화된 붕괴라는 성격을 갖는 국제적 경제순환의 최후 저점과는 반대로, 1970년대부터의 과잉축적이라는 동시대의 위기는 지리학적으로('세계화') 움직여 왔고 (금융투기를 경유하여) 지체되어 왔다. 한국의 민주노총 고영주 사무총장이 1999년 논문을 통해 이 문제들을 다룬 방법은 강한 흥미를 끈다;


엄청난 제국주의적·신자유주의적 공격과 경제위기의 격화는 하나의 존재에 대한 이중의 압박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자본의 과잉축적.
세계경제는 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자본은 이윤율을 상승시키고, 더욱 거대한 독점을 이끌기 위해 노력을 집중한다. 그리고 세계적 독점과 그들의 본산은 재생산과정에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이것은 '탈규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경험되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과잉생산에 의한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것은, 자본이 더 이상 생산이나 분배에 있어 투자할만한 효율적인 지역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로 인하여 자본은 투기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금융업무로 촉진된, 거대한 투기자본의 탄생은 그 체제를 '카지노 자본주의'로 변형시켰다.(3)


그러나, 카지노 자본주의의 출현은 강화의 표현이 아니라, 대신 체제의 뿌리깊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금융적·교역적 범위에서의 미국 영향력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부분적으로, 풍부한 금융활동은 투기시장에서, 그리고 금융자산에 지불되는 높은 이자율로부터 얻는 높은 수익률에 그 원인이 있다. 뉴욕의 상업기구가 이끌고 워싱턴의 소위 개발금융기구와 합작한, 사적자본가들이 중앙은행에 대한 정책을 지시할 정도로(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독립적인') 영향력을 가졌을 동안에 말이다.(4)

<표1> 미국 재정자산 수익:통화팽창 조정에 의한 장기이자율과, 주식·채권에서의 연간 평균수익률 1940-1990년대<출처 : Henwood, Wall Street, pp.324-27>
<table border="0"><tr><td><img src="journal/20010102/특집표1.jpg"></td></tr></table>

전세계적으로 하루 통화시장 영역에서 1.5조달러의 소규모 파편들이 교역 - 혹은 투자 - 관련 거래에 사용되어진다. 1998년에는 세계무역의 전체 규모 - 6.5조달러 -가 외환거래시장에서 단지 4.3일 정도 회전할 가치 정도로 투자되었다. 파생적인(다른 어음자산의 가격움직임에 기초한 수익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추가 일일교역은 1998년에 973억 달러였다. 반대로 중앙은행에서 가지고 있는 공적 외화보유고의 총액은 1.6조달러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기생적인 활동으로부터 누가 이익을 얻는가?

세계 금융시장의 국지적인 폭발성은, 국제중앙은행, 투자은행, 헤지펀드가 거품통화를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사리사욕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교역 중개를 통한 것만큼이나 가격변동을 통하여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금융분야에서의 승자들 대부분은 서양의 금융자본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워싱턴의 정책들은 그들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방향으로 계획된다.
그러한 금융적 과잉노출이 일어나는 원인 중 일부는, 미국과 특히 신흥시장에서 1980년 중반부터 세계적인 이윤율이 유래없이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회사들은 그들이 과잉축적된 생산영역에서 주식과 채권 같은 금융자산으로 이동하면서, 훨씬 높은 수준의 실제(통화팽창 조정)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다시 설명하자면, 제조업 분야의 이윤이 하락하면서, 미국 비금융회사의 자본 소비는 1990년대 5.3%로 회복하기 전에는 1950∼1960년대 GDP의 8.5%를 상회하던 것이 1970년대 7% 미만, 1980년대 4.7%로까지 떨어졌다. 즉, (투자총액의 비율로서) 미국 금융, 보험, 부동산에서의 급료를 포함한 이윤율이, 1950∼70년대 20∼30% 수익률에서 1980∼90년대에는 35∼45%까지 치솟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기업의 잉여금(세금포함의 수익률과 이자)에 대한 금리배당자의 몫은 1950년대 20∼30%에서, 1960∼70년대 30∼40%, 1980∼90년대 50∼60%까지 상승하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GDP에 대한 모든 형태의 미국신용시장 채무비율이 1950년대부터 130∼150% 범위에서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20년동안 250%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러한 신용거품은 통화가격(실제 이자율)에서 더 이상 버틸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었다.
무역투기장에서, 지정학적인 영향력은 또한 미국같은 강대국을 등진 기업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우월한 지위에서 교역 합의가 이루어지고, 워싱턴을 등에 업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약소국들은 관세장벽을 낮출 수밖에 없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의 금융적·상업적 순환을 통해, 평가절하는 공간적으로 이리저리 이동하고, 그 결과 자본의 전지구화를 동시적으로 달성하는 촉매작용을 한다. 또한 동시에, 자본축적은 일시적으로 다루어질 뿐, 생산공정을 재촉할 것을 서두른다. 그리고, 미래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교역상품이 오늘 구입되고 나중에 지불되는 신용체제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과잉축적이 지속되고 평가절하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자, 여성(재생산과정에서, 또한 노동자로서)과 그 주위환경이 극단적으로 착취된다. 이것은 북반구보다는 남반구에서 지역적 영향력의 차이에 기인하여 더욱 많이 발생된다. 지구상의 어떠한 구석도 면제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있어 본질적인 모순은 그 과정에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 그 모순들은 대신 움직이고 지체되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증폭된다.
고조되는 금융자본의 영향력과 폭발성의 현상을 추적하다 보면, 그것이 중대한 의미로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한, 위기 '관리'라는 동시대의 조정에 대해 이해하고 반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1970년대 중반부터의 국제금융체제의 폭발성은 자극적인 투자구조에 있어서 뿌리깊은 변화에서 유래된다(1960년대 후반부터의 제조업 이윤의 하락과, 많은 거대회사들의 금융자산으로의 생산적인 재투자로 인한 필연적인 전환); 정보사회(경제)의 성장; 금융분야의 집중·집적과 관련된 제도적 요인; 민족국가의 부패한 권력; 짧아진 투자기간에 대한 시야; 그리고 빠른 운송수단과 정보교환, 다른 획기적인 정보기술 변화로 인해 높아진 지정학적 가동성.

사실상 이 경향의 중심에는 워싱턴으로부터(단지 '미국 헤게모니'가 아니라, 좀더 광범위하게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단계) 시작된 경제적 관리가 있어왔다. 최근에, 몇몇 국가에서는 특히 자본규제 영역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쉽게, 미국이 하는 충고대로 거시경제정책을 전환하였다.(말레이시아, 중국, 인도, 대만 모두는 침체된 한국과 같은 자유에 맞서 자본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전지국적 경제격변에 대한 반응이 다를 때, 대부분의 중진국이 단기적 포트폴리오 투자(이른바 '핫머니')의 유입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는 것, 이것이 1980∼90년대 일련의 금융거품의 배경에서 발현되는 시장위기의 공통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 다음에는 이러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대신 순전히 금융투기라는 의미에서 높은 수익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워싱턴의 권위적인 기관 - IMF나 세계은행 - 에서는 자신들의 특별한 해법으로 1990년대 후반 전지구적 위기의 단계를 해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일단 1998년 8월 금융위기와 통화수축의 위험이 정점에 달하였으며(이때 러시아는 연방채무상환의무를 불이행하였다), 연이은 단계는 비껴갔고, 나아가 금융폭발과 관련된 매우 중대한 문제들을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1998년 9월부터, 잇따른 정책수단(그리고 행운)들로 인하여 1930년대 초반 규모의 위기를 막았다;

1998년 9월, 장기자금 관리 헤지펀드로 인한 공공-민간 기업의 성공적인 구제;
1998년 9∼10월, 다소 해이한 연방준비 통화정책 도입;
1998년 11월, IMF 임시 신용한도로 새로운 90조 달러 발표, 1999년 5월 형식화;
재정안정 포럼에 주요국으로 참석;
1999년 1월 브라질의 통화 붕괴에 따른 (기대치 대비) 재정 전파력의 약화;
일본경제의 대망의(그렇지만 미약한) 재생;
신흥시장에서의 다소나마 투명한 예산안과 교환비율 체제를 위한 새로운 계획;
1999년 6월 G8의 쾰른 회담에서, 극빈 제3세계국가의 채무구제를 지원하기 위해, IMF의 금 10%를 매각하기로 결정;
금융감독과 규제부분에서 IMF의 현존 영향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하였다는, IMF임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영국 Gordon Brown의 발언;
전지국적 금융 및 기타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신흥시장 재무부 장관을 포함하여, G20의 1999년 9월 모임(캐나다의 재무부 장관 Paul Martin과 남아프리카 재무부장관 Manuel을 포함);
최근 무수한 보고서에서 언급되는 '제4세계'의 엄청난 주변화를 방지하고, 새천년 선물의 계기로서 미국에서 채무를 가진 세계 36개 극빈국의 빚을 100% 감가 상각하자는, 1999년 세계은행/IMF 회담에서의 클린턴 대통령의 제안;
1999년 후반, 에콰도르가 Brady Bond의 채무에 불이행할 정도로, 국제 금융체제 내의 충분한 신용의 출현;
2000년 3월부터 연말 정점에 다다른, (첨단기술분야에서 비롯된) 나스닥 주식시장지수의 50선 추락에 의한 적정손해에서의 생존(2000년 1∼12월, 뉴욕주식거래시장의 9.3% 추락);
2000년 후반, 절망적인 국가, 특히 터키와 아르헨티나에 대한 추가적인 긴급구제;
금융위기와 후퇴를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연방정부의 금리 절반 인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입들에 의해 위기상황은 단지 대체될 뿐, 진정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전세계적 경제구조를 침식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워싱턴이 하는 일이(금리인하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는, 미국 경제 내부 팽팽한 긴장관계의 증거들은 풍부하다.
1998년 짧은 기간동안, 독일과 프랑스, 일본의 사민주의자들은 몇가지 규제수단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1999년 5월, 독일 재무장관인 오스카 라폰텐의 사임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뿌리깊은 방해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또한 미국 재무부의 거부권 행사의 결과로, 아시아 통화기금을 창설하려는 일본의 시도도 실패하였다.
부분적으로는 미국 의회 및 대통령 선거기금과 연관된 금융기구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금융시장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워싱턴의 주요경제기구들은 - 재무부, 연방준비은행,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압박받는 다국적 금융기구 - 마지못해 주요은행의 특권과 다른 국제적 신용기구에 간섭하고 있다.
심지어 주요선진국 사이에서 금리의 동등한 규제라는 것도 불균등하다(비록 미국주도 협상의 결과로 주요국가들의 통화범위가 조절된다고 하더라도). 워싱턴이 국제적 금융업무에서, 전세계적으로 파생적인 교역 및 민간채무 관계에서, 폭넓은 투명성의 필요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기금에 의한 피해 흐름을 추적하고 각국의 외부 자산과 의무에 대한 상세한 그림을 완벽하게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98년부터 워싱턴에 의해 추구되어온, 금융안전을 향한 실질적인 유일단계, 단기신용을 위해 실질적인 이자를 지불하는데 동의하는 신흥시장국가들을 위한 IMF 긴급구제기금은, 개념적으로는 1995년 멕시코에 57억달러를, 1997년부터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러시아에 250억달러 이상을 쏟아붓는 현재의 임시변통적인 체제와 다를 바가 없다.
IMF가 요구하는 신용융자 조건에 부합하는 것에서는 - 결국 거시경제 정책에서 근본적인 긴축이 되고 마는 것 - 변화라는 것을 예상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긴급구제 대부는 뷸평등하게도 외국계은행을 지원하는 것인(그들에게는 엄격한 통화유출 경로를 허락함으로써) 반면, 긴축의 고통은 대부분 낮은 계층의 시장구성원 - 그리고 중산층이 드러나는 - 과(특히, 여성과 아동, 노인과 무능력자) 그 주변사람들이 느끼게 된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경제가 미국의 후퇴 - 혹은 악화 - 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잘 알려진 앨런 그린스펀과 같은 금융계의 거장들에 의해 주도된 미국의 과도한 자유시장주의적 의제들은, 전통적인 거래방식을 규제하기 위하여 엄청난 규모의 모순을 야기했다.
이러한 기초적인 결점들은 대부분의 신규 개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그의 책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하여 정확하게 논하였다. "문제를 간단히 말하자면, 시장의 힘이 순수하게 경제적·금융적 투기장에서 완전한 권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혼란을 야기하며 궁극적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8)
우리들,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일제히 인간적이며 안정되고 인종차별과 가부장제가 없으며 자연존중적인 체제로의 대체를 원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위기의 상황은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상황을 낙관하는 주된 이유는, 역사상 처음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제민중운동이 서울, 시애틀, 소웨토, 남아프리카 등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고무적인 발전은 급진적인 사람들의 사회단체와 사회생태학적 운동의 출현인데, 이들은 조직노동자와 창조성, 유연성과 다양한 주체적 접근, 그리고 신좌파의 비교조주의적 급진주의 등 가장 기본적인 성격으로 무장되어 있다.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Johannesburg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회정의를 향한 노동·공동체의 투쟁이라는 한국의 예는,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것들 중의 하나이다.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동맹을 통하여, 언젠가 가능하면 빨리, 워싱턴의 경제헤게모니의, 최후의 모순으로 점철된 전망을 역전시키며 버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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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농성 국보법 폐지 하반기 투쟁 4대 개혁 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