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어디로 가고 있나?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저항을 아버지로 하고 1987년 항쟁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한국 유일의 진보적 신문 한겨레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있기 마련인지, 한겨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진보연대』 지난 호에 실린 이승철 회원의 <펜을 잡기 전에 눈과 귀를 열어라-최근 한겨레 보도에 대한 짧은 보고서>와 더불어, 『말』지 1월호와 2월호에 각각 김성구 교수의 <한겨레신문, 신자유주의로 우향우했다>와 김동민 교수의 반론 <한겨레는 민중언론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일 뿐> 등이 실리면서, 최근 한겨레의 논조와 시각, 언론과 운동 그리고 권력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한겨레의 노선(만약 이런 게 있다면) 및 위치에 대한 논쟁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창간 10여년 동안 그것은 한겨레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항상 논란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지금 한겨레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겨레의 위치가 더욱 미묘해졌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른바 언론대책 괴문서가 한겨레를 친여(親與)지로 분류했듯이, 대체로 늘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한겨레가 DJ 정부에 대해서는 지지(또는 최소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존재한다. 이것은 결국 한겨레가 DJ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군이 되고 있다는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다음으로 언론개혁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등이 초미의 사안으로 불붙고 있지만, 시민운동과 한겨레는 그 얼마 전부터 언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DJ 정부의 내심이야 어떻든, 적어도 시민운동과 한겨레가 제기하는 언론개혁은, 재벌개혁처럼 소유와 경영의 투명성 등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구 언론이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미치는 영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부메랑처럼 질문은 돌아온다. 언론개혁의 선봉에 서고 있는 한겨레가 한국 언론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안티 조선'이어야 한다면 한겨레는 '최선'인가 '차악'인가? 노동자들이 조선일보를 읽지 말아야 한다면 그 대신 한겨레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결국 DJ 정부 집권과 언론개혁의 공론화라는 상황에서, 한겨레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는 정말 우향우 했는가? 만약 우향우 했다면 좌향좌 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의 신기섭 기자(경제부)와 조준상 기자(여론매체부)를 만나 한겨레의 내부 상황 및 언론개혁 문제에 대한 들어본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였다.
<b><신기섭 기자 인터뷰 : 2월 12일></b>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넘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신기섭 기자의 개인홈페이지(http://user.chollian.net/~marishin)의 대문에 쓰인 문구 중 일부다. 신 기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강바람 찬 여의도의 빌딩 숲을 걸어가면서 자꾸 쓰거운 아이러니가 맴돌았다. 신기섭 기자는 경제부, 그것도 자본주의 최첨단인 증권 담당 기자다. 증권거래소 뒤편, 무수히 우뚝우뚝 솟아 있는 **증권 건물들 사이, 증권업협회 건물 기자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font color="##003366">사회진보연대(이하 PSSP) : 우선 『말』지에 실린 김성구 교수의 한겨레 비판에 대해 얘기해 보자. 한겨레 내부에서는 반응이 어떠한가?</font>
▶신기섭(이하 신) : 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글에는 김성구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fact)들이 있다. 그런데 근거가 되는 팩트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오류나 실수에 불과한 것들을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이 침소봉대했다는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나?</font>
▶신 : 나 역시 사례를 선정하는 데서 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 김성구 교수는 올바르게 봤다. 예를 들어서, 경제정책에서 구조조정에 한겨레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이런 면에서, DJ정부-시민운동-한겨레의 신자유주의 삼각동맹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의 정치 버전이 낙선운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성구 교수가 경제부분에 대해 예를 들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왜 한겨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동의하는가?</font>
▶신 : 대안이 없으니까.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일정한 진보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액주주 운동이나 경영의 투명성 같은 것, 뭐 그것도 결국 주식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 비해서는 진보적이지 않나. 그에 대해 현실성 있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니까 결국 신자유주의의 진보성에 포섭되어 버리는 거다.
<font color="##003366">PSSP : 김성구 교수는 대안을 제시해 오지 않았나?</font>
▶신 : 그렇다.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김성구 교수와 김윤자 교수 정도랄까. 그 중에서 김윤자 교수는 원론에 가깝고, 현실적 대안을 얘기하는 사람은 김성구 교수 정도다. 한겨레에서도 그들의 기고를 싣지만, 너무 소수고 역부족이다.
내가 잠깐 기자생활을 할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기자는 남의 말을 빌려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즉 누군가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기자들은 아무리 자기 생각이 있어도 그 생각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신 : 하지만 한겨레 기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모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여러 흐름이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나 사회 문제, 국제면 같은 데서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명확히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부산물이다.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치고 나가지만, 근본적인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결국 DJ정부-시민운동-한겨레의 신자유주의적 삼각동맹이 존재한다는 것 같다.</font>
▶신 : 그렇다고 그걸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안 된다. 단지 삼자의 관심사와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고, 그런 순간 삼각동맹 구도가 형성되는 거다. 그런데 사실은 그 이해도 조금씩 다르다. 이 삼각동맹 구도에서 보면 매번 DJ가 후퇴하고 빠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DJP연합 같은 것이 그렇고, 아마 이번 언론개혁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못해도 한겨레가 DJ 수준까지 낮아지지는 않는다. 이 삼자가 공유하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삼자 간에도 내부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기섭 기자의 말에 의하면, 한겨레나 시민운동은 적어도 DJ보다는 일관되게 진보적이다. DJ가 개혁적으로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시민운동 및 한겨레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한겨레는 그런 지점에서 시민운동과 DJ 정부를 매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몇몇 자유주의적 개혁의 진보성을 인정하더라도, 크게 보아 (특히 경제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신기섭 기자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어떻게든 다른 대안적 얘기를 하고자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font color="##003366">PSSP : 꼭 김성구 교수가 아니라도 요즘 주위에서 한겨레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차라리 구독을 끊어버리고 말겠다는 얘기들도 하고.</font>
▶신 : 한겨레 창간 당시 모였던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었다. 중도좌파라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그저 중도 정도라는 것이 올바르다. 사실 당시의 구도는 반동 대 중도의 대립 구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한겨레의 물적 토대는 좌파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도 세력은 용기가 없었고 그 엄혹한 때 반동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좌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겨레는 당시 대안적 목소리를 내는 좌파의 이론을 받아들였고 좌파 역시 한겨레에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 들어서 동구권이 몰락했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다. 한겨레 외부적으로도 그렇고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엄청난 혼란이 왔다. 이때부터 좌파에서는 아무런 대안적 이론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겨레와 좌파는 균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에 대한 기대감의 배반이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표현한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렇다면 한겨레가 다시 좌향좌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font>
▶신 : 어렵다고 본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안적인 좌파 이론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10여년이 지나면서 한겨레가 처음 물적 토대에서 벗어나 독자적 물적 토대를 건설했다. 셋째, DJ정권의 일정한 진보성이 있다. 넷째,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민중운동이 아니라> 시민운동 쪽으로 전환했다. 다섯째,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적 재벌 체제가 강고하긴 하지만, 자본도 이윤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에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다른 노선을 선택하기란 어렵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버리라는 얘긴가?</font>
▶신 : 오히려 나는 좌파에게 한겨레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왜 이런 얘기 안 실어?"라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겨레 지면을 최대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짜내면서 전술을 짜는 거다. 전술적으로 접근하면, 지금보다 훨씬 지면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신기섭 기자가 말하는 한겨레의 물적 토대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한겨레에 대안적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독층과 같은 지지기반을 의미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겨레신문사의 주식 보유 지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좌파가 지면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며 소액주주 운동을 벌일 수도 있겠죠. 주식 지분이 꽤 될 텐데…." 이 말은 그의 농담이겠지만, 물적 토대로서의 좌파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겨레가 그 물적 토대와 괴리된 상황에 대한 설명은 매우 날카로웠다. 이처럼 한겨레의 물적 토대를 말하면서 신기섭 기자는 김동민 교수의 반론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즉 한겨레가 민중 언론이라기보다는 해직기자들이 설립한 신문일 뿐이라는 김동민 교수의 언명은 실제로 당시 한겨레의 물적 토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얘기를 돌려서 요즘 관심사인 언론개혁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에서 얘기하는 것 중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재벌 및 족벌 소유 지분을 30%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인데?</font>
▶신 : 실현 불가능하다. 그럼 나머지 70%를 누가 사겠는가? 재벌, 아니면 정부, 아니면 해외자본 밖에 없다. 주식상장? 상장요건도 안 된다. 그러나 물론, 세무조사나 공정거래법 적용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기본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소유지분 제한 주장은 소유주로부터의 편집권 침해가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그리고 그러면 지면이 좀더 진보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font>
▶신 :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언론개혁 얘기를 하면서 외국 언론 예를 많이 드는데, 자본주의의 어느 나라에서도 소유주로부터 편집이 완전히 독립된 언론은 거의 없다. 워싱턴 포스트 사장은 CIA와 뒷거래를 했고, 더 타임스는 머독 문제가 다른 언론에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키다가 나중에 머독의 해명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font>
▶신 : 가장 큰 문제는 조선일보가 아무런 견제세력 없이 독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나라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그들이 차지해야 할 몫보다 훨씬 과도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안티조선 운동은 훌륭한 운동이다. 조선일보를 사회문제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운동 영역이다. 전선을 만들 능력이 있는 것은 한겨레가 아니라 조선일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는 안티조선 운동과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안티조선 운동이 필요한 시기다. 그 다음은 이후의 문제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언론에 대한 얘기는 이후 점심을 같이 하면서도 한참 이어졌다. 외국 언론들의 이데올로기 및 세력 구도, 외국 언론의 추악한 모습,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대한 얘기 등등.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언론학자도 아닌 나는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매우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지만, 여기 옮길 수는 없고, 일부는 신기섭 기자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b><조준상 기자 인터뷰 : 2월 15일></b>
서울에 32년만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한겨레신문사 사옥은, 마치 지금의 한겨레를 상징하듯이, 눈발의 주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었다 하며 서 있었다. 점심 시간이어서 한겨레 사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인터뷰를 위해 들어간 음식점과 찻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온통 한겨레 사람들뿐인데 한겨레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해도 되나요?" 나의 농담섞인 말에 조준상 기자는 "상관없어요."하며 웃었다.
<font color="##003366">PSSP : 일전에 전화로 잠깐 얘기했을 때 김성구 교수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조준상 기자가 사회진보연대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말도 들었는데?</font>
▶조준상(이하 조) : 김성구 교수의 비판은 몇몇 틀린 지점들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겨레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할 부분들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겨레 내부는 매우 다양하다. 신자유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까지 있으며 그런 것이 지면에도 드러난다. 일부만을 보고 신자유주의 동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1980년대식 본질환원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비판적이다.
<font color="##003366">PSSP : 1980년대식 본질환원론이라니?</font>
▶조 : 예를 들어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을 얘기해 보자. 그것이 주주이익 보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서구와는 좀 다르게, 한국의 재벌 및 족벌 체제의 맥락에서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일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런 양 측면을 볼 때, 소액주주 운동은 전체 경제개혁의 틀 내에서 노동자 경영참가 등과 같이 배치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내부에도 다양한 흐름이 있고 소액주주 운동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서 문제는 참여연대에게 개량주의라거나 마인드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경영참여 운동이 완강하게 진행되어 그들을 견인하는 것이다. 한겨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에서 의제 설정을 하고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했을 때 견인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겨레나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외부(특히 조준상 기자는 노동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는데)의 운동이 강력하게 진행되면서 견인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겨레 내부에서는 그러한 노력이나 동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겨레 내부에서 진보언론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으며 조준상 기자도 성원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조 : 진보언론연구회는 진보언론으로서의 한겨레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젊은 기자들의 모임이다. 노조 산하 동아리 형식을 띠고 있으며, 한겨레 지면에 대해 토론하고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그 모임이 한겨레를 더 진보적으로 만들기 위한 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나??</font>
▶조 :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솔직히 한겨레를 보면 일부 기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과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나?</font>
▶조 : 물론이다. 엄청 싸운다. 그런 활발한 토론이 있다는 점에서 한겨레는 건강한 조직이다.
조준상 기자는 이후 다시 한번 한겨레 내부의 진보적 흐름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외부의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고 한겨레에 대해서도 운동진영에서 관심을 표명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에 다양한 흐름이 있다는 것은 논조가 일관되지 않은 점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은행 노조 파업 때 사회면에서는 투쟁 상황을 호의적으로 크게 다룬 반면, 경제면에서는 금융 구조조정에 노조 파업이 걸림돌인 것처럼 쓴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font>
▶조 : 사실이다. 한겨레의 논조는 현재 혼재되어 있다. 물론 다른 신문들도 부서나 기자 개인 성향에 따라 조금씩 시각 차를 보이긴 하지만 한겨레의 경우 그 간극이 매우 크다.
<font color="##003366">PSSP : 그 간극이 좁혀질 것으로 보는가? 좁혀진다면 오른쪽인가 왼쪽 방향인가?</font>
▶조 : 왼쪽으로 좁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font color="##003366">PSSP : 근거는?</font>
▶조 : 우선 점점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23일에 편집국장 선거가 있는데, 출마한 세 후보 모두 진보를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내가 알기에 한겨레에서 편집국장이나 경영진 등의 선거는 성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즉 자칫하면 관성에 젖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선거는 한겨레의 위상과 방향에 대해 성원들이 다시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조 :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 운동에는 두 가지 전선이 있다. 하나는 반수구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다. 그런데 이 두 전선은 서로 교차하고 반발하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구세력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이 두 전선에서의 싸움을 어떻게 잘 수행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런데 한겨레가 반수구전선에서는 잘 하고 있는 반면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흐리고 있다는 것이 한겨레에 대한 비판의 핵심 아닌가?</font>
▶조 : 그렇다. 한겨레가 지금까지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소홀해 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가 운동권 또는 좌파를 대변해야 할 것처럼 기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주류 언론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font>
▶조 : 한겨레가 노동일보나 내일신문보다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겨레는 진보진영의 일부분이다. 다만 이런 점은 있다. 일간신문이 다루는 것은 그때그때의 구체적 사안인데, 그것을 기사화하기 위해 좌파 인사들에게 코멘트를 들어보면 원칙적인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정말 답답해진다. 아무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사실 운동의 발전이란, 원칙을 구체적 상황에 접맥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실제로 조준상 기자 스스로 인터뷰 도중에 여러 번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여러 사안들, 즉 대우 문제나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들은 예는, 노동자들에게 주식투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악이므로 주식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교화(?)하는 대신, 주식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론의 설파가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font color="##003366">PSSP : 지금 여론매체부에 있고 얼마 전까지 특히 언론개혁과 관련된 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안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 논의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font>
▶조 : 한겨레는 DJ 정부 이전부터 언론개혁 이야기를 해 왔다. 솔직히 언제 세무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언론 길들이기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정부의 조처가 그런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의 의도와 상관없이, 문제는 언론사에 기본적 경영 투명성도 없을 정도로 곪아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론사는 물론 사기업이지만 공공여론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공공영역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일개인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font color="##003366">PSSP : 이데올로기적 지형 문제로 보았을 때 결국은 편집권 독립이 문제 아닌가? </font>
▶조 : 정간법 개정에서 소유지분 제한과 더불어 편집권 독립을 제도화하려고 추구하고 있다. 소유지분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소유주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많이 나아질 것이다. 또 소유지분 제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언론이 공공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어떤 때는 제도의 도입 자체가 계급투쟁의 지점이 될 수 있다. 언론개혁 문제도 그렇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좌파는 그러한 지점들을 잘 잡아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길에는 여전히 앞을 가릴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겨레 '신문'을 만드는 것은 기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한겨레를 활용하든 견인하든간에 그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은 우리 운동의 몫이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위치지워진다.
실제로 한겨레의 노선(만약 이런 게 있다면) 및 위치에 대한 논쟁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창간 10여년 동안 그것은 한겨레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항상 논란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지금 한겨레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겨레의 위치가 더욱 미묘해졌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른바 언론대책 괴문서가 한겨레를 친여(親與)지로 분류했듯이, 대체로 늘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한겨레가 DJ 정부에 대해서는 지지(또는 최소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존재한다. 이것은 결국 한겨레가 DJ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군이 되고 있다는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다음으로 언론개혁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등이 초미의 사안으로 불붙고 있지만, 시민운동과 한겨레는 그 얼마 전부터 언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DJ 정부의 내심이야 어떻든, 적어도 시민운동과 한겨레가 제기하는 언론개혁은, 재벌개혁처럼 소유와 경영의 투명성 등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구 언론이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미치는 영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부메랑처럼 질문은 돌아온다. 언론개혁의 선봉에 서고 있는 한겨레가 한국 언론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안티 조선'이어야 한다면 한겨레는 '최선'인가 '차악'인가? 노동자들이 조선일보를 읽지 말아야 한다면 그 대신 한겨레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결국 DJ 정부 집권과 언론개혁의 공론화라는 상황에서, 한겨레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는 정말 우향우 했는가? 만약 우향우 했다면 좌향좌 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의 신기섭 기자(경제부)와 조준상 기자(여론매체부)를 만나 한겨레의 내부 상황 및 언론개혁 문제에 대한 들어본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였다.
<b><신기섭 기자 인터뷰 : 2월 12일></b>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넘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신기섭 기자의 개인홈페이지(http://user.chollian.net/~marishin)의 대문에 쓰인 문구 중 일부다. 신 기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강바람 찬 여의도의 빌딩 숲을 걸어가면서 자꾸 쓰거운 아이러니가 맴돌았다. 신기섭 기자는 경제부, 그것도 자본주의 최첨단인 증권 담당 기자다. 증권거래소 뒤편, 무수히 우뚝우뚝 솟아 있는 **증권 건물들 사이, 증권업협회 건물 기자실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font color="##003366">사회진보연대(이하 PSSP) : 우선 『말』지에 실린 김성구 교수의 한겨레 비판에 대해 얘기해 보자. 한겨레 내부에서는 반응이 어떠한가?</font>
▶신기섭(이하 신) : 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글에는 김성구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fact)들이 있다. 그런데 근거가 되는 팩트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오류나 실수에 불과한 것들을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이 침소봉대했다는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나?</font>
▶신 : 나 역시 사례를 선정하는 데서 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 김성구 교수는 올바르게 봤다. 예를 들어서, 경제정책에서 구조조정에 한겨레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이런 면에서, DJ정부-시민운동-한겨레의 신자유주의 삼각동맹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의 정치 버전이 낙선운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성구 교수가 경제부분에 대해 예를 들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왜 한겨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동의하는가?</font>
▶신 : 대안이 없으니까.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일정한 진보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액주주 운동이나 경영의 투명성 같은 것, 뭐 그것도 결국 주식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에 비해서는 진보적이지 않나. 그에 대해 현실성 있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니까 결국 신자유주의의 진보성에 포섭되어 버리는 거다.
<font color="##003366">PSSP : 김성구 교수는 대안을 제시해 오지 않았나?</font>
▶신 : 그렇다.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김성구 교수와 김윤자 교수 정도랄까. 그 중에서 김윤자 교수는 원론에 가깝고, 현실적 대안을 얘기하는 사람은 김성구 교수 정도다. 한겨레에서도 그들의 기고를 싣지만, 너무 소수고 역부족이다.
내가 잠깐 기자생활을 할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기자는 남의 말을 빌려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즉 누군가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기자들은 아무리 자기 생각이 있어도 그 생각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신 : 하지만 한겨레 기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모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여러 흐름이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나 사회 문제, 국제면 같은 데서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명확히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부산물이다.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치고 나가지만, 근본적인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결국 DJ정부-시민운동-한겨레의 신자유주의적 삼각동맹이 존재한다는 것 같다.</font>
▶신 : 그렇다고 그걸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안 된다. 단지 삼자의 관심사와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고, 그런 순간 삼각동맹 구도가 형성되는 거다. 그런데 사실은 그 이해도 조금씩 다르다. 이 삼각동맹 구도에서 보면 매번 DJ가 후퇴하고 빠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DJP연합 같은 것이 그렇고, 아마 이번 언론개혁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못해도 한겨레가 DJ 수준까지 낮아지지는 않는다. 이 삼자가 공유하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삼자 간에도 내부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기섭 기자의 말에 의하면, 한겨레나 시민운동은 적어도 DJ보다는 일관되게 진보적이다. DJ가 개혁적으로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시민운동 및 한겨레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한겨레는 그런 지점에서 시민운동과 DJ 정부를 매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몇몇 자유주의적 개혁의 진보성을 인정하더라도, 크게 보아 (특히 경제에 관한 한) 신자유주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신기섭 기자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어떻게든 다른 대안적 얘기를 하고자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font color="##003366">PSSP : 꼭 김성구 교수가 아니라도 요즘 주위에서 한겨레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차라리 구독을 끊어버리고 말겠다는 얘기들도 하고.</font>
▶신 : 한겨레 창간 당시 모였던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었다. 중도좌파라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그저 중도 정도라는 것이 올바르다. 사실 당시의 구도는 반동 대 중도의 대립 구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한겨레의 물적 토대는 좌파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도 세력은 용기가 없었고 그 엄혹한 때 반동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좌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겨레는 당시 대안적 목소리를 내는 좌파의 이론을 받아들였고 좌파 역시 한겨레에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 들어서 동구권이 몰락했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다. 한겨레 외부적으로도 그렇고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엄청난 혼란이 왔다. 이때부터 좌파에서는 아무런 대안적 이론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겨레와 좌파는 균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에 대한 기대감의 배반이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표현한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렇다면 한겨레가 다시 좌향좌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font>
▶신 : 어렵다고 본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안적인 좌파 이론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10여년이 지나면서 한겨레가 처음 물적 토대에서 벗어나 독자적 물적 토대를 건설했다. 셋째, DJ정권의 일정한 진보성이 있다. 넷째,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민중운동이 아니라> 시민운동 쪽으로 전환했다. 다섯째,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적 재벌 체제가 강고하긴 하지만, 자본도 이윤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에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다른 노선을 선택하기란 어렵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버리라는 얘긴가?</font>
▶신 : 오히려 나는 좌파에게 한겨레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왜 이런 얘기 안 실어?"라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겨레 지면을 최대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짜내면서 전술을 짜는 거다. 전술적으로 접근하면, 지금보다 훨씬 지면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신기섭 기자가 말하는 한겨레의 물적 토대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한겨레에 대안적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독층과 같은 지지기반을 의미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겨레신문사의 주식 보유 지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좌파가 지면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며 소액주주 운동을 벌일 수도 있겠죠. 주식 지분이 꽤 될 텐데…." 이 말은 그의 농담이겠지만, 물적 토대로서의 좌파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겨레가 그 물적 토대와 괴리된 상황에 대한 설명은 매우 날카로웠다. 이처럼 한겨레의 물적 토대를 말하면서 신기섭 기자는 김동민 교수의 반론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즉 한겨레가 민중 언론이라기보다는 해직기자들이 설립한 신문일 뿐이라는 김동민 교수의 언명은 실제로 당시 한겨레의 물적 토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얘기를 돌려서 요즘 관심사인 언론개혁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에서 얘기하는 것 중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재벌 및 족벌 소유 지분을 30%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인데?</font>
▶신 : 실현 불가능하다. 그럼 나머지 70%를 누가 사겠는가? 재벌, 아니면 정부, 아니면 해외자본 밖에 없다. 주식상장? 상장요건도 안 된다. 그러나 물론, 세무조사나 공정거래법 적용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기본이다.
<font color="##003366">PSSP : 소유지분 제한 주장은 소유주로부터의 편집권 침해가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그리고 그러면 지면이 좀더 진보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font>
▶신 :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언론개혁 얘기를 하면서 외국 언론 예를 많이 드는데, 자본주의의 어느 나라에서도 소유주로부터 편집이 완전히 독립된 언론은 거의 없다. 워싱턴 포스트 사장은 CIA와 뒷거래를 했고, 더 타임스는 머독 문제가 다른 언론에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키다가 나중에 머독의 해명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font>
▶신 : 가장 큰 문제는 조선일보가 아무런 견제세력 없이 독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나라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그들이 차지해야 할 몫보다 훨씬 과도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안티조선 운동은 훌륭한 운동이다. 조선일보를 사회문제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운동 영역이다. 전선을 만들 능력이 있는 것은 한겨레가 아니라 조선일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는 안티조선 운동과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안티조선 운동이 필요한 시기다. 그 다음은 이후의 문제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언론에 대한 얘기는 이후 점심을 같이 하면서도 한참 이어졌다. 외국 언론들의 이데올로기 및 세력 구도, 외국 언론의 추악한 모습,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대한 얘기 등등.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언론학자도 아닌 나는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매우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지만, 여기 옮길 수는 없고, 일부는 신기섭 기자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b><조준상 기자 인터뷰 : 2월 15일></b>
서울에 32년만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한겨레신문사 사옥은, 마치 지금의 한겨레를 상징하듯이, 눈발의 주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었다 하며 서 있었다. 점심 시간이어서 한겨레 사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인터뷰를 위해 들어간 음식점과 찻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온통 한겨레 사람들뿐인데 한겨레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해도 되나요?" 나의 농담섞인 말에 조준상 기자는 "상관없어요."하며 웃었다.
<font color="##003366">PSSP : 일전에 전화로 잠깐 얘기했을 때 김성구 교수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조준상 기자가 사회진보연대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말도 들었는데?</font>
▶조준상(이하 조) : 김성구 교수의 비판은 몇몇 틀린 지점들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겨레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할 부분들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겨레 내부는 매우 다양하다. 신자유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까지 있으며 그런 것이 지면에도 드러난다. 일부만을 보고 신자유주의 동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1980년대식 본질환원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비판적이다.
<font color="##003366">PSSP : 1980년대식 본질환원론이라니?</font>
▶조 : 예를 들어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을 얘기해 보자. 그것이 주주이익 보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서구와는 좀 다르게, 한국의 재벌 및 족벌 체제의 맥락에서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일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런 양 측면을 볼 때, 소액주주 운동은 전체 경제개혁의 틀 내에서 노동자 경영참가 등과 같이 배치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내부에도 다양한 흐름이 있고 소액주주 운동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서 문제는 참여연대에게 개량주의라거나 마인드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경영참여 운동이 완강하게 진행되어 그들을 견인하는 것이다. 한겨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에서 의제 설정을 하고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했을 때 견인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겨레나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외부(특히 조준상 기자는 노동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는데)의 운동이 강력하게 진행되면서 견인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겨레 내부에서는 그러한 노력이나 동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겨레 내부에서 진보언론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으며 조준상 기자도 성원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조 : 진보언론연구회는 진보언론으로서의 한겨레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젊은 기자들의 모임이다. 노조 산하 동아리 형식을 띠고 있으며, 한겨레 지면에 대해 토론하고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그 모임이 한겨레를 더 진보적으로 만들기 위한 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나??</font>
▶조 :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PSSP : 솔직히 한겨레를 보면 일부 기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과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나?</font>
▶조 : 물론이다. 엄청 싸운다. 그런 활발한 토론이 있다는 점에서 한겨레는 건강한 조직이다.
조준상 기자는 이후 다시 한번 한겨레 내부의 진보적 흐름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외부의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고 한겨레에 대해서도 운동진영에서 관심을 표명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에 다양한 흐름이 있다는 것은 논조가 일관되지 않은 점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은행 노조 파업 때 사회면에서는 투쟁 상황을 호의적으로 크게 다룬 반면, 경제면에서는 금융 구조조정에 노조 파업이 걸림돌인 것처럼 쓴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font>
▶조 : 사실이다. 한겨레의 논조는 현재 혼재되어 있다. 물론 다른 신문들도 부서나 기자 개인 성향에 따라 조금씩 시각 차를 보이긴 하지만 한겨레의 경우 그 간극이 매우 크다.
<font color="##003366">PSSP : 그 간극이 좁혀질 것으로 보는가? 좁혀진다면 오른쪽인가 왼쪽 방향인가?</font>
▶조 : 왼쪽으로 좁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font color="##003366">PSSP : 근거는?</font>
▶조 : 우선 점점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23일에 편집국장 선거가 있는데, 출마한 세 후보 모두 진보를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내가 알기에 한겨레에서 편집국장이나 경영진 등의 선거는 성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즉 자칫하면 관성에 젖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선거는 한겨레의 위상과 방향에 대해 성원들이 다시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조 :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 운동에는 두 가지 전선이 있다. 하나는 반수구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다. 그런데 이 두 전선은 서로 교차하고 반발하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구세력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이 두 전선에서의 싸움을 어떻게 잘 수행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font color="##003366">PSSP : 그런데 한겨레가 반수구전선에서는 잘 하고 있는 반면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흐리고 있다는 것이 한겨레에 대한 비판의 핵심 아닌가?</font>
▶조 : 그렇다. 한겨레가 지금까지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소홀해 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font color="##003366">PSSP : 한겨레가 운동권 또는 좌파를 대변해야 할 것처럼 기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주류 언론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font>
▶조 : 한겨레가 노동일보나 내일신문보다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겨레는 진보진영의 일부분이다. 다만 이런 점은 있다. 일간신문이 다루는 것은 그때그때의 구체적 사안인데, 그것을 기사화하기 위해 좌파 인사들에게 코멘트를 들어보면 원칙적인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정말 답답해진다. 아무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사실 운동의 발전이란, 원칙을 구체적 상황에 접맥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실제로 조준상 기자 스스로 인터뷰 도중에 여러 번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여러 사안들, 즉 대우 문제나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들은 예는, 노동자들에게 주식투자는 금융자본주의의 악이므로 주식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교화(?)하는 대신, 주식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론의 설파가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font color="##003366">PSSP : 지금 여론매체부에 있고 얼마 전까지 특히 언론개혁과 관련된 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안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 논의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font>
▶조 : 한겨레는 DJ 정부 이전부터 언론개혁 이야기를 해 왔다. 솔직히 언제 세무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언론 길들이기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정부의 조처가 그런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의 의도와 상관없이, 문제는 언론사에 기본적 경영 투명성도 없을 정도로 곪아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론사는 물론 사기업이지만 공공여론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공공영역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일개인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font color="##003366">PSSP : 이데올로기적 지형 문제로 보았을 때 결국은 편집권 독립이 문제 아닌가? </font>
▶조 : 정간법 개정에서 소유지분 제한과 더불어 편집권 독립을 제도화하려고 추구하고 있다. 소유지분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소유주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많이 나아질 것이다. 또 소유지분 제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언론이 공공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어떤 때는 제도의 도입 자체가 계급투쟁의 지점이 될 수 있다. 언론개혁 문제도 그렇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좌파는 그러한 지점들을 잘 잡아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길에는 여전히 앞을 가릴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겨레 '신문'을 만드는 것은 기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한겨레를 활용하든 견인하든간에 그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은 우리 운동의 몫이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위치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