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3- 보수주의적 싱크탱크, 그리고 부시행정부
<b>미국기업연구소(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b>
<b>▶프리드먼과 AEI</b>
유명한 통화주의자이자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정부의 혜택은 누리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해답은 정부가 할 일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작은)정부의 힘을 광범위하게 분산시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공황 이후 유례없던 호황을 가져온 미국 정부의 경제개입정책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1967년 미국경제학회 회장직 수락연설에서 그는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이상의 물가상승은 실업률을 낮추지 못한다는 자연실업률 가설을 제시하고, 지금 미국 경제가 자연실업률 수준에 도달했으므로 계속적인 수요확대 정책은 물가인상만 초래한다고 경고하였다. 시장의 과열과 침체에 대한 반경기순환정책을 기치로 정부의 개입정책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겼다.
그로부터 수년 후 미국경제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적으로 늘어나는, 그리하여 경기 과열을 막을 수도, 실업률을 낮출 수도 없는 스테그플레이션 상황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의 예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수많은 케인지안들은 당황했고, 자유방임주의자들(libertarian)은 환호했다.
1964년 골드워터(공화당)의 선거유세는 그에게 재미있는 기억을 남겼다.
당시 그는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미국기업연구소(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연구원이었고, 이를 인연으로 골드워터 선거운동본부 경제부문조언자로 참여한 것이다. 민주당/자유주의자와 케인즈, 공화당/보수주의자와 프리드먼이라는 도식이 떠오를 법한 대목이다. 이 미묘한 유사성을 미리 지적해두는 이유는 AEI가 보수주의 진영내에서 어떤 위상인지를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b>▶AEI의 설립과 성장</b>
1943년 루이스 브라운은 뉴딜정책에 불만이 있었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미국인들이 경제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과격한 이념에 빠져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운은 이들에게 '경제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리고 싶었고 불편부당한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제거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기업인연합회(American Enterprise Association)가 결성되는데, 이것이 미국기업연구소의 모태이다.
하지만,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이 연구소는 고급회식클럽수준에 불과했고, 1950년대 초까지는 경제발전위원회(CED: The Committee For Economic Development-사회진보연대 12월호 참고)에 가려 별 이목을 끌지 못하였다. 1953년 바루디를 전속연구원으로 초빙하면서, 이 연구소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데, 밀튼 프리드먼, 고트프리드 하벌러, 폴 맥크라켄, G.워렌 너터 등 저명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학술자문기구를 발족하면서, 연구소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0년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인해 이익단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자체평가 속에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로 개명하였고, 1964년 골드워터의 대통령선거 때는 연구소소장인 바루디 자신이 직접 선거참모가 되기도 하였다.
1964년 대선 대패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유능한 정책적 대변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당시 연방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부르킹스에 맞서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1976년 낙선한 공화당의 포드 대통령 후보를 연구원으로 영입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된다. 닉슨 행정부(공화당)행정부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사이먼을 조세정책연구 프로젝트를 관장시키게 되면서부터, 이들의 정책적 입안능력은 한층 더 빛을 발휘한다. AEI는 점점 더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을 규합하였고, 1980년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는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b>▶레이거노믹스에서 부쇼노믹스까지</b>
AEI연구소에서의 경제정책에 대한 토론과 연구결과는 미국의 경제정책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곤 한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그리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급중시경제학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되는 자리에는 늘 AEI연구소가 있었던 것이다. 먼델교수의 긴축통화주장이라든가, 크리스토퍼 디머스 소장의 복지분야 개혁, 통신분야 탈규제, 농업보조금제 폐지등등이 이곳에서 토론되고 연구되는 등,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적 정책들이 입안되도록 AEI가 크게 기여를 했던 것이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세제담당 전문가로 있었던 로렌스 린지가 이곳의 상임연구원이라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시절부터 세제감면을 주장(한계세율이 낮아지면 노동 및 사업의욕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늘어난 소득이 세원 증가로 이어진다는 주장)해온 핵심인물이며, 이번 부시 행정부에서는 아예 조세감축공약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보좌관으로 등용되었으며, 부시경제정책의 교사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번 부시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등용된 폴 오닐 또한 AEI의 상임연구원이요, 더 나아가 역대부통령 중 경제전문가로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딕 체니 부통령조차 이 곳의 이사였다면,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AEI연구소와의 상관관계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AEI연구소는 연방세제의 근본적 개혁, 각종 사회복지예산의 감축, 정부규제의 완화등에 관해 집중연구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언론이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 즉, 부쇼노믹스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이 아니냐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 것도 이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b>헤리티지 연구소</b>
<b>▶보수주의 이념의 전위투사</b>
MIT 경제학자이자 저명한 컬럼리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2000년 12월17일자 뉴욕타임즈 <부시, 헤리티지인맥 중용 말아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부시 행정부의 자리를 메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월가나 스탠퍼드출신 등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헤리티지나 카토처럼 특정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싱크탱크의 인사들로 채워진다면 문제가 있다. 그들은 분열하려는 사람이지, 통합하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부시 당선자에게 제목 그대로, 헤리티지 연구원들을 중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한 헤리티지의 항변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워싱턴싱크탱크들의 협력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닌데도 이를 왜곡하는 이들이 있다… 굳이 문제삼자면 부시와 헤리티지가 아니라 존 F. 케네디와 브루킹스의 관계를 문제삼아야 한다… 우리는 특정분파나 정당이 아닌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라며, 심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념적인 문제제기에 이념적인 대꾸…. 헤리티지 연구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헤리티지 연구소의 지향점 모두 한눈에 짐작되는 대목이다.
<b>▶ 이념이 실질적인 결과를 낳는다</b>
지난호(사회진보연대 1·2월호)에서 보수주의 싱크탱크의 등장과정을 정리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색다른 특징을 선도하는 연구소로서 헤리티지 연구소를 소개한 바 있다. 미국언론으로부터 이론연구보다는 정책생산에, 정책생산보다는 이념과 연구소 홍보에 열을 올린다고 혹평받는 이 연구소는 다른 싱크탱크들과는 달리 보수주의 이념확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연구소이다. "이념이 실질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후버의 주장에서 엿보이듯, 이 연구소에 대한 기대는 보수주의자들의 이념에 대한 기대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애초에 에드윈 폴너가 이같은 연구소를 수립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즉, AEI같이 중립성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에게 시의적절하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없다는 기대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그것도 지극히 고리타분한 주장을 곧잘 반복하고는 하는데, 이들 연구소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시사받는 것은 미국사회 이념의 현주소라 하겠다.
최근 헤리티지 재단이 부시행정부 입각직전에 제출한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에서 탄도탄 방어미사일(ABM) 조약을 파기하고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를 조속히 추진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인즉, '빌 클린턴 행정부는 조약당사자인 소련이 붕괴됐는데도 조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왔다… 새로운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ABM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보다는 선동에 더 관심이 많은 것 아닌지 의혹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이들의 이데올로기적인 발언은 유난히 눈에 띄는데, "북폭을 해서라도 평양측이 핵개발은 못하게 해야 한다"부터 북의 태도변화 없이 미국이 방북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는 제네바협정 파기 운운까지 그 맥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헤리티지의 상임연구원이자 국무부부장관 지명자인 아미티지가 얼마전 햇볕정책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도 비숫한 맥락으로 보인다.
<b>▶ 보수주의 이념의 전파자 </b>
하지만, 보수주의 특유의 이념지향성과 헤리티지 연구소 특유의 선전감각으로 인해 헤리티지 연구소가 보수주의 정책의 발원지로 승인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헤리티지 연구소는 이 특유의 감각과 정치선동대의 역할로 인해 그 어느 연구소보다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부시행정부에서도 이들 연구소 출신이 중용되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일레인 차오 노동부장관과 딕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백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으로 이런 이념의 전파작업이 국내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0년대 당시 제3세계 독재자들과 매우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해 교육시키기도 하였으며, 이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나라가 특히 헤리티지 연구소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와 무관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1980년 신군부와 헤리티지 재단의 친화성은 공공연한 사실(허화평을 비롯하여 신군부의 핵심인사들이 이곳의 객원연구원이다)일 뿐만 아니라,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자유기업원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싱크탱크인 새시대전략연구소도 이 곳과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b>그 밖의 보수주의적인 싱크탱크들</b>
<b>▶후버 연구소</b>
스탠포드 대학의 부설연구기관이었다가 1980년대 중반 독립한 연구소로써, 1960년 이미 대학부설 연구기관답지 않게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한 연구소이다. "칼 마르크스 류의 이론들, 예컨대 공산주의, 사회주의 ,경제적 물질주의, 무신론 등의 해악을 드러냄으로써 미국적 생활방식을 그런 이념들로부터 보호하고 미국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데 이바지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처음 임무가 자료 수집정리라는 도서관 역할임을 반증하듯 수백만에 달하는 전쟁관련 자료 및 장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b>▶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b>
군사 및 외교정책을 입안함에 있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소로서, 공산주의에 맞설 여러 가지 대안을 연구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한다. 이 연구소는 거의 유일하게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지역담당 상임연구원을 두면서, 아시아와 유럽 등 지역별 분야별로 나누어 토론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늘 같이 언급되는 연구소이다.
랜드연구소가 공군과의 깊은 연계 속에서 시스템분석이라든가 비용회계 등에 집중했다면, 이 곳은 그와 달리 육·해군과의 연계 속에서 지도력, 사기, 지정학적인 문제들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곳이라고 한다.
헨리 키신저 박사, 브레진스키 박사,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 등 미국의 국제외교정책을 수립하는데 핵심브레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이 곳의 선임연구원이다. 이번 부시 행정부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 차관보가 CSIS의 태평양포럼 회장이며, 토켈 패터슨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역시 태평양포럼의 선임위원이기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
<b>▶프리드먼과 AEI</b>
유명한 통화주의자이자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정부의 혜택은 누리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해답은 정부가 할 일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작은)정부의 힘을 광범위하게 분산시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공황 이후 유례없던 호황을 가져온 미국 정부의 경제개입정책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1967년 미국경제학회 회장직 수락연설에서 그는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이상의 물가상승은 실업률을 낮추지 못한다는 자연실업률 가설을 제시하고, 지금 미국 경제가 자연실업률 수준에 도달했으므로 계속적인 수요확대 정책은 물가인상만 초래한다고 경고하였다. 시장의 과열과 침체에 대한 반경기순환정책을 기치로 정부의 개입정책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겼다.
그로부터 수년 후 미국경제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적으로 늘어나는, 그리하여 경기 과열을 막을 수도, 실업률을 낮출 수도 없는 스테그플레이션 상황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의 예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수많은 케인지안들은 당황했고, 자유방임주의자들(libertarian)은 환호했다.
1964년 골드워터(공화당)의 선거유세는 그에게 재미있는 기억을 남겼다.
당시 그는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미국기업연구소(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연구원이었고, 이를 인연으로 골드워터 선거운동본부 경제부문조언자로 참여한 것이다. 민주당/자유주의자와 케인즈, 공화당/보수주의자와 프리드먼이라는 도식이 떠오를 법한 대목이다. 이 미묘한 유사성을 미리 지적해두는 이유는 AEI가 보수주의 진영내에서 어떤 위상인지를 가늠해 보기 위함이다.
<b>▶AEI의 설립과 성장</b>
1943년 루이스 브라운은 뉴딜정책에 불만이 있었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미국인들이 경제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과격한 이념에 빠져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운은 이들에게 '경제의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리고 싶었고 불편부당한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제거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기업인연합회(American Enterprise Association)가 결성되는데, 이것이 미국기업연구소의 모태이다.
하지만,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이 연구소는 고급회식클럽수준에 불과했고, 1950년대 초까지는 경제발전위원회(CED: The Committee For Economic Development-사회진보연대 12월호 참고)에 가려 별 이목을 끌지 못하였다. 1953년 바루디를 전속연구원으로 초빙하면서, 이 연구소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데, 밀튼 프리드먼, 고트프리드 하벌러, 폴 맥크라켄, G.워렌 너터 등 저명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학술자문기구를 발족하면서, 연구소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0년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인해 이익단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자체평가 속에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로 개명하였고, 1964년 골드워터의 대통령선거 때는 연구소소장인 바루디 자신이 직접 선거참모가 되기도 하였다.
1964년 대선 대패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유능한 정책적 대변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당시 연방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부르킹스에 맞서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1976년 낙선한 공화당의 포드 대통령 후보를 연구원으로 영입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된다. 닉슨 행정부(공화당)행정부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사이먼을 조세정책연구 프로젝트를 관장시키게 되면서부터, 이들의 정책적 입안능력은 한층 더 빛을 발휘한다. AEI는 점점 더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을 규합하였고, 1980년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는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b>▶레이거노믹스에서 부쇼노믹스까지</b>
AEI연구소에서의 경제정책에 대한 토론과 연구결과는 미국의 경제정책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곤 한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그리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급중시경제학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되는 자리에는 늘 AEI연구소가 있었던 것이다. 먼델교수의 긴축통화주장이라든가, 크리스토퍼 디머스 소장의 복지분야 개혁, 통신분야 탈규제, 농업보조금제 폐지등등이 이곳에서 토론되고 연구되는 등,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적 정책들이 입안되도록 AEI가 크게 기여를 했던 것이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세제담당 전문가로 있었던 로렌스 린지가 이곳의 상임연구원이라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시절부터 세제감면을 주장(한계세율이 낮아지면 노동 및 사업의욕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늘어난 소득이 세원 증가로 이어진다는 주장)해온 핵심인물이며, 이번 부시 행정부에서는 아예 조세감축공약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보좌관으로 등용되었으며, 부시경제정책의 교사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번 부시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등용된 폴 오닐 또한 AEI의 상임연구원이요, 더 나아가 역대부통령 중 경제전문가로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딕 체니 부통령조차 이 곳의 이사였다면,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AEI연구소와의 상관관계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AEI연구소는 연방세제의 근본적 개혁, 각종 사회복지예산의 감축, 정부규제의 완화등에 관해 집중연구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언론이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 즉, 부쇼노믹스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이 아니냐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 것도 이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b>헤리티지 연구소</b>
<b>▶보수주의 이념의 전위투사</b>
MIT 경제학자이자 저명한 컬럼리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2000년 12월17일자 뉴욕타임즈 <부시, 헤리티지인맥 중용 말아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부시 행정부의 자리를 메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월가나 스탠퍼드출신 등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헤리티지나 카토처럼 특정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싱크탱크의 인사들로 채워진다면 문제가 있다. 그들은 분열하려는 사람이지, 통합하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부시 당선자에게 제목 그대로, 헤리티지 연구원들을 중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한 헤리티지의 항변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워싱턴싱크탱크들의 협력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닌데도 이를 왜곡하는 이들이 있다… 굳이 문제삼자면 부시와 헤리티지가 아니라 존 F. 케네디와 브루킹스의 관계를 문제삼아야 한다… 우리는 특정분파나 정당이 아닌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라며, 심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념적인 문제제기에 이념적인 대꾸…. 헤리티지 연구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헤리티지 연구소의 지향점 모두 한눈에 짐작되는 대목이다.
<b>▶ 이념이 실질적인 결과를 낳는다</b>
지난호(사회진보연대 1·2월호)에서 보수주의 싱크탱크의 등장과정을 정리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색다른 특징을 선도하는 연구소로서 헤리티지 연구소를 소개한 바 있다. 미국언론으로부터 이론연구보다는 정책생산에, 정책생산보다는 이념과 연구소 홍보에 열을 올린다고 혹평받는 이 연구소는 다른 싱크탱크들과는 달리 보수주의 이념확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연구소이다. "이념이 실질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후버의 주장에서 엿보이듯, 이 연구소에 대한 기대는 보수주의자들의 이념에 대한 기대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애초에 에드윈 폴너가 이같은 연구소를 수립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즉, AEI같이 중립성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에게 시의적절하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없다는 기대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그것도 지극히 고리타분한 주장을 곧잘 반복하고는 하는데, 이들 연구소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시사받는 것은 미국사회 이념의 현주소라 하겠다.
최근 헤리티지 재단이 부시행정부 입각직전에 제출한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에서 탄도탄 방어미사일(ABM) 조약을 파기하고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를 조속히 추진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인즉, '빌 클린턴 행정부는 조약당사자인 소련이 붕괴됐는데도 조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왔다… 새로운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ABM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보다는 선동에 더 관심이 많은 것 아닌지 의혹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이들의 이데올로기적인 발언은 유난히 눈에 띄는데, "북폭을 해서라도 평양측이 핵개발은 못하게 해야 한다"부터 북의 태도변화 없이 미국이 방북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는 제네바협정 파기 운운까지 그 맥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헤리티지의 상임연구원이자 국무부부장관 지명자인 아미티지가 얼마전 햇볕정책 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도 비숫한 맥락으로 보인다.
<b>▶ 보수주의 이념의 전파자 </b>
하지만, 보수주의 특유의 이념지향성과 헤리티지 연구소 특유의 선전감각으로 인해 헤리티지 연구소가 보수주의 정책의 발원지로 승인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헤리티지 연구소는 이 특유의 감각과 정치선동대의 역할로 인해 그 어느 연구소보다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부시행정부에서도 이들 연구소 출신이 중용되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일레인 차오 노동부장관과 딕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백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으로 이런 이념의 전파작업이 국내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0년대 당시 제3세계 독재자들과 매우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해 교육시키기도 하였으며, 이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나라가 특히 헤리티지 연구소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와 무관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1980년 신군부와 헤리티지 재단의 친화성은 공공연한 사실(허화평을 비롯하여 신군부의 핵심인사들이 이곳의 객원연구원이다)일 뿐만 아니라,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자유기업원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싱크탱크인 새시대전략연구소도 이 곳과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b>그 밖의 보수주의적인 싱크탱크들</b>
<b>▶후버 연구소</b>
스탠포드 대학의 부설연구기관이었다가 1980년대 중반 독립한 연구소로써, 1960년 이미 대학부설 연구기관답지 않게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한 연구소이다. "칼 마르크스 류의 이론들, 예컨대 공산주의, 사회주의 ,경제적 물질주의, 무신론 등의 해악을 드러냄으로써 미국적 생활방식을 그런 이념들로부터 보호하고 미국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데 이바지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처음 임무가 자료 수집정리라는 도서관 역할임을 반증하듯 수백만에 달하는 전쟁관련 자료 및 장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b>▶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b>
군사 및 외교정책을 입안함에 있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소로서, 공산주의에 맞설 여러 가지 대안을 연구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한다. 이 연구소는 거의 유일하게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지역담당 상임연구원을 두면서, 아시아와 유럽 등 지역별 분야별로 나누어 토론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늘 같이 언급되는 연구소이다.
랜드연구소가 공군과의 깊은 연계 속에서 시스템분석이라든가 비용회계 등에 집중했다면, 이 곳은 그와 달리 육·해군과의 연계 속에서 지도력, 사기, 지정학적인 문제들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곳이라고 한다.
헨리 키신저 박사, 브레진스키 박사,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 등 미국의 국제외교정책을 수립하는데 핵심브레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이 곳의 선임연구원이다. 이번 부시 행정부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 차관보가 CSIS의 태평양포럼 회장이며, 토켈 패터슨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역시 태평양포럼의 선임위원이기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