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없는 사회감옥, 장애인차별을 철폐하자
<b>이 땅 450만 장애인들은 어디에 있나?</b>
이 땅에는 450만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만나거나 접촉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자원봉사 등의 특별한 노력(?)이나, 장애인의 날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장애문제에 대하여 접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땅에는 450만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결코 적은 인구는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인가? 450만의 장애인은 과연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IMF로 인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으로 비장애인 실업률이 급상승하여 많은 노동자, 민중들의 삶이 생존의 기로에 내몰릴 때, 실업률이 10%를 육박한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은 IMF 이전에도 장애인 실업률 27.4%였고, IMF 이전에 비장애인 실업률 2-3%에 비하면 10배에 달하는 살인적 실업상태에 처해 있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은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다수의 장애인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노동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결국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자신의 삶을 평생 살아가야 할 장애인의 절망은 분명 '지옥같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b>솜방망이 장애인 고용정책</b>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지도 10년의 세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정부나 기업이 여전히 현행 장애인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0대그룹의 장애인 고용율이 0.53%로 나타났다. 이것은 현행 장애인의무고용율 2%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며, 장애인의무고용의무사업체의 평균치 0.91%보다 밑도는 것이다. 또한 국정감사에서는 장애인고용의무사업 1,925개 중 22.7%에 이르는 438개 업체가 장애인 고용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장애인의 직접고용을 꺼리며 차라리 부담금 납부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 장애인 고용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거나 노골적으로 기피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더욱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가진 장애인을 구하기가 어렵다거나, 장애인적합직무 부재 등을 핑계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만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장애인 고용정책이 이 자본의 사회에서 얼마나 솜방망이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에 솜방망이인 장애인고용촉진법이 부메랑처럼 기만적인 칼날이 되어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고용이 '자선과 시혜', '사랑과 봉사'에 기반하여 '기업주'를 사랑의 천사로 미화시킨다고 해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요, 장애인에게 자본의 속성을 미화시키는 기만일 뿐이다.
<b>장애인이 외출 한번 하기도 힘든 사회</b>
장애인의 이동문제를 생각해보자. 전체 장애인구 중에서 한달에 한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16.6%, 한번 외출하는 사람이 17.3%, 2-5회 36.6%이다. 전체 장애인의 70.5%가 한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어보았는가? 이렇게 외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55.6%를 차지하는 것이 교통수단이나 편의시설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물, 도로, 교통 등 사회의 모든 활동구조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계획되고 건설된 상황에서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재가장애인은 결국 가족에 의지하거나, 자원봉사자의 도움만을 기대하면서 집안에서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하게 만들었다. 성년이 되어 자원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아 몇십년만의 외출에 감동하는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 장애인의 감동에 뿌듯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야만적인 격리를 집단적으로 구조화시켰다는 것에 분노해야 할 문제이다. 바로 사회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집단적 차별과 편견으로 장애인을 창살없는 사회감옥 속에 수감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구조화된 사회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을 지난하게 요구해왔으며, 마침내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당당한 권리임을 제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마련된 형식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빈껍데기였을 뿐 그 내용은 공식적인 편의시설설치기준의 미비, 전시적인 행정과 무책임, 장애인의 요구가 배제되고 자본의 논리만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수많은 사고를 겪어야 했다. 1999년 6월 혜화역에서 노들장애인야학의 이규식씨가 장애인용리프트에서 추락해 전치2주의 사고를 당하였고, 1999년 10월에도 이흥호씨가 천호역에서 리프트가 부러져 추락할 뻔한 사고를 겪었다. 이들 사고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관련당국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마침내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전 또하나의 추락사건이 발생했다. 1월 22일 오전 11시 15분경, 고재영(75세)씨와 박소엽(72세, 지체장애3급)씨 노부부가 순천에서 설 연휴를 지내기 위해 역귀성하였다. 이들부부가 막내 아들 집에서 머물다 큰 아들네로 가기 위해 오이도역에 있는 장애인용 수직형리프트를 타고 역사로 올라가던 순간, 수직형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면서 5m 정도 추락했고 고재영씨는 두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박소엽씨는 하혈을 하다가 인천 길병원에서 치료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자본의 논리에 의하여 이다지도 무참히 무시될 수 있단 말인가? 이동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바로 야만의 사회이다.
<b>장애인이면 대학도 못가는 사회</b>
장애인의 교육문제를 보면 장애인에 대한 야만적인 차별이 상식으로 만연되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에게 '교육'이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인격체로서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이며, 사회적 합의이다. 그래서 헌법 31조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기본법 제4조(교육의 기회균등)에도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다시 한번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교육받을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당당한 권리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장애인들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에서도 소외되어왔다. 그리고 교육받지 못한 이유가 마치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장애인의 32%가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구조적으로 차별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많은 장애인들이 정규교육과 검정고시 등을 통하여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일부 대학으로부터 자신의 성적과 수학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서조차 넣지 못하거나 불합격처리되었다.
청주대 음악교육과에 편입학원서를 넣기 위해 방문했던 시각장애인 황선경(28)씨는 끝내 입학원서를 접수시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학교측이 "시각장애인을 받아들일 시설과 운영상의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로 원서접수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서주현(25)씨 역시 서원대측에 의해 원서접수를 거부당했다. 서원대 측은 "제3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정도의 장애인만 받는다"며 문전박대하였다. 건국대학교에 지원했던 지체장애 1급 남미영씨 역시 "지체 3등급 이상의 중증 장애인은 받을 수 없다"는 건국대학교의 입학요강에 의해 원서조차 넣지 못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무참히 짓밟혔다. '장애' 때문에 대학마저 갈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b>보호시설에서까지 유린당하는 장애인의 인권</b>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을 보호한다고 정부예산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의 인권은 어떠한가.
1996년 11월 27일 새벽 5시. 평택에서 일어난 에바다투쟁은 에바다학교의 농아학생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일어났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의 전형적인 사건이었으며 의문사, 인신매매, 수십억대에 이르는 예산과 후원금횡령, 성폭력, 미군성범죄 등 대표적 장애인 시설비리로 알려진 평택 에바다복지회 사건은 최성창 일가와 김선기 평택시장의 지역토착세력이 결탁한 부정부패의 대표사례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의 복지라는 허울 속에서, 보호되어 있는 시설장애인조차도 착취와 인권유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강요된 절망으로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없구나 없구나/ 스물일곱 이 한목숨/ 밥벌 자리 하나 없구나'라고 한 시인의 절규처럼 자신의 목숨밥 벌 자리 하나 없이 아무리 자신의 노동을 바겐세일로 바쳐도 수많은 장애인은 여전히 실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길거리는 온통 쇠창살이며,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교육을 장애라는 이유로 소외당해야 했던 쓰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장애가 심해서 수용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시설비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라는 이유로 노동, 교육, 이동, 인권 등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졌기에, 장애인은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배제되어 격리된 채 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b>장애인들이 이 땅에 살기 위하여</b>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장애인과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이 사회는 장애인과 진정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는가? 수많은 장애인에게 죽음과 사회적 차별을 자행하는 사회는 이 물음에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하고, 대답에 상응하는 실천으로 지금까지 장애인이 받아온 죽음같은 사회적 차별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의 문제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장애인 문제를 풀어가는 현장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장애인에 대한 단순한 도움으로만 바라본다면 서로에게 왜곡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면 함께 하자. 나와 당신의 해방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인가?
이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인간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장에서 절망하여 수동적이기보다는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는 분노를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들여지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길들이는 주체를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변해야 할 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적응을 강요당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다. 장애인의 조건에 맞게끔 사회적 참여가 보장되도록 사회가 변해야 하고, 우리가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합법화하는 시혜의 망토를 벗겨내고 그 진실을, 속셈을, 위선을 폭로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이 모든 모순, 위선, 기만, 속임수 등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장애인은 기존 사회질서와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에게 노예적 삶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해방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는 분노를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급진적인 격렬한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투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의 해결은 자본주의 일체의 모순, 즉 생산관계의 모순, 인간관계의 모순 속에서 그들의 가면을 벗겨 그들의 본색을 낱낱이 뜯어내는 실천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이 땅에는 450만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만나거나 접촉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자원봉사 등의 특별한 노력(?)이나, 장애인의 날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장애문제에 대하여 접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땅에는 450만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결코 적은 인구는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인가? 450만의 장애인은 과연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IMF로 인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으로 비장애인 실업률이 급상승하여 많은 노동자, 민중들의 삶이 생존의 기로에 내몰릴 때, 실업률이 10%를 육박한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장애인은 IMF 이전에도 장애인 실업률 27.4%였고, IMF 이전에 비장애인 실업률 2-3%에 비하면 10배에 달하는 살인적 실업상태에 처해 있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은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다수의 장애인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노동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결국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자신의 삶을 평생 살아가야 할 장애인의 절망은 분명 '지옥같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b>솜방망이 장애인 고용정책</b>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지도 10년의 세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정부나 기업이 여전히 현행 장애인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0대그룹의 장애인 고용율이 0.53%로 나타났다. 이것은 현행 장애인의무고용율 2%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며, 장애인의무고용의무사업체의 평균치 0.91%보다 밑도는 것이다. 또한 국정감사에서는 장애인고용의무사업 1,925개 중 22.7%에 이르는 438개 업체가 장애인 고용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장애인의 직접고용을 꺼리며 차라리 부담금 납부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 장애인 고용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거나 노골적으로 기피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더욱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가진 장애인을 구하기가 어렵다거나, 장애인적합직무 부재 등을 핑계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만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장애인 고용정책이 이 자본의 사회에서 얼마나 솜방망이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에 솜방망이인 장애인고용촉진법이 부메랑처럼 기만적인 칼날이 되어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고용이 '자선과 시혜', '사랑과 봉사'에 기반하여 '기업주'를 사랑의 천사로 미화시킨다고 해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요, 장애인에게 자본의 속성을 미화시키는 기만일 뿐이다.
<b>장애인이 외출 한번 하기도 힘든 사회</b>
장애인의 이동문제를 생각해보자. 전체 장애인구 중에서 한달에 한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16.6%, 한번 외출하는 사람이 17.3%, 2-5회 36.6%이다. 전체 장애인의 70.5%가 한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어보았는가? 이렇게 외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55.6%를 차지하는 것이 교통수단이나 편의시설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물, 도로, 교통 등 사회의 모든 활동구조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계획되고 건설된 상황에서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재가장애인은 결국 가족에 의지하거나, 자원봉사자의 도움만을 기대하면서 집안에서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하게 만들었다. 성년이 되어 자원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아 몇십년만의 외출에 감동하는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 장애인의 감동에 뿌듯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야만적인 격리를 집단적으로 구조화시켰다는 것에 분노해야 할 문제이다. 바로 사회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집단적 차별과 편견으로 장애인을 창살없는 사회감옥 속에 수감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구조화된 사회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을 지난하게 요구해왔으며, 마침내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당당한 권리임을 제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마련된 형식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빈껍데기였을 뿐 그 내용은 공식적인 편의시설설치기준의 미비, 전시적인 행정과 무책임, 장애인의 요구가 배제되고 자본의 논리만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수많은 사고를 겪어야 했다. 1999년 6월 혜화역에서 노들장애인야학의 이규식씨가 장애인용리프트에서 추락해 전치2주의 사고를 당하였고, 1999년 10월에도 이흥호씨가 천호역에서 리프트가 부러져 추락할 뻔한 사고를 겪었다. 이들 사고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관련당국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마침내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전 또하나의 추락사건이 발생했다. 1월 22일 오전 11시 15분경, 고재영(75세)씨와 박소엽(72세, 지체장애3급)씨 노부부가 순천에서 설 연휴를 지내기 위해 역귀성하였다. 이들부부가 막내 아들 집에서 머물다 큰 아들네로 가기 위해 오이도역에 있는 장애인용 수직형리프트를 타고 역사로 올라가던 순간, 수직형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면서 5m 정도 추락했고 고재영씨는 두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박소엽씨는 하혈을 하다가 인천 길병원에서 치료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자본의 논리에 의하여 이다지도 무참히 무시될 수 있단 말인가? 이동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바로 야만의 사회이다.
<b>장애인이면 대학도 못가는 사회</b>
장애인의 교육문제를 보면 장애인에 대한 야만적인 차별이 상식으로 만연되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에게 '교육'이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인격체로서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이며, 사회적 합의이다. 그래서 헌법 31조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기본법 제4조(교육의 기회균등)에도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다시 한번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교육받을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당당한 권리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장애인들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에서도 소외되어왔다. 그리고 교육받지 못한 이유가 마치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장애인의 32%가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구조적으로 차별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많은 장애인들이 정규교육과 검정고시 등을 통하여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일부 대학으로부터 자신의 성적과 수학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서조차 넣지 못하거나 불합격처리되었다.
청주대 음악교육과에 편입학원서를 넣기 위해 방문했던 시각장애인 황선경(28)씨는 끝내 입학원서를 접수시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학교측이 "시각장애인을 받아들일 시설과 운영상의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로 원서접수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서주현(25)씨 역시 서원대측에 의해 원서접수를 거부당했다. 서원대 측은 "제3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정도의 장애인만 받는다"며 문전박대하였다. 건국대학교에 지원했던 지체장애 1급 남미영씨 역시 "지체 3등급 이상의 중증 장애인은 받을 수 없다"는 건국대학교의 입학요강에 의해 원서조차 넣지 못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무참히 짓밟혔다. '장애' 때문에 대학마저 갈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b>보호시설에서까지 유린당하는 장애인의 인권</b>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을 보호한다고 정부예산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의 인권은 어떠한가.
1996년 11월 27일 새벽 5시. 평택에서 일어난 에바다투쟁은 에바다학교의 농아학생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일어났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의 전형적인 사건이었으며 의문사, 인신매매, 수십억대에 이르는 예산과 후원금횡령, 성폭력, 미군성범죄 등 대표적 장애인 시설비리로 알려진 평택 에바다복지회 사건은 최성창 일가와 김선기 평택시장의 지역토착세력이 결탁한 부정부패의 대표사례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의 복지라는 허울 속에서, 보호되어 있는 시설장애인조차도 착취와 인권유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강요된 절망으로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없구나 없구나/ 스물일곱 이 한목숨/ 밥벌 자리 하나 없구나'라고 한 시인의 절규처럼 자신의 목숨밥 벌 자리 하나 없이 아무리 자신의 노동을 바겐세일로 바쳐도 수많은 장애인은 여전히 실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길거리는 온통 쇠창살이며,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교육을 장애라는 이유로 소외당해야 했던 쓰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장애가 심해서 수용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시설비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라는 이유로 노동, 교육, 이동, 인권 등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졌기에, 장애인은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배제되어 격리된 채 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b>장애인들이 이 땅에 살기 위하여</b>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장애인과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이 사회는 장애인과 진정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는가? 수많은 장애인에게 죽음과 사회적 차별을 자행하는 사회는 이 물음에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하고, 대답에 상응하는 실천으로 지금까지 장애인이 받아온 죽음같은 사회적 차별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의 문제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장애인 문제를 풀어가는 현장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장애인에 대한 단순한 도움으로만 바라본다면 서로에게 왜곡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면 함께 하자. 나와 당신의 해방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인가?
이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인간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현장에서 절망하여 수동적이기보다는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는 분노를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들여지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길들이는 주체를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변해야 할 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적응을 강요당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다. 장애인의 조건에 맞게끔 사회적 참여가 보장되도록 사회가 변해야 하고, 우리가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합법화하는 시혜의 망토를 벗겨내고 그 진실을, 속셈을, 위선을 폭로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이 모든 모순, 위선, 기만, 속임수 등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장애인은 기존 사회질서와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에게 노예적 삶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해방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는 분노를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급진적인 격렬한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투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의 해결은 자본주의 일체의 모순, 즉 생산관계의 모순, 인간관계의 모순 속에서 그들의 가면을 벗겨 그들의 본색을 낱낱이 뜯어내는 실천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