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기대하며
<b>실업자노동조합 가능성 열려</b>
지난 1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여성노조(위원장 정양희)의 설립신고를 서울시가 '구직중인 실업노동자 셋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반려한 것은 부당하다"며 "구직 중인 실업노동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999년, 공공근로에 참여하던 실업노동자들이 공공근로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 설립에 실패한 이후 실업자노조와 관련한 오랜만의 낭보였다. 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노조법의 목적이 단결권 보장에 있음을 주목하면서 "현실적 근로제공이나 특정 사용자에의 종속여부와는 무관하게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 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그 범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분명 실업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의 권리가 있고, 독자적인 노동조합 추진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b>아쉬움과 반가움의 이중주</b>
사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지역노조 형태인 서울여성노조의 설립신고 내용에 실업자가 포함되어도 되는가의 여부였다. 1999년 초부터 실업자노조라는 조직형태에 주목해온 실업팀으로서는, 한편으로 실업자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이러한 판결을 얻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판결을 근거로 실업자만의 독자노조 설립을 추진하였을 경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도 다소 불확실하지만, 법리적 해석에 의해서라도 실업자노조의 맹아를 다시 찾아보게 된 것이 무척 반갑게 여겨졌다.
지난 1998년의 노사정위 합의 과정에서 실업자에게도 노조원 자격을 주기로 하였지만 정부와 국회에 이를 뒷받침할 후속 입법안을 만들지 않았고, 민주노총마저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아쉬움과 반가움의 이중주는 더욱 아련하다.
우리가 처음 실업노동자들의 문제에 착목하면서 그 운동의 대안적, 최종적 형태를 '실업자노조'로 결론지었던 이유는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실업노동자 대중의 '자주성'과 '연대성'을 실현시키기에 가장 좋은 조직형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IMF 이후 대량실업 양상의 일부분이 대규모 공장의 정리해고 등 기존 노동조합과 가까운 부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부위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역할과 책무가 크다고 판단되었다. 하기에, 노동조합의 형태로 실업운동이 성장하여 현존하는 노동조합들과 결합하여 사회적인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실업운동의 부침과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실업의 문제는 저소득·장기실업자의 문제로 축소되어서 받아들여졌고, 상당수 실업(운동)단체들이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등의 후원사업과 자활사업, 공공근로 민간위탁 등의 사업에만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업노동자 대중은 실업단체를 매개로 하여 정부나 민간의 급여를 제공받는 대상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초기에 가졌던 정치적 지향의 운동성이나 사회적 불만 세력으로의 응집력 등은 점차 약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보수화나 우경화라기보다는 생활상의 문제에 봉착한 실업자 대중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이들에 대한 정서적 밀착 속에서 실업단체들이 현실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보여진다. 즉, 장기적인 전망속에서 맹아적 조직을 키워나가기에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 팍팍했던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운동 진영은, 당면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앞에서 자기 조직에서 밀려나가는 조합원을 추스리기에도 바빴다. 결국 비정규직·일용직에서 밀려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조직적 역량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b>다시 실업자노조를 생각하며</b>
이번 행정법원 판결을 전해들으며 다시한번 우리의 대안이었던 '실업자노조'를 생각해 본다. 과연 실업자노조가 최종적 형태여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옳았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지. 아직까지 유효한 하나의 해답은 실업운동이 실업노동자의 '자주성'과 '연대성'에 기초한 그들 자신들의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가능한 맹아들을 찾아서 그 곳에 복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지역노조들의 규약을 개정해 실업자를 조합원 대상에 포함하는 등 실업노동자들을 적극 조직해나간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지난 경험상 얼마나 현실화될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관성화된 조직운영과 조직화 방침에 각성을 촉구하는 촉매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실업운동 내부에서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실업노동자들에게도 가능한 조직형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실업운동의 현 단계에서 하나의 조직형태를 고집하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열린 관점으로 실업운동을 바라보는 일이다. 저소득·장기실업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구조화시키기는 사회적 요인들을 정확히 바라보며 그것에 대항하는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늘어가는 청년실업, 여성실업 등 점차 복잡해지는 실업노동자 대중을 어떻게 다양한 층위에서 포섭할 것이가? 그리고 자기 생활상의 문제와 사회·정치적 문제가 맞닥뜨려 있음을 어떻게 깨닫게 할 것인가? 나아가 어떤 것에 대항하여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도록 할 것인가? 실업운동의 과제는 지난하기만 하다.
지난 1월 16일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여성노조(위원장 정양희)의 설립신고를 서울시가 '구직중인 실업노동자 셋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반려한 것은 부당하다"며 "구직 중인 실업노동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999년, 공공근로에 참여하던 실업노동자들이 공공근로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 설립에 실패한 이후 실업자노조와 관련한 오랜만의 낭보였다. 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노조법의 목적이 단결권 보장에 있음을 주목하면서 "현실적 근로제공이나 특정 사용자에의 종속여부와는 무관하게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 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그 범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분명 실업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의 권리가 있고, 독자적인 노동조합 추진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b>아쉬움과 반가움의 이중주</b>
사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지역노조 형태인 서울여성노조의 설립신고 내용에 실업자가 포함되어도 되는가의 여부였다. 1999년 초부터 실업자노조라는 조직형태에 주목해온 실업팀으로서는, 한편으로 실업자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이러한 판결을 얻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판결을 근거로 실업자만의 독자노조 설립을 추진하였을 경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도 다소 불확실하지만, 법리적 해석에 의해서라도 실업자노조의 맹아를 다시 찾아보게 된 것이 무척 반갑게 여겨졌다.
지난 1998년의 노사정위 합의 과정에서 실업자에게도 노조원 자격을 주기로 하였지만 정부와 국회에 이를 뒷받침할 후속 입법안을 만들지 않았고, 민주노총마저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아쉬움과 반가움의 이중주는 더욱 아련하다.
우리가 처음 실업노동자들의 문제에 착목하면서 그 운동의 대안적, 최종적 형태를 '실업자노조'로 결론지었던 이유는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실업노동자 대중의 '자주성'과 '연대성'을 실현시키기에 가장 좋은 조직형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IMF 이후 대량실업 양상의 일부분이 대규모 공장의 정리해고 등 기존 노동조합과 가까운 부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부위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역할과 책무가 크다고 판단되었다. 하기에, 노동조합의 형태로 실업운동이 성장하여 현존하는 노동조합들과 결합하여 사회적인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실업운동의 부침과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실업의 문제는 저소득·장기실업자의 문제로 축소되어서 받아들여졌고, 상당수 실업(운동)단체들이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등의 후원사업과 자활사업, 공공근로 민간위탁 등의 사업에만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업노동자 대중은 실업단체를 매개로 하여 정부나 민간의 급여를 제공받는 대상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초기에 가졌던 정치적 지향의 운동성이나 사회적 불만 세력으로의 응집력 등은 점차 약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보수화나 우경화라기보다는 생활상의 문제에 봉착한 실업자 대중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이들에 대한 정서적 밀착 속에서 실업단체들이 현실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보여진다. 즉, 장기적인 전망속에서 맹아적 조직을 키워나가기에는 눈 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 팍팍했던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운동 진영은, 당면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앞에서 자기 조직에서 밀려나가는 조합원을 추스리기에도 바빴다. 결국 비정규직·일용직에서 밀려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조직적 역량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b>다시 실업자노조를 생각하며</b>
이번 행정법원 판결을 전해들으며 다시한번 우리의 대안이었던 '실업자노조'를 생각해 본다. 과연 실업자노조가 최종적 형태여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옳았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지. 아직까지 유효한 하나의 해답은 실업운동이 실업노동자의 '자주성'과 '연대성'에 기초한 그들 자신들의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가능한 맹아들을 찾아서 그 곳에 복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지역노조들의 규약을 개정해 실업자를 조합원 대상에 포함하는 등 실업노동자들을 적극 조직해나간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지난 경험상 얼마나 현실화될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적어도 관성화된 조직운영과 조직화 방침에 각성을 촉구하는 촉매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실업운동 내부에서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실업노동자들에게도 가능한 조직형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실업운동의 현 단계에서 하나의 조직형태를 고집하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열린 관점으로 실업운동을 바라보는 일이다. 저소득·장기실업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구조화시키기는 사회적 요인들을 정확히 바라보며 그것에 대항하는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늘어가는 청년실업, 여성실업 등 점차 복잡해지는 실업노동자 대중을 어떻게 다양한 층위에서 포섭할 것이가? 그리고 자기 생활상의 문제와 사회·정치적 문제가 맞닥뜨려 있음을 어떻게 깨닫게 할 것인가? 나아가 어떤 것에 대항하여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도록 할 것인가? 실업운동의 과제는 지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