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고조, 이론의 정체, 변혁의 난망 - 진보적 구조개혁-민주적 사회주의론을 비판한다
과학적 이론은 임금, 물가, 그리고 생산만큼이나 경기변동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특히 경제학 이론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홀거 하이데, 1998, 한국경제-축적양식의 위기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글(「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와 계급투쟁」p 252)에서 제임스 페트라스는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적 현상 또한 과거의 정치경제적 체제와 마찬가지로 자체의 모순에 의해 발생기, 고착기, 쇠퇴기라는 상이한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또한 각각의 단계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매번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으며, 이러한 저항은 특히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표출되는 마지막 시기에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된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전적으로 동일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 또한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의 심화과정을 볼 수 있다. 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남한 내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도입은 곧바로 강력한 민중의 반발에 부딪혔으며, 1, 2차 구조조정을 통한 신자유주의 체제 고착화의 시도는 금융화, 노동유연화의 과정 속에서 독점자본 중심의 대외종속적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사회의 전 영역에서 민중의 자생적 투쟁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이러한 투쟁을 이행의 정치로 전화시키기 위한 강령적 수준의 대안적 모델 또한 제출되고 있다. 경제주권 수호를 중심으로 한 민족자립경제론은 꽤 오래 전에 제출된 상태이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노동자의 기업통제와 금융시장 통제를 요구하는 진보적 구조개혁론 그리고 과도강령 등 다수의 대안적 경제모델들이 제기되고 있다. 제기된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IMF외환위기 초기에 논쟁되었던 경제위기의 성격과 극복과정에 대한 논의에 기반해 있다. 경제위기의 발발원인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 그리고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는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양상을 분석하고 이에 즉자적인 대안을 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모순 특히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편향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가령 케인주의적인 총수요진작이나 내수진작이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양 또는 최소한의 불황완화 정책인양 선전하는 것은 경제현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현재의 위기인식에 대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동당 장상환 정책위원장에 의해 제출되고 있는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적 사회주의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 편향을 정정해 나가고자 한다. 이하에서 분석대상으로 삼는 글은 다음과 같다.
장상환, 2000, 「채만수씨의 ‘민주노동당 강령비판’에 대한 반론: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비판」, 『진보정치』 창간호
장상환, 2001, 「민주적 사회주의론」, 『동향과 전망』 2001년 여름호
장상환, 2001, 「최근의 경제위기와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노동당 정책포럼 2001. 9. 7.
논리의 출발: 역사적 ‘오류’에 대한 분석
장상환 정책위원장의 구상에서 ‘진보적 구조개혁’은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극복, 평등사회 실현으로 가기 위한 당면한 전략적 과제”로 ‘민주적 사회주의’는 이행의 최종적 상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적 사회주의론’을 구성하는 이론적 지주(支柱)는 “기존 이념인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며, 집권전략은 맑스와 레닌의 이론이 가능할 수 있었던 역사적 조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제시된다. 따라서, 그의 논리적 구성물의 전체 상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가 우회하여 걸었던 길을 다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국가적 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 국유화”를 지탱하기 위한 “계획에 의한 경제 조정“으로 “위로부터 강요되는 스탈린식 통치”를 야기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반성은 “구조적 비효율성”의 문제를 국유화와 계획에 필연적인 문제로 강조하게 된다. 또한, 유고슬라비아의 경험에서 나타났던 노동자 자주관리는 “(개별) 기업의 완전한 자립화, 분권화” 속에서 “무정부주의적 사회관리에서 오는 병폐”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소득의 향상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 과열,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인상”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방향의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은 모두 “경제적 분업이 고도화된 뒤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내적 모순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행에 있어서도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란 우선 마르크스에게는 “보통선거권이 보장되지 않아 부르주아 민주주의 마저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며, 레닌에게는 “대중들이 대부분 문맹이었고, 정보매체가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던, 더군다나 의회가 존재하지 않던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시대적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혁명이론, 레닌의 혁명이론을 무매개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실천에 적용하려는 일부 민중민주파의 주장과 실천은 오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1, 2차 대전 이후 사민주의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당시 자본주의 체제가 사민주의 세력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결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이룩한 경제성장을 통해 정책 실행의 물적 토대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1950~60년대 사민주의 정책이 실패하게 된 이유는 사민주의 정당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화의 도전을 포기”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평가에 따라 장상환 위원장의 논리적 귀결은 다음과 정리된다. 1. 새로운 사회로의 실험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2.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완전한 자립화, 분권화를 사회적 조절로 통제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인상을 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완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필연적인 구조적 비효율성을 노정하는 중앙집중적 계획에 의한 국유화도 대안이 될 수 없다. 국유화에 따른 관료주의의 대두는 개별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소유권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주인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3. 결국,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정책의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와 조절의 사회화를 포함한 대안이어야 한다. 4.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를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보장”되어 있고, “보통교육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대중들의 지적 수준도 크게 높아져 있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집권전략은 “합법적 대중정당”에 의한 “의회를 통한 집권”이다.
이상의 논리적 결론은 다시 전략적인 측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론’과 전술적인 수준 ‘진보적 구조개혁론’이 유기적으로 재구성된다. 민주적 사회주의론은 “사회적 소유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결합한 경제 체제로서, 효율과 안정의 달성과 노동자를 비롯한 직접 생산자들에 대한 ‘공평한 분배와 복지’(형평)의 실현을 경제정책의 목표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이 체제 하에서 모순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적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지배적인 기업형태인 민주적 참여기업은 종업원 소유를 확장함으로써 “노자 대립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주인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창의력을 증진”시키며 “노사대립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참여에 따른 경제소외 극복과 책임의식 강화로 효율과 생산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덧붙여, “사회적 소유”(사회기금)에 의한 소유확대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하여금 “수익성과 생산성 제고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완수에도 힘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은 존속하되 계급투쟁은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가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이며, 이 체제에서 비로소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민중의 참여로 국가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혁할 길이 열린다. 개별 기업의 소유권과 대의민주제를 기반으로 한 전 인민의 국가. 결국, 노동자의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효율과 생산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승리하는 문제만이 항구적으로 남게 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장상환 위원장은 당장에 진보적 구조개혁을 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 둘째, 소득재분배와 국가지출을 확대하여 불황을 완화하고 경기를 호전. 셋째, 금융공급 확대, 금리 인하, 사채시장의 초고금리 규제. 넷째,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소유의 사회화와 노동자 통제 확대. 다섯째, 국제적으로 국제금융자본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비판의 출발: 민주적 사회주의론의 ‘분석’의 오류
장상환 위원장이 현실 사회주의의 제 문제와 관련해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지속적인 생산력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법률적 소유관계는 무엇인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바람직한 국가의 상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그가 발견한 문제는 “현실 사회주의=관료제+국유화=부패, 비효율”이라는 것이었고, 그 극복방안은 “민주적 사회주의=노동자, 농민의 참여 강화+개별 기업에 대한 노동자 소유권 보장=효율”이라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비판을 시작한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제기되었던 제 문제의 본질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가?
1936년, 소련은 신헌법을 제정하며 ‘전 인민의 국가’라는 테제를 제출한다. 이 테제에 따르면 소련에도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지만 이들 계급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고, 소비에트 국가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계급연합, 계급동맹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국가는 이 때부터 계급자체와는 무관하며 계급의 차이를 초월해서 모두가 시민, 모두가 근로대중인 개인들과 관계하고 있다. 결국 소비에트는 전 인민의 국가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테제가 담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장상환 위원장의 분석은 ‘전 인민의 국가를 (비로소) 국유화로 등치’시켜 향후 구조적 비효율을 야기한 부패된 관료제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 인민의 국가를 국유화로 등치시킨 것이 아니라 ‘국유화를 전 인민의 국가로 등치’시켰다는데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 하에서 현존하는 계급간 모순의 적대성을 폐기하여 새로운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동결시켰다.
그런데 장상환 위원장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 체체 문제를 이 같이 뒤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 역시 실상 전 인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에게 있어 전 인민의 국가, 계급투쟁의 종식을 선언하게 한 것은 소유관계의 법률적 형태인 국유화의 달성이었다. 민주적 사회주의론 역시 마찬가지로 소유관계와 관련한 다른 유형의 법률적 형태 즉, 종업원 지주제에 의한 개별기업에 대한 노동자 소유확대와 경영참가, 그리고 사회기금을 통한 사회적 소유의 확장으로 달성된 민주적 참여기업을 통해 전 인민의 국가, 계급투쟁의 종식을 선언하게 된다. 둘 모두에게 개인간 갈등은 이제 특정한 국가 기관(‘경제정책위원회’)을 통해 화해가 가능해지고, 펼쳐진 미래에는 단지 생산력 수준의 지속적 발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즉, 역사의 원동력은 생산력의 발전이고 계급투쟁은 생산력 발전의 결과 또는 표현에 불과하다. 이러한 고찰에서 우리는 그의 문제의식에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발견한다. 경제주의와 법 이데올로기(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는 비단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먼 미래의 상에 대한 소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구조개혁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위기의 구조적 성격과 그 안에서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노동 관계, 착취의 재생산을 위한 사회 전체의 조직화를 수행하는 국가기능 등에 대한 분석은 공백 속에 위치한다. 그 결과 생산물의 분배 등 경제위기에 대한 현상적인 요인만을 문제삼는다. 또한,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적대적 모순에 대해 중립적이고 그 속에서 계급간 화해가 가능한 것으로 물신화하는 ‘법 이데올로기’와 이러한 법의 효과적인 실현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의지가 국가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주의와 법 이데올로기의 두 조합은 진보적 구조개혁의 정치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모델 즉, 권력장악의 모델(선거를 통한 집권), 경제 모델(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국가 모델(집중에서 분권으로의 전환)을 집착케 하고, 이 모델의 장점과 실행가능성을 현재 조건에서 선전한다. 하지만, 이 모델은 조건과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선전’해야 할 ‘장점’을 실용적으로, 수세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결국 위기의 심화와 함께 더욱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내용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당의 선거용 이슈는 점점 더 괴리를 나타낸다. 그 결과 위기의 본질과 이행의 전략에 대해 아무런 지침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현상에 열을 올리며 지배분파도 수용가능한 몇 가지 선거용 이슈로서 법률 제정이나 제도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이 모든 시도가 가져오는 결과는 이행을 위한 대중정치의 난망(難望)이다. 우리는 그의 분석에서 정치의 새로운 실천을 가능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주체적 조건인 끊임없이 분화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내적 구심력 형성의 문제도 이러한 정치의 구체적 실현으로서의 계급동맹의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 아래의 글에서 우리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과정을 마련키 위한 진보적 구조개혁 내에서 이러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지 자세히 살피도록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하기 위해 장상환 위원장이 각 글에서 산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구체적 방식을 정리해 보면 다음의 두 가지가 발견된다. 첫째, ‘‘재벌정리(해체)특별법’을 도입, 이 법을 근거로 ‘총수 일족의 지분에 대한 강제 유상환수’(「민주적 사회주의론」). 둘째, 예금부분보장의 5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하향조정(「진보적 구조개혁」)이다.
부실은 전적으로 자본의 책임이다. 따라서 재벌체제 하에서 그리고 그에 의한 구조적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 민중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부실경영을 가져온 재벌총수들의 퇴진과 그들의 주식을 기업과 사회에 환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은 여전히 놓쳐서는 안될 주요한 투쟁의 고리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첫째, 환수와 관련한 그의 접근 방식에는 법의 합리적 개선과 그렇게 개선된 계급 중립적인 법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집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법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 이미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법’을 통해 재벌 총수의 지분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있고,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법’을 통해 환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현재 몰수는커녕, 자본분파에 의한 각종 비리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인가. 예금보장제도의 한도가 너무 높아서? 재벌총수의 지분제한과 부당취득 한 자산 환수의 법적 집행력이 낮아서? 질문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기될 경우 해답은 단지 ‘법 집행의 기술적 능력의 문제’로 국한되고, 이를 위한 민중적 실천의 문제는 닫아버린 채, 단지 그 실행을 담당할 정당의 의석확보의 문제로 변질된다. 환수의 방법으로는 「재벌정리(해체) 특별조치법」의 도입이 유일하고, 이마저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였을 때 가능한 일”로 제한하고 있으니 환수의 ‘절박함’과 ‘당위’에 비해 그 ‘실현’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결국 장상환 위원장 식의 ‘환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 활동에 철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자본가들에게 단지 일시적인 ‘부담’을 주는 것일 뿐이다.
둘째, 그는 환수의 대상을 단지 부실을 야기한 재벌총수와 그 일파, 과도한(?) 이자 소득을 취하는 자산가로 한정지음으로써, 실상 케인즈가 언급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와 동일한 관점을 취한다. 결국 이것은 현재 부실과 위기를 야기하는 자본운동의 내적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다. ‘환수(몰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지 못한 실패한(!) 자본가에 대한 ‘응징’의 수단이 아니라면 부실의 문제는 비단 개별 기업가의 문제로 국한되는 우연적인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부실은 신식민지적 종속적 축적구조상 발생하는 독점의 문제이며, 자본활동의 기생성과 부후성에 관련된 구조적 문제이다. 따라서 독점의 해체에 대한 민중적 표현이 바로 환수 또는 몰수인 것이다. 때문에 ‘환수’의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대한 대중투쟁의 과정 속에서 생산의 재조직화의 문제로 보다 공세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단지 ‘현실성’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의 일부 분배물만을 중심으로 ‘환수’를 제기할 경우, 자본의 해외이탈만 야기할 뿐이며 ‘환수’가 가지는 정치경제학적, 실천적 함의는 더욱 희석될 뿐이다.
부채의 출자전환과 주식소유를 통한 노동자 경영참가
장상환 위원장은 현재 기업이 안고 있는 부실처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 과대대출을 출자전환하여 기업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되 총수 등 실패한 경영자를 축출하고 지배적인 주식지분을 노동자가 공동으로 보유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적자금 활용문제로 이어진다. 즉, 그는 출자전환된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서 공적자금을 노동자 투자기금으로 투입할 것을 주장한다. 이 주장의 배후에는 노동자 주식소유 확대를 통해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법률적 계기를 마련하고,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이루어지면 노동의욕을 고취시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은 당장 공기업화를 추진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서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강화하여 현재 부실정리의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시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어떠한 방식의 부채의 출자전환으로도 현재의 위기국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더 큰 진실이 있다.
불황의 상황에서 부채의 출자전환이 선전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를 즉각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기업의 추가자금 조달을 보다 용이하게 하고, 추가적 자금조달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활동을 지속케 한다. 하지만, 기업의 대차대조표상 부실의 구성이 변화한다고 해서 부실의 본질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부채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은행과 주식시장의 기대가 상이하거나, 출자전환을 제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은행 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투자자들 또한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회의를 분명히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전자는 실현되기 어렵다.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의 부실처리 문제를 맡긴다는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부채의 출자전환이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산업은행 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부실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불황의 상황에서 정부 지원 또한 재정부담등의 이유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998년 말 총 60.2조원의 부실채권 규모는 2000년 말 60.2조 원으로 전혀 줄어들지 않게 되었다 삼성경제 연구소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97년 11월 이후 투입된 총 148.3조원의 공적자금 중 자산관리공사를 통한 부실채권 매입에는 총 38.4조원이, 출자에는 총 56.9조원이 투입되었다. 그 중 부실채권 매각에 의한 회수액은 24.2조원으로 이는 투입액 대비 63%에 해당하고, 주식매각에 의한 출자 회수액은 단지 2.94조원으로 이는 투입액 대비 5%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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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실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구조의 문제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축적 과정상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한 현재 자본이 투기적 행위로 위기의 상황에서 생존코자 하는 것도 단지 그들의 선험적 계급성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축적 과정상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결국, 장상환 위원장이 주장하는 부채의 출자전환이란 부채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시장도,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국가권력도 아닌 새로운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국가권력과 개별 기업의 노동자들이 떠맡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을 소유하게 되면 이러한 부실을 해결할 수 있는가? 노동자 기업소유에 관한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재벌해체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고민을 ‘사회화’의 실질적인 방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살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같이 사회화를 법제도의 마련으로, 더구나 이러한 법제도가 도달하는 최종 지점이 개별기업 차원으로 국한될 경우,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대안 대신 개별화를 추동하고 나아가 진정한 사회화와 계획적인 조절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시장의 무정부성을 승인하며 금융화라는 자본의 미래에 노동자 계급을 더욱 종속시키는 방식이 될 위험 또한 크다. 무엇보다도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화를 국가권력 자체에 대한 민중권력의 도전과 그 과정에서 전체 민중의 요구를 결집시키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금융팽창 국면에서 주식소유자 그룹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의 구심점을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히려 노동자들로 하여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에 의한 생산의 조직화의 현재적 경향에 대항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해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체적 조건인 새로운 사회적 의식성과 주체성을 통일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을 어렵게 하는 ‘덫’으로 기능하기 쉽다. 더욱이 개별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재적 제한성을 고려했을 때 주식소유를 통한 기업별 단결의 강화는 사회화의 진정한 실현을 더욱 난망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개별기업의 임노동자들이 조합에 귀속된 주식의 투자활동을 놓고 ‘노동계급’이라는 집단적 주체로 호명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노동자에 의한 개별 기업의 주식소유 확대, 경영참가 확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본축적의 내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게 되며(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층 강화될 수도 있다) 부실은 여전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는 부채가 출자전환 되어도,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도 부실이 야기되는 내적 구조는 변화하지 않는다. 또한, 주식소유 확장을 통해 노동자 경영참가가 확대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단지 법률적 관계의 변형을 통해 부실의 책임을 개별 기업의 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이전시킬 뿐이며, 부실양산의 구조적 측면을 은폐하고 책임관계를 왜곡해 현실적으로 부실과 파탄을 둘러싼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어렵게 하는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적자금의 처리, 노동자의 경영참가 등의 문제가 협소한 부르주아적 관점에 국한된 채 제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혈세이니, 우리의 투자기금으로 조성해야 한다, 우리도 이제 너희와 동등한(혹은 더 많은) 주식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으니 경영에 참가하겠다‘는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바로 그러한 협소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발로이다. 국가의 모든 활동은 안정적인 자본활동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전체를 조직화하는 과정으로, 이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는 이미 개별 기업에 대한 주식소유 이전에 충분한 당위를 확보하고 있다. 개별 기업에 있어서도, 지배분파의 사보타지를 막기 위한, 또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사수하기 위한 노동자의 개입은 법적 소유권에 의한 권리 실현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 전체의 보편적 이해 속에서 직접적 요구 관철을 위한 투쟁의 문제로 제출되어야 한다.
소득재분배와 국가지출 확대에 의한 불황 완화, 경기 호전
장상환 위원장은 8.10 여야 경제정책 협의에서 결정된 경기부양책의 내용을 ‘제한적’이라고 비판하고, 세제 개편과 사회보장 지출 확대 등을 통해 소득 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보다 확장된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조원 이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정부는 10조원의 재정지출을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고,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교육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주거비 안정을 통하여 임금인상 압력을 둔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교육연구개발 투자는 “중국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큰 산업의 잠재력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구조개혁과 경제회생에 소요되는 재정자금의 마련을 위해 간접세 중심에서 직접세 중심으로 세제를 개혁해야 하고, 주식․채권 양도차익에 대한 조세징수를 포함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도입해 재원의 대부분이 재산소유자들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기적 확장정책은 그 방향에 따라서 노동자 계급에게 한계적이나마 일정한 도움을 준다. 더구나 지배분파가 겉으로는 국가개입의 축소를 주장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기존의 권리를 계속 약탈해 가는 한편, 실제로는 국내 독점자본,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계속 증가시키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삶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단기적 확장정책을 사용할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투쟁은 더욱 절실히 요구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 확장정책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그것이 이행의 중장기적 전략 속에서 제기되었을 때에만 최소한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이런 점을 결여했고 잘 못된 위기 인식에 기반하여 잘 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자본주의는 고도성장을 통하여 공급능력은 이미 초과상태이며, 경제성장이 공급측 요인보다는 국내소비와 투자, 해외수출수요 등 수요측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으므로 소득분배의 개선은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국면(진보적 구조개혁 p 7)”이라는 그의 규정은 이른바 과소소비설에 불과하며 그 대안으로 케인즈주의적 소비진작을 외치고 있다. 이것 그 자체가 현재의 위기를 잘 못 인식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케인즈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입론에 기반한 정책이 유효할 수 없음은 정운찬 교수의 개혁적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자신이 입증하고 있다. “케인즈주의의 한계는 1970년대 초반 이후의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보장하지 못한 것이다. ... 케인즈주의적 수요 위주의 처방을 한 결과 물가인상과 경기불황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만 초래한 것이다. ...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하에서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 하에서는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조차도 실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적 사회주의론 p 21)” 더욱이,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현실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케인즈주의적 확장정책은 불황을 타개하지 못할뿐더러,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또한, 대외종속적이면서도 독점적인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가령 중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산업의 잠재력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 투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편에서는 국가주의의 발로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대외종속적 경제구조로 인해 야기된 위기를 바라보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 문제는 수출정책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한국의 수출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한국의 수출문제는 ”수출산업의 생산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과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으로 집약”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조기술과 신소재를 개발하고,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컨설팅, 금융, 유통 등 생산적 서비스업 발전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의해 위협받는 산업의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부분이며 이는 재벌에 의해 장악되어 있음을 잘 아는 장상환 위원장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재벌을 중심으로 현재의 산업이 고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재벌체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한국경제의 문제에서 재벌체제라는 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문제삼고 있을 뿐 재벌체제가 보여주는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적 독점적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재벌해체의 대안으로 노동자 기업소유로, 경기회복에 대해서는 경제주의적 처방들로 이 문제를 대체시켜 버린다.
종속과 독점에 대한 고민 없는 재벌해체, 국가경쟁력 강화의 한 쪽 날개로 날아가는 경기부양은 날아가는 거리만큼 모순이 심화되어 더욱 큰 충격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경기는 반전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남한경제 자체의 동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대외종속적인 남한 경제에서 이는 세계경제의 조건에 일차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 전체의 위기가 계속 고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불황 탈출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기가 반등되어도, 이것은 단기적일 뿐 파국으로의 치닫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 운동 진영에서 제출해야 하는 것은 경기가 반등될 수 있다는, 위기가 관리될 수 있다는 허상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해결불가능성에 대한 폭로일 수밖에 없다.
금융공급 확대, 금리 인하, 사채시장의 초고금리 규제
장상환 위원장은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과 은행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은행이 기업경영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와 같은 불황의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소득재분배 효과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타의 내용에 비해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경제위기의 지속과 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사채문제이다. 이를 위해 “고리사채업을 합법화시키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법안」을 즉각 폐기하고, 고리사채를 사전 예방하고 사후 구제할 수 있는 「이자제한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은행의 소유․경영구조를 사회적 형태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한다. “은행 등 핵심적 금융기관은 공적 소유가 우위에 있도록 하고, 소규모 금융기관은 연기금 등 공적 기금과 해당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투자기금이 소유하도록 해야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의 공적 소유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첫 조치로 강조되어야한다. 하지만, 이 때 공적소유, 공적 조절의 문제가 해당노동자의 투자기금 소유, 경영참가의 문제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서 기업의 노동자 통제 문제를 살펴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 극복의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독점자본 중심의 대외종속적 경제구조를 은행이라는 기관을 통해 어떻게 통제해 나갈 것인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민중적 통제를 보장하는 권력 형성의 문제, 현재 금융기관을 통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국가장치의 파괴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사고되어야 하며, 그 때라야만 금융기관의 사회화 문제는 민중전체의 보편적 요구로 제기할 수 있다.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관은 비록 그것이 해당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되더라도, 결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립적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이 관점에서 은행의 노동자 경영 참가는 이차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또한, 사채문제는 단지 “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또한 전세계적인 불황, 금융화의 과정 속에서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이윤량 확대를 통해 상쇄하고자 하는 재벌 기업들의 금융화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지원 속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올 상반기 삼성, LG, 비씨, 국민, 외환, 동양, 현대 등 7개 카드사들은 총 1조 1,789억원에 달하는 순익을 올렸고, 이는 지난 해 같은 시기보다 무려 91.3%나 성장한 수치이다. 한빛, 신한, 하나 등 19개 은행계 카드사업 분야도 올 상반기 2조 3,385억원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덧붙여, 지난 8월말 현대 캐피탈이 다이너스 카드를 인수하면서 현대그룹이 본격적으로 카드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고, SK그룹과 롯데그룹도 카드사업 진출을 확정하고 있는 상황이다.(매일경제 2001.10.19)
그 배경에는 소득공제 한도확대, 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 현금서비스 한도폐지, 카드사업 허가제 변경 등을 통한 정부의 지원과 항상적으로 유동성 위기-금융공황의 형태로 연결되고 있는 시장의 충격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재벌의 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이 존재한다. 또한, 인수, 합병 등의 직접 투자를 통해 투기적 기대를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키 위한 금융기관의 거대 금융 그룹화 경향속에서 존재한다. 결국 이런 경향과 경제위기 하에서 금융자본으로 하여금 불황 하에서 수익성 창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기업으로의 대출보다 가계로의 대출을 더욱 선호하게 하였다. 급증한 신용카드, 소매대출 수요와 대부분 담보 대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매대출의 장점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7개 일반은행의 기업대출금의 비중은 국내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97년 66.7%에서 올 상반기 56.2%로 줄어든 반면 가계대출금 비중은 부업 및 주택자금 수요 등으로 30.8%에서 40.5%로 늘어났다. ‘법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이와 같은 ‘자본활동의 내적 구조 변화’가 장상환 교수가 제시하는 오늘의 현상, 2001년 3월말 240만명에서 같은 해 6월말 272만명으로 급증한 신용불량자의 수를 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경향을 간과한 채 단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을 가지고 법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를 사후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10월 29일 금융감독원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유도 및 영업 질서 확립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골자는 업체간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낮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자본간 경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정당의 선량한 정책이 실현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진보적 구조개혁, 평화적 이행론의 허상
진보적 구조개혁론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로부터 진보적 구조개혁(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통한 평화적인 이행이 가능할 것처럼 환상을 유포하는데 있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그 집행의 주체로서 민주노동당의 수권을 전제로 하고 있고 사실상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에 한 표 던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 민중의 권력이 형성되고 진보적 구조개혁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주노동당은 민중의 투쟁과 요구에 천착해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이자제한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도입을 제시하면서 대중투쟁을 방기하였다. 그리고 언론의 관심을 끌어 합법정당의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결국 선거시기에 득표를 위한 활동으로 당력을 집중시켜 왔다. 이러한 의회주의적 또는 입법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은 상대적으로 시민운동과의 경쟁과 연대를 야기했고 스스로의 활동에서 이것을 더 유능하게 잘 하는 정당의 형태로 변모시켜 왔다. 따라서, 2001년 10․25 보선의 패배는 합법정당의 실력과 조직력의 문제도, 의회정치의 한계도, 보수정치의 장벽의 높음도, 이 결과의 근본적 원인으로 사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투쟁과정에서 합법정당은 대중투쟁을 선도하지 못하고 결합하지 못한 것에 그 책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적 구조개혁을 통한 평화적 이행 전략은 한국적 상황에 맞는 고유한 전략이 아닌 주로 유럽사민당에 의해 오래전부터 공히 추구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앞날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유럽의 사민당의 경우도 소득의 재분배, 사회복지분야로의 공공지출의 재분배, 공공부문의 강화, 그리고 구조조정에서의 자본가에 대한 비용이전 등에 주된 관심을 갖는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을 강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은 상대적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정당적 요구로 표현되면서 자유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리하여 현재의 소득분배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회적 지출을 점차 강화시켜 나아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환하였으며, 민영화된 경제체제 하에서 안정화정책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집권의 가능성이 보다 높은 정당일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하였고 유럽은 물론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몇몇 국가에서 좌파성향의 정치세력들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적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현실적으로 벌이고 있는 활동속에서 이미 그 맹아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해 케인즈주의적인 불황타개책을 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불안에 대한 대응으로는 이자제한법으로 제기하고 있고, 노동자 통제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종업원지주제와 우리사주제와 같은 주식소유를 통한 기업지배방식이라는 과제를 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인한 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평화적 이행에 성공한 경험이 없다. 남미에서와 같이 좌파정당이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다시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을 뿐이다. 때문에 그러한 의회주의적 해결의 방법은 실현가능성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 볼 수 없으며 그에 기반해 있는 진보적 구조개혁론 역시 민중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마치며
앞서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장상환 정책위원장과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이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아니며 이에 기반한 현재의 민주노동당 활동 역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정당이 직면한 주된 도전은 사회운동의 분투, 즉 자신들이 깨우치게 된 상황이 지시하는 바의 투쟁과 전략 및 전술에 대한 효과적 형태를 고안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 이 지점에서 좌파 정당은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도전에 응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와 계급투쟁」p 252)
우리는 분명 민주노동당이 현재 구조적 위기의 심화와 함께 점차 고조되고 있는 투쟁의 확산과 조직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것은 그들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대리․대표하거나, 위기를 관리해주는 그러한 역할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각 부분에서 산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대규모로 조직, 동원하고 상이한 분파들의 행동을 조율함으로써 광범위한 정치적 반발을 일구어내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발은 선거공간과 의회로의 참여를 통해 조직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더욱이 몇몇 선거용 이슈를 통해 표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반발은 그 자체 하나의 객관적인,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현실이며, 이행의 국면은 광범위한 대중투쟁의 국면일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학 이론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홀거 하이데, 1998, 한국경제-축적양식의 위기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글(「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와 계급투쟁」p 252)에서 제임스 페트라스는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적 현상 또한 과거의 정치경제적 체제와 마찬가지로 자체의 모순에 의해 발생기, 고착기, 쇠퇴기라는 상이한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또한 각각의 단계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매번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으며, 이러한 저항은 특히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표출되는 마지막 시기에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된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전적으로 동일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 또한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의 심화과정을 볼 수 있다. 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남한 내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도입은 곧바로 강력한 민중의 반발에 부딪혔으며, 1, 2차 구조조정을 통한 신자유주의 체제 고착화의 시도는 금융화, 노동유연화의 과정 속에서 독점자본 중심의 대외종속적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사회의 전 영역에서 민중의 자생적 투쟁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이러한 투쟁을 이행의 정치로 전화시키기 위한 강령적 수준의 대안적 모델 또한 제출되고 있다. 경제주권 수호를 중심으로 한 민족자립경제론은 꽤 오래 전에 제출된 상태이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노동자의 기업통제와 금융시장 통제를 요구하는 진보적 구조개혁론 그리고 과도강령 등 다수의 대안적 경제모델들이 제기되고 있다. 제기된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IMF외환위기 초기에 논쟁되었던 경제위기의 성격과 극복과정에 대한 논의에 기반해 있다. 경제위기의 발발원인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 그리고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는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양상을 분석하고 이에 즉자적인 대안을 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모순 특히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편향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가령 케인주의적인 총수요진작이나 내수진작이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양 또는 최소한의 불황완화 정책인양 선전하는 것은 경제현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현재의 위기인식에 대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동당 장상환 정책위원장에 의해 제출되고 있는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적 사회주의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 편향을 정정해 나가고자 한다. 이하에서 분석대상으로 삼는 글은 다음과 같다.
장상환, 2000, 「채만수씨의 ‘민주노동당 강령비판’에 대한 반론: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비판」, 『진보정치』 창간호
장상환, 2001, 「민주적 사회주의론」, 『동향과 전망』 2001년 여름호
장상환, 2001, 「최근의 경제위기와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노동당 정책포럼 2001. 9. 7.
논리의 출발: 역사적 ‘오류’에 대한 분석
장상환 정책위원장의 구상에서 ‘진보적 구조개혁’은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극복, 평등사회 실현으로 가기 위한 당면한 전략적 과제”로 ‘민주적 사회주의’는 이행의 최종적 상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진보적 구조개혁’, ‘민주적 사회주의론’을 구성하는 이론적 지주(支柱)는 “기존 이념인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며, 집권전략은 맑스와 레닌의 이론이 가능할 수 있었던 역사적 조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제시된다. 따라서, 그의 논리적 구성물의 전체 상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가 우회하여 걸었던 길을 다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국가적 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 국유화”를 지탱하기 위한 “계획에 의한 경제 조정“으로 “위로부터 강요되는 스탈린식 통치”를 야기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반성은 “구조적 비효율성”의 문제를 국유화와 계획에 필연적인 문제로 강조하게 된다. 또한, 유고슬라비아의 경험에서 나타났던 노동자 자주관리는 “(개별) 기업의 완전한 자립화, 분권화” 속에서 “무정부주의적 사회관리에서 오는 병폐”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소득의 향상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 과열,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인상”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방향의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은 모두 “경제적 분업이 고도화된 뒤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내적 모순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행에 있어서도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란 우선 마르크스에게는 “보통선거권이 보장되지 않아 부르주아 민주주의 마저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며, 레닌에게는 “대중들이 대부분 문맹이었고, 정보매체가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던, 더군다나 의회가 존재하지 않던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시대적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혁명이론, 레닌의 혁명이론을 무매개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실천에 적용하려는 일부 민중민주파의 주장과 실천은 오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1, 2차 대전 이후 사민주의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당시 자본주의 체제가 사민주의 세력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결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이룩한 경제성장을 통해 정책 실행의 물적 토대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1950~60년대 사민주의 정책이 실패하게 된 이유는 사민주의 정당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화의 도전을 포기”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평가에 따라 장상환 위원장의 논리적 귀결은 다음과 정리된다. 1. 새로운 사회로의 실험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2.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완전한 자립화, 분권화를 사회적 조절로 통제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인상을 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완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필연적인 구조적 비효율성을 노정하는 중앙집중적 계획에 의한 국유화도 대안이 될 수 없다. 국유화에 따른 관료주의의 대두는 개별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소유권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주인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3. 결국,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정책의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와 조절의 사회화를 포함한 대안이어야 한다. 4.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를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보장”되어 있고, “보통교육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대중들의 지적 수준도 크게 높아져 있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집권전략은 “합법적 대중정당”에 의한 “의회를 통한 집권”이다.
이상의 논리적 결론은 다시 전략적인 측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론’과 전술적인 수준 ‘진보적 구조개혁론’이 유기적으로 재구성된다. 민주적 사회주의론은 “사회적 소유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결합한 경제 체제로서, 효율과 안정의 달성과 노동자를 비롯한 직접 생산자들에 대한 ‘공평한 분배와 복지’(형평)의 실현을 경제정책의 목표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이 체제 하에서 모순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적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지배적인 기업형태인 민주적 참여기업은 종업원 소유를 확장함으로써 “노자 대립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주인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창의력을 증진”시키며 “노사대립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참여에 따른 경제소외 극복과 책임의식 강화로 효율과 생산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덧붙여, “사회적 소유”(사회기금)에 의한 소유확대는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하여금 “수익성과 생산성 제고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완수에도 힘쓰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은 존속하되 계급투쟁은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가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이며, 이 체제에서 비로소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민중의 참여로 국가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혁할 길이 열린다. 개별 기업의 소유권과 대의민주제를 기반으로 한 전 인민의 국가. 결국, 노동자의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효율과 생산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생산력 경쟁에서 승리하는 문제만이 항구적으로 남게 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장상환 위원장은 당장에 진보적 구조개혁을 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 둘째, 소득재분배와 국가지출을 확대하여 불황을 완화하고 경기를 호전. 셋째, 금융공급 확대, 금리 인하, 사채시장의 초고금리 규제. 넷째,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소유의 사회화와 노동자 통제 확대. 다섯째, 국제적으로 국제금융자본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비판의 출발: 민주적 사회주의론의 ‘분석’의 오류
장상환 위원장이 현실 사회주의의 제 문제와 관련해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지속적인 생산력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법률적 소유관계는 무엇인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바람직한 국가의 상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그가 발견한 문제는 “현실 사회주의=관료제+국유화=부패, 비효율”이라는 것이었고, 그 극복방안은 “민주적 사회주의=노동자, 농민의 참여 강화+개별 기업에 대한 노동자 소유권 보장=효율”이라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비판을 시작한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제기되었던 제 문제의 본질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가?
1936년, 소련은 신헌법을 제정하며 ‘전 인민의 국가’라는 테제를 제출한다. 이 테제에 따르면 소련에도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지만 이들 계급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고, 소비에트 국가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계급연합, 계급동맹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국가는 이 때부터 계급자체와는 무관하며 계급의 차이를 초월해서 모두가 시민, 모두가 근로대중인 개인들과 관계하고 있다. 결국 소비에트는 전 인민의 국가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테제가 담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장상환 위원장의 분석은 ‘전 인민의 국가를 (비로소) 국유화로 등치’시켜 향후 구조적 비효율을 야기한 부패된 관료제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 인민의 국가를 국유화로 등치시킨 것이 아니라 ‘국유화를 전 인민의 국가로 등치’시켰다는데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 하에서 현존하는 계급간 모순의 적대성을 폐기하여 새로운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동결시켰다.
그런데 장상환 위원장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 체체 문제를 이 같이 뒤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 역시 실상 전 인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에게 있어 전 인민의 국가, 계급투쟁의 종식을 선언하게 한 것은 소유관계의 법률적 형태인 국유화의 달성이었다. 민주적 사회주의론 역시 마찬가지로 소유관계와 관련한 다른 유형의 법률적 형태 즉, 종업원 지주제에 의한 개별기업에 대한 노동자 소유확대와 경영참가, 그리고 사회기금을 통한 사회적 소유의 확장으로 달성된 민주적 참여기업을 통해 전 인민의 국가, 계급투쟁의 종식을 선언하게 된다. 둘 모두에게 개인간 갈등은 이제 특정한 국가 기관(‘경제정책위원회’)을 통해 화해가 가능해지고, 펼쳐진 미래에는 단지 생산력 수준의 지속적 발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즉, 역사의 원동력은 생산력의 발전이고 계급투쟁은 생산력 발전의 결과 또는 표현에 불과하다. 이러한 고찰에서 우리는 그의 문제의식에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발견한다. 경제주의와 법 이데올로기(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는 비단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먼 미래의 상에 대한 소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구조개혁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위기의 구조적 성격과 그 안에서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노동 관계, 착취의 재생산을 위한 사회 전체의 조직화를 수행하는 국가기능 등에 대한 분석은 공백 속에 위치한다. 그 결과 생산물의 분배 등 경제위기에 대한 현상적인 요인만을 문제삼는다. 또한,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적대적 모순에 대해 중립적이고 그 속에서 계급간 화해가 가능한 것으로 물신화하는 ‘법 이데올로기’와 이러한 법의 효과적인 실현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의지가 국가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경제주의와 법 이데올로기의 두 조합은 진보적 구조개혁의 정치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모델 즉, 권력장악의 모델(선거를 통한 집권), 경제 모델(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국가 모델(집중에서 분권으로의 전환)을 집착케 하고, 이 모델의 장점과 실행가능성을 현재 조건에서 선전한다. 하지만, 이 모델은 조건과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선전’해야 할 ‘장점’을 실용적으로, 수세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결국 위기의 심화와 함께 더욱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내용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당의 선거용 이슈는 점점 더 괴리를 나타낸다. 그 결과 위기의 본질과 이행의 전략에 대해 아무런 지침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현상에 열을 올리며 지배분파도 수용가능한 몇 가지 선거용 이슈로서 법률 제정이나 제도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이 모든 시도가 가져오는 결과는 이행을 위한 대중정치의 난망(難望)이다. 우리는 그의 분석에서 정치의 새로운 실천을 가능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주체적 조건인 끊임없이 분화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내적 구심력 형성의 문제도 이러한 정치의 구체적 실현으로서의 계급동맹의 문제도 발견할 수 없다. 아래의 글에서 우리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과정을 마련키 위한 진보적 구조개혁 내에서 이러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지 자세히 살피도록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산가들의 부담으로 축소하기 위해 장상환 위원장이 각 글에서 산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구체적 방식을 정리해 보면 다음의 두 가지가 발견된다. 첫째, ‘‘재벌정리(해체)특별법’을 도입, 이 법을 근거로 ‘총수 일족의 지분에 대한 강제 유상환수’(「민주적 사회주의론」). 둘째, 예금부분보장의 5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하향조정(「진보적 구조개혁」)이다.
부실은 전적으로 자본의 책임이다. 따라서 재벌체제 하에서 그리고 그에 의한 구조적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노동자 민중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부실경영을 가져온 재벌총수들의 퇴진과 그들의 주식을 기업과 사회에 환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은 여전히 놓쳐서는 안될 주요한 투쟁의 고리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첫째, 환수와 관련한 그의 접근 방식에는 법의 합리적 개선과 그렇게 개선된 계급 중립적인 법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집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법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 이미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법’을 통해 재벌 총수의 지분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있고,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법’을 통해 환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현재 몰수는커녕, 자본분파에 의한 각종 비리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인가. 예금보장제도의 한도가 너무 높아서? 재벌총수의 지분제한과 부당취득 한 자산 환수의 법적 집행력이 낮아서? 질문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기될 경우 해답은 단지 ‘법 집행의 기술적 능력의 문제’로 국한되고, 이를 위한 민중적 실천의 문제는 닫아버린 채, 단지 그 실행을 담당할 정당의 의석확보의 문제로 변질된다. 환수의 방법으로는 「재벌정리(해체) 특별조치법」의 도입이 유일하고, 이마저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였을 때 가능한 일”로 제한하고 있으니 환수의 ‘절박함’과 ‘당위’에 비해 그 ‘실현’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결국 장상환 위원장 식의 ‘환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 활동에 철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자본가들에게 단지 일시적인 ‘부담’을 주는 것일 뿐이다.
둘째, 그는 환수의 대상을 단지 부실을 야기한 재벌총수와 그 일파, 과도한(?) 이자 소득을 취하는 자산가로 한정지음으로써, 실상 케인즈가 언급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와 동일한 관점을 취한다. 결국 이것은 현재 부실과 위기를 야기하는 자본운동의 내적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다. ‘환수(몰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지 못한 실패한(!) 자본가에 대한 ‘응징’의 수단이 아니라면 부실의 문제는 비단 개별 기업가의 문제로 국한되는 우연적인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부실은 신식민지적 종속적 축적구조상 발생하는 독점의 문제이며, 자본활동의 기생성과 부후성에 관련된 구조적 문제이다. 따라서 독점의 해체에 대한 민중적 표현이 바로 환수 또는 몰수인 것이다. 때문에 ‘환수’의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대한 대중투쟁의 과정 속에서 생산의 재조직화의 문제로 보다 공세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단지 ‘현실성’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의 일부 분배물만을 중심으로 ‘환수’를 제기할 경우, 자본의 해외이탈만 야기할 뿐이며 ‘환수’가 가지는 정치경제학적, 실천적 함의는 더욱 희석될 뿐이다.
부채의 출자전환과 주식소유를 통한 노동자 경영참가
장상환 위원장은 현재 기업이 안고 있는 부실처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 과대대출을 출자전환하여 기업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되 총수 등 실패한 경영자를 축출하고 지배적인 주식지분을 노동자가 공동으로 보유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적자금 활용문제로 이어진다. 즉, 그는 출자전환된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서 공적자금을 노동자 투자기금으로 투입할 것을 주장한다. 이 주장의 배후에는 노동자 주식소유 확대를 통해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법률적 계기를 마련하고, 노동자의 경영참가가 이루어지면 노동의욕을 고취시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은 당장 공기업화를 추진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서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강화하여 현재 부실정리의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시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어떠한 방식의 부채의 출자전환으로도 현재의 위기국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더 큰 진실이 있다.
불황의 상황에서 부채의 출자전환이 선전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를 즉각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기업의 추가자금 조달을 보다 용이하게 하고, 추가적 자금조달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활동을 지속케 한다. 하지만, 기업의 대차대조표상 부실의 구성이 변화한다고 해서 부실의 본질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부채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은행과 주식시장의 기대가 상이하거나, 출자전환을 제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은행 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투자자들 또한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회의를 분명히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전자는 실현되기 어렵다.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의 부실처리 문제를 맡긴다는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부채의 출자전환이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산업은행 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부실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불황의 상황에서 정부 지원 또한 재정부담등의 이유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998년 말 총 60.2조원의 부실채권 규모는 2000년 말 60.2조 원으로 전혀 줄어들지 않게 되었다 삼성경제 연구소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97년 11월 이후 투입된 총 148.3조원의 공적자금 중 자산관리공사를 통한 부실채권 매입에는 총 38.4조원이, 출자에는 총 56.9조원이 투입되었다. 그 중 부실채권 매각에 의한 회수액은 24.2조원으로 이는 투입액 대비 63%에 해당하고, 주식매각에 의한 출자 회수액은 단지 2.94조원으로 이는 투입액 대비 5%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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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실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구조의 문제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축적 과정상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한 현재 자본이 투기적 행위로 위기의 상황에서 생존코자 하는 것도 단지 그들의 선험적 계급성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축적 과정상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결국, 장상환 위원장이 주장하는 부채의 출자전환이란 부채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시장도,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국가권력도 아닌 새로운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국가권력과 개별 기업의 노동자들이 떠맡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을 소유하게 되면 이러한 부실을 해결할 수 있는가? 노동자 기업소유에 관한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재벌해체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고민을 ‘사회화’의 실질적인 방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살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같이 사회화를 법제도의 마련으로, 더구나 이러한 법제도가 도달하는 최종 지점이 개별기업 차원으로 국한될 경우,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대안 대신 개별화를 추동하고 나아가 진정한 사회화와 계획적인 조절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시장의 무정부성을 승인하며 금융화라는 자본의 미래에 노동자 계급을 더욱 종속시키는 방식이 될 위험 또한 크다. 무엇보다도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화를 국가권력 자체에 대한 민중권력의 도전과 그 과정에서 전체 민중의 요구를 결집시키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금융팽창 국면에서 주식소유자 그룹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의 구심점을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히려 노동자들로 하여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에 의한 생산의 조직화의 현재적 경향에 대항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해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체적 조건인 새로운 사회적 의식성과 주체성을 통일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을 어렵게 하는 ‘덫’으로 기능하기 쉽다. 더욱이 개별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재적 제한성을 고려했을 때 주식소유를 통한 기업별 단결의 강화는 사회화의 진정한 실현을 더욱 난망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개별기업의 임노동자들이 조합에 귀속된 주식의 투자활동을 놓고 ‘노동계급’이라는 집단적 주체로 호명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노동자에 의한 개별 기업의 주식소유 확대, 경영참가 확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본축적의 내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게 되며(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층 강화될 수도 있다) 부실은 여전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는 부채가 출자전환 되어도,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도 부실이 야기되는 내적 구조는 변화하지 않는다. 또한, 주식소유 확장을 통해 노동자 경영참가가 확대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단지 법률적 관계의 변형을 통해 부실의 책임을 개별 기업의 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이전시킬 뿐이며, 부실양산의 구조적 측면을 은폐하고 책임관계를 왜곡해 현실적으로 부실과 파탄을 둘러싼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어렵게 하는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적자금의 처리, 노동자의 경영참가 등의 문제가 협소한 부르주아적 관점에 국한된 채 제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혈세이니, 우리의 투자기금으로 조성해야 한다, 우리도 이제 너희와 동등한(혹은 더 많은) 주식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으니 경영에 참가하겠다‘는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바로 그러한 협소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발로이다. 국가의 모든 활동은 안정적인 자본활동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전체를 조직화하는 과정으로, 이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는 이미 개별 기업에 대한 주식소유 이전에 충분한 당위를 확보하고 있다. 개별 기업에 있어서도, 지배분파의 사보타지를 막기 위한, 또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사수하기 위한 노동자의 개입은 법적 소유권에 의한 권리 실현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 전체의 보편적 이해 속에서 직접적 요구 관철을 위한 투쟁의 문제로 제출되어야 한다.
소득재분배와 국가지출 확대에 의한 불황 완화, 경기 호전
장상환 위원장은 8.10 여야 경제정책 협의에서 결정된 경기부양책의 내용을 ‘제한적’이라고 비판하고, 세제 개편과 사회보장 지출 확대 등을 통해 소득 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보다 확장된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조원 이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정부는 10조원의 재정지출을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고,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교육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주거비 안정을 통하여 임금인상 압력을 둔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교육연구개발 투자는 “중국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큰 산업의 잠재력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구조개혁과 경제회생에 소요되는 재정자금의 마련을 위해 간접세 중심에서 직접세 중심으로 세제를 개혁해야 하고, 주식․채권 양도차익에 대한 조세징수를 포함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도입해 재원의 대부분이 재산소유자들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기적 확장정책은 그 방향에 따라서 노동자 계급에게 한계적이나마 일정한 도움을 준다. 더구나 지배분파가 겉으로는 국가개입의 축소를 주장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기존의 권리를 계속 약탈해 가는 한편, 실제로는 국내 독점자본,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계속 증가시키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삶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단기적 확장정책을 사용할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투쟁은 더욱 절실히 요구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 확장정책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그것이 이행의 중장기적 전략 속에서 제기되었을 때에만 최소한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장상환 위원장의 주장은 이런 점을 결여했고 잘 못된 위기 인식에 기반하여 잘 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자본주의는 고도성장을 통하여 공급능력은 이미 초과상태이며, 경제성장이 공급측 요인보다는 국내소비와 투자, 해외수출수요 등 수요측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으므로 소득분배의 개선은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국면(진보적 구조개혁 p 7)”이라는 그의 규정은 이른바 과소소비설에 불과하며 그 대안으로 케인즈주의적 소비진작을 외치고 있다. 이것 그 자체가 현재의 위기를 잘 못 인식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케인즈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입론에 기반한 정책이 유효할 수 없음은 정운찬 교수의 개혁적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자신이 입증하고 있다. “케인즈주의의 한계는 1970년대 초반 이후의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보장하지 못한 것이다. ... 케인즈주의적 수요 위주의 처방을 한 결과 물가인상과 경기불황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만 초래한 것이다. ...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하에서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 하에서는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조차도 실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적 사회주의론 p 21)” 더욱이,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현실화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케인즈주의적 확장정책은 불황을 타개하지 못할뿐더러,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또한, 대외종속적이면서도 독점적인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가령 중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산업의 잠재력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 투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편에서는 국가주의의 발로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대외종속적 경제구조로 인해 야기된 위기를 바라보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 문제는 수출정책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한국의 수출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한국의 수출문제는 ”수출산업의 생산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과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으로 집약”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조기술과 신소재를 개발하고,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컨설팅, 금융, 유통 등 생산적 서비스업 발전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의해 위협받는 산업의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부분이며 이는 재벌에 의해 장악되어 있음을 잘 아는 장상환 위원장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재벌을 중심으로 현재의 산업이 고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재벌체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한국경제의 문제에서 재벌체제라는 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문제삼고 있을 뿐 재벌체제가 보여주는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적 독점적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재벌해체의 대안으로 노동자 기업소유로, 경기회복에 대해서는 경제주의적 처방들로 이 문제를 대체시켜 버린다.
종속과 독점에 대한 고민 없는 재벌해체, 국가경쟁력 강화의 한 쪽 날개로 날아가는 경기부양은 날아가는 거리만큼 모순이 심화되어 더욱 큰 충격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경기는 반전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남한경제 자체의 동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대외종속적인 남한 경제에서 이는 세계경제의 조건에 일차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 전체의 위기가 계속 고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불황 탈출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기가 반등되어도, 이것은 단기적일 뿐 파국으로의 치닫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 운동 진영에서 제출해야 하는 것은 경기가 반등될 수 있다는, 위기가 관리될 수 있다는 허상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해결불가능성에 대한 폭로일 수밖에 없다.
금융공급 확대, 금리 인하, 사채시장의 초고금리 규제
장상환 위원장은 중소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과 은행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은행이 기업경영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와 같은 불황의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소득재분배 효과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타의 내용에 비해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경제위기의 지속과 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사채문제이다. 이를 위해 “고리사채업을 합법화시키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법안」을 즉각 폐기하고, 고리사채를 사전 예방하고 사후 구제할 수 있는 「이자제한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은행의 소유․경영구조를 사회적 형태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한다. “은행 등 핵심적 금융기관은 공적 소유가 우위에 있도록 하고, 소규모 금융기관은 연기금 등 공적 기금과 해당 금융기관 노동자들의 투자기금이 소유하도록 해야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의 공적 소유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첫 조치로 강조되어야한다. 하지만, 이 때 공적소유, 공적 조절의 문제가 해당노동자의 투자기금 소유, 경영참가의 문제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서 기업의 노동자 통제 문제를 살펴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 극복의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독점자본 중심의 대외종속적 경제구조를 은행이라는 기관을 통해 어떻게 통제해 나갈 것인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민중적 통제를 보장하는 권력 형성의 문제, 현재 금융기관을 통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국가장치의 파괴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사고되어야 하며, 그 때라야만 금융기관의 사회화 문제는 민중전체의 보편적 요구로 제기할 수 있다.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관은 비록 그것이 해당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되더라도, 결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립적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 이 관점에서 은행의 노동자 경영 참가는 이차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또한, 사채문제는 단지 “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또한 전세계적인 불황, 금융화의 과정 속에서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이윤량 확대를 통해 상쇄하고자 하는 재벌 기업들의 금융화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지원 속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올 상반기 삼성, LG, 비씨, 국민, 외환, 동양, 현대 등 7개 카드사들은 총 1조 1,789억원에 달하는 순익을 올렸고, 이는 지난 해 같은 시기보다 무려 91.3%나 성장한 수치이다. 한빛, 신한, 하나 등 19개 은행계 카드사업 분야도 올 상반기 2조 3,385억원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덧붙여, 지난 8월말 현대 캐피탈이 다이너스 카드를 인수하면서 현대그룹이 본격적으로 카드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고, SK그룹과 롯데그룹도 카드사업 진출을 확정하고 있는 상황이다.(매일경제 2001.10.19)
그 배경에는 소득공제 한도확대, 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 현금서비스 한도폐지, 카드사업 허가제 변경 등을 통한 정부의 지원과 항상적으로 유동성 위기-금융공황의 형태로 연결되고 있는 시장의 충격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재벌의 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이 존재한다. 또한, 인수, 합병 등의 직접 투자를 통해 투기적 기대를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키 위한 금융기관의 거대 금융 그룹화 경향속에서 존재한다. 결국 이런 경향과 경제위기 하에서 금융자본으로 하여금 불황 하에서 수익성 창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기업으로의 대출보다 가계로의 대출을 더욱 선호하게 하였다. 급증한 신용카드, 소매대출 수요와 대부분 담보 대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매대출의 장점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7개 일반은행의 기업대출금의 비중은 국내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97년 66.7%에서 올 상반기 56.2%로 줄어든 반면 가계대출금 비중은 부업 및 주택자금 수요 등으로 30.8%에서 40.5%로 늘어났다. ‘법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이와 같은 ‘자본활동의 내적 구조 변화’가 장상환 교수가 제시하는 오늘의 현상, 2001년 3월말 240만명에서 같은 해 6월말 272만명으로 급증한 신용불량자의 수를 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경향을 간과한 채 단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을 가지고 법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를 사후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10월 29일 금융감독원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유도 및 영업 질서 확립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골자는 업체간 경쟁을 통해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낮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자본간 경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정당의 선량한 정책이 실현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진보적 구조개혁, 평화적 이행론의 허상
진보적 구조개혁론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로부터 진보적 구조개혁(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통한 평화적인 이행이 가능할 것처럼 환상을 유포하는데 있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그 집행의 주체로서 민주노동당의 수권을 전제로 하고 있고 사실상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에 한 표 던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 민중의 권력이 형성되고 진보적 구조개혁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주노동당은 민중의 투쟁과 요구에 천착해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이자제한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도입을 제시하면서 대중투쟁을 방기하였다. 그리고 언론의 관심을 끌어 합법정당의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결국 선거시기에 득표를 위한 활동으로 당력을 집중시켜 왔다. 이러한 의회주의적 또는 입법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은 상대적으로 시민운동과의 경쟁과 연대를 야기했고 스스로의 활동에서 이것을 더 유능하게 잘 하는 정당의 형태로 변모시켜 왔다. 따라서, 2001년 10․25 보선의 패배는 합법정당의 실력과 조직력의 문제도, 의회정치의 한계도, 보수정치의 장벽의 높음도, 이 결과의 근본적 원인으로 사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투쟁과정에서 합법정당은 대중투쟁을 선도하지 못하고 결합하지 못한 것에 그 책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적 구조개혁을 통한 평화적 이행 전략은 한국적 상황에 맞는 고유한 전략이 아닌 주로 유럽사민당에 의해 오래전부터 공히 추구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앞날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유럽의 사민당의 경우도 소득의 재분배, 사회복지분야로의 공공지출의 재분배, 공공부문의 강화, 그리고 구조조정에서의 자본가에 대한 비용이전 등에 주된 관심을 갖는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을 강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은 상대적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정당적 요구로 표현되면서 자유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리하여 현재의 소득분배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회적 지출을 점차 강화시켜 나아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환하였으며, 민영화된 경제체제 하에서 안정화정책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집권의 가능성이 보다 높은 정당일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하였고 유럽은 물론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몇몇 국가에서 좌파성향의 정치세력들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적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현실적으로 벌이고 있는 활동속에서 이미 그 맹아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해 케인즈주의적인 불황타개책을 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불안에 대한 대응으로는 이자제한법으로 제기하고 있고, 노동자 통제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종업원지주제와 우리사주제와 같은 주식소유를 통한 기업지배방식이라는 과제를 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인한 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평화적 이행에 성공한 경험이 없다. 남미에서와 같이 좌파정당이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다시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을 뿐이다. 때문에 그러한 의회주의적 해결의 방법은 실현가능성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 볼 수 없으며 그에 기반해 있는 진보적 구조개혁론 역시 민중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마치며
앞서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장상환 정책위원장과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이다. 진보적 구조개혁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아니며 이에 기반한 현재의 민주노동당 활동 역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정당이 직면한 주된 도전은 사회운동의 분투, 즉 자신들이 깨우치게 된 상황이 지시하는 바의 투쟁과 전략 및 전술에 대한 효과적 형태를 고안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 이 지점에서 좌파 정당은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도전에 응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와 계급투쟁」p 252)
우리는 분명 민주노동당이 현재 구조적 위기의 심화와 함께 점차 고조되고 있는 투쟁의 확산과 조직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것은 그들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대리․대표하거나, 위기를 관리해주는 그러한 역할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각 부분에서 산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대규모로 조직, 동원하고 상이한 분파들의 행동을 조율함으로써 광범위한 정치적 반발을 일구어내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발은 선거공간과 의회로의 참여를 통해 조직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더욱이 몇몇 선거용 이슈를 통해 표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반발은 그 자체 하나의 객관적인,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현실이며, 이행의 국면은 광범위한 대중투쟁의 국면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