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한․일 투자협정 체결, 반드시 막아야 한다
초읽기에 들어간 한․일 투자협정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인 민주당의 분열과 위기에 직면하여 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남은 임기기간동안 부진한 경제개혁을 마무리짓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했다. 동시에, 정책기획수석으로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주의자인 한덕수 전OECD 대사를 임명한바 있다. 김대중 정부가 말하는 부진한 경제 개혁의 마무리란 한 축으로는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를 더욱 철저하게 추진하고,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 축으로는 다자간 및 양자간 투자 및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국내 경제를 사유화, 개방화하고,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함으로써 초국적 자본과 국내 독점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미진한 경제개혁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보란듯이 12월 8일까지 열렸던 정기 국회에서 철도 민영화 법안 추진을 시도하고, 은행 해외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유럽 순방을 통해 40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받아내고, 특히 민영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스 산업에 대한 투자계약을 따냈다는 점등은 김대중 정부의 향후 정국 운영의 방향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 정부는 연내에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할 것을 합의하였다. 지난 11월 14일 한국에서 열린 한․일 투자협정 제8차 본회의에서 한일양측 정부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9차 본회의에서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한․일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투쟁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일본 사회운동단체인 일한민중연대에 따르면, 이미 지난 10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과 11월 APEC 정상회담에서 한일 정상간에 연내 한․일 투자협정 체결에 관한 의견이 조율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한․일 투자협정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밀실협상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2년 간 민중운동 진영은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을 중심으로 한․일 투자협정에 따른 무제한적인 투자 자유화의 위험성과 반민중성을 문제삼아 왔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투자협정 체결을 담당하는 정부 각 부처의 관계자에게 투자협정을 체결하면, 민중의 삶은 더욱 도탄에 빠질 것임을 경고했다. 또한 한․일 투자협정 관련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성명을 발표하여 협상 중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본과의 교과서 문제나 수산업 문제만을 여론화하는 가운데 물밑에서는 한․일 투자협정 체결 논의를 계속적으로 진척시켜 왔다. 그 결과 한-일 양국정부는 몇 주 내에 한․일 투자협정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지난 11월 국민행동은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일 투자협정 체결기도에 대해 한․일 투자협정의 현황과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협정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양국의 협의사항이라는 근거를 들이대며 검토해볼 내용 하나 없는 종이 쪼가리 몇 장을 발송했다. 심지어 9차 본회의 개최 일에 대해서조차도 함구하였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밀실협상과 졸속협상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양자간 투자협정이 기본적으로 노동권, 환경, 국내의 자율적인 경제정책 등 국내 노동자 민중의 삶과 긴밀히 연계되는 부분을 무시하거나 침해하고, 개별 투자자들의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투자협정은 노동자 민중의 반발을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예로 양자간 투자협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다자간 투자협정(MAI)은, 1998년 전세계 사회시민운동진영의 반발로 실패했고, 한․일 투자협정보다 앞서 논의되었던 한․미 투자협정의 경우도 스크린쿼터 제도와 같은 자국의 문화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해하는 것에 반발한 영화계와 사회단체의 반발로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또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역시 농산물의 전면 개방에 반발한 농민의 저항과 투쟁으로 주춤해 있다.
그러나, 한․일 투자협정은 ‘밀실협상’이라는 절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체결에 대한 정부의 조금함은 김대중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에 종속적으로 편입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에서 최초로 체결하는 양자간 투자협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 투자협정의 파국적 영향
한․일 투자협정은 정부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다자간투자협정(MAI)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MAI는 투자에 있어서의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를 보장하는 가운데, 투자자유화를 위한 것이면 국내생산품조달 정책, 현지인 고용의무 등의 국내경제정책, 노동권, 인권, 환경 등 그 어떠한 것도 장애물이라 규정하면서 규제완화 및 철폐를 요구하는 그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무한착취를 보장하기 위한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MAI에서 규정하는 투자의 개념은 대단히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단기투기자본까지도 투자로서 인정하려 하고 있으며, 초국적 자본이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부여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다자간협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처럼 반민중적이고 위험한 MAI는 지난 98년 전세계 민중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MAI는 양자간 투자협정과 NAFTA와 같은 지역자유무역블럭, 그리고 WTO라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통해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발현되고 있는 상황이며, 한․일 투자협정은 이러한 기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공개된 한․일 투자협정의 주요내용만 보더라도 협정이 한국경제와 민중의 삶에 끼치는 위험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투자 자유화를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과 고용 창출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이다. 오히려 경제가 항상 위기에 노출될 상황에 직면하게 되며, 고용은 더더욱 불안정하게 되고 노동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한․일 투자협정에 따르면 해외투자에 대해 국내자본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를 보장해줌과 동시에 해외투자의 원금 및 이윤의 자유로운 송금을 보장해주고 있다. 한편 해외투자자에게 일정비율 이상 국내재화나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하는 의무와 기술․생산공정 등의 국내이전 의무 등을 금지하고 있다. 즉, 투자자유화는 국내 경제성장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이윤 추구를 보장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해외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이 가능한 조건에서 해외자본의 국내 경제 잠식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켜 국내경제의 불안정성을 더더욱 가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한편, 투자자유화가 고용 및 노동권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는 두 가지 조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는 현지인 고용의무 금지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진지(眞摯)조항이라는 것이다. 해외자본은 국내에 공장을 설립하건, 기업을 인수하건, 혹은 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건 간에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현지인 고용의무 금지 조항을 빌미로 고용을 억제하는 가운데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 감축이나 비정규직화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진지조항이라는 것은 일본기업이 한국에 진출했을 시 발생하는 노동쟁의 등 각종 노사분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을 요구하는 조항이다. 이는 국내 노동운동이 일본 기업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한 일본 당국으로부터 나온 요구사항이다. 여기에서 ‘노사분규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의미는 국가가 개입하여 노사분규를 봉쇄해달라는 것, 심지어는 노동조합 설립조차 허가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으로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조항이다.
한․일 투자협정의 위험성과 반민중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투자자와 정부간 분쟁에 있어 해외투자자들이 국내법을 거치지 않고 세계은행 등의 국제적인 분쟁해결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멕시코 주정부가 미국의 초국적 기업인 메탈클라드사에 대해 환경오염문제에 따른 제재를 가했을 당시 메탈클라드사가 투자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근거로 멕시코 주 정부를 제소했던 것처럼, 투자자유화 앞에서 환경, 인권, 노동권이 완전히 훼손하더라도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가 없게 될 것이라는 점도 크나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한․일 투자협정과 공공부문 사유화, 해외매각; 출발은 철도 매각이다
무엇보다도 한․일 투자협정 현재 철도와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 추진에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투자협정은 투자자유화에 있어 몇 가지 예외조항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그 예외조항이 무엇인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쟁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통신, 철도, 금융 등은 일본 자본의 요구에 의해서라도 사유화와 해외매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능성은, 지난 8월에 열린 한국 전경련과 일본의 경단협 등이 공동으로 ‘한․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비즈니스 포럼’을 개최한 자리에서, 일본의 철도회사인 JR이 한국의 철도를 매입하고 싶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현재 정부가 공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은행 등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려는 것은 한․일 투자협정을 시작으로 양자간․다자간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 등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추세에 편입해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철도노조와 고속철도노조가 연관되어 있는 철도산업 구조조정 내용을 보면, 철도시설과 운영부문을 분리해 철도시설공단과 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철도주식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올 6월 에 상정하고자 했던 철도산업구조개혁법(안)과 철도시설공단법이 현재 12월 1일 차관회의를 통과했고,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2002년 7월 철도시설공단이 출범하게 되며, 2003년 7월에는 민간운영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와 맞물려 한․일 투자협정이 체결되고 국회비준을 거치게 되면, 일본의 민영철도회사가 매각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덕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불과 2년 전 까지만 해도 투자협정과 해외매각 관련한 정부 총괄책임자인 통산교섭본부장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일 투자협정이 체결된다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철도와 가스 산업과 같은 국가기간 산업의 민영화와 은행의 해외매각, 금융과 서비스시장의 전면 개방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 자명한 일이다. 한․일 투자협정을 모범으로 일부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공기업, 금융, 통신 등의 서비스, 주식시장 등에 있어서의 초국적 자본 투자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다양한 양자간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밑거름으로 작동할 것이다. 결국, 한․일 투자협정의 체결은 한․미, 한․칠레, 한․뉴질랜드 등 줄줄이 이어진 투자협정의 시발점에 불과하며, 그 결과 철도를 출발로 가스, 통신, 전력 등 국가 기간산업의 해외매각과 농업부문의 개방을 촉진시켜 나갈 것이다.
한․일 투자협정, 체결부터 막아야 한다
그 피해가 직접적으로 닥쳐왔던 농민들의 힘겨운 투쟁 외에는 그닥 문제제기와 저항이 없이 WTO 뉴라운드가 출범 해버린 것처럼, 현재 한․일 투자협정은 대다수 운동진영의 대응미비와 무관심 속에서 신속한 체결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WTO 다자간 무역체제와 한․일 투자협정과 같은 각종 투자, 무역관련 협정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말은 지구적 규범이지만, 실은 미국의 규범)를 다자간 및 양자간 협정 형태로 각 국에 강요하는 기제로써,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에게는 무역장벽을 비롯하여 세계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의 배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세계자본주의 경제질서에 편입해 들어가고자 하는 김대중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춰나가는 차원에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공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 추진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결과 구조조정을 통한 정리해고 및 하청, 계약직 노동의 확대 등 불안정 노동의 보편화를 추진하고, 농업을 내다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WTO 반대 투쟁이나 한․일 투자협정 체결 반대 투쟁은,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중생존권 쟁취와 철도민영화 저지 등 공기업 민영화 반대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오히려 일견 고립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각의 투쟁을 연계하고, 각 영역 민중의 연대를 위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더욱 광범위하게 전 민중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때문에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은 그 초점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각종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으로 맞추고,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진영은 국내 노동자 민중의 삶을 희생시키고 권리를 짓밟고 있는 김대중 정권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지금부터 공공부문 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와 농민, 영화예술인 등 민중이 연대하여 한․일 투자협정 반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철도 등 국가 기간산업을 해외자본에 매각하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은 물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도 보장하지 않으며, 투기성 자본마저도 투자라는 이름 하에 합법화시킴으로써 경제구조 전반을 위협에 빠뜨리는 투자협정을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인 민주당의 분열과 위기에 직면하여 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남은 임기기간동안 부진한 경제개혁을 마무리짓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했다. 동시에, 정책기획수석으로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주의자인 한덕수 전OECD 대사를 임명한바 있다. 김대중 정부가 말하는 부진한 경제 개혁의 마무리란 한 축으로는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를 더욱 철저하게 추진하고,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 축으로는 다자간 및 양자간 투자 및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국내 경제를 사유화, 개방화하고,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함으로써 초국적 자본과 국내 독점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미진한 경제개혁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보란듯이 12월 8일까지 열렸던 정기 국회에서 철도 민영화 법안 추진을 시도하고, 은행 해외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유럽 순방을 통해 40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받아내고, 특히 민영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스 산업에 대한 투자계약을 따냈다는 점등은 김대중 정부의 향후 정국 운영의 방향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 정부는 연내에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할 것을 합의하였다. 지난 11월 14일 한국에서 열린 한․일 투자협정 제8차 본회의에서 한일양측 정부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9차 본회의에서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한․일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투쟁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일본 사회운동단체인 일한민중연대에 따르면, 이미 지난 10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과 11월 APEC 정상회담에서 한일 정상간에 연내 한․일 투자협정 체결에 관한 의견이 조율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한․일 투자협정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밀실협상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2년 간 민중운동 진영은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을 중심으로 한․일 투자협정에 따른 무제한적인 투자 자유화의 위험성과 반민중성을 문제삼아 왔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투자협정 체결을 담당하는 정부 각 부처의 관계자에게 투자협정을 체결하면, 민중의 삶은 더욱 도탄에 빠질 것임을 경고했다. 또한 한․일 투자협정 관련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성명을 발표하여 협상 중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본과의 교과서 문제나 수산업 문제만을 여론화하는 가운데 물밑에서는 한․일 투자협정 체결 논의를 계속적으로 진척시켜 왔다. 그 결과 한-일 양국정부는 몇 주 내에 한․일 투자협정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지난 11월 국민행동은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일 투자협정 체결기도에 대해 한․일 투자협정의 현황과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협정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양국의 협의사항이라는 근거를 들이대며 검토해볼 내용 하나 없는 종이 쪼가리 몇 장을 발송했다. 심지어 9차 본회의 개최 일에 대해서조차도 함구하였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한․일 투자협정을 체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밀실협상과 졸속협상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양자간 투자협정이 기본적으로 노동권, 환경, 국내의 자율적인 경제정책 등 국내 노동자 민중의 삶과 긴밀히 연계되는 부분을 무시하거나 침해하고, 개별 투자자들의 권리를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투자협정은 노동자 민중의 반발을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예로 양자간 투자협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다자간 투자협정(MAI)은, 1998년 전세계 사회시민운동진영의 반발로 실패했고, 한․일 투자협정보다 앞서 논의되었던 한․미 투자협정의 경우도 스크린쿼터 제도와 같은 자국의 문화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해하는 것에 반발한 영화계와 사회단체의 반발로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또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역시 농산물의 전면 개방에 반발한 농민의 저항과 투쟁으로 주춤해 있다.
그러나, 한․일 투자협정은 ‘밀실협상’이라는 절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체결에 대한 정부의 조금함은 김대중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어떤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에 종속적으로 편입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에서 최초로 체결하는 양자간 투자협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 투자협정의 파국적 영향
한․일 투자협정은 정부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다자간투자협정(MAI)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MAI는 투자에 있어서의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를 보장하는 가운데, 투자자유화를 위한 것이면 국내생산품조달 정책, 현지인 고용의무 등의 국내경제정책, 노동권, 인권, 환경 등 그 어떠한 것도 장애물이라 규정하면서 규제완화 및 철폐를 요구하는 그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무한착취를 보장하기 위한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MAI에서 규정하는 투자의 개념은 대단히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단기투기자본까지도 투자로서 인정하려 하고 있으며, 초국적 자본이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부여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다자간협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처럼 반민중적이고 위험한 MAI는 지난 98년 전세계 민중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MAI는 양자간 투자협정과 NAFTA와 같은 지역자유무역블럭, 그리고 WTO라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통해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발현되고 있는 상황이며, 한․일 투자협정은 이러한 기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공개된 한․일 투자협정의 주요내용만 보더라도 협정이 한국경제와 민중의 삶에 끼치는 위험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투자 자유화를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과 고용 창출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이다. 오히려 경제가 항상 위기에 노출될 상황에 직면하게 되며, 고용은 더더욱 불안정하게 되고 노동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한․일 투자협정에 따르면 해외투자에 대해 국내자본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를 보장해줌과 동시에 해외투자의 원금 및 이윤의 자유로운 송금을 보장해주고 있다. 한편 해외투자자에게 일정비율 이상 국내재화나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하는 의무와 기술․생산공정 등의 국내이전 의무 등을 금지하고 있다. 즉, 투자자유화는 국내 경제성장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이윤 추구를 보장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해외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이 가능한 조건에서 해외자본의 국내 경제 잠식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켜 국내경제의 불안정성을 더더욱 가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한편, 투자자유화가 고용 및 노동권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는 두 가지 조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는 현지인 고용의무 금지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진지(眞摯)조항이라는 것이다. 해외자본은 국내에 공장을 설립하건, 기업을 인수하건, 혹은 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건 간에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현지인 고용의무 금지 조항을 빌미로 고용을 억제하는 가운데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 감축이나 비정규직화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진지조항이라는 것은 일본기업이 한국에 진출했을 시 발생하는 노동쟁의 등 각종 노사분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을 요구하는 조항이다. 이는 국내 노동운동이 일본 기업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한 일본 당국으로부터 나온 요구사항이다. 여기에서 ‘노사분규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의미는 국가가 개입하여 노사분규를 봉쇄해달라는 것, 심지어는 노동조합 설립조차 허가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으로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조항이다.
한․일 투자협정의 위험성과 반민중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투자자와 정부간 분쟁에 있어 해외투자자들이 국내법을 거치지 않고 세계은행 등의 국제적인 분쟁해결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멕시코 주정부가 미국의 초국적 기업인 메탈클라드사에 대해 환경오염문제에 따른 제재를 가했을 당시 메탈클라드사가 투자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근거로 멕시코 주 정부를 제소했던 것처럼, 투자자유화 앞에서 환경, 인권, 노동권이 완전히 훼손하더라도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가 없게 될 것이라는 점도 크나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한․일 투자협정과 공공부문 사유화, 해외매각; 출발은 철도 매각이다
무엇보다도 한․일 투자협정 현재 철도와 가스 등 국가 기간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 추진에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투자협정은 투자자유화에 있어 몇 가지 예외조항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그 예외조항이 무엇인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쟁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통신, 철도, 금융 등은 일본 자본의 요구에 의해서라도 사유화와 해외매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능성은, 지난 8월에 열린 한국 전경련과 일본의 경단협 등이 공동으로 ‘한․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비즈니스 포럼’을 개최한 자리에서, 일본의 철도회사인 JR이 한국의 철도를 매입하고 싶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현재 정부가 공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은행 등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려는 것은 한․일 투자협정을 시작으로 양자간․다자간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 등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추세에 편입해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철도노조와 고속철도노조가 연관되어 있는 철도산업 구조조정 내용을 보면, 철도시설과 운영부문을 분리해 철도시설공단과 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철도주식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올 6월 에 상정하고자 했던 철도산업구조개혁법(안)과 철도시설공단법이 현재 12월 1일 차관회의를 통과했고,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2002년 7월 철도시설공단이 출범하게 되며, 2003년 7월에는 민간운영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와 맞물려 한․일 투자협정이 체결되고 국회비준을 거치게 되면, 일본의 민영철도회사가 매각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덕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불과 2년 전 까지만 해도 투자협정과 해외매각 관련한 정부 총괄책임자인 통산교섭본부장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일 투자협정이 체결된다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철도와 가스 산업과 같은 국가기간 산업의 민영화와 은행의 해외매각, 금융과 서비스시장의 전면 개방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 자명한 일이다. 한․일 투자협정을 모범으로 일부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공기업, 금융, 통신 등의 서비스, 주식시장 등에 있어서의 초국적 자본 투자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다양한 양자간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밑거름으로 작동할 것이다. 결국, 한․일 투자협정의 체결은 한․미, 한․칠레, 한․뉴질랜드 등 줄줄이 이어진 투자협정의 시발점에 불과하며, 그 결과 철도를 출발로 가스, 통신, 전력 등 국가 기간산업의 해외매각과 농업부문의 개방을 촉진시켜 나갈 것이다.
한․일 투자협정, 체결부터 막아야 한다
그 피해가 직접적으로 닥쳐왔던 농민들의 힘겨운 투쟁 외에는 그닥 문제제기와 저항이 없이 WTO 뉴라운드가 출범 해버린 것처럼, 현재 한․일 투자협정은 대다수 운동진영의 대응미비와 무관심 속에서 신속한 체결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WTO 다자간 무역체제와 한․일 투자협정과 같은 각종 투자, 무역관련 협정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말은 지구적 규범이지만, 실은 미국의 규범)를 다자간 및 양자간 협정 형태로 각 국에 강요하는 기제로써,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에게는 무역장벽을 비롯하여 세계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의 배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세계자본주의 경제질서에 편입해 들어가고자 하는 김대중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춰나가는 차원에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공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 추진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결과 구조조정을 통한 정리해고 및 하청, 계약직 노동의 확대 등 불안정 노동의 보편화를 추진하고, 농업을 내다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WTO 반대 투쟁이나 한․일 투자협정 체결 반대 투쟁은,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중생존권 쟁취와 철도민영화 저지 등 공기업 민영화 반대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오히려 일견 고립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각각의 투쟁을 연계하고, 각 영역 민중의 연대를 위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더욱 광범위하게 전 민중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때문에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은 그 초점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각종 투자협정 및 무역협정으로 맞추고,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진영은 국내 노동자 민중의 삶을 희생시키고 권리를 짓밟고 있는 김대중 정권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지금부터 공공부문 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와 농민, 영화예술인 등 민중이 연대하여 한․일 투자협정 반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철도 등 국가 기간산업을 해외자본에 매각하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은 물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도 보장하지 않으며, 투기성 자본마저도 투자라는 이름 하에 합법화시킴으로써 경제구조 전반을 위협에 빠뜨리는 투자협정을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