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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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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법.hwp

신자유주의 공고화과정에서 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특성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년에 부쳐

윤수정 | 민중복지연대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를 3대 국정철학으로 제시하며, ‘생산적 복지’를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두 수레바퀴의 중요한 연결 축으로 상정하였다. 생산적 복지는 경제위기극복과 복지사회로 가는 대안처럼 선전되었고, 이러한 국정지표의 핵심은 4인 가족 100만원을 보장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국기법)을 제정․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과 정부는 IMF 이후 대량실업 사태와 빈곤층 양산, 그리고 소득의 양극화 등 사회적 불안국면을 수습해야만했다. 또한, 이후 지속되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원활히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했다. 따라서 국기법은 이를 충족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다. 이렇게 되자, 이 법의 제정으로 한국에서는 사회복지가 과거에 비해 많이 확장된 것처럼 여겨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너나없이 사회복지를 축소시킨 것을 고려해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국기법의 도입은 대단히 선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래에서 다시 살펴 보겠지만) 그동안 복지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기법의 도입은 제도 정비의 문제이지 복지의 확장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국기법 제정에 있어서 참여연대를 비롯한 45개 시민단체가 구성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연대회의」의 노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기법은 그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권리’와 이를 수행하는 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한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제정과정에서 심화된 왜곡을 겪으며, 엄격한 수급자 선정기준과, 복지와 노동을 연계시킨다는 조건부 수급 등, 단서조항이 부가되면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시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국기법이 왜 그렇게 왜곡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1년의 시행과정에서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것이다.

국기법의 신자유주의적 맥락 : 실패한 노동연계복지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사회체제와 달리 끊임없는 자본 축적을 그 특징으로 한다. 자본 축적과정은 끊임없는 이윤율의 확대를 추구하는데,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노동력을 발전한 생산수단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력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소시켜 이윤율을 확장시킨다. 또한,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한곳으로 집중된다. 이 경향은 필연적으로 상대적 과잉인구를 팽창하고 소득의 양극화와 소비의 모순을 가져와 빈곤을 양산하는 것이다. 이 상대적 과잉인구 K.Marx, 김수행역,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자본론Ⅰ-하(下)』, 비봉출판사, 811p
는 취업하지 않은 인구로 산업예비군 비정규직으로서 파트타임, 임시직 노동자, 자영노동자, 자영과 임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반복실업자(일용직등)등
과 룸펜프롤레타리아 유랑자, 죄인, 매춘부등
을 말한다. 결국 이러한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호의 대상인 극빈층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정책은 양산된 상대적 과잉인구에 대한 관리, 즉 산업예비군이 노동무능력자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로서 기능하게 된다. 과거 영국의 구빈법 1601년에 엘리자베스 빈민법 → 1834년에 신빈민법. 국가적 차원의 입법은 항상 구제의 노동유인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법의 목적 중 하나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거나 일상적인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면, 그의 혼인여부에 관계없이 일을 하게해야한다.”
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열등처우 원칙 '피구제빈민의 상태는 최하층의 노동자보다 적격이어서는 안 된다.' ⇒ 최저임금제
은 이러한 의도에 부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열등처우 원칙 하에 빈민에 제공되는 급여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수준의 급여’가 아니라, 노동을 통하여 얻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수준보다 항상 낮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러한 원칙은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작용을 한다. 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빈민을 ‘게으른 자’, ‘놀고 먹는 자’로 취급해버린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존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노동시장에 뛰어 들게 만들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력을 팔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빈곤정책 또는 복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노동의 필요에 의한 복지의 성격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 속에 남아있다. 그러므로 계급 간 역관계속에서 복지를 노동의 복지로 변화해내는 것 역시 노동자 계급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국기법은 신자유주의 재편 즉,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라는 맥락을 제거한 채 어떤 독립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앞서 지적대로 국기법이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복지(Workfare)’라는 ‘생산적 복지’의 주요 기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국기법은 시행당시의 조건인 IMF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에 따른 빈곤층의 양산, 산업예비군의 극빈층화에 대비한 제도적 틀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경제위기와 이어진 대량실업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이란 외적인 위협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의 차원에서 제시되었다. 이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이란 일상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자활사업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자활사업은 ① 근로능력과 의지가 있는 자에 대한 노동시장 재진입 강요 ② 무조건적인 수급으로 인해 근로능력과 의지가 더 약화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한 근로유인, 즉 노동무능력자로의 탈락방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재진입을 유도하는 의도는 열악한 근로조건과 낮은 임금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무능력자의 탈락방지는 한편으론 산업예비군의 최하층을 유지, 관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빈곤비용의 최소화를 의도한다.
그러나, 국기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정책이 가지는 성격인 산업예비군의 노동무능력자로의 탈락을 방지하고 빈곤층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로서 기능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나아가,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여 복지 역시 ‘생산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정부는 복지를 ‘생산적’영역으로 만들고자했는데 이는 노동인센티브의 도입 즉, 국기법 내에서 조건부수급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동시에 복지의 문제에서 그래왔듯이 새롭게 양산된 빈곤과 실업 해소의 문제를 민간차원에 던져두고 있다. 가령, 조건부 수급은 전국 200개소의 자활후견기관을 중심으로 공공근로 및 자활공동체 등 자활사업의 활성화를 가져왔는데, 이는 민간자원을 동원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국가책임이 적은 방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조성은, 2001, 「한국에서 자활은 가능할 것인가」,『사회복지와 노동 2호』, 현장에서 미래를
결국, 국기법은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해이, 취업기피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근본적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것이다.

국기법 시행 1년의 현실

국기법은 국민이면 누구나 국가로부터 최저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근로능력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가구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그러나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이것이 정부의 선심책에 다름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국기법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기법으로 인해 오히려 수급대상자의 수가 줄었다. 정부는 종종 국기법 제정이후 수급자 수가 늘어났으며, 급여보장 수준도 상향되었다고 보도한다. IMF 직후인 1998년 생활보호대상자는 147만 명보다 8만 명이 많은 2001년 7월 현재 155만 명이 수급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일까? 정부의 설명대로 1998년 147만 명이던 생활보호대상자는 1년 뒤 1999년에는, 장기실업사태와 빈곤층 증가로 임시 대책인 한시생계보호 대상자를 포함하여 192만 명으로 최대치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2000년 10월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시에는 154만 명, 그리고 2001년 7월 수급자수가 15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즉, 2001년 7월의 155만 명은 1998년 147만 명에 비해 8만 명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1999년 192만 명보다 37만 명 줄어 들었다 보건복지부, 2001. 9, 「최근5년간 생활보호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변화」『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1년 성과와향후과제』,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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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과연 줄어든 37만 명은 그동안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일까? 일부 실업자의 재취업, 자활이 일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정부공식 실업률 3%대-그마저도 정부공식실업률은 고용보험 대상자만을 집계한 것이므로 불안정 고용층인 비정규직과 일용직, 반복실업자, 노점 등 영세자영업자, 수급자의 실업률은 배제된 것이다-를 유지하는 고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일상적, 장기적 실업과 불안정 고용으로 오히려 빈곤은 더 확대되었지 축소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과 1년 사이 37만 명이 재취업과 자활로 빈곤층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장황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국기법 시행당시만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엄격한 선정기준(소득평가액기준, 재산기준, 부양의무자기준 등)과 예산부족, 행정인프라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지난 2000년 7월 국기법 시행 당시, 정부는 신청자 194만 명중에서 45만 명을 탈락시켰고, 그 중 21만 명에게 조건부 수급을 부여하였다.
보건복지부의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 빈곤계층의 규모는 37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국기법 수급자 규모는 전체인구의 3% 수준에 불과하며, 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규모 370만 명의 41%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수급자가 줄어 든 결과, 생계를 급여에 의지하고 있던 수급자의 자살사태를 빚었으며, 전문요원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과로사 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둘째, 또한 급여액은 생활보호 때보다도 더욱 축소되었다. 국기법 상에 생계급여를 포함한 각종 급여는 비현실적으로 책정되어있으며, 그나마 그 급여 또한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로 인하여 적절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가령, 1인 가구 수급자의 경우 최저생계비가 33만원인데 여기에 타 지원액(의료, 교육, TV수신료, 전화설치비 등) 4만 7천 원을 공제하고, 소득이 없을 경우 현금으로 28만 6천 원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수급자에게 지급된 평균급여액은 12만원이다. 4인 가구의 경우,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84만 1천 원이지만, 실제로 지급되는 평균지급액은 35만 1천 원밖에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의료보호 또한 1종의 경우, 무료라고 하지만 타 지원액 때문에 모든 수급자가 의료비 부담을 하고 있으며, 비급여부분으로 인해 의료보호대상자 또한 많은 의료비를 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듯 낮은 수급권자의 규모와 낮은 급여는 절대빈곤층의 최저생계를 전혀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보건복지부는 12월 1일 2002년 최저생계비를 공지했다. 올해보다 3.5%인상하여 4인가족 99만원으로 최저생계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발표 최저생계비는 현실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을 의미하지 않는다. 2002년 기초생활보장제도예산이 올해보다 낮게 책정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이다. 즉, 수급자 수를 줄이거나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올해보다 더욱 줄이겠다는 것이다.

셋째, 조건부 수급은 노동유인책으로서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살인적 노동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조건부 수급자는 취업대상자와 비취업대상자로 구분된다. 취업대상자는 노동부로부터 취업알선, 직업훈련, 자활근로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비취업자의 경우 자활후견기관의 자활사업참여와 공공근로에 투입되어 일정의 노동을 해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활사업에 참여하고있는 조건부 수급자의 경우 다수는 질병과 장애로 인한 노동능력 미약자로서 적절한 노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 조건부 수급자 40만 가운데 17%는 중증질환자이고, 취업대상자의 23%와 비취업대상자의 55.3%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로 충분한 노동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할 대상들이다. 이처럼 너무도 엄격한 선정기준으로 인하여 일반 수급자로서 보호받아야할 대상조차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정기준을 조정하여 수급자를 대폭 확대한다하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사회복지제도가 미약한 한국적 현실에서 노동능력이 있으면서도 노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동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재편과정에서 산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대체하여 필연적으로 실업을 양산할 수밖에 없고, 양산된 실업노동자의 직업선택권을 박탈하여 불안정한 일자리,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자본의 요구에 의한 실업상태에 있는 빈곤층에게 노동유인을 한다는 것은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조건부 수급자의 자활이 충분치 못한 것으로 보이자, 급기야 3D업종에라도 취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수급권을 주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이것은 지난 4월 “IT․3D 업종 인력부족 종합대책”으로 3D 업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실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취업알선을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 지급을 정지하고, 조건부 수급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자활사업에 불참할 경우 생계급여 중단 등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정부는 이것을 소위 ‘눈높이 취업’이라고 부르며, 실업자나 조건부 수급자가 취업 눈높이를 낮추어 낮은 임금수준 및 살인적인 노동강도의 낙후된 일자리라도 취업하길 강요하였다.

넷째, 정부는 수시로 선정기준을 강화하여 불법 수급자를 색출해내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국기법 시행 중반기인 2001년 7월, 정부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방안」을 내놓아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엄격성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이 ‘내실화 방안’은 △놀고 먹는 복지 방지-수급자 관리강화 △조건부 수급자 관리조건강화 △가짜빈곤층 색출 △소득, 재산조사 강화 △탈락자 대책마련을 추진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내실화방안은 ‘놀고 먹는 복지’ ‘가짜빈곤층’을 방지한다는 미명 하에 축소되어진 복지를 더욱 축소하고 있다.

다섯째, 감당할 수 없는 만성 실업층이 늘어나자, 자활사업을 확장하며 현재 경쟁력이 없어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어려운 이로 하여금 노동시장과 실업 사이에 또 하나의 계층을 형성시켰다. 결국 이 사실은 조건부 수급을 받는 이들은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시작된 수급권자의 투쟁, 민중복지 쟁취를 위한 연대투쟁으로!

권리는 투쟁을 통해 실질적으로 쟁취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도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1년의 시행과정에서 보았듯이 이는 알맹이 없는 선언에 불과한 권리였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비록 명시적이지만 국기법 상 나타나는 권리의 의의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나서서 보장한다는데 그만큼 반갑고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실질적인 권리를 획득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기법은 이미 먹을 것 없이 이리저리 잘려져 나간 당근이 되어 ‘제도’로만 남았다. 제도의 정착 자체는 사실 발전 그 자체는 아니었음에도 선한 시민으로서의 시민단체는 제도라도 만들어 놓고 보자는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죄에 발목을 잡혀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제도 자체는 확대건 아니건 언제나 가변적이다. 시민단체는 수급대상자 외연의 확대에 착목한 나머지 정부와 수급자 규모 또는 수의 오르내림에 스스로의 담론을 국한시켜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국기법이 신자유주의 공고화의 한 부분이라는 점-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될수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수록 '사회적 안전망'의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에게 기만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국기법의 생산적 복지의 이름 하에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전면 거부하지 않고는 온전한 권리를 쟁취 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불안정 노동 층을 점점 더 확산하고, 노동자 민중의 생활과 노동 모두를 파괴하며 흔드는데 그치지 않고, 노동을 분절화하여 관리하고 있다. 빈민을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과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여성과 남성으로, 장애와 비장애인 등으로... 그러나 사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노동자는 산업재해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 산재노동자는 장애노동자이듯, 장애노동자는 실업노동자이며 비정규직노동자이듯, 실업노동자는 빈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같은 요구와 같은 문제의 동일한 계급조건의 노동자임이 분명하다. 이제 투쟁은 빈민으로서 실업노동자로서 장애노동자로서 여성노동자임을 각인하면서 제기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서울의 명동성당 한 귀퉁이에는 여성이며, 장애인이며, 수급권자의 한 명인 최옥란씨가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최옥란씨는 이제, 수급자로 선정되어 받은 급여를 반납하겠다고 한다.
"기초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그런데 노점조차도 포기한 저에게 정부는 월 26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해도 26만원이 넘는데....아파트 관리비만도 16만원인 데....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인지?..."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수급자 최옥란 2001. 11. 13)
최옥란씨의 투쟁은 전체 수급자의 생존권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생계급여의 문제로부터 제기한 첫 투쟁이자 작은 시작이다. 이 소중한 시작을 어떻게 이어가며 확대해나갈 것인지는 아직까지 시민사회운동진영의 몫이다. 신자유주의 생산적 복지 속에서는 어떠한 장미빛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내야 한다. 빈민, 실업노동자, 장애노동자, 산재노동자의 각각의 요구를 하나로 모아 공동의 계획과 실천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수급자 뿐 아니라 광범위한 차상위계층을 만나고 조직하기 위한 대중적인 기반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1년 동안 절대적 빈곤을 강요해온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문가나 평론가의 손을 떠나 주체의 몫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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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 「생존권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우리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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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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