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남기 12개월 - 서울대 성폭력 가해자 첫 제명,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1. 주인 없는 잔치
2001년 12월 17일, "서울대(!)가 성폭력 가해자(!)를 제명했다는 사실을 모든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서울대의 성폭력 가해자 첫 제명은 그동안 성폭력의 박물관이었던 대학공간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논란을 거듭해왔던 성폭력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범죄인가를 인식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라는 지적들이 올라왔으며, 여성연합이 선정한 여성계10대 뉴스 6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떠들썩한 보도내용 속에 피해자의 시선은 없다. 피해자에게 어떤 싸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할애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얼마나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학교측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모든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12개월 동안 처절하게 살아왔던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인터뷰요청의 유일한 목적은 이모군의 불인정과 법적 소송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였다.
이 글은 그동안 서울대, 성폭력 가해자 첫 제명이라는 보도 속에서 묻혀지고 한번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피해자의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한다. 지난 12개월의 싸움이 이씨의 피해자에게 무엇이었는지 피해자의 시선으로 옮길 것이다. 12개월 동안 싸웠던 피해자의 시선으로 이 글을 읽기를 바라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2.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남기 12개월
2000년 12월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에서 이씨의 사례5개를 공개했다. 공개 직후 이씨는 100인위 게시판(진보넷. wom100)에 사과문을 올렸고, 피해자는 피해자모임을 만들어 이씨의 사과문을 반박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피해자모임을 알리자 3명의 피해자가 연락했고, 총 8명의 피해자는 함께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추가피해자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이씨 스스로 노트 2페이지가 넘는 피해자 명단이 있다고 밝혔던 것이 현실화될수록,‘제발 이제 그만!'이기를 바랬다. 추가피해자들이 공개된 사례와 이씨의 이름을 보고 연락하기까지의 충격과 고통을 공유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겐 몇 배나 힘든 일이었다. 자신 외에도 피해자가 도처에 얼마나 더 있을지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자체가 공포였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토록 하기 위해선 가해자와 있었던 일에 대해 그녀들은 말해야 한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사건의 공개와 싸움의 시작은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겨야하고, 또한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의 입방아에서 끊임없이 평가 받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면 사람들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한 가해에만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해가 피해자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었는지는 이것이 성폭력이니 아니니 또는 추행이니 강간이니 등의 용어 속에 은폐되고 만다. 악몽 같은 기억을 되새기고,‘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동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날의 기억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인정받는 싸움을 한다는 것이 차라리 망각하는 것 보다 얼마나 더 어려웠을 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개의 단체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인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이씨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2001년 2월 중순경에 이씨로부터 영국에 어학연수를 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오히려(!) 대책위를 왜 늦게 구성했느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추궁을 하였다. 어렵게 피해자로서 자신을 인정한 그녀들을 더없이 처참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대책위와의 첫 번째 면담을 통해 성폭력사건을 인정하였으나, 대책위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대책위와의 2차 면담에 나타나지 않았고, 어학연수를 가버렸다. 결국 이씨의 불응으로 인해 대책위를 통한 사건해결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피해자모임은 2001년 2월말 서울대 성폭력 상담소에 신고를 하였다. 그 후 6개월 간의 조사과정에 대응을 하였고, 학교사정(서울대 징계규정안 제정)으로 인해 3개월을 기다렸다. 2001년 12월에 3차례의 징계회의가 있었고, 이씨를 제명처리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뉴스보도의 떠들썩함처럼 그 과정이 피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씨에 대한 제명이 결정되면서 가해자처벌과 피해자학습권보장에 대한 피해자로서의 모든 대응은 끝을 맺게 되었다.
3. 강제력 없는 대책위, 선택권은 가해자에게
이씨는 대책위에서 요구사항을 제시하기 전까진 내내 고개를 숙이고 누차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써온 사과문을 다 읽고, 스스로 인정을 했다. 하지만 사과문 몇 장 쓰고, 여성단체 봉사활동 몇 개월만으로 때울 줄 알았던 요구사항이 그 이상의 것임을 알자 '가혹한 처벌'이라며 조정을 요구했다. 대책위에서 거절하자 즉시 피해자의 신원을 누출하고 주변에 자살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씨가 자살하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죽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예상한다면 위험천만이다.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이씨가 자살한다면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고통과 기억이 영원히 각인될 것이고, 모든 책임과 질책을 피해자에게 물을 것이기에 이씨의 자살선언은 피해자에게 공포였다.
이씨가 대책위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씨로선, 대책위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이 가능하면 받아들임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에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고,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협이 불가능하면 대책위를 무시하고 '가혹한 처벌'이라며 대책위로 책임을 물어도 비난할 사람은 소수이며, 자신의 삶에 별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대책위에 참가하는 것이 그로서는 손해볼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계산은 맞아떨어졌으며,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었다.
강제력이 없는 대책위는 선택권이 가해자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를 목적으로 했던 대책위는 이씨의 부정으로 인해 그 역할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과 학습권보장'으로 목적을 수정해야만 했다.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해 대책위를 구성한 단위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를 정립하고자 하였지만 그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가해자를 옹호하진 않는다 할지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이해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고, 성폭력 발생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묻고,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여성에겐 어떤 것인지 이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00인위의 공개 후 가해자들의 주된 공격수단이었던 피해자 명예훼손, 무고죄 고소로부터 이씨의 피해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해자가 대책위를 부정한 후 피해자에게 남은 것은 가해자가 무슨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고립감이었다.
4. 2번의 심판
다른 선택이 없었던 피해자는 이씨가 대책위를 부정한 즉시 상담소에 신고하였다. 상담소에 신고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서울대에서 성폭력사건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법적으로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 또한 대책위의 좌절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그 피해를 아무도 책임져줄 수 없었고,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폭력규정이 피해자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소에 신고할 자격(피해자나 가해자가 서울대 학생일 경우 가능하며, 적용시한이 있다)이 있었던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자기존중과 성적 자율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승산을 저울질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울대 성폭력 규정은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구분하고, 성폭력범죄 행위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 성희롱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성희롱은 성폭력보다는 가볍고 사소한 행위로 이해되고 있다. 위의 성희롱과 성폭력 규정은 젠더를 관통하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고, 친교, 우정, 연애, 사랑과 같은 친밀성의 기호들에 둘러싸인 섹슈얼리티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써 개발되어있는 것이 징계 외에는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소위 징계를 할 만큼 폭행과 강제과 같은 폭력의 기호들과 맞물린 성폭력 사건만을 신고하게 된다. 이것은 피해자가 당한 피해의 정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경험과 고통을 제 3자(혹은 사회적으로)에 의해 규정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씨의 피해자는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관한 법률에 의한 성폭력범죄행위의 구성요소를 증명해야만 했다. 성희롱의 기준을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으로 삼고 있지만 피해자의 판단이 어떻게 합리적인지 증명해야한다. 피해자는 6개월 간의 조사과정에서 몇 차례 진술서와 이씨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반박문을 써야했다.
피해자의 증명책임은 조사과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성폭력규정과 징계규정에 따라 성폭력상담소 조사위원회가 조사 후 징계권고안을 총장에게 요청하면 학생징계위원회에서 심의, 의결을 하게 된다.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의 구성인자가 전혀 다름으로 인해 사건의 진실성여부, 징계수준의 차이 등에서 충돌할 수 있다. 이씨의 피해자는 직접 징계회의에 참석할 것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징계위원들에게 둘러싸여 결코 발가벗기듯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진술해야했다.
이씨는 서울대 성폭력 상담소 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모든 성폭력 사실과 자신의 사과문을 부정했다. 가해자가 부정할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증명책임을 져야하는 현실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조사위원회에서 성폭력사실을 인정하고 징계를 권고하려하자 권고안은 너무 가혹하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즉시 태도를 바꿨다. 징계위원회에서 조사위원회가 권고한 것 이상의 징계를 결정하자 다시 이씨는 태도를 바꿔‘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인터뷰를 했다. 이씨는 반성의 제스춰와 부정을 거듭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였다.
5. 피해자가 지켜낸 것
이 싸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피해자들의 연대였다. 그러나 이씨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과 성과에 대해 절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포기하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연대투쟁으로 승리한 것이다'라고 절대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성폭력 사건해결 또한 '노력하면 뭐든지 이뤄진다'라는 개인의 의지문제로 축소되고, 사회구조와 문화, 남성과 여성의 차별적인 역관계를 고려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의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피해자의 의지와 노력보다는 사회인식과 구조, 문화, 가해자의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따라서 이씨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평가는 앞서 얘기한 불리한 조건을 바꾸어낸 이씨 피해자들의 싸움의 특성에 한하여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싸움이었는지 다룰 것이다.
1) 피해자간 연대
처음 피해자를 각각 대면했을 때 그녀들의 상태는 상이했지만, 차라리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싶을 만큼 성폭력사건에 대한 기억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 오랜 기간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이씨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은 공통적이었다. 싸우는 과정에서도 악몽, 하혈, 위경련, 우울증, 무기력증 등 고통의 징후는 지속되었고, 자책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모임과 피해자간의 연대는 자신의 경험을 비로소 얘기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 두 번째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버틸 수 있게 한 중요한 공간이자 관계였다 점에서 중요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왜 그런 경험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잊고 싶었던 기억을 스스로 끌어내고 피해사실을 고백한다는 것, 다른 피해자의 경험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잊으려해도 내면에 석회처럼 굳어 있음을 확인하는 고통이었고, 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공포였다. 그녀들의 고백의 고통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피해자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피해자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씨가 가한 행위가 어떤 것이며, 왜 이씨의 행동이 용인될 수 있었는지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피해자의 경험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씨로부터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벗어나고 싶다는 공통의 소망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이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성격, 행동의 양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서의 이씨에 의해 자신의 성적 자율권이 침해된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고 일상적일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 속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성적 자율권을 복원하기 위한 싸움
이씨에 대한 제명처분은 결과적으로 이씨로부터의 물리적 격리를 가능하게 했고, 피해자의 무고와 이씨의 행위가 성폭력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게 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씨로부터 성적 자율권을 회복하고, 자신의 몸과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획득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남성에 의해서 침해받았던 여성의 성적 주체로서의 권리는 그녀의 인격과 인간관계, 성격, 삶의 지향, 사회적 위치 그 모든 것들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3)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인정
교수와 제자, 상사와 직원, 공권력과 여성, 아버지와 딸의 관계처럼 이미 위치 지워진 위계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지내던 사이, 동지애, 친구, 비슷한 나이의 이성간에서도 성적 폭력이 발생할 수 있고, 여성에게는 더 일상적인 폭력임을 인정받았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와 신뢰를 이용하여 더 극악한 성폭력을 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씨가 주장하는‘합의된 성관계'는 이미 자신의 의지가 내재된 '할래 말래?'의 선택강요가 피해자에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폭행, 위협조차도 부정하는 것이다.
6. 꿈 이야기
며칠 전에 꿈을 꾸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 두 번 그 놈 꿈을 꾸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길고 서럽게 꾸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어찌하여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는데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서러워 목놓아 울었습니다.
나중에는 신의 심판을 받으라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그 놈과 나란히 올라가더군요.
여전히 꺼이꺼이, 목놓아 울면서 말이죠.
깨 보니 눈물은 흐르지 않는데 꿈속에서처럼 목을 놓아 울고 있더군요.
꿈 속에서...이**가 다시 저랑 만나게 되는 거예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저랑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마치 저를 못 알아보는 듯이.
저는 속으로 너무 무서우면서...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한 번 떠보는 말을 한 마디씩 던지지만..별 반응을 하지 않네요.
끔찍한 상상이 중간 중간 떠올라서 몸서리치다가..
근데 중간에 알고 보니 이**가 저를 괴롭히러 왔던 것인지.
실랑이 끝에 이**를 죽여요. 내내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살짝 이**가 몸을 돌린 사이에 해치웠거든요.
시체가 너무 무거워서..치우기가 너무 힘들었지요.
엄마가 들어오고...엄마는 영문을 모르니까 "동조하기 어렵다"고 하고...
내내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저도 너무 놀란 상태라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그냥 숨겨야 겠다는 생각에 '토끼장'에 숨겼지요.
하여튼 깨고 나니 "왜 그런 새끼 때문에 내가 인생을 망치는 '살인'을 해야 하나..?"는
서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저는 이**를 만나면 절대로...죽이지 않겠지요.
저는 절대 제 인생을 조금도 그 놈 때문에 더이상...손상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겁나네요.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위 2개의 꿈 이야기는 이씨에 대한 제명결정이 있은 후 피해자의 꿈이다.
이씨에 의해 자기 삶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생존자로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 사회의 시선 -성폭력 피해자를 '더럽혀진 년'으로 취급을 하고, '보호해줘야 할 순결과 보호해줄 필요도 없는 걸레'로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에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이씨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말한다. 이씨로부터는 벗어났고, 더 이상 그로부터 성적 자율권을 침해받지 않겠지만, 여성의 성적 자율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조건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또다시 같은 경험을 할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성에게 당연시 되는 것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정당함이다, 이 여자는 내 것이다, 이것은 합의다. 가해자를 처벌하면 끝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이 무엇인지 알게되었기 때문에 여성에게 안전한 것이 무엇이고,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좀 더 알게 된 것뿐이다라고.
2001년 12월 17일, "서울대(!)가 성폭력 가해자(!)를 제명했다는 사실을 모든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서울대의 성폭력 가해자 첫 제명은 그동안 성폭력의 박물관이었던 대학공간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논란을 거듭해왔던 성폭력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범죄인가를 인식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라는 지적들이 올라왔으며, 여성연합이 선정한 여성계10대 뉴스 6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떠들썩한 보도내용 속에 피해자의 시선은 없다. 피해자에게 어떤 싸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할애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얼마나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학교측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모든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12개월 동안 처절하게 살아왔던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인터뷰요청의 유일한 목적은 이모군의 불인정과 법적 소송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였다.
이 글은 그동안 서울대, 성폭력 가해자 첫 제명이라는 보도 속에서 묻혀지고 한번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피해자의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한다. 지난 12개월의 싸움이 이씨의 피해자에게 무엇이었는지 피해자의 시선으로 옮길 것이다. 12개월 동안 싸웠던 피해자의 시선으로 이 글을 읽기를 바라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2.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남기 12개월
2000년 12월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에서 이씨의 사례5개를 공개했다. 공개 직후 이씨는 100인위 게시판(진보넷. wom100)에 사과문을 올렸고, 피해자는 피해자모임을 만들어 이씨의 사과문을 반박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피해자모임을 알리자 3명의 피해자가 연락했고, 총 8명의 피해자는 함께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추가피해자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이씨 스스로 노트 2페이지가 넘는 피해자 명단이 있다고 밝혔던 것이 현실화될수록,‘제발 이제 그만!'이기를 바랬다. 추가피해자들이 공개된 사례와 이씨의 이름을 보고 연락하기까지의 충격과 고통을 공유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겐 몇 배나 힘든 일이었다. 자신 외에도 피해자가 도처에 얼마나 더 있을지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자체가 공포였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토록 하기 위해선 가해자와 있었던 일에 대해 그녀들은 말해야 한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사건의 공개와 싸움의 시작은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겨야하고, 또한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의 입방아에서 끊임없이 평가 받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면 사람들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한 가해에만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해가 피해자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었는지는 이것이 성폭력이니 아니니 또는 추행이니 강간이니 등의 용어 속에 은폐되고 만다. 악몽 같은 기억을 되새기고,‘정말 힘들었겠구나'라는 동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날의 기억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인정받는 싸움을 한다는 것이 차라리 망각하는 것 보다 얼마나 더 어려웠을 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개의 단체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인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이씨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2001년 2월 중순경에 이씨로부터 영국에 어학연수를 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오히려(!) 대책위를 왜 늦게 구성했느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추궁을 하였다. 어렵게 피해자로서 자신을 인정한 그녀들을 더없이 처참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대책위와의 첫 번째 면담을 통해 성폭력사건을 인정하였으나, 대책위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대책위와의 2차 면담에 나타나지 않았고, 어학연수를 가버렸다. 결국 이씨의 불응으로 인해 대책위를 통한 사건해결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피해자모임은 2001년 2월말 서울대 성폭력 상담소에 신고를 하였다. 그 후 6개월 간의 조사과정에 대응을 하였고, 학교사정(서울대 징계규정안 제정)으로 인해 3개월을 기다렸다. 2001년 12월에 3차례의 징계회의가 있었고, 이씨를 제명처리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뉴스보도의 떠들썩함처럼 그 과정이 피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씨에 대한 제명이 결정되면서 가해자처벌과 피해자학습권보장에 대한 피해자로서의 모든 대응은 끝을 맺게 되었다.
3. 강제력 없는 대책위, 선택권은 가해자에게
이씨는 대책위에서 요구사항을 제시하기 전까진 내내 고개를 숙이고 누차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써온 사과문을 다 읽고, 스스로 인정을 했다. 하지만 사과문 몇 장 쓰고, 여성단체 봉사활동 몇 개월만으로 때울 줄 알았던 요구사항이 그 이상의 것임을 알자 '가혹한 처벌'이라며 조정을 요구했다. 대책위에서 거절하자 즉시 피해자의 신원을 누출하고 주변에 자살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씨가 자살하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죽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예상한다면 위험천만이다.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이씨가 자살한다면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고통과 기억이 영원히 각인될 것이고, 모든 책임과 질책을 피해자에게 물을 것이기에 이씨의 자살선언은 피해자에게 공포였다.
이씨가 대책위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씨로선, 대책위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이 가능하면 받아들임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에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고,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협이 불가능하면 대책위를 무시하고 '가혹한 처벌'이라며 대책위로 책임을 물어도 비난할 사람은 소수이며, 자신의 삶에 별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대책위에 참가하는 것이 그로서는 손해볼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계산은 맞아떨어졌으며,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었다.
강제력이 없는 대책위는 선택권이 가해자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치유'를 목적으로 했던 대책위는 이씨의 부정으로 인해 그 역할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과 학습권보장'으로 목적을 수정해야만 했다.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해 대책위를 구성한 단위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를 정립하고자 하였지만 그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가해자를 옹호하진 않는다 할지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이해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고, 성폭력 발생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묻고,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여성에겐 어떤 것인지 이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00인위의 공개 후 가해자들의 주된 공격수단이었던 피해자 명예훼손, 무고죄 고소로부터 이씨의 피해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해자가 대책위를 부정한 후 피해자에게 남은 것은 가해자가 무슨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고립감이었다.
4. 2번의 심판
다른 선택이 없었던 피해자는 이씨가 대책위를 부정한 즉시 상담소에 신고하였다. 상담소에 신고하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서울대에서 성폭력사건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법적으로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 또한 대책위의 좌절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그 피해를 아무도 책임져줄 수 없었고,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폭력규정이 피해자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소에 신고할 자격(피해자나 가해자가 서울대 학생일 경우 가능하며, 적용시한이 있다)이 있었던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자기존중과 성적 자율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승산을 저울질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울대 성폭력 규정은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구분하고, 성폭력범죄 행위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 성희롱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성희롱은 성폭력보다는 가볍고 사소한 행위로 이해되고 있다. 위의 성희롱과 성폭력 규정은 젠더를 관통하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고, 친교, 우정, 연애, 사랑과 같은 친밀성의 기호들에 둘러싸인 섹슈얼리티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써 개발되어있는 것이 징계 외에는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소위 징계를 할 만큼 폭행과 강제과 같은 폭력의 기호들과 맞물린 성폭력 사건만을 신고하게 된다. 이것은 피해자가 당한 피해의 정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경험과 고통을 제 3자(혹은 사회적으로)에 의해 규정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씨의 피해자는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관한 법률에 의한 성폭력범죄행위의 구성요소를 증명해야만 했다. 성희롱의 기준을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으로 삼고 있지만 피해자의 판단이 어떻게 합리적인지 증명해야한다. 피해자는 6개월 간의 조사과정에서 몇 차례 진술서와 이씨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반박문을 써야했다.
피해자의 증명책임은 조사과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성폭력규정과 징계규정에 따라 성폭력상담소 조사위원회가 조사 후 징계권고안을 총장에게 요청하면 학생징계위원회에서 심의, 의결을 하게 된다.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의 구성인자가 전혀 다름으로 인해 사건의 진실성여부, 징계수준의 차이 등에서 충돌할 수 있다. 이씨의 피해자는 직접 징계회의에 참석할 것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징계위원들에게 둘러싸여 결코 발가벗기듯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진술해야했다.
이씨는 서울대 성폭력 상담소 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모든 성폭력 사실과 자신의 사과문을 부정했다. 가해자가 부정할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증명책임을 져야하는 현실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조사위원회에서 성폭력사실을 인정하고 징계를 권고하려하자 권고안은 너무 가혹하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즉시 태도를 바꿨다. 징계위원회에서 조사위원회가 권고한 것 이상의 징계를 결정하자 다시 이씨는 태도를 바꿔‘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인터뷰를 했다. 이씨는 반성의 제스춰와 부정을 거듭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였다.
5. 피해자가 지켜낸 것
이 싸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피해자들의 연대였다. 그러나 이씨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과 성과에 대해 절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포기하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연대투쟁으로 승리한 것이다'라고 절대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성폭력 사건해결 또한 '노력하면 뭐든지 이뤄진다'라는 개인의 의지문제로 축소되고, 사회구조와 문화, 남성과 여성의 차별적인 역관계를 고려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의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피해자의 의지와 노력보다는 사회인식과 구조, 문화, 가해자의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따라서 이씨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평가는 앞서 얘기한 불리한 조건을 바꾸어낸 이씨 피해자들의 싸움의 특성에 한하여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싸움이었는지 다룰 것이다.
1) 피해자간 연대
처음 피해자를 각각 대면했을 때 그녀들의 상태는 상이했지만, 차라리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싶을 만큼 성폭력사건에 대한 기억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 오랜 기간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이씨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은 공통적이었다. 싸우는 과정에서도 악몽, 하혈, 위경련, 우울증, 무기력증 등 고통의 징후는 지속되었고, 자책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모임과 피해자간의 연대는 자신의 경험을 비로소 얘기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 두 번째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버틸 수 있게 한 중요한 공간이자 관계였다 점에서 중요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왜 그런 경험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잊고 싶었던 기억을 스스로 끌어내고 피해사실을 고백한다는 것, 다른 피해자의 경험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잊으려해도 내면에 석회처럼 굳어 있음을 확인하는 고통이었고, 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공포였다. 그녀들의 고백의 고통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피해자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피해자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씨가 가한 행위가 어떤 것이며, 왜 이씨의 행동이 용인될 수 있었는지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피해자의 경험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씨로부터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벗어나고 싶다는 공통의 소망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이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성격, 행동의 양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서의 이씨에 의해 자신의 성적 자율권이 침해된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고 일상적일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 속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성적 자율권을 복원하기 위한 싸움
이씨에 대한 제명처분은 결과적으로 이씨로부터의 물리적 격리를 가능하게 했고, 피해자의 무고와 이씨의 행위가 성폭력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게 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씨로부터 성적 자율권을 회복하고, 자신의 몸과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획득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남성에 의해서 침해받았던 여성의 성적 주체로서의 권리는 그녀의 인격과 인간관계, 성격, 삶의 지향, 사회적 위치 그 모든 것들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3)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인정
교수와 제자, 상사와 직원, 공권력과 여성, 아버지와 딸의 관계처럼 이미 위치 지워진 위계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지내던 사이, 동지애, 친구, 비슷한 나이의 이성간에서도 성적 폭력이 발생할 수 있고, 여성에게는 더 일상적인 폭력임을 인정받았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와 신뢰를 이용하여 더 극악한 성폭력을 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씨가 주장하는‘합의된 성관계'는 이미 자신의 의지가 내재된 '할래 말래?'의 선택강요가 피해자에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폭행, 위협조차도 부정하는 것이다.
6. 꿈 이야기
며칠 전에 꿈을 꾸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 두 번 그 놈 꿈을 꾸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길고 서럽게 꾸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어찌하여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는데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서러워 목놓아 울었습니다.
나중에는 신의 심판을 받으라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그 놈과 나란히 올라가더군요.
여전히 꺼이꺼이, 목놓아 울면서 말이죠.
깨 보니 눈물은 흐르지 않는데 꿈속에서처럼 목을 놓아 울고 있더군요.
꿈 속에서...이**가 다시 저랑 만나게 되는 거예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저랑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마치 저를 못 알아보는 듯이.
저는 속으로 너무 무서우면서...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한 번 떠보는 말을 한 마디씩 던지지만..별 반응을 하지 않네요.
끔찍한 상상이 중간 중간 떠올라서 몸서리치다가..
근데 중간에 알고 보니 이**가 저를 괴롭히러 왔던 것인지.
실랑이 끝에 이**를 죽여요. 내내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살짝 이**가 몸을 돌린 사이에 해치웠거든요.
시체가 너무 무거워서..치우기가 너무 힘들었지요.
엄마가 들어오고...엄마는 영문을 모르니까 "동조하기 어렵다"고 하고...
내내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저도 너무 놀란 상태라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그냥 숨겨야 겠다는 생각에 '토끼장'에 숨겼지요.
하여튼 깨고 나니 "왜 그런 새끼 때문에 내가 인생을 망치는 '살인'을 해야 하나..?"는
서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저는 이**를 만나면 절대로...죽이지 않겠지요.
저는 절대 제 인생을 조금도 그 놈 때문에 더이상...손상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겁나네요.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위 2개의 꿈 이야기는 이씨에 대한 제명결정이 있은 후 피해자의 꿈이다.
이씨에 의해 자기 삶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생존자로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 사회의 시선 -성폭력 피해자를 '더럽혀진 년'으로 취급을 하고, '보호해줘야 할 순결과 보호해줄 필요도 없는 걸레'로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에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이씨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는 말한다. 이씨로부터는 벗어났고, 더 이상 그로부터 성적 자율권을 침해받지 않겠지만, 여성의 성적 자율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조건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또다시 같은 경험을 할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성에게 당연시 되는 것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정당함이다, 이 여자는 내 것이다, 이것은 합의다. 가해자를 처벌하면 끝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이 무엇인지 알게되었기 때문에 여성에게 안전한 것이 무엇이고,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좀 더 알게 된 것뿐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