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적 보수화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가
아프간에서 전쟁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는 이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어떻게 전쟁이 가능했었는지, 전쟁의 조건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전쟁의 미국 내의 조건들, 그 중에서도 두가지의 주요한 사건, 탄저균 테러와 애국법안의 성립만을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9.11 사건 직후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의 의문들, 미국은 과연 실제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또는 미국 내부에서는 전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하는 의문들을 가장 명쾌하게 답한 사건이 탄저균 테러였고 애국법안은 그 직접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9.11 사태는 여전히 생생한 경험이고 공포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 벌어진, 그리고 사실상 미국인들을 비행기테러보다도 더 공포에 떨게 한 탄저균 테러는 철저하리만큼 무시하고 망각해버렸다. 9.11 이후 한달 간은, 비록 누구나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지만, 과연 월남전의 호된 기억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전쟁에 대한 내부의 동의를 이끌어낼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의 하나였다. 사실상 이 한달 간의 시기는 미묘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의 국제전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이 국제전이 내부에서 갖는 함의도 고려하고 있었다. 전쟁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그것이 어떤 전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국민적' 확신이 없었다. 백색가루의 테러는 이 미묘한 균형을 결정적으로 깨뜨려 놓았다. 물론 탄저균은 단지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지만(장전은 이미 되어 있었다), 그 정치적 효과는 사태를 다른 단계로 발전시켰다. 탄저균의 공포는 일부의 논리를 전국민화 했고 전체화했다. 화려한 정치적 외양은(이미 9.11 사건 직후 상하 의원들이 의사당 앞에서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할 때 거덜나긴 했지만), 실제로는 허약한 골격을 감추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 자리를 공포가 대신했다. 그것은 애국의 이름을 가진 전쟁과 테러의 교배물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9월 11일의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일회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테러에 대한 대응을 단발의 기습에 대한 보복이상의 것으로 만들려면, 즉 그것이 전쟁이 되기 위해서는 테러가 만들어낸 미국의 국내적 사태들이 보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것이어야만 하며, 무엇보다도 무차별적인 위험으로 존재해야 했다. 탄저균은 이점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책이었다. 누구도 테러조직이 록키 산맥의 한가한 산촌에 비행기를 내려 박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탄저균은 그 공간적, 신분적 차별성을 없애버렸다. 따라서 일부의 미국인(정치가와 기업가, 즉 미국의 엘리트들)이 아닌 미국인 전부가 생사의 무대 위에 올려진 것처럼 연출되었다. 탄저균의 공포가 미국을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백색가루가 미국의 일부를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조차도 망각되었다. 10월 중순 이후의 모방사건들을 배제한다면 탄저균은 요격 미사일처럼 지극히 잘 겨냥된 목표물을 향하고 있었다.
탄저균을 보낸 집단은 그 행동이 비밀스럽고 그 과정이 복잡했을지언정 그 목표와 메시지는 단순했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아주 복잡한 반향을 갖는 사건이었다. 탄저균이 목표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없어졌을 때 가장 환호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자. 처음으로 탄저균이 발견된 플로리다의 슈퍼마켓용 타블로이드 언론사는 중남부의 백인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이 분노해마지 않는 '뉴에이지즘'(UFO등 이른바 현대의 '이신'-사탄-을 부추긴다고 비난받고 있다)을 전파하는 대표적인 황색매체의 하나였다. 그리고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 톰 대쉴이 없어진다면 상원에서 민주당 지배는 종식된다. 또 다른 민주당 상원의원 파인골드는 선거개혁법안의 입안자이자 민주당내 좌파를 대표한다(그는 애국법안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배달처, 미국의 3대 방송사와 뉴욕의 몇몇 신문사에 대한 탄저균 공격은, 제 3자의 눈에는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이 언론매체들을 공산주의자와 극단적 리버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극우파(사실상 우파 일반이라고 해야 맞다)들의 거의 도착적이다 싶을 정도의 강한 신념들과 관계가 있다. 이 극우파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주요 언론이 왜곡하고 가로막는다는 불만, 즉 자신들의 의견이 여론이 되지 않는 것은 언론 탓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너무나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 것을 남들 탓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동시에 극우파가 공유하고 있는 인민주의적 성격 때문에 이들은 그 과오가 미국 땅위에 살고 있는 인민들-적어도 백인의 경우에는-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중간에서 왜곡시키고 차단하는 언론집단들-더구나 그들은 엘리트들이다-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언론들이 빈라덴을 의심하며 공포에 떨던 최초의 며칠 사이에 이미 '용의자'는 확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미국인의 눈이라면 너무나 알기 쉬운 용의자였다. 그러나 이 간단한 추론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FBI가 탄저균이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며, 미국 내부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뒤에조차도 알케다와 미국 내 극우파의 연계 설이 지면을 장식했다. 탄저균을 보낸 조직의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이들은 미국인, 기독교도, 정치적 극우파라는 범주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 많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면 미국민의 절반이 여기에 속해있다. 탄저균을 보낸 손은 소수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최소한 절반,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백색테러의 주범들이야말로, 그리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정치적으로 활용한 이들이야말로 '국제전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슬로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적의 대상과 내용은 뒤바뀌어 있다. 이것은 국제테러의 응징으로서 전쟁을 위한 국내테러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를 통해 그들은 동시에 두가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하나는 전쟁의 수행-언제나 확전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영구전쟁의 가능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부 테러의 가능성을 열어놓아 반대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 더 정확히는 영구전쟁을 회피하고 싶거든 전쟁을 영구화하라는 것. 백색가루는 아프간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내부의 일체감-전쟁을 찬성하는 이들은 환호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침묵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을 형성시켰다. 월남전의 교훈을 통해 얻은 반전과 평화라는 소극적 대응조차도 거의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미국에서 반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 아프간의 민간인 살상에 대해서 무시할 수 있었던 것, 전쟁 도중 일어난 수많은 국제법과 국제관례의 위반에도 눈감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안팎의 테러의 공포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애국법안은 아프간에서의 무차별 폭격과 첨단 장비전에 상응하는 국내적 조치였다. 정확하게 150년 전에 마르크스가 보나파르티즘의 성립을 두고 쓴 표현을 빌자면 이들은 '종말 없는 공포보다는 공포가 있는 종말'을 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아주 합리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광기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정치적 수사와 정치적 침묵
이 추락의 과정을 우리는 말해진 것, 또는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전쟁준비 과정에서 미묘한 두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정치적 수사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침묵에서 벌어졌다. 당초 미국의 대아프간 전쟁의 작전 명칭은 '무한정의'(Infinite Justice)였다. 이 작전 명은 탄저균 테러의 와중에서 '지속 가능한 자유'(Enduring Freedom, 사실 정확한 번역 명은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직역하면 '참아 견디어내는 자유'라고 해야한다)로 바뀌었다. 이 미묘한 작명의 변화는 사소한 것은 아니다. 첫째, 이 변화된 명칭은 전쟁수행 주도자들의 의도를 보여준다. 무한정의는 서구 전쟁 전통에서의 '정의로운 전쟁'의 문제를 포함한다. 따라서 미국이 스스로를 '절대선'과 '정의'로 간주한다면, 그래서 상대방(알케다와 탈레반)을 '절대악, 부정의'로 규정한다면, 국제정치의 담론에서 불필요한 문제들을 만들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명칭은 '영구전쟁'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미국이 설혹 영구전쟁을 하더라도 그것은 평화의 이름으로 수행돼야 하는 것이다. 전쟁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전쟁은 미국이 현재 단계에서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국제사회의 협조자들, 하수인들을 동원하는데 불필요한 반발들을 증폭시킨다. 더구나 이 전쟁의 정당성은 미국의 '보복할 권리'에 있지, 미국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미국이 자신을 정의로 규정하는 순간,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토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미국의 전쟁의 목표는 전쟁을 불러일으킨 원인들을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할 적들을 섬멸하는데 있는 것이다.
작전 명칭의 변화에서 엿볼 수 있는 더 중요한 변화는 이 전쟁이 보다 더 주체적인 관점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무한정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데 반해서 '지속 가능한 자유'는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한다.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정치적 함의는 "너희들이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싶거든 감수해야만 하는 것(전쟁)"이다. 미국은 여기서 자신들을 '자유'로 규정하고 그 자유의 유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가들을 지불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가는 이른바 '애국법안'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9.11 사건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전쟁기계(war machine)'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전쟁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내부의 테러, 이 테러의 공포, 그리고 이 테러를 가능케 한 정치적 논리(극단적인 적과 아군의 구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닥에서 생산해내는 균열을 간직한 사회였던 것이다. 애국법안은 전쟁기계를 작동시키는 내부테러를 조율하는 법적,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다. 즉 애국법안은 내부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보다는 이와 같은 내부테러가 상존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수단이며, 특정 집단에 의한 특정집단에 대한 테러를 국가 전체에 의한 국민전체에 대한 테러로 대체시킨다. 국가야말로 가장 양호한 저질, 최선의 최악인 것이다. 자유 수호를 위해 최대한의 감시망 안에 국민들을 다시 배치하는 것, 자유의 이름으로 무제한의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 즉 자유를 위해 자유를 반납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 자유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자유는 개인에게 속한 타고난 권리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주어진다, 따라서 국가는 그것을 회수할 수 있다), 그 결과로 미국을 구성한다고 주장해온 헌법의 한 축(이른바 적법절차-due process-와 수정헌법의 조항들)을 사문화 하는 것, 법적인 의미에서는 법률로서 헌법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위임된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진 사실상의 '긴급조치'이다. (애국법안이 이른바 sunset clause-한시법으로 4년 뒤에 의회에서 재심하도록 되어있다-를 가진 것은 체면치레가 아니라 이 법의 특수한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던 때문이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긴급조치의 이름이 아닌 일반의 법률의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긴급조치가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들(헌법의 특정부분, 또는 분립된 권력의 특정부분의 잠정적 중지)을 문구에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헌법적 조항을 가능하게 하는 확립된 법적 원칙들을 효력 중지시키는 내용들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보다 실제적인 대규모의 전쟁(1,2차 세계대전)에서 조차 애국법안만큼 포괄적인 헌법의 문구, 또는 헌법의 정신의 위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빈라덴이 히틀러나 무솔리니 아니면 히로히또나 스탈린, 모택동 보다 더 가공할 적이었을까? 여기서는 적의 힘의 정도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이 비대칭성은 애국법안이 전혀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11 이후 미국의 대응은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해왔노라고 자부했던 것들을 되돌려놓았다. 그 뒷걸음질은 시민권운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맥카시즘의 시대에서 멈춘다. 그것은 밖으로는 전쟁이지만 안으로는 법의 이름을 가진 내전이다(냉전을 빗대 '차가운 내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내전은 누구를 향한 누구의 전쟁인가? 이 법안이 과녁으로 삼고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 계급인가, 인종인가, 성적 차이인가, 이념 또는 종교인가. 그것들은 그와 같은 차이들이 적대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며,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유지시키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들이다. 백색테러는 장차 가능한 전쟁의 모습을 미리 보여줌으로서 그 전쟁의 가능성을 봉쇄한 것이다. 따라서 애국법안은 필연적으로 인종적,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또 다른 축은 이 차이들이 국가 안에서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법안은 국가의 교리이며 국가의 기초를 훼손하는 모든 행동을 규제한다. 그런 점에서 애국법안은 입법화된 맥카시즘이다.(흔히 '공산주의자 사냥'으로 50년대 초반을 풍미한 미 의회특별위원회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로 번역이 되곤 하는데 사실 '반미'(anti-American)가 아니라 '비미'(un-American)이다. 즉 미국적이지 않은 것을 숙청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이 위원회의 해소는 맥카시의 개인적인 몰락이나 미 대법원이 이들의 활동을 위헌이라고 판결내림으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위원회가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즉, 미국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 최소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라졌을때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론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미 대법원의 기념비적인 판결, 미 공산당 간부들의 재판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clear and present) 위험'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무죄 방면한 것은, 정치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는 정반대이다. 그 의미는 이들이 더 이상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되지 못한다는, 즉 공산주의가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 완전히 무력화되었음을 선언한 판결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맥카시즘의 소멸은 이 위원회가 목표했던 모든 과업이 완수되었음을 의미한다. 비미국적인 것을 정화함으로서 이룩된 총화단결은 맥카시가 포함시킬 수 없었던 것, 인종과 성의 문제에서 붕괴했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미국 사회를 가르는 세가지 주요한 구분들, 계급, 인종, 성 문제를 모두 뛰어넘는다. 미국 내의 계급, 인종, 성별에 따른 어떠한 이견도 이번 전쟁에 대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안팎의 테러는 지난 대선 개표일 밤 CBS 앵커인 댄 레더의 탄식,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국민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차이들을 무화시킨다. 선거에서는 그들은 단지 다를 수 있었지만 전쟁에서는 그 차이가 테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찬동, 반전에 대한 침묵은 선거일 밤 미국사회가 보였던 균열들을 효과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이 가져온 상처들을 참고 살라는 것,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지 말라는 것이 이 백색테러의 메시지였고 이 편지는 배달되었다. 균열이 적대화 되는 것을 사전에 적대성으로 봉쇄하는 것, 여기서는 테러가 전쟁을 방지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내에서 취해진 일련의 조치들은 맥카시즘과는 다른 변형도 함께 포함한다. 먼저 맥카시즘이 의회적 방법-그것은 청문회를 통한 고백의 강요였다-이었다면, 애국법안을 위시한 조국방어조치는 경찰적 방법이다-도청으로 증거가 수집되고 비밀영장으로 체포되며 비공개재판으로 사라진다-. 맥카시위원회에서는 '양심'의 문제였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백한다면 그는 사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거기서 인간은 기계일 뿐이다. 따라서 맥카시즘이 속죄의식을 통해 영혼을 세탁하려 했다면, 애국법안은 감찰을 통해 영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21세기의 미국은 자신을 정화하기를, 그래서 동일성을 만들어내기를 포기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대패질이다. 동일성과 차이는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격자망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교훈들
우리는 두가지를 질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미국이 내부에서 변화 가능한 사회이냐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 사회와의 국제연대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 역사는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예외로 한다면 미국이 빠져들고 있는 안팎의 적대성의 정치를 스스로 해소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의 패배로 해체되거나 더 이상 적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이 외부로부터의 전쟁에 패배해 굴복하기를 상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더 이상의 적이 존재하지 않을 때, 즉 오직 미국만이 국가로 남고 미국인만이 국민으로 남을 때 역시 이 권력이 끊임없이 적들을 산출해내고 있음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다. 결국 미국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생각하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그것에 대한 가장 유효한 대응은 전쟁과 정치를 혼용한 소모전일 것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국제연대는,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소모전의 맥락 안에서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전쟁의 한 방식인 한 이와 같은 논지에 동의하는 집단만이 연대의 대상으로서 의미 있을 것이다. 전쟁은 굴복하거나 아니면 불가피하게 그 전쟁에 빠져들거나 두가지 선택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관점에서는 전쟁 중에 평화나 반전을 말하는 것은 그 전쟁의 승리라는 목표에서만 유효하다. 당신이 늑대에게 채식을 권한다면, 그는 나물 대신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전쟁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는 이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어떻게 전쟁이 가능했었는지, 전쟁의 조건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전쟁의 미국 내의 조건들, 그 중에서도 두가지의 주요한 사건, 탄저균 테러와 애국법안의 성립만을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9.11 사건 직후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의 의문들, 미국은 과연 실제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또는 미국 내부에서는 전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하는 의문들을 가장 명쾌하게 답한 사건이 탄저균 테러였고 애국법안은 그 직접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9.11 사태는 여전히 생생한 경험이고 공포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 벌어진, 그리고 사실상 미국인들을 비행기테러보다도 더 공포에 떨게 한 탄저균 테러는 철저하리만큼 무시하고 망각해버렸다. 9.11 이후 한달 간은, 비록 누구나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지만, 과연 월남전의 호된 기억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전쟁에 대한 내부의 동의를 이끌어낼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의 하나였다. 사실상 이 한달 간의 시기는 미묘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의 국제전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이 국제전이 내부에서 갖는 함의도 고려하고 있었다. 전쟁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그것이 어떤 전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국민적' 확신이 없었다. 백색가루의 테러는 이 미묘한 균형을 결정적으로 깨뜨려 놓았다. 물론 탄저균은 단지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지만(장전은 이미 되어 있었다), 그 정치적 효과는 사태를 다른 단계로 발전시켰다. 탄저균의 공포는 일부의 논리를 전국민화 했고 전체화했다. 화려한 정치적 외양은(이미 9.11 사건 직후 상하 의원들이 의사당 앞에서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할 때 거덜나긴 했지만), 실제로는 허약한 골격을 감추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 자리를 공포가 대신했다. 그것은 애국의 이름을 가진 전쟁과 테러의 교배물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9월 11일의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일회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테러에 대한 대응을 단발의 기습에 대한 보복이상의 것으로 만들려면, 즉 그것이 전쟁이 되기 위해서는 테러가 만들어낸 미국의 국내적 사태들이 보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것이어야만 하며, 무엇보다도 무차별적인 위험으로 존재해야 했다. 탄저균은 이점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책이었다. 누구도 테러조직이 록키 산맥의 한가한 산촌에 비행기를 내려 박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탄저균은 그 공간적, 신분적 차별성을 없애버렸다. 따라서 일부의 미국인(정치가와 기업가, 즉 미국의 엘리트들)이 아닌 미국인 전부가 생사의 무대 위에 올려진 것처럼 연출되었다. 탄저균의 공포가 미국을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백색가루가 미국의 일부를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조차도 망각되었다. 10월 중순 이후의 모방사건들을 배제한다면 탄저균은 요격 미사일처럼 지극히 잘 겨냥된 목표물을 향하고 있었다.
탄저균을 보낸 집단은 그 행동이 비밀스럽고 그 과정이 복잡했을지언정 그 목표와 메시지는 단순했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아주 복잡한 반향을 갖는 사건이었다. 탄저균이 목표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없어졌을 때 가장 환호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자. 처음으로 탄저균이 발견된 플로리다의 슈퍼마켓용 타블로이드 언론사는 중남부의 백인 기독교 극단주의자들이 분노해마지 않는 '뉴에이지즘'(UFO등 이른바 현대의 '이신'-사탄-을 부추긴다고 비난받고 있다)을 전파하는 대표적인 황색매체의 하나였다. 그리고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 톰 대쉴이 없어진다면 상원에서 민주당 지배는 종식된다. 또 다른 민주당 상원의원 파인골드는 선거개혁법안의 입안자이자 민주당내 좌파를 대표한다(그는 애국법안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배달처, 미국의 3대 방송사와 뉴욕의 몇몇 신문사에 대한 탄저균 공격은, 제 3자의 눈에는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이 언론매체들을 공산주의자와 극단적 리버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극우파(사실상 우파 일반이라고 해야 맞다)들의 거의 도착적이다 싶을 정도의 강한 신념들과 관계가 있다. 이 극우파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주요 언론이 왜곡하고 가로막는다는 불만, 즉 자신들의 의견이 여론이 되지 않는 것은 언론 탓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너무나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 것을 남들 탓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동시에 극우파가 공유하고 있는 인민주의적 성격 때문에 이들은 그 과오가 미국 땅위에 살고 있는 인민들-적어도 백인의 경우에는-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중간에서 왜곡시키고 차단하는 언론집단들-더구나 그들은 엘리트들이다-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언론들이 빈라덴을 의심하며 공포에 떨던 최초의 며칠 사이에 이미 '용의자'는 확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미국인의 눈이라면 너무나 알기 쉬운 용의자였다. 그러나 이 간단한 추론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FBI가 탄저균이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며, 미국 내부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뒤에조차도 알케다와 미국 내 극우파의 연계 설이 지면을 장식했다. 탄저균을 보낸 조직의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이들은 미국인, 기독교도, 정치적 극우파라는 범주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 많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면 미국민의 절반이 여기에 속해있다. 탄저균을 보낸 손은 소수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최소한 절반,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백색테러의 주범들이야말로, 그리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정치적으로 활용한 이들이야말로 '국제전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슬로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적의 대상과 내용은 뒤바뀌어 있다. 이것은 국제테러의 응징으로서 전쟁을 위한 국내테러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를 통해 그들은 동시에 두가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하나는 전쟁의 수행-언제나 확전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영구전쟁의 가능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부 테러의 가능성을 열어놓아 반대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 더 정확히는 영구전쟁을 회피하고 싶거든 전쟁을 영구화하라는 것. 백색가루는 아프간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내부의 일체감-전쟁을 찬성하는 이들은 환호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침묵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을 형성시켰다. 월남전의 교훈을 통해 얻은 반전과 평화라는 소극적 대응조차도 거의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미국에서 반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 아프간의 민간인 살상에 대해서 무시할 수 있었던 것, 전쟁 도중 일어난 수많은 국제법과 국제관례의 위반에도 눈감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안팎의 테러의 공포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애국법안은 아프간에서의 무차별 폭격과 첨단 장비전에 상응하는 국내적 조치였다. 정확하게 150년 전에 마르크스가 보나파르티즘의 성립을 두고 쓴 표현을 빌자면 이들은 '종말 없는 공포보다는 공포가 있는 종말'을 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아주 합리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광기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정치적 수사와 정치적 침묵
이 추락의 과정을 우리는 말해진 것, 또는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전쟁준비 과정에서 미묘한 두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정치적 수사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침묵에서 벌어졌다. 당초 미국의 대아프간 전쟁의 작전 명칭은 '무한정의'(Infinite Justice)였다. 이 작전 명은 탄저균 테러의 와중에서 '지속 가능한 자유'(Enduring Freedom, 사실 정확한 번역 명은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직역하면 '참아 견디어내는 자유'라고 해야한다)로 바뀌었다. 이 미묘한 작명의 변화는 사소한 것은 아니다. 첫째, 이 변화된 명칭은 전쟁수행 주도자들의 의도를 보여준다. 무한정의는 서구 전쟁 전통에서의 '정의로운 전쟁'의 문제를 포함한다. 따라서 미국이 스스로를 '절대선'과 '정의'로 간주한다면, 그래서 상대방(알케다와 탈레반)을 '절대악, 부정의'로 규정한다면, 국제정치의 담론에서 불필요한 문제들을 만들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명칭은 '영구전쟁'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미국이 설혹 영구전쟁을 하더라도 그것은 평화의 이름으로 수행돼야 하는 것이다. 전쟁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전쟁은 미국이 현재 단계에서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국제사회의 협조자들, 하수인들을 동원하는데 불필요한 반발들을 증폭시킨다. 더구나 이 전쟁의 정당성은 미국의 '보복할 권리'에 있지, 미국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미국이 자신을 정의로 규정하는 순간,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토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미국의 전쟁의 목표는 전쟁을 불러일으킨 원인들을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할 적들을 섬멸하는데 있는 것이다.
작전 명칭의 변화에서 엿볼 수 있는 더 중요한 변화는 이 전쟁이 보다 더 주체적인 관점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무한정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데 반해서 '지속 가능한 자유'는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한다.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정치적 함의는 "너희들이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싶거든 감수해야만 하는 것(전쟁)"이다. 미국은 여기서 자신들을 '자유'로 규정하고 그 자유의 유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대가들을 지불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가는 이른바 '애국법안'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9.11 사건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전쟁기계(war machine)'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전쟁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내부의 테러, 이 테러의 공포, 그리고 이 테러를 가능케 한 정치적 논리(극단적인 적과 아군의 구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닥에서 생산해내는 균열을 간직한 사회였던 것이다. 애국법안은 전쟁기계를 작동시키는 내부테러를 조율하는 법적,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다. 즉 애국법안은 내부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보다는 이와 같은 내부테러가 상존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수단이며, 특정 집단에 의한 특정집단에 대한 테러를 국가 전체에 의한 국민전체에 대한 테러로 대체시킨다. 국가야말로 가장 양호한 저질, 최선의 최악인 것이다. 자유 수호를 위해 최대한의 감시망 안에 국민들을 다시 배치하는 것, 자유의 이름으로 무제한의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 즉 자유를 위해 자유를 반납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 자유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자유는 개인에게 속한 타고난 권리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주어진다, 따라서 국가는 그것을 회수할 수 있다), 그 결과로 미국을 구성한다고 주장해온 헌법의 한 축(이른바 적법절차-due process-와 수정헌법의 조항들)을 사문화 하는 것, 법적인 의미에서는 법률로서 헌법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위임된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진 사실상의 '긴급조치'이다. (애국법안이 이른바 sunset clause-한시법으로 4년 뒤에 의회에서 재심하도록 되어있다-를 가진 것은 체면치레가 아니라 이 법의 특수한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던 때문이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긴급조치의 이름이 아닌 일반의 법률의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긴급조치가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들(헌법의 특정부분, 또는 분립된 권력의 특정부분의 잠정적 중지)을 문구에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헌법적 조항을 가능하게 하는 확립된 법적 원칙들을 효력 중지시키는 내용들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보다 실제적인 대규모의 전쟁(1,2차 세계대전)에서 조차 애국법안만큼 포괄적인 헌법의 문구, 또는 헌법의 정신의 위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빈라덴이 히틀러나 무솔리니 아니면 히로히또나 스탈린, 모택동 보다 더 가공할 적이었을까? 여기서는 적의 힘의 정도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이 비대칭성은 애국법안이 전혀 다른 것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11 이후 미국의 대응은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해왔노라고 자부했던 것들을 되돌려놓았다. 그 뒷걸음질은 시민권운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맥카시즘의 시대에서 멈춘다. 그것은 밖으로는 전쟁이지만 안으로는 법의 이름을 가진 내전이다(냉전을 빗대 '차가운 내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내전은 누구를 향한 누구의 전쟁인가? 이 법안이 과녁으로 삼고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 계급인가, 인종인가, 성적 차이인가, 이념 또는 종교인가. 그것들은 그와 같은 차이들이 적대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며,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유지시키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들이다. 백색테러는 장차 가능한 전쟁의 모습을 미리 보여줌으로서 그 전쟁의 가능성을 봉쇄한 것이다. 따라서 애국법안은 필연적으로 인종적,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또 다른 축은 이 차이들이 국가 안에서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법안은 국가의 교리이며 국가의 기초를 훼손하는 모든 행동을 규제한다. 그런 점에서 애국법안은 입법화된 맥카시즘이다.(흔히 '공산주의자 사냥'으로 50년대 초반을 풍미한 미 의회특별위원회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로 번역이 되곤 하는데 사실 '반미'(anti-American)가 아니라 '비미'(un-American)이다. 즉 미국적이지 않은 것을 숙청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이 위원회의 해소는 맥카시의 개인적인 몰락이나 미 대법원이 이들의 활동을 위헌이라고 판결내림으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이 위원회가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즉, 미국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 최소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라졌을때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론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미 대법원의 기념비적인 판결, 미 공산당 간부들의 재판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clear and present) 위험'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무죄 방면한 것은, 정치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는 정반대이다. 그 의미는 이들이 더 이상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되지 못한다는, 즉 공산주의가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 완전히 무력화되었음을 선언한 판결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맥카시즘의 소멸은 이 위원회가 목표했던 모든 과업이 완수되었음을 의미한다. 비미국적인 것을 정화함으로서 이룩된 총화단결은 맥카시가 포함시킬 수 없었던 것, 인종과 성의 문제에서 붕괴했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미국 사회를 가르는 세가지 주요한 구분들, 계급, 인종, 성 문제를 모두 뛰어넘는다. 미국 내의 계급, 인종, 성별에 따른 어떠한 이견도 이번 전쟁에 대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안팎의 테러는 지난 대선 개표일 밤 CBS 앵커인 댄 레더의 탄식,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국민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차이들을 무화시킨다. 선거에서는 그들은 단지 다를 수 있었지만 전쟁에서는 그 차이가 테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찬동, 반전에 대한 침묵은 선거일 밤 미국사회가 보였던 균열들을 효과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이 가져온 상처들을 참고 살라는 것,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지 말라는 것이 이 백색테러의 메시지였고 이 편지는 배달되었다. 균열이 적대화 되는 것을 사전에 적대성으로 봉쇄하는 것, 여기서는 테러가 전쟁을 방지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미국내에서 취해진 일련의 조치들은 맥카시즘과는 다른 변형도 함께 포함한다. 먼저 맥카시즘이 의회적 방법-그것은 청문회를 통한 고백의 강요였다-이었다면, 애국법안을 위시한 조국방어조치는 경찰적 방법이다-도청으로 증거가 수집되고 비밀영장으로 체포되며 비공개재판으로 사라진다-. 맥카시위원회에서는 '양심'의 문제였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백한다면 그는 사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애국법안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거기서 인간은 기계일 뿐이다. 따라서 맥카시즘이 속죄의식을 통해 영혼을 세탁하려 했다면, 애국법안은 감찰을 통해 영혼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21세기의 미국은 자신을 정화하기를, 그래서 동일성을 만들어내기를 포기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대패질이다. 동일성과 차이는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격자망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교훈들
우리는 두가지를 질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미국이 내부에서 변화 가능한 사회이냐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 사회와의 국제연대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 역사는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예외로 한다면 미국이 빠져들고 있는 안팎의 적대성의 정치를 스스로 해소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의 패배로 해체되거나 더 이상 적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이 외부로부터의 전쟁에 패배해 굴복하기를 상정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더 이상의 적이 존재하지 않을 때, 즉 오직 미국만이 국가로 남고 미국인만이 국민으로 남을 때 역시 이 권력이 끊임없이 적들을 산출해내고 있음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다. 결국 미국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생각하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그것에 대한 가장 유효한 대응은 전쟁과 정치를 혼용한 소모전일 것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국제연대는,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소모전의 맥락 안에서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전쟁의 한 방식인 한 이와 같은 논지에 동의하는 집단만이 연대의 대상으로서 의미 있을 것이다. 전쟁은 굴복하거나 아니면 불가피하게 그 전쟁에 빠져들거나 두가지 선택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관점에서는 전쟁 중에 평화나 반전을 말하는 것은 그 전쟁의 승리라는 목표에서만 유효하다. 당신이 늑대에게 채식을 권한다면, 그는 나물 대신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