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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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노래여! 나의 무기여,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박준도 | 편집실장
노래여! 나의 무기여! 이 앨범은 1990년 전대협 사수 투쟁 기금을 마련하자는 취지와 이에 더해, 윤민석 자신이 밝힌 대로 그간 창작역사를 일단락 짓고자 만든 연주곡 집이다. 아마추어 노래운동 집단이 이끄는 대학 문화에 노래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당시 만연해 있던 기교주의를 극복하고자 몇 가지 시도를 했는데, 윤민석은 전자음악을 탈출구로 삼았다. “MIDI-전자음악이야말로 열악한 조건의 민중가요가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무기다” 그는 이 한마디로 대학가 노래패는 물론이거니와 전문적인 노래운동 집단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선다. MIDI는 이들이 실재로 겪던 곤란한 문제 곧, 악보의 내용마저 제대로 재현할 수 없는 (아마추어적인) 실력, 턱없이 부족한 장비, 정치 선동이 요구하는 기동성 따위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비쳤다. 많은 사람이 의혹의 눈길을 던지며 주저하고 있을 때, 윤민석은 과감히 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것을 이 앨범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겠지만, 여하튼 기타 하나로 거리를 선동하는 풍경은 자취를 감춘다. 디지털 장비가 대폭 강화되면서, MIDI 혹은 MR테이프가 기타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정도만 편곡해도 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연주곡 집을 만들었는데, 정작 이후 노래패는 대선율을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고, 심지어 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연주까지 전자음악으로 구현한다. 기교주의-현실, 작품 완성도 사이의 간극을 기교로 메우려는 경향-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전자음악은 이를 가능하게(!) 했고, 대중음악이 들려준 자극적인 전자음악 음색에 익숙한 대중은 이를 선호했다. 이후 민중음악은 대중음악의 기술과 음색을 좇기 바쁘게 되는데, 이리 보면 포스트모던 시대 민중음악이 상업적인 음반으로 시장경쟁에 나서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이게 실현 가능한 기획인지는 다음 일이다).

1992년 윤민석은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으로 구속된다. 그의 옥중 생활을 뒷바라지하고, 그의 음악을 기리고자, 앨범을 하나 만드는데,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1992)가 그것이다. 문호근이 나서고 ‘구속된 음악인을 생각하는 모임’이 만든 이 앨범은 당시까지 그가 걸어온 음악 여정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학생시절 만든 ‘전대협 진군가’, ‘애국의길’, ‘결전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민족음악연구회시절 만든 ‘광주여 무등산이여’, ‘백두산’, 노동자 노래단 시절 만든 ‘꽃다지2’, ‘민중연대 전선으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노래공장에서 부른 ‘편지3’까지 그의 대표곡을 망라한 앨범이다.
그의 음악을 찬찬히 뜯어보면, 매우 전형적인 화성진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4도나 6도로 진행했다가도 반복적인 5도 진행을 거쳐 1도로 회귀하고 있다. 이런 화성진행은 곡 전체에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는데, 실제 이것은 매우 익숙한 화성진행이어서 듣는 이가 곡(상황) 자체에 쉽게 몰입하게 된다.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내 온몸의 기름을 주마... 적을 태울 꽃병의 기름 너에게 주마’, ‘식민지 조국의 가슴 찬 해방을 안고, 먼저 가신 선배 열사의 뜻이어 받아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기쁘게 싸우러 가자’, ‘아아 위대한 해방의 길에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전사를 따라 나로부터 일어나 투쟁하리라 반미구국투쟁 만세’… 음의 배열이 가사가 이끄는 격정적인 서정을 더욱 격정적으로 만드는 셈인데, 이렇게 극한에 몰려 있는 감정을 지피는 작곡기법은 사실 대중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때부터 미(음)를 윤리(민족주의)에 철저히 종속시키는 창작이 대대적으로 유행한다.

사실 윤민석의 해법은 전자음악보다는 음의 극적 배열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그가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데는 이 같은 (음악적) 해법을 능수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적인 해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좀더 두고 볼 일이나, 대중문화를 상대하던 민중문화가 대중문화를 뒤좇는 민중문화로 바뀌는데 이 해법이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사족처럼 덧붙이는데, 이른바 좌파가 즐겨 부르는「푸른 옷의 물결은 노동해방의 바다로」,「혁명의 투혼」역시 윤민석과 거울 유희에 빠져있는, 민족주의를 노동자주의로 대체한 노래로 볼 수 있다. 조국통일을 노동해방으로 바꾼다고 대중가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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