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9.28호

엄마와 나

이소형 | 조직부장
엄마와 나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자연현상에 비유하자면,
'파도'와 '섬'이라 할 수 있겠다. 힘없는 '섬'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의도대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나의 역할은 어머니의 끊임없는 바램에 따라 스스로 개조할 것을 요구받는 그 '조그만 섬'이다. 더구나 '월간사회진보연대'를 건네며, 이제는 본격적인 '직업혁명가(?)'로 살아가겠다는 폭탄 선언이 있었던 그 날 이후로, 나는 더욱 거세진 파도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셨고, 그 날 우리의 외식장소는 청담동에 위치한 그럴듯한 중국 음식점이었다.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다르게 비싼 코스요리를 주문하며 다음과 같은 멘트를 덧붙였다.
"오늘은 소형이에게 돈과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고 근사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겠다. 지금 네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 사고 속에 갇혀있는지, 그래서 왜 좋고 멋진 세상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
"......!"
이런 류의 대화주제는 언제나 그렇듯 평이한 대화에서 심한 언쟁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사태를 일관된 침묵으로 적당히 봉합해버렸다. 그러나 내가 봉합하지 못한 다른 것이 저녁식사 내내 날 괴롭혔다. 어머니의 그 짧은 멘트로 인해 삐죽삐죽 번져 나오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들... 결국 어머니의 그 어이없는 의도에 조응하려는 듯. 그 날의 저녁식사는 나에게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비록 나의 행보가 어머니가 바라는 기조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참고로 밝히자면, 나의 어머니의 교육열은 유별난 편이다. 우리 세 딸은 (어머니의 표현대로) '당당하고 멋진 직장 여성'에서 '교양 있는 중산층 아줌마'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이제 어른이 되고도 훨씬 남을 우리들의 삶에 아직도 고3수험생 돌보듯 열성적으로(!) 개입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 후줄근한 청바지와 질끈 동여맨 머리모양이 변할 줄 모르는 둘째 딸의 모습이 눈에 밟히는 것은 당연하실 것이다.
어머니의 그 기대와 열정이 지나친 탓인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니 그런 노력조차 거부하는 나는 부모님께 혹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늘 죄인이며 철없는 반항아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이 집 둘째딸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오면 어머니는 '운동권이랍시고 설치고 다니죠 뭐"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지금 내가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옆에 앉아있었을 나의 반응이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며 살고 있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어색한 웃음으로 이 상황을 넘겨버리는 나. 고등학교 동창 누구는 독일@@대학원을 수석 졸업해 얼마 전 개인리사이틀을 했다는 소식, 누구는 음악을 하다가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는데 박사학위를 받아 어느 잡지에 실렸다는 소식, 더구나 나의 언니는 뭐...그렇고 그런 소식..등등..듣고있으면 참 같지도 않은 성공담들인데..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나는 왜 은근한 죄스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오히려 정작 심각한 모순은 나의 그런 모습에 있지 않은가? 엄마가 내 가슴에 꽂아버린 그 화살이 주장하는 것처럼, 나의 삶과 우리의 투쟁이 정말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나 자신은 정작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많이 반성한다. 자신을 죄책감에 몰아넣고 핵심이 빗나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일정정도의 봉사로, 아니면 나의 투쟁과 운동을 현재 각광받고 있다는 '진보적인 NGO운동' 따위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와 가족이 요구하는 '능력의 잣대'에 조금이라도 근접해보려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이것은 나의 운동과 투쟁의 정당성을 엄마와 가족에게 설득하는 전면전이 승산 없는 싸움이란 걸 알게된 언젠가부터, 혹은 가족과의 싸움에 스스로 지쳐버린 어느 순간부터 택해버린 일종의 우회로다. 때때로 그것은 활동 속에서 힘에 부치거나 지쳐갈 때면 활동에 매진하지 못하는 근거로 작동되곤 하였다.
그 날 저녁 어머니의 그 충격적인 짧은 멘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은, 그동안 나의 결정적인 오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어머니,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지탱시키는 하나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서로 확인한다. 물론 그 질서는 나에게도 하나의 기준이 되어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의 활동과 운동에 대해 그것이 세상 속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활동가로서 나의 삶이 당당해지기 위해 나 자신과 어떤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가를 더욱 명확히 인식하려고 한다. 그것이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끊임없이 동요할 것이 분명한 그 '현존의 질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다만 나는 지금 많이 가슴 아프지만 어머니와 나와 관계를 더욱 명확히 정리하고자 한다. 나는 결코 어머니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삼십 년 정도 더 지나면 늙으신 나의 어머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여성동지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하다. 그 때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어머니의 사랑스런 둘째 딸인 것은 분명하며, 이는 작은 섬이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변할 수 없는 진실임이 분명하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리고 내게 더욱 폭력적인 파도가 될 가족 이데올로기가 지금 당장 철폐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작지만 굳건한 나의 섬에서 그 파도들보다도 더욱 끈질긴 투쟁을 시작하겠다.
그리고 나는 섬의 한가운데 아주 높고 커다란 깃발을 꽂아놓을 것이다. 아무리 높고 거센 폭풍이 덮쳐온다 해도 그 황량한 바다에 분명한 투쟁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또한 나의 삶의 방식의 소중함을 상징하기 할 수 있는, 우리의 그 당당한 깃발을 말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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