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1)
[역자해설] 저자인 아리기(G. Arrighi)가 서두에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는 세계적인 가난과 배제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것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두고 다수의 논쟁들이 존재하였고, 그 주류를 형성했던 입장은 내적요인, 즉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무능력, 부패, 권력쟁투, 그리고 중요하게는 '불건전한 경제정책'의 실행이 곧 현재의 '아프리카의 비극'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아리기 스스로도 자신의 1968년 저작(존 사울과의 공저)에서 이러한 입장들과 상이한 관점을 취했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었다고 평가하면서, 본 논문에서 그러한 설명의 한계들을 넘어서(이른바 '낡은 정치경제학'과 '새로운 정치경제학' 양자 모두를 넘어서) 세계체계적 맥락에서 아프리카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즉,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변화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분량상 아리기의 본격적인 세계체계적 분석은 11월호로 미루고, 본 호에서는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설명과 그것의 변화, 그리고 아프리카 위기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분석까지만 번역 게재하고자 한다. 분명히 오역과 실수가 많을 것이다. 독자여러분의 지적이 있으시면 나머지 부분 번역에 반영하고, 이후에 정정할 것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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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1970년대의 아프리카의 위기는 (매우 적절한 표현인) 이른바 '아프리카의 비극'{{) '아프리카의 비극'('African Tragedy')라는 표현은 Colin Leys, "Confronting the African Tragedy", NLR Ⅰ/204, March-April 1994, pp. 33-47로부터 인용하였다.
}}으로 전화되었다. 1975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일인당 GNP는 '전세계' GNP의 17.6%를 차지했다; 1999년에 즈음하여 그것은 10.5%로 하락했다. 전체적인 제3세계와 비교해볼 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역주] 'Sub-Saharan Africa'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라고 한다면 통상적으로 북부 아랍 5개국(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를 제외한 남부 48개국을 가리킨다. 지형적으로 보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인 셈이다(참고로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국가는 현재 총 53개국이다). 한편, 'Tropical Africa' 즉, '열대 아프리카' 혹은 '적도 아프리카'로 주로 적도 인근에 밀집한 국가를 가리키는 지형적인 구분이 강한 용어이다. 이하에서는 별다른 영어 병기없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열대 아프리카'로 번역한다.
}}의 건강, 사회적 윤리, 그리고 성인의 문자해독력은 비율상으로 상당히 악화되었다. 이 지역의 평균수명은 약 49년이며, 이 지역 인구의 34%가 영양실조 상태이다. 아프리카의 유아사망률은 1999년 현재 1000명당 107명의 비율이며, 이는 남아시아의 69명, 라틴 아메리카의 32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사하라 이남 지역에 거주하는 15세에서 49세 사이의 아프리카 사람들의 대략 9%는 HIV/AIDS 보균자들인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결핵환자의 비율 역시 인구 10만명당 121명 꼴로, 남아시아 98명, 라틴 아메리카 45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UN Development Programme, Human Development Report 2001, pp. 144, 165, 169 참고. 이 보고서의 각종 통계들은 국제연합(UN), 세계보건기구(WHO),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들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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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요 목적은 세계-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들을 재고(再考)하는 것, 즉 1975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미래가 광범위하게 분기하는 과정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경험한 것을 위치지우는 것이다. 이러한 재고는, 따라서, 두가지의 목적에 부합한다. 첫째, 존 사울(John Saul)과 내가 1960년대 후반에 제기했던 특별한 종류의 정치경제학을 사용하여 예상할 수 있었던 위기와 비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사울과 나의 논문들은 이후에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1973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이 책과 그리고 본 논문에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Sub-Saharan) 지역을 의미한다.
}} 둘째, 회고적으로 내가 보기에 ('낡은') 정치경제학 뿐만 아니라, 특히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1980년대 소개된 합리적 선택 이론가 및 정책입안자들의 '새로운' 정치경제학, 양자 모두의 심각한 결함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나는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울과 내가 주장했던 주요 테제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주장들과 비교한다. 그후에 나는 1980년을 전후한 여러 해 동안 세계적인 정치경제에서 사하라 이남 지역의 운명의 주요한 전환점을 시사하는 아프리카의 위기의 정형화된 사실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1979년과 1982년 사이에 벌어진 제3세계의 발전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선 그 변화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논문의 말미에서, 나는 [표면적인 설명의 배후에 대한] 심화 설명으로 이동하여, 세계적 맥락에서 상이한 제3세계 지역들에 대한 이러한 변화들의 극도로 불균등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다―특히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운명들 사이의 현저한 상이함에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 아프리카의 비극 혹은 아프리카의 극도로 파괴적인 양상들을 피하기 위해 수행한 것들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결론을 맺는다.
아프리카 정치경제학,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지난 20여년간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과장된 '불건전한 정책'과 '취약한 통치력'과 같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지배집단들의 성향을 그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규정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향들에 대한 아프리카의 집착의 이유들[에 대한 설명들]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비극이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 그 최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해석들에 공통적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생각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경제 운영의 결정요인들에 대한 몇몇 권위있는 연구들에 의해 도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여전힌 암시적인 내용으로만 남아있고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표준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문헌은 1981년에 발간된 세계 은행의 보고서―이른바 'Berg Report'라고 알려진―이다.{{) World Bank, Accelerat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n Agenda for Action, Washington, DC: 1981.
}} 아프리카 위기의 원인들에 대한 이 보고서의 평가는 고도의 '내인론(內因論)'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산출과 수출을 증대함에 있어서 농업생산자들의 이니셔티브를 파괴하여 발전의 과정을 잠식시킨 아프리카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과대평가된 국내통화들, 농업에 대한 경시, 제조업에 대한 과잉보호, 그리고 지나친 국가의 개입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불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통화에 대한 대규모 평가절하, 산업보호의 폐지, 농업 생산과 수출에 대한 가격 인센티브, 그리고 공기업의 사유화―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서비스의 준비까지―가 사하라 이남 지역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하게 될 '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Berg 보고서'의 원인진단과 처방은 1981년에 출판된 매우 영향력있는 또 다른 문헌―로버트 베이츠(Robert Bates)의 {열대 아프리카에서 시장과 국가}―과 일치하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정치경제학과 저발전 국가들에서 국가개입의 위험들 양자를 설명하는 고전(古典)의 지위를 빠르게 획득하였다.{{) Robert Bates, Markets and States in Tropical Africa: The Political Basis of Agricultural Policy, Berkeley, 1981. 1980년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부상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Carol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in Sub-Saharan Africa", in Stephen Commins, ed., Africa's Development Challenges and the World Bank, Boulder, 1988을 참고.
}} 베이츠의 견해에 따르면, 아프리카 신흥 산업국가들의 국가관료들은 도시 엘리트들과 무엇보다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식민체제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통제의 강력한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위한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파괴하는 정책들은 발전의 과정을 잠식하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베이츠의 해결책―국가권력의 해체와 시장 경쟁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농민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Berg 보고서' 및 그 후속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에 의해 지지된 견해와 유사했다.{{) 특히 World Bank, Toward Sustain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 Joint Programme of Action, Washington, DC 1984; Financing Adjustment with Growth in Sub-Saharan Africa: 1986-1990, Washington, DC 1986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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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대한 그의 해석은 세계은행의 것에 비해 보다 비관적이고 극도로 반국가적인 것이었다. 세계은행의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평가들은 외관상으로 이중적인 가정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리카가 기존에 추진한 정책들이] '불건전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정책들의 부정적 효과와 '건전한 정책'의 긍정적 효과―한번 효력을 발휘하면 그것을 계속함에 있어 엄청난 보조가 될 수 있는―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혹은 주요한) 방법은 아프리카의 정부들로 하여금 불건전한 정책에서 건전한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정부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권자들에게) 설득하고 재촉하는 것이다. 역사적이고도 사회-구조적인 고려지점들―아프리카 엘리트들이 식민지배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지배도구들, 인종간 갈등, 지역간 갈등 그리고 경제적 집단들과 계급들 간의 갈등―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이하 NPE)은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것에서 '건전한'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에 동의할 개연성, 그리고 그 전환 이후에 '건전한' 정책을 고수할 수 있을 개연성에 대해 세계은행에 비해 보다 회의적이다.{{)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pp. 171-3을 참고할 것.
}} 최소한 그 함의로만 보자면야, 당연하게도 NPE의 반국가주의는, 세계은행의 입장과 동일하게 정부의 규제와 조정으로부터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NPE는 국가를 통제하고 있는 사회적 연합―그들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불건전한 정책'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세력들―의 정당성을 잠식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NPE의 '내인론적'이고 '최소국가론적'인 처방들이 별다른 저항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격렬한 저항은 바로 아프리카의 정부들로부터 제기되었다. 1980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Lagos)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명되었지만 'Berg 보고서'와 같은 해[1981년]에 발간된 한 결의문에서,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아프리카통일기구) 회원국가들의 대표자들은 위기의 원인이 일련의 외부적 충격들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외부적 충격들에는 일차생산품의 교역조건의 악화, 점증하는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이자율의 급증과 외채 의무 사항(debt service commitments)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른바 '라고스 계획'(The Lagos Plan of Action)은 세계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상호간의 경제통합과 협력을 증진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OAU, The Lagos Plan of Action for the Economic Development of Africa 1980-2000, Geneva 1981.
}} 대륙적 규모의 공동시장을 창설하는 것을 통한 집단적 자립에 대한 강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계획은 당시 종속이론의 영향, 게다가 대륙의 형식적인 탈식민화가 거의 종식됨에 따라 등장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강력해졌다는 판단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종속이론의 영향도, 강력해졌다는 판단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계획의 공표 직후, 그리고 급격한 경제상황의 악화일로에서, 사막지대 국가들(Sahelian)의 가뭄과 기근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는데, 1983-84년이 그 정점이었다. 이듬해 새로운 OAU 정상회담이 [에디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회담은 아프리카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UN이] 직접 해결해 달라는 제안을 UN총회의 특별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 정상회담은 {경제회복을 위한 아프리카의 긴급조치, 1986-1990}(약칭 APPER)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서도 외부적 충격들은 위기를 보다 심화시켰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자립화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APPER는 단적으로 라고스 계획과 판이하게 다른데, 즉 그것은 위기에 대한 아프리카 정부들의 책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어떠한 행위들도 그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인정의 맥락에서 보자면, APPER는 'Berg 보고서'에서 주장된 다양한 정책개혁안에 동의한다는 것, 국제사회에 아프리카가 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외채를 탕감해 줄 것, 그리고 아프리카의 수출가격의 안정·인상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위기 해결에 있어서의 공동행동을 위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국제사회' 간의 결론은 '압축/축소'(compact)[즉,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의미함-역자]였다―즉, {아프리카의 경제회복과 발전을 위한 UN의 프로그램, 1986-1990}(약칭 UNPAAERD)이 발주된 것이다.{{) Akilagpa Sawyerr, The Politics of Adjustment Policy, in Adedeji, Rasheed and Morrison, eds, The Human Dimension of Africa's Persistent Economic Crisis, London: 1990, pp. 21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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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투 쳬루(Fantu Cheru)는, 서구의 권력들은 그렇지 않은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자신을 [과도하게] 압축/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UNPAAERD는 '단순히 Berg 보고서의 환생'이라고 규정했다.{{) Fantu Cheru, The Silent Revolution in Africa: Debt, Development and Democracy, London: 1999, pp. 15-16.
}} 이러한 성격규정은 상당히 정확하지만 세계은행의 입장들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에 종속된 아프리카 국가들이 늘어남에 따라, IMF와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신-공리주의적, 최소국가론적 처방들을 개정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일련의 제도들과 '건전한 통치'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Robert Bates, Beyond the Miracle of the Market: The Political Economy of Argarian Development in Kenya, Cambrdge: 1989; 더불어 World Bank, Sub-Saharian Africa: From Crisis to Sustainable Growth-A Long-term Perspective Study, Washington, DC: 1989, 그리고 World Bank, Governance and Development, Washington, DC: 1992 참고.
}} 1997년에 이르러, 세계은행은 모든 실천적인 정책제안들에서 국가에 대한 최소주의적 견해를 기각했다. 그후 몇 년간 세계은행의 <세계발전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에서, 국가기구들의 크기와 경제에 대한 공적 개입의 정도에 대한 초기의 관심들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효율적인 관료기구와 적극적인 국가에 대한 것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이행의무들은 경제회복의 실패와 그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재앙들에 대한 엄청난 책임을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게 부과하였다. 장기간 지속된 위기를 해결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정부들과 엘리트들의 능력에 대한 보다 비관적인 평가들은 세계경제에 대한 아프리카의 통합에 대한 낙관주의적 견해와 함께, 정부의 통제로부터 시장의 자유와 사기업들의 폭넓은 기회들의 제공―즉, IMF와 세계은행의 처방들에 대한 아프리카적 추종―을 요구하였다.{{) Ray Bush and Moris Morris Szeftel, "Commentary: Bringing Imperialism Back In", Review of African Political Economy, no. 80, 1999, p. 168을 참고. 또한 Economist지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입장의] 변화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Economist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은 지난 세대보다 더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게재하고서 정확히 3년 후, 2000년 5월 13-19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대륙]이라고 선언하였다. 아프리카의 '가련한 지도자 집단'은 '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국가의 제도들을 강화하기 보다는 잠식'했고 자신의 국가들로 하여금 근대성의 함정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중심은 텅 빈 '무늬만 국가(shell states)'이게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주간지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아프리카는 발전으로부터 도태되고 애초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어떤 유전적 특질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발간되는 경제주간지인 Financial Mail은, Economist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Economist의 편집진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유전적 특질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The Hopeless Continent", World Press Review, October 2000, pp. 24-2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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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사울(J. Saul)의 {아프리카 정치경제론}(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배적이게 된 '새로운' 정치경제학(NPE)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 간에 차이들 뿐만 아니라 그 유사함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분석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특히 베이츠(R. Bates)가 30년 후에 수행했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비극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우리는 제일 먼저 당시의 지배집단들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저발전이라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그 문제의 일부분임을 지적했다. 1968년 그 책의 초판이 출판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의 가장 중심에는 정부 관료로 고용되어 있던 도시 엘리트들과 농촌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 그리고 이윤, 수익, 배당,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수수료들의 해외로의 유출을 가져온 '잉여흡수'(surplus absorption)의 방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농업 생산성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억제하면서, 이 방식은 아프리카의 경제를 1차 상품에 대한 세계 수요의 성장에 대한 의존을 영속시키켰다. 우리가 보기엔, 그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정치경제의 틀 내에서 적도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이 사라지게 되면서, 급격한 경기후퇴가 예상된다.'
동시에, 농업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잉여흡수 방식의 변화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부들이 기초하는 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계급들의 특권을 공격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1960년대 열대 아프리카의 경제발전을 '왜곡된 성장; 즉, 장기간의 성장을 위해 경제의 일반적인 잠재력들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그것을 잠식하는 성장'이라고 규정하였다. 아프리카에서 경제발전의 전망,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발전적 역할에 대해 낙관론이 일반적이었던 시기에, 우리는 양자 모두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심지어 '현대 아프리카에서 엘리트간 경쟁의 성격과, 특히 주요 관직에서 군부의 등장, 이것들이 어떻게 반혁명적 방향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힘을 보여주는지' 언급했던 것이다.{{) Arrighi and Saul,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pp. 16-23, 33, 34; 강조는 나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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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진단의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경제학은 NPE와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었던 세계적 맥락에 집중적으로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발전의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었다. 우리의 견해에서 세계적 맥락은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NPE의 견해와 달리, 우리는 민족[-국가]적 수준에서 발전을 향한 노력과 그 성과들을 제약하고 규정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세계 자본주의라고 보았다. 아프리카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였던 잉여흡수의 방식―도시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와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를 포함하는―은 적어도 가능한 경제적 잉여의 엄청난 분배량을 전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정책들만큼이나 세계적 자본순환에서 경제들의 통합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게다가,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의 소멸은 세계경제가 아프리카의 민족적 발전에 부과한 제약들의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이 1970년대 아프리카의 위기를 예상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후에 위기를 비극으로 변화시킬 동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초기 교란에 대한 어떠한 깨달음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그것이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에 끼칠 재앙과 같은 영향―여타 제3세계 지역,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 끼친 유리한 영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대해서 더욱 그랬다. 이러한 결함들을 강조하고 또한 수정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해 예견한 것과 예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아프리카 위기의 불균등 발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발전적 재앙의 독특한 사례로 여기는 경향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 이남은 자신의 성공사들을 공유하고 있다. 베르텔레미(Jean-Claude Berthlemy)와 소덜링(Ludvig Soderling)은, 1960년부터 1996년까지의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했던 경제적 성장의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20개 이상의 사례들을, 즉 북아프리카에서 4개의 사례들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16개의 사례들을 알아냈다.{{) 지속된 강력한 성장경험은 '10년 혹은 그 이상의 중단 없는 기간으로, 연간 GDP 성장의 5년 간 평균이 3.5%를 초과한 시기'로 정의된다. 이 기준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6개 사례에 적용해 보면 평균적으로 15.4년 동안 7.1%의 연간 성장률을 보인다. Jean-Claude Berth lemy and Ludvig Soderling, "The Role of Capital Accumulation, Adjustment and Structural Change for Economic Take-Off: Empirical Evidence from African Growth Episodes", World Development, no. 2, 2001 참고; 이상의 평균은 저자들의 <표Ⅰ>로부터 계산되었음.
}} 이것은 분명 예외적인 성과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동아시아 '기적적인'경제 성과들과 비견될 만하다. 그러한 아프리카의 성공사들은, Economist에게는 미안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여타 저소득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발전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어떠한 '유전적 특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본 논문의 목적상, 이러한 경험들에 대한 주요 관심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공사의] 시기별 분포에 집중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표를 결합해 보면 세계 여러 지역들의 성공 혹은 실패를 비교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개관을 제공한다. 각 수치들에서 세가지 중요한 특징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여타 제3세계 지역들 중 최악의 경제적 성과를 나타낼지라도, 이러한 열악한 수치들이 거의 대부분 1975년 이후의 양상이다. 1975년 이전으로 가보면, 아프리카의 경제의 성과는 세계 평균보다 그다지 나쁘지 않으며 남아시아보다 높고 게다가 제1세계 지역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북아메리카)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즉, 1975년 이후에야 아프리카는 진정한 몰락을 경험했다―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 추락은 계속되었고, 1960년에서 19999년에 이르는 전기간 동안의 열악한 경제적 성과가 주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시, '왜곡된 성장'이 이러한 몰락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의 기간과 범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둘째, 1975-90년의 아프리카의 몰락은 제3세계의 경제성장의 지역간 불균등에서 주요한 변화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얼마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남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사이의 분기(分岐)가 본격화된다(<표 Ⅲ>을 참고). 아프리카의 몰락은 이러한 분기의 가장 극단적 재현이었다. 이 점에서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분기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아프리카에는 치명적이었지만 동아시아에게는 유리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몰락과 지역간 분기 양자 모두 제1세계 자체의 내적 경향들의 중요한 역전과 관련된다. 이상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 이후 제1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해보면 크게 3가지 경향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하나는 1990년까지 일본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것과 그후 일본의 정체(停滯)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덜한 1990년까지 서유럽의 지위상승과 역시 그 보다 덜한 정체 경향이다. 세 번째 경향은 1975년까지 북아메리카 지위의 하락과 그후의 상승이 그것이다.{{) 네 번째 분명한 특징은 <표 Ⅱ>에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의 수치가 상호적으로 역주기적 진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논의는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동[의 특징]은 이하에 나타날 경향들을 구분할 때 포함될 것이다.
}} 이 점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경향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1980년대의 몰락이 어떤 점에서 북아메리카의 경제적 운명들의 동시대적인 역전과 관련되는 사건인가가 질문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를 비극―인민들의 삶의 질과 복지뿐만 아니라 크게 봐서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해 재앙과 같은 결과들을 가져온―으로 바꾼 것은, 분명 1980년대 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이었다.{{) 아프리카의 몰락의 보다 광범한 사회적 함의들에 대해서는, Mary Chinery-Hesse, "Divergence and Convergence in the New World Order", in Adebayo AAdedeji, ed., Africa Within the World: Beyond Dispossession and Dependence, London: 1993, pp. 144-7 참고할 것.
}} [하지만] 전례없는 그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그 몰락은 제1세계와 제3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경향들의 광범한 변화와 불가분하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비극은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동인들, 즉 이러한 전화(轉化)를 가져온 동인들과 특히 그 영향이 아프리카에만 집중되게 만든 동인들로부터 설명되어져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1970년대 후반 세계의 각 지역들의 운명의 변화에서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왜 그러한 변화가 제3세계 지역들 중 어떤 곳에서는 긍정적으로 기능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부정적으로 기능하였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에 대한 영향은 왜 다른 여타 제3세계 지역들보다 가혹했는가? PSSP
(다음호에 계속.)
3. 아프리카 위기의 세계체계적 맥락
4. 아프리카 위기의 지역간 비교
5. '악운(惡運)'과 '선치(善治)'
* * *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1970년대의 아프리카의 위기는 (매우 적절한 표현인) 이른바 '아프리카의 비극'{{) '아프리카의 비극'('African Tragedy')라는 표현은 Colin Leys, "Confronting the African Tragedy", NLR Ⅰ/204, March-April 1994, pp. 33-47로부터 인용하였다.
}}으로 전화되었다. 1975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일인당 GNP는 '전세계' GNP의 17.6%를 차지했다; 1999년에 즈음하여 그것은 10.5%로 하락했다. 전체적인 제3세계와 비교해볼 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역주] 'Sub-Saharan Africa'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라고 한다면 통상적으로 북부 아랍 5개국(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를 제외한 남부 48개국을 가리킨다. 지형적으로 보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인 셈이다(참고로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국가는 현재 총 53개국이다). 한편, 'Tropical Africa' 즉, '열대 아프리카' 혹은 '적도 아프리카'로 주로 적도 인근에 밀집한 국가를 가리키는 지형적인 구분이 강한 용어이다. 이하에서는 별다른 영어 병기없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열대 아프리카'로 번역한다.
}}의 건강, 사회적 윤리, 그리고 성인의 문자해독력은 비율상으로 상당히 악화되었다. 이 지역의 평균수명은 약 49년이며, 이 지역 인구의 34%가 영양실조 상태이다. 아프리카의 유아사망률은 1999년 현재 1000명당 107명의 비율이며, 이는 남아시아의 69명, 라틴 아메리카의 32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사하라 이남 지역에 거주하는 15세에서 49세 사이의 아프리카 사람들의 대략 9%는 HIV/AIDS 보균자들인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결핵환자의 비율 역시 인구 10만명당 121명 꼴로, 남아시아 98명, 라틴 아메리카 45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UN Development Programme, Human Development Report 2001, pp. 144, 165, 169 참고. 이 보고서의 각종 통계들은 국제연합(UN), 세계보건기구(WHO),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들에 기초한다.
}}
이 글의 주요 목적은 세계-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들을 재고(再考)하는 것, 즉 1975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미래가 광범위하게 분기하는 과정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경험한 것을 위치지우는 것이다. 이러한 재고는, 따라서, 두가지의 목적에 부합한다. 첫째, 존 사울(John Saul)과 내가 1960년대 후반에 제기했던 특별한 종류의 정치경제학을 사용하여 예상할 수 있었던 위기와 비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사울과 나의 논문들은 이후에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1973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이 책과 그리고 본 논문에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Sub-Saharan) 지역을 의미한다.
}} 둘째, 회고적으로 내가 보기에 ('낡은') 정치경제학 뿐만 아니라, 특히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1980년대 소개된 합리적 선택 이론가 및 정책입안자들의 '새로운' 정치경제학, 양자 모두의 심각한 결함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나는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울과 내가 주장했던 주요 테제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주장들과 비교한다. 그후에 나는 1980년을 전후한 여러 해 동안 세계적인 정치경제에서 사하라 이남 지역의 운명의 주요한 전환점을 시사하는 아프리카의 위기의 정형화된 사실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1979년과 1982년 사이에 벌어진 제3세계의 발전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선 그 변화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논문의 말미에서, 나는 [표면적인 설명의 배후에 대한] 심화 설명으로 이동하여, 세계적 맥락에서 상이한 제3세계 지역들에 대한 이러한 변화들의 극도로 불균등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다―특히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운명들 사이의 현저한 상이함에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 아프리카의 비극 혹은 아프리카의 극도로 파괴적인 양상들을 피하기 위해 수행한 것들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결론을 맺는다.
아프리카 정치경제학,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지난 20여년간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과장된 '불건전한 정책'과 '취약한 통치력'과 같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지배집단들의 성향을 그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규정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향들에 대한 아프리카의 집착의 이유들[에 대한 설명들]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비극이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 그 최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해석들에 공통적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생각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경제 운영의 결정요인들에 대한 몇몇 권위있는 연구들에 의해 도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여전힌 암시적인 내용으로만 남아있고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표준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문헌은 1981년에 발간된 세계 은행의 보고서―이른바 'Berg Report'라고 알려진―이다.{{) World Bank, Accelerat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n Agenda for Action, Washington, DC: 1981.
}} 아프리카 위기의 원인들에 대한 이 보고서의 평가는 고도의 '내인론(內因論)'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산출과 수출을 증대함에 있어서 농업생산자들의 이니셔티브를 파괴하여 발전의 과정을 잠식시킨 아프리카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과대평가된 국내통화들, 농업에 대한 경시, 제조업에 대한 과잉보호, 그리고 지나친 국가의 개입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불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통화에 대한 대규모 평가절하, 산업보호의 폐지, 농업 생산과 수출에 대한 가격 인센티브, 그리고 공기업의 사유화―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서비스의 준비까지―가 사하라 이남 지역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하게 될 '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Berg 보고서'의 원인진단과 처방은 1981년에 출판된 매우 영향력있는 또 다른 문헌―로버트 베이츠(Robert Bates)의 {열대 아프리카에서 시장과 국가}―과 일치하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정치경제학과 저발전 국가들에서 국가개입의 위험들 양자를 설명하는 고전(古典)의 지위를 빠르게 획득하였다.{{) Robert Bates, Markets and States in Tropical Africa: The Political Basis of Agricultural Policy, Berkeley, 1981. 1980년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부상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Carol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in Sub-Saharan Africa", in Stephen Commins, ed., Africa's Development Challenges and the World Bank, Boulder, 1988을 참고.
}} 베이츠의 견해에 따르면, 아프리카 신흥 산업국가들의 국가관료들은 도시 엘리트들과 무엇보다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식민체제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통제의 강력한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위한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파괴하는 정책들은 발전의 과정을 잠식하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베이츠의 해결책―국가권력의 해체와 시장 경쟁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농민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Berg 보고서' 및 그 후속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에 의해 지지된 견해와 유사했다.{{) 특히 World Bank, Toward Sustain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 Joint Programme of Action, Washington, DC 1984; Financing Adjustment with Growth in Sub-Saharan Africa: 1986-1990, Washington, DC 1986를 참고할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대한 그의 해석은 세계은행의 것에 비해 보다 비관적이고 극도로 반국가적인 것이었다. 세계은행의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평가들은 외관상으로 이중적인 가정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리카가 기존에 추진한 정책들이] '불건전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정책들의 부정적 효과와 '건전한 정책'의 긍정적 효과―한번 효력을 발휘하면 그것을 계속함에 있어 엄청난 보조가 될 수 있는―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혹은 주요한) 방법은 아프리카의 정부들로 하여금 불건전한 정책에서 건전한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정부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권자들에게) 설득하고 재촉하는 것이다. 역사적이고도 사회-구조적인 고려지점들―아프리카 엘리트들이 식민지배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지배도구들, 인종간 갈등, 지역간 갈등 그리고 경제적 집단들과 계급들 간의 갈등―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이하 NPE)은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것에서 '건전한'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에 동의할 개연성, 그리고 그 전환 이후에 '건전한' 정책을 고수할 수 있을 개연성에 대해 세계은행에 비해 보다 회의적이다.{{)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pp. 171-3을 참고할 것.
}} 최소한 그 함의로만 보자면야, 당연하게도 NPE의 반국가주의는, 세계은행의 입장과 동일하게 정부의 규제와 조정으로부터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NPE는 국가를 통제하고 있는 사회적 연합―그들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불건전한 정책'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세력들―의 정당성을 잠식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NPE의 '내인론적'이고 '최소국가론적'인 처방들이 별다른 저항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격렬한 저항은 바로 아프리카의 정부들로부터 제기되었다. 1980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Lagos)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명되었지만 'Berg 보고서'와 같은 해[1981년]에 발간된 한 결의문에서,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아프리카통일기구) 회원국가들의 대표자들은 위기의 원인이 일련의 외부적 충격들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외부적 충격들에는 일차생산품의 교역조건의 악화, 점증하는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이자율의 급증과 외채 의무 사항(debt service commitments)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른바 '라고스 계획'(The Lagos Plan of Action)은 세계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상호간의 경제통합과 협력을 증진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OAU, The Lagos Plan of Action for the Economic Development of Africa 1980-2000, Geneva 1981.
}} 대륙적 규모의 공동시장을 창설하는 것을 통한 집단적 자립에 대한 강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계획은 당시 종속이론의 영향, 게다가 대륙의 형식적인 탈식민화가 거의 종식됨에 따라 등장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강력해졌다는 판단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종속이론의 영향도, 강력해졌다는 판단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계획의 공표 직후, 그리고 급격한 경제상황의 악화일로에서, 사막지대 국가들(Sahelian)의 가뭄과 기근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는데, 1983-84년이 그 정점이었다. 이듬해 새로운 OAU 정상회담이 [에디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회담은 아프리카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UN이] 직접 해결해 달라는 제안을 UN총회의 특별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 정상회담은 {경제회복을 위한 아프리카의 긴급조치, 1986-1990}(약칭 APPER)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서도 외부적 충격들은 위기를 보다 심화시켰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자립화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APPER는 단적으로 라고스 계획과 판이하게 다른데, 즉 그것은 위기에 대한 아프리카 정부들의 책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어떠한 행위들도 그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인정의 맥락에서 보자면, APPER는 'Berg 보고서'에서 주장된 다양한 정책개혁안에 동의한다는 것, 국제사회에 아프리카가 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외채를 탕감해 줄 것, 그리고 아프리카의 수출가격의 안정·인상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위기 해결에 있어서의 공동행동을 위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국제사회' 간의 결론은 '압축/축소'(compact)[즉,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의미함-역자]였다―즉, {아프리카의 경제회복과 발전을 위한 UN의 프로그램, 1986-1990}(약칭 UNPAAERD)이 발주된 것이다.{{) Akilagpa Sawyerr, The Politics of Adjustment Policy, in Adedeji, Rasheed and Morrison, eds, The Human Dimension of Africa's Persistent Economic Crisis, London: 1990, pp. 218 23.
}}
판투 쳬루(Fantu Cheru)는, 서구의 권력들은 그렇지 않은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자신을 [과도하게] 압축/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UNPAAERD는 '단순히 Berg 보고서의 환생'이라고 규정했다.{{) Fantu Cheru, The Silent Revolution in Africa: Debt, Development and Democracy, London: 1999, pp. 15-16.
}} 이러한 성격규정은 상당히 정확하지만 세계은행의 입장들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에 종속된 아프리카 국가들이 늘어남에 따라, IMF와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신-공리주의적, 최소국가론적 처방들을 개정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일련의 제도들과 '건전한 통치'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Robert Bates, Beyond the Miracle of the Market: The Political Economy of Argarian Development in Kenya, Cambrdge: 1989; 더불어 World Bank, Sub-Saharian Africa: From Crisis to Sustainable Growth-A Long-term Perspective Study, Washington, DC: 1989, 그리고 World Bank, Governance and Development, Washington, DC: 1992 참고.
}} 1997년에 이르러, 세계은행은 모든 실천적인 정책제안들에서 국가에 대한 최소주의적 견해를 기각했다. 그후 몇 년간 세계은행의 <세계발전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에서, 국가기구들의 크기와 경제에 대한 공적 개입의 정도에 대한 초기의 관심들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효율적인 관료기구와 적극적인 국가에 대한 것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이행의무들은 경제회복의 실패와 그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재앙들에 대한 엄청난 책임을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게 부과하였다. 장기간 지속된 위기를 해결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정부들과 엘리트들의 능력에 대한 보다 비관적인 평가들은 세계경제에 대한 아프리카의 통합에 대한 낙관주의적 견해와 함께, 정부의 통제로부터 시장의 자유와 사기업들의 폭넓은 기회들의 제공―즉, IMF와 세계은행의 처방들에 대한 아프리카적 추종―을 요구하였다.{{) Ray Bush and Moris Morris Szeftel, "Commentary: Bringing Imperialism Back In", Review of African Political Economy, no. 80, 1999, p. 168을 참고. 또한 Economist지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입장의] 변화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Economist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은 지난 세대보다 더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게재하고서 정확히 3년 후, 2000년 5월 13-19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대륙]이라고 선언하였다. 아프리카의 '가련한 지도자 집단'은 '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국가의 제도들을 강화하기 보다는 잠식'했고 자신의 국가들로 하여금 근대성의 함정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중심은 텅 빈 '무늬만 국가(shell states)'이게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주간지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아프리카는 발전으로부터 도태되고 애초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어떤 유전적 특질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발간되는 경제주간지인 Financial Mail은, Economist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Economist의 편집진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유전적 특질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The Hopeless Continent", World Press Review, October 2000, pp. 24-25 참고.
}}
나와 사울(J. Saul)의 {아프리카 정치경제론}(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배적이게 된 '새로운' 정치경제학(NPE)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 간에 차이들 뿐만 아니라 그 유사함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분석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특히 베이츠(R. Bates)가 30년 후에 수행했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비극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우리는 제일 먼저 당시의 지배집단들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저발전이라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그 문제의 일부분임을 지적했다. 1968년 그 책의 초판이 출판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의 가장 중심에는 정부 관료로 고용되어 있던 도시 엘리트들과 농촌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 그리고 이윤, 수익, 배당,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수수료들의 해외로의 유출을 가져온 '잉여흡수'(surplus absorption)의 방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농업 생산성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억제하면서, 이 방식은 아프리카의 경제를 1차 상품에 대한 세계 수요의 성장에 대한 의존을 영속시키켰다. 우리가 보기엔, 그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정치경제의 틀 내에서 적도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이 사라지게 되면서, 급격한 경기후퇴가 예상된다.'
동시에, 농업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잉여흡수 방식의 변화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부들이 기초하는 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계급들의 특권을 공격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1960년대 열대 아프리카의 경제발전을 '왜곡된 성장; 즉, 장기간의 성장을 위해 경제의 일반적인 잠재력들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그것을 잠식하는 성장'이라고 규정하였다. 아프리카에서 경제발전의 전망,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발전적 역할에 대해 낙관론이 일반적이었던 시기에, 우리는 양자 모두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심지어 '현대 아프리카에서 엘리트간 경쟁의 성격과, 특히 주요 관직에서 군부의 등장, 이것들이 어떻게 반혁명적 방향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힘을 보여주는지' 언급했던 것이다.{{) Arrighi and Saul,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pp. 16-23, 33, 34; 강조는 나의 것임.
}}
그러나, 그러한 진단의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경제학은 NPE와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었던 세계적 맥락에 집중적으로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발전의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었다. 우리의 견해에서 세계적 맥락은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NPE의 견해와 달리, 우리는 민족[-국가]적 수준에서 발전을 향한 노력과 그 성과들을 제약하고 규정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세계 자본주의라고 보았다. 아프리카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였던 잉여흡수의 방식―도시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와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를 포함하는―은 적어도 가능한 경제적 잉여의 엄청난 분배량을 전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정책들만큼이나 세계적 자본순환에서 경제들의 통합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게다가,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의 소멸은 세계경제가 아프리카의 민족적 발전에 부과한 제약들의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이 1970년대 아프리카의 위기를 예상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후에 위기를 비극으로 변화시킬 동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초기 교란에 대한 어떠한 깨달음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그것이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에 끼칠 재앙과 같은 영향―여타 제3세계 지역,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 끼친 유리한 영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대해서 더욱 그랬다. 이러한 결함들을 강조하고 또한 수정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해 예견한 것과 예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아프리카 위기의 불균등 발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발전적 재앙의 독특한 사례로 여기는 경향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 이남은 자신의 성공사들을 공유하고 있다. 베르텔레미(Jean-Claude Berthlemy)와 소덜링(Ludvig Soderling)은, 1960년부터 1996년까지의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했던 경제적 성장의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20개 이상의 사례들을, 즉 북아프리카에서 4개의 사례들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16개의 사례들을 알아냈다.{{) 지속된 강력한 성장경험은 '10년 혹은 그 이상의 중단 없는 기간으로, 연간 GDP 성장의 5년 간 평균이 3.5%를 초과한 시기'로 정의된다. 이 기준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6개 사례에 적용해 보면 평균적으로 15.4년 동안 7.1%의 연간 성장률을 보인다. Jean-Claude Berth lemy and Ludvig Soderling, "The Role of Capital Accumulation, Adjustment and Structural Change for Economic Take-Off: Empirical Evidence from African Growth Episodes", World Development, no. 2, 2001 참고; 이상의 평균은 저자들의 <표Ⅰ>로부터 계산되었음.
}} 이것은 분명 예외적인 성과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동아시아 '기적적인'경제 성과들과 비견될 만하다. 그러한 아프리카의 성공사들은, Economist에게는 미안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여타 저소득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발전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어떠한 '유전적 특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본 논문의 목적상, 이러한 경험들에 대한 주요 관심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공사의] 시기별 분포에 집중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표를 결합해 보면 세계 여러 지역들의 성공 혹은 실패를 비교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개관을 제공한다. 각 수치들에서 세가지 중요한 특징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여타 제3세계 지역들 중 최악의 경제적 성과를 나타낼지라도, 이러한 열악한 수치들이 거의 대부분 1975년 이후의 양상이다. 1975년 이전으로 가보면, 아프리카의 경제의 성과는 세계 평균보다 그다지 나쁘지 않으며 남아시아보다 높고 게다가 제1세계 지역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북아메리카)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즉, 1975년 이후에야 아프리카는 진정한 몰락을 경험했다―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 추락은 계속되었고, 1960년에서 19999년에 이르는 전기간 동안의 열악한 경제적 성과가 주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시, '왜곡된 성장'이 이러한 몰락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의 기간과 범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둘째, 1975-90년의 아프리카의 몰락은 제3세계의 경제성장의 지역간 불균등에서 주요한 변화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얼마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남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사이의 분기(分岐)가 본격화된다(<표 Ⅲ>을 참고). 아프리카의 몰락은 이러한 분기의 가장 극단적 재현이었다. 이 점에서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분기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아프리카에는 치명적이었지만 동아시아에게는 유리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몰락과 지역간 분기 양자 모두 제1세계 자체의 내적 경향들의 중요한 역전과 관련된다. 이상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 이후 제1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해보면 크게 3가지 경향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하나는 1990년까지 일본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것과 그후 일본의 정체(停滯)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덜한 1990년까지 서유럽의 지위상승과 역시 그 보다 덜한 정체 경향이다. 세 번째 경향은 1975년까지 북아메리카 지위의 하락과 그후의 상승이 그것이다.{{) 네 번째 분명한 특징은 <표 Ⅱ>에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의 수치가 상호적으로 역주기적 진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논의는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동[의 특징]은 이하에 나타날 경향들을 구분할 때 포함될 것이다.
}} 이 점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경향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1980년대의 몰락이 어떤 점에서 북아메리카의 경제적 운명들의 동시대적인 역전과 관련되는 사건인가가 질문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를 비극―인민들의 삶의 질과 복지뿐만 아니라 크게 봐서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해 재앙과 같은 결과들을 가져온―으로 바꾼 것은, 분명 1980년대 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이었다.{{) 아프리카의 몰락의 보다 광범한 사회적 함의들에 대해서는, Mary Chinery-Hesse, "Divergence and Convergence in the New World Order", in Adebayo AAdedeji, ed., Africa Within the World: Beyond Dispossession and Dependence, London: 1993, pp. 144-7 참고할 것.
}} [하지만] 전례없는 그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그 몰락은 제1세계와 제3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경향들의 광범한 변화와 불가분하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비극은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동인들, 즉 이러한 전화(轉化)를 가져온 동인들과 특히 그 영향이 아프리카에만 집중되게 만든 동인들로부터 설명되어져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1970년대 후반 세계의 각 지역들의 운명의 변화에서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왜 그러한 변화가 제3세계 지역들 중 어떤 곳에서는 긍정적으로 기능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부정적으로 기능하였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에 대한 영향은 왜 다른 여타 제3세계 지역들보다 가혹했는가? PSSP
(다음호에 계속.)
3. 아프리카 위기의 세계체계적 맥락
4. 아프리카 위기의 지역간 비교
5. '악운(惡運)'과 '선치(善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