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연금제도 개혁 비판
경제의 위기 그리고 금융화
90년대 중반이후 그리고 오늘날 남한사회에서 시장은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냉전 상황에서 남한경제는 미국의 시장개방에 힙 입어 산업-무역 정책을 중심으로 수출 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내실 있는 경제 기초여건을 조성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남한경제는 전세계적 자본축적의 위기, 경제불황 상황에서 자본투자를 더욱 증가시키는 전략을 선택했고, 냉전해체와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호의 해제가 맞물리면서 객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재벌 체제로 표상되는 기존의 성장전략은 (해외 차입을 통해) 자본의 과잉축적을 낳았으며, 이는 자본의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대내외적 경제상황에 악화되면서 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98년 이후 남한경제는 미국-IMF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억압되었던 금융에 자유를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결과적으로 자본시장, 상품시장이 해외자본에 전면 개방·자유화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추진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금융적 확장'을 위한 제도적 변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세계화다. 세계적 수준에서 투자,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경제의 향방에 세계경제가 매우 깊숙이 얽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의 세계화는 1990년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과 투자의 확대가 미국경제의 불황을 세계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만들어버릴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세계 각 국의 금융시장의 운동은 미국금융시장에 지독히도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2002년 세계경제는 광범위하고도 깊은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즉 사상최대로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사태에 직면해있다. 동시에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매력적이고 차별화 된 투자처라고 자임하던 남한경제도 비정상적인 성장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지난 몇 년간 남한경제는 수출과 투자의 침체, 그리고 생산자본의 수익률 하락 속에서도 저금리정책을 통한 소비거품과 부동산 거품, 금융시장의 수익률 증대를 통해 성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소비가 신용경제의 유지에 위험스러운 지경에 도달했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천장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에서 주식시장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600선마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2002년 10월 초 중순) 이 때 국내외 기관투자가들과 정·재계는 호들갑스럽게 정부가 주가안정을 위해 시급히 기대(대책)를 창출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2002년 마지막 국회를 앞두고 노동·자본시장 관련한 개혁 법안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권 말살을 포함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고 교육·서비스·의료분야를 외국자본에게 개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은행-보험-증권회사를 아울러 자유로운 상품판매와 겸업, 자산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방카슈랑스의 도입, 국내외 보험회사의 팽창에 장애가 되던 규제들을 풀어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험업법 개정,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에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저축을 받아 간접투자를 하는 수탁회사(예:뮤추얼펀드)의 역할강화와 자산운용산업의 규제완화를 위한 자산운용업법, 노동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던 퇴직금제도를 대체할 기업연금제도가 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민간의료보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현행 건강보험의 기능을 잠식하고, 금융의 이해에 복무하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흐름 역시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재정안정화를 운운하며 다수 의료서비스에 대해 보험혜택을 제외하여, 민간보험에 의존해야만 항상적인 질병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실상 비펀드형에서 펀드형으로의 계획전환은 생명보험사에게 엄청난 이익을 제공하고 금융시장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뿐만 아니라 WTO 도하개발 아젠다-서비스 부분의 개방·자유화 협상{{) 2002년부터 2005년까지 WTO에 가입한 회원국가들은 금융, 법률, 의료, 교육, 시청각, 통신, 에너지 부문의 개방(대외적인 자유화)일정 및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양자간 협상인 한-일 투자협정, 한-미 투자협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현재 체결되었거나 체결될 예정에 놓여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경제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자본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자본의 구조개혁으로서 향후 한국사회의 (나쁜 방향을 향한) 구조화에 크게 기여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리고 현 시기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에 조응하며, 친기업적·반민중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화·새로운 제도 입법 조치를 통한 소위 기관투자가의 육성에 대한 것이다.{{) 기관투자가란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저축 및 여유자금을 끌어모아, 이를 금융시장(주식과 채권)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법인형태의 투자자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연기금, 투자은행(뮤추얼펀드), 보험, 헤지펀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관투자가의 부상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1990년대 이루어진 전세계적인 금융적 팽창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소위 사회보장기금이 기관화되어 스스로 초국적 금융자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장치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 이러한 국내외 부르주아의 구상속에서 사회보장체계로 불리던 의료시스템, 연금, 보험 영역의 개혁은 금융자본에게 집중된 화폐자본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사회보장기금은 민영화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주식시장의 호황에 버팀목이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막대한 부를 집중시켜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IBRD), 미국 워싱턴과 뉴욕의 싱크탱크와 언론들이 각종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의 개혁 전망의 핵심으로 계속 지적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개혁은 이들이 공을 들이는 만큼 계급적 이해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연금제도의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먼저 세계의 연금제도 개혁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적 사회보장에 유리하도록 법정사회보장을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것. 둘째, 재정방식(재원조달방식)의 전환. 즉 부과방식(일정한 기간-보통은 1년-중에 지불해야하는 급여지출비용을 그 기간 내에 사회 보험료 수입에 의해 조달하며 어느 정도의 손실은 공적 재정수단으로 메워진다)은 적립방식(연금급여비의 재원을 장기간에 걸쳐 자본스톡을 형성시켜 조달하는 방식)으로 대체된다. 셋째, 급여방식의 변화추세. 일정 시점 이후 참여자에게 '정해진 금액의 퇴직 급여'를 제공하는 확정급여형에서 노동자 개개인을 위한 개인 계정에 '정해진 금액의 기여'가 이루어지는 확정기여형으로 점진적인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기업의 단기적인 이윤추구 이해에 조응하는 반면, 사회보장체계의 민영화, 적립재정방식은 거대 기관투자가에게 직접적으로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부가 추진중인 연기금 개혁도 신흥시장의 육성을 위해 국제기구가 제시한 연금제도 민영화 모델인(공적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층 연금모델{{) 이들이 권고하는 모델은 이른바 '3층 보장체계(Three Pillars)'라 불리는 것이다. 이 모델은 기존의 공적연금이 담당하던 소득재분배와 저축기능을 다음과 같이 분리시켜서 정리한다. 1층(1st pillar)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기초연금으로 국가가 담당해야하는 공적연금의 역할과 범위를 극빈자들의 최소생계비 보장 수준에 한정하는 것이다. 2층(2nd pillar)은 저축기능을 담당하는 민간 강제적용연금이다. 3층(3rd pillar)은 자발적인 민간연금 및 저축가입이다. 이 모델에 대해 부르주아들은 예측불가능한 위험을 3층으로 나누어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전사회적으로 인구노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재정의 적자가 증폭하였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과거 국가의 역할을 분점하여 효율적으로 자본을 재분배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금의 금융시장 유입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전제인 완전 적립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남한의 연금개혁정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금체계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최근 남한사회의 연금개혁은 기업연금제 도입, 개인연금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국민연금의 투자자유화 조치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퇴직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사회보장적 차원보다는 금융시장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며, 공적연금제도의 역할 축소와 사적 연금제도(기업연금, 개인연금)의 활성화로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의 경우 1999년 전국민을 가입대상으로 확대하면서부터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여 기금운용의 방향을 금융시장 투자자금으로서 효율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후 연기금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비율은 계속 확대되었으며, 상품에 대한 규제도 지속적으로 완화시켜 벤쳐캐피탈,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성 자산으로 투자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개인연금의 경우 1994년부터 시행되어 2001년 2월부터 주식투자 등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연금상품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정부의 입·출입 세제혜택 등에 힘입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기업연금은 정착과정에서부터 매년 1조∼5조원씩 주식시장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연금의 금융화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연기금 체계에서 사적 연금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 '사외적립'되어 있지 않은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시켜 (다층체계 중) 2층 구축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인연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 이러한 추세는 세계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금제도 개혁안이 제기한 방향과 크게 맞닿아있다. 이들 국제기구는 공적연금제도가 급속한 노령화와 과도한 연금급여, 그리고 수익률 저하에 따른 재정 불안정 등으로 인하여 변화되어야 하는데, 적립재정방식이든 부가방식이든 기존의 공적 연금체계가 노후 소득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가정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인구노령화와 재정 적자로 고생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역시 인구노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이 제도가 필연적으로 파산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사회보장에 있어서 국가역할을 축소하고 연금제도에 있어 시장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립형 기업연금체계, 특히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를 도입하고 개인 퇴직계좌 도입 등을 통해 개인연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들은 마치 '객관적'인 차원에서 공적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구의 노령화와 같은 인구학적 문제를 푸는데 있어 공적시스템보다 사적시스템(주로 금융시장)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실 부르주아들은 극심한 변동성과 작전을 동원한 부패커넥션을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별로 없는 금융시장이 바위처럼 견고한 것으로 묘사한 반면, 오랜 기간 기능중단도 없이 노령자에게 연금을 지급해 온 정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방식에 초점을 찍어보자. 이들이 주장하는 데로 '적립방식'의 사연금제도로 바꾸는 것이 과연 공적연금 재정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적립재정방식을 전제로 하는 공적연금 민영화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부담감소가 아니라 노령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해소, 노후소득보장의 개별화를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노인비율이 늘어난다면 그 사회의 산출 중 노인인구를 위해 쓰이는 것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부과방식'이냐 '적립방식'이냐 하는 연금재정 방식의 변화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의 연금재정방식의 변화로 달라지는 것은 필요자원의 양이 아니라 단지 자원조달의 경로이다. 노후보장 비용이 연금제도를 통해 곧바로 노인들에게 주어지느냐, 아니면 자본시장에서 장단기적인 투자과정을 거친 후에 주어지느냐이다. 그럼에도 시장주의자들이 연금재정방식을 '적립'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면 이는 재정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금기금 형성ㆍ투자가 야기하는 이해관계 때문임을 반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연금민영화를 통해 누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며,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외 투자기관 및 보험회사, 은행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이득을 볼 것인지,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얼마나 커질 것이며, 국내외 투자가들은 과연 어느 정도 규모로 이익을 보았는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연금개혁의 실질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전경련, 보험개발원과 증권연구원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기업연금제 도입에 따른 예상 수익, 경영전략의 변화지점{{)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전경련은 현재 퇴직금과 국민연금 모두에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신규채용 등 기업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경감하고자 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기업연금 도입은 자금조달의 용이함, 부채비율 감소를 통한 재무건전성 도모, 사내 노동력관리, 기업의 금융화 촉진 등과 같은 이해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보험회사와 증권업계가 직면한 이해는 더욱 직접적이다. 이들에게 기업연금제도 도입은 새롭고도 거대한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시장을 둘러싸고 보험과 증권을 비롯한 비은행 금융권의 공세적인 활동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보험회사의 경우는 현행 법정퇴직금 제도의 개선 방안까지 제안하면서,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전문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전망을 수립하고 있다. 덧붙여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 진출에 유리한 서비스 형태에 대해서도 이미 자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증권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채권투자를 증진시키기 위해 각종 상품을 개발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 기업연금 상품을 선점하기 위한 각종 로비 등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업연금시장을 둘러싼 이들의 치열한 경쟁은 민중들의 소득을 자본시장에 더욱 깊숙이 연계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개혁의 직접적 영향
현시기 연금제도 개혁은 노동시장과 노동자의 분할을 가속화하며 불안정 노동층을 배제, 빈곤을 심화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기업연금이 도입된다면 월평균 임금의 8.33% 이상을 기업이 일률적으로 적립해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금제도와 달리 기업의 '경영성과'와 '노동자의 능력'에 맞춰 연금을 적립하게 된다. 즉 기업은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노동자가 미래에 수령할) 급여액수와 기여액을 조정(통상 3-5년 단위)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 대한 통제는 용이해지며, 노동자간의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한편 사적 연금의 확대와 공적 연금의 상대적 축소는 여성, 임시일용직 노동자, 영세사업체 종사자, 비공식경제부문 노동자의 노후를 더욱 빈곤화한다. 즉 노동시장 참여시기의 빈곤이 노후에도 재생산되어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연금제도의 개혁(민영화)을 실시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사적 연금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 문제와 재분배 효과를 지적하고 있다.{{) 사연금화는 여성이 평균수명이 길다는 이유로 연금지급액수를 낮추기 때문에 여성에게도 불리하다. 따라서 연금민영화는 저임금여성노동자에게 최악의 효과를 낳을 것으로 판단된다.
}} 서구의 경우 과거 복지국가 전성기의 공적연금제도가 전사회적인 단위로 집합적 노후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그 이상(理想)으로 했었다면, 최근 확산되는 강제개인저축 방식의 연금제도는 '자신의 노후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지도록' 개별화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후자의 경우 연금급여액은 항상 투자수익과 연계되기 때문에 재분배 효과를 염두에 두고 급여를 설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금급여는 판돈의 크고 작음에 따라 보상 또한 천차만별이 되는 게임이 되어 버린다. 또한 연금기금의 금융자본화를 핵심으로 하는 민영화는 불안정 노동층의 노후소득보장에 더욱 큰 곤란을 야기한다. 대부분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의 경우 일천한 투자경험으로 인해 적절한 투자기관을 선택할 확률이 낮다. 광고나 판매원에 현혹된 투자기관 선택은 개인의 노후보장의 기반을 붕괴시킨다. 이는 영국의 공적연금을 대신하는 사적연금의 급격한 확대과정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점이다. 게다가 사연금은 가입과 탈퇴가 반복되면 가입자에게 운영수수료 부담을 높인다. 실제로 불안정 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보험료를 꼬박꼬박 부담하는 것이 어려워 사연금 가입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한 연금액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통상적인 경우에도 영국과 미국의 개인연금 운영비는 보험료의 약 35%에 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금을 민영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금액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그야말로 '최소한'이다. 칠레에서는 민간연금운용회사의 투자수익이 너무 낮거나 보험회사가 망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최저연금보증제도를 정부부담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년 이상 가입한 노인들에게만, 대체로 평균임금의 12%에서 20%사이를 지급하는 것으로서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노동자 내 계층 분리의 심화와 전반적 소득분배의 악화는 필연적인 효과이다.
연금제도 개혁,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에 맞선 대응방향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 사적연금의 확대는 한편으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방책으로 작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부문의 축소, 자본 영역의 확충을 낳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책입안자들이 선전하듯 사적 연금의 확대는 기금의 안정성과 거의 관련이 없고, 실제 비용과 위험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의 책임, 소유, 그리고 선택의 원리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 민영화의 실질적인 피해는 여성들,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연금제도의 원래 취지인 소득재분배 문제,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노후보장 달성이란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연금제도 민영화-사적 연금의 확대를 막아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둘째, 연기금의 투자를 위한 적립을 반대해야 한다. 적립형 사적 연금제도의 도입 및 전환을 통한 재정부담의 축소, 자본시장의 발달, '더 빠른 경제성장', 그리고 주식 투자 수익을 통한 '노후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연금 개혁의 목표는 실제 객관성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며, 적립재정방식은 연기금의 금융자본화를 위한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 혹자들은 재정을 적립해서 사회적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화·세계화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저축으로 형성된 거대한 자본의 집합은 사회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게임규칙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게임규칙을 따라 움직인다.시장은 그들의 안마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한 금융자본의 집합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연금제의 도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이 말은 현재의 논의지형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노후안정 저축기금'으로서 연금제도의 본래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도의 도입을 실천적으로 저지시켜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현재 기업연금 도입에 대한 논쟁 지형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의 특징상 적립재정방식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확정기여형이냐 확정급여형이냐'에 한정된 선택을 거부해야 한다. 강요된 선택 이외에도 '보험'방식을 버린다거나 부과방식을 전제하는 새로운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민중들이 연기금의 금융화·민영화에 반대하여 공동으로 싸우지 않는 한 현실적인 정책선택을 지배하는 쟁점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넷째, 연기금의 시장자유화 조치를 반대해야 한다. 연금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 대표적으로 공적연금의 주식투자비율 확대, 투자대상 금융상품에 대한 자유화, 해외투자 액수의 증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연금을 전문펀드에 용역하청의 형태로 위탁하는 것 등 연기금의 금융자본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조치들, 이외에도 연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에게 자산운용의 자유를 부여하는 보험업법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자산운용법 등의 개정과 제정을 반대해야 한다. PSSP
그림 1 (nasdaq 이란 간판앞에 서있는 사람들)
금융자본이 전후의 '노동계급-산업자본-국가'의 우위와 공적 통제에서 벗어나 헤게모니를 확고하게 복원한 것으로 묘사되는 현 국면에서 부각되는 정치적 주체는 역시 거대 금융자본이다. 연금제도 등 복지제도에 대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역할은 산업자본에 비해 조명을 받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용'이란 차원에서 산업자본이 복지제도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는 만큼이나 금융자본 또한 '시장'창출면에서 국가복지체계 민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더욱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림 2(노인들이 일렬로 앉아있는 모습)
경제개발기구(OECD)를 필두로 각국 정부와 초민족적 자본은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고용·임금·연금·보험 정책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전망에 금융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결합시켜왔다.
그림 3 (ibrd- 세계은행 사진)
연금개혁은 비단 선진국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 등을 망라하는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에 세계은행은 강제적립부분 도입을 강조하는 다층체계개혁을 전세계적인 벤치마크로 제시해왔으며, 이러한 입장은 1990년대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남미와 동유럽 국가들의 공적 연금개혁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90년대 중반이후 그리고 오늘날 남한사회에서 시장은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냉전 상황에서 남한경제는 미국의 시장개방에 힙 입어 산업-무역 정책을 중심으로 수출 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내실 있는 경제 기초여건을 조성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남한경제는 전세계적 자본축적의 위기, 경제불황 상황에서 자본투자를 더욱 증가시키는 전략을 선택했고, 냉전해체와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호의 해제가 맞물리면서 객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재벌 체제로 표상되는 기존의 성장전략은 (해외 차입을 통해) 자본의 과잉축적을 낳았으며, 이는 자본의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대내외적 경제상황에 악화되면서 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98년 이후 남한경제는 미국-IMF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억압되었던 금융에 자유를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결과적으로 자본시장, 상품시장이 해외자본에 전면 개방·자유화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추진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금융적 확장'을 위한 제도적 변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세계화다. 세계적 수준에서 투자,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경제의 향방에 세계경제가 매우 깊숙이 얽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의 세계화는 1990년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과 투자의 확대가 미국경제의 불황을 세계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만들어버릴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세계 각 국의 금융시장의 운동은 미국금융시장에 지독히도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2002년 세계경제는 광범위하고도 깊은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즉 사상최대로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사태에 직면해있다. 동시에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매력적이고 차별화 된 투자처라고 자임하던 남한경제도 비정상적인 성장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지난 몇 년간 남한경제는 수출과 투자의 침체, 그리고 생산자본의 수익률 하락 속에서도 저금리정책을 통한 소비거품과 부동산 거품, 금융시장의 수익률 증대를 통해 성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소비가 신용경제의 유지에 위험스러운 지경에 도달했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천장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에서 주식시장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600선마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2002년 10월 초 중순) 이 때 국내외 기관투자가들과 정·재계는 호들갑스럽게 정부가 주가안정을 위해 시급히 기대(대책)를 창출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2002년 마지막 국회를 앞두고 노동·자본시장 관련한 개혁 법안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권 말살을 포함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고 교육·서비스·의료분야를 외국자본에게 개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은행-보험-증권회사를 아울러 자유로운 상품판매와 겸업, 자산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방카슈랑스의 도입, 국내외 보험회사의 팽창에 장애가 되던 규제들을 풀어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험업법 개정,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에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저축을 받아 간접투자를 하는 수탁회사(예:뮤추얼펀드)의 역할강화와 자산운용산업의 규제완화를 위한 자산운용업법, 노동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던 퇴직금제도를 대체할 기업연금제도가 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민간의료보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현행 건강보험의 기능을 잠식하고, 금융의 이해에 복무하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흐름 역시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재정안정화를 운운하며 다수 의료서비스에 대해 보험혜택을 제외하여, 민간보험에 의존해야만 항상적인 질병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실상 비펀드형에서 펀드형으로의 계획전환은 생명보험사에게 엄청난 이익을 제공하고 금융시장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뿐만 아니라 WTO 도하개발 아젠다-서비스 부분의 개방·자유화 협상{{) 2002년부터 2005년까지 WTO에 가입한 회원국가들은 금융, 법률, 의료, 교육, 시청각, 통신, 에너지 부문의 개방(대외적인 자유화)일정 및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양자간 협상인 한-일 투자협정, 한-미 투자협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현재 체결되었거나 체결될 예정에 놓여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경제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자본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자본의 구조개혁으로서 향후 한국사회의 (나쁜 방향을 향한) 구조화에 크게 기여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리고 현 시기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에 조응하며, 친기업적·반민중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화·새로운 제도 입법 조치를 통한 소위 기관투자가의 육성에 대한 것이다.{{) 기관투자가란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저축 및 여유자금을 끌어모아, 이를 금융시장(주식과 채권)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법인형태의 투자자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연기금, 투자은행(뮤추얼펀드), 보험, 헤지펀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관투자가의 부상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1990년대 이루어진 전세계적인 금융적 팽창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소위 사회보장기금이 기관화되어 스스로 초국적 금융자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장치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 이러한 국내외 부르주아의 구상속에서 사회보장체계로 불리던 의료시스템, 연금, 보험 영역의 개혁은 금융자본에게 집중된 화폐자본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사회보장기금은 민영화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주식시장의 호황에 버팀목이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막대한 부를 집중시켜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IBRD), 미국 워싱턴과 뉴욕의 싱크탱크와 언론들이 각종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의 개혁 전망의 핵심으로 계속 지적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개혁은 이들이 공을 들이는 만큼 계급적 이해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연금제도의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먼저 세계의 연금제도 개혁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적 사회보장에 유리하도록 법정사회보장을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것. 둘째, 재정방식(재원조달방식)의 전환. 즉 부과방식(일정한 기간-보통은 1년-중에 지불해야하는 급여지출비용을 그 기간 내에 사회 보험료 수입에 의해 조달하며 어느 정도의 손실은 공적 재정수단으로 메워진다)은 적립방식(연금급여비의 재원을 장기간에 걸쳐 자본스톡을 형성시켜 조달하는 방식)으로 대체된다. 셋째, 급여방식의 변화추세. 일정 시점 이후 참여자에게 '정해진 금액의 퇴직 급여'를 제공하는 확정급여형에서 노동자 개개인을 위한 개인 계정에 '정해진 금액의 기여'가 이루어지는 확정기여형으로 점진적인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기업의 단기적인 이윤추구 이해에 조응하는 반면, 사회보장체계의 민영화, 적립재정방식은 거대 기관투자가에게 직접적으로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부가 추진중인 연기금 개혁도 신흥시장의 육성을 위해 국제기구가 제시한 연금제도 민영화 모델인(공적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층 연금모델{{) 이들이 권고하는 모델은 이른바 '3층 보장체계(Three Pillars)'라 불리는 것이다. 이 모델은 기존의 공적연금이 담당하던 소득재분배와 저축기능을 다음과 같이 분리시켜서 정리한다. 1층(1st pillar)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기초연금으로 국가가 담당해야하는 공적연금의 역할과 범위를 극빈자들의 최소생계비 보장 수준에 한정하는 것이다. 2층(2nd pillar)은 저축기능을 담당하는 민간 강제적용연금이다. 3층(3rd pillar)은 자발적인 민간연금 및 저축가입이다. 이 모델에 대해 부르주아들은 예측불가능한 위험을 3층으로 나누어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전사회적으로 인구노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재정의 적자가 증폭하였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과거 국가의 역할을 분점하여 효율적으로 자본을 재분배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금의 금융시장 유입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전제인 완전 적립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남한의 연금개혁정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금체계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최근 남한사회의 연금개혁은 기업연금제 도입, 개인연금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국민연금의 투자자유화 조치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퇴직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사회보장적 차원보다는 금융시장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며, 공적연금제도의 역할 축소와 사적 연금제도(기업연금, 개인연금)의 활성화로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의 경우 1999년 전국민을 가입대상으로 확대하면서부터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여 기금운용의 방향을 금융시장 투자자금으로서 효율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후 연기금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비율은 계속 확대되었으며, 상품에 대한 규제도 지속적으로 완화시켜 벤쳐캐피탈,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성 자산으로 투자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개인연금의 경우 1994년부터 시행되어 2001년 2월부터 주식투자 등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연금상품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정부의 입·출입 세제혜택 등에 힘입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기업연금은 정착과정에서부터 매년 1조∼5조원씩 주식시장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연금의 금융화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연기금 체계에서 사적 연금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 '사외적립'되어 있지 않은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시켜 (다층체계 중) 2층 구축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인연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 이러한 추세는 세계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금제도 개혁안이 제기한 방향과 크게 맞닿아있다. 이들 국제기구는 공적연금제도가 급속한 노령화와 과도한 연금급여, 그리고 수익률 저하에 따른 재정 불안정 등으로 인하여 변화되어야 하는데, 적립재정방식이든 부가방식이든 기존의 공적 연금체계가 노후 소득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가정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인구노령화와 재정 적자로 고생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역시 인구노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이 제도가 필연적으로 파산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사회보장에 있어서 국가역할을 축소하고 연금제도에 있어 시장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립형 기업연금체계, 특히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를 도입하고 개인 퇴직계좌 도입 등을 통해 개인연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들은 마치 '객관적'인 차원에서 공적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구의 노령화와 같은 인구학적 문제를 푸는데 있어 공적시스템보다 사적시스템(주로 금융시장)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실 부르주아들은 극심한 변동성과 작전을 동원한 부패커넥션을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별로 없는 금융시장이 바위처럼 견고한 것으로 묘사한 반면, 오랜 기간 기능중단도 없이 노령자에게 연금을 지급해 온 정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방식에 초점을 찍어보자. 이들이 주장하는 데로 '적립방식'의 사연금제도로 바꾸는 것이 과연 공적연금 재정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적립재정방식을 전제로 하는 공적연금 민영화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부담감소가 아니라 노령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해소, 노후소득보장의 개별화를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노인비율이 늘어난다면 그 사회의 산출 중 노인인구를 위해 쓰이는 것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부과방식'이냐 '적립방식'이냐 하는 연금재정 방식의 변화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의 연금재정방식의 변화로 달라지는 것은 필요자원의 양이 아니라 단지 자원조달의 경로이다. 노후보장 비용이 연금제도를 통해 곧바로 노인들에게 주어지느냐, 아니면 자본시장에서 장단기적인 투자과정을 거친 후에 주어지느냐이다. 그럼에도 시장주의자들이 연금재정방식을 '적립'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면 이는 재정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금기금 형성ㆍ투자가 야기하는 이해관계 때문임을 반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연금민영화를 통해 누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며,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외 투자기관 및 보험회사, 은행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이득을 볼 것인지,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얼마나 커질 것이며, 국내외 투자가들은 과연 어느 정도 규모로 이익을 보았는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연금개혁의 실질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전경련, 보험개발원과 증권연구원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기업연금제 도입에 따른 예상 수익, 경영전략의 변화지점{{)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전경련은 현재 퇴직금과 국민연금 모두에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신규채용 등 기업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경감하고자 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기업연금 도입은 자금조달의 용이함, 부채비율 감소를 통한 재무건전성 도모, 사내 노동력관리, 기업의 금융화 촉진 등과 같은 이해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보험회사와 증권업계가 직면한 이해는 더욱 직접적이다. 이들에게 기업연금제도 도입은 새롭고도 거대한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시장을 둘러싸고 보험과 증권을 비롯한 비은행 금융권의 공세적인 활동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보험회사의 경우는 현행 법정퇴직금 제도의 개선 방안까지 제안하면서,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전문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전망을 수립하고 있다. 덧붙여 보험회사가 기업연금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 진출에 유리한 서비스 형태에 대해서도 이미 자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증권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채권투자를 증진시키기 위해 각종 상품을 개발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 기업연금 상품을 선점하기 위한 각종 로비 등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기업연금시장을 둘러싼 이들의 치열한 경쟁은 민중들의 소득을 자본시장에 더욱 깊숙이 연계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개혁의 직접적 영향
현시기 연금제도 개혁은 노동시장과 노동자의 분할을 가속화하며 불안정 노동층을 배제, 빈곤을 심화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기업연금이 도입된다면 월평균 임금의 8.33% 이상을 기업이 일률적으로 적립해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금제도와 달리 기업의 '경영성과'와 '노동자의 능력'에 맞춰 연금을 적립하게 된다. 즉 기업은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노동자가 미래에 수령할) 급여액수와 기여액을 조정(통상 3-5년 단위)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 대한 통제는 용이해지며, 노동자간의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한편 사적 연금의 확대와 공적 연금의 상대적 축소는 여성, 임시일용직 노동자, 영세사업체 종사자, 비공식경제부문 노동자의 노후를 더욱 빈곤화한다. 즉 노동시장 참여시기의 빈곤이 노후에도 재생산되어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연금제도의 개혁(민영화)을 실시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사적 연금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 문제와 재분배 효과를 지적하고 있다.{{) 사연금화는 여성이 평균수명이 길다는 이유로 연금지급액수를 낮추기 때문에 여성에게도 불리하다. 따라서 연금민영화는 저임금여성노동자에게 최악의 효과를 낳을 것으로 판단된다.
}} 서구의 경우 과거 복지국가 전성기의 공적연금제도가 전사회적인 단위로 집합적 노후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그 이상(理想)으로 했었다면, 최근 확산되는 강제개인저축 방식의 연금제도는 '자신의 노후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지도록' 개별화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후자의 경우 연금급여액은 항상 투자수익과 연계되기 때문에 재분배 효과를 염두에 두고 급여를 설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금급여는 판돈의 크고 작음에 따라 보상 또한 천차만별이 되는 게임이 되어 버린다. 또한 연금기금의 금융자본화를 핵심으로 하는 민영화는 불안정 노동층의 노후소득보장에 더욱 큰 곤란을 야기한다. 대부분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의 경우 일천한 투자경험으로 인해 적절한 투자기관을 선택할 확률이 낮다. 광고나 판매원에 현혹된 투자기관 선택은 개인의 노후보장의 기반을 붕괴시킨다. 이는 영국의 공적연금을 대신하는 사적연금의 급격한 확대과정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점이다. 게다가 사연금은 가입과 탈퇴가 반복되면 가입자에게 운영수수료 부담을 높인다. 실제로 불안정 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보험료를 꼬박꼬박 부담하는 것이 어려워 사연금 가입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한 연금액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통상적인 경우에도 영국과 미국의 개인연금 운영비는 보험료의 약 35%에 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금을 민영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금액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그야말로 '최소한'이다. 칠레에서는 민간연금운용회사의 투자수익이 너무 낮거나 보험회사가 망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최저연금보증제도를 정부부담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년 이상 가입한 노인들에게만, 대체로 평균임금의 12%에서 20%사이를 지급하는 것으로서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노동자 내 계층 분리의 심화와 전반적 소득분배의 악화는 필연적인 효과이다.
연금제도 개혁,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에 맞선 대응방향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 사적연금의 확대는 한편으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방책으로 작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부문의 축소, 자본 영역의 확충을 낳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책입안자들이 선전하듯 사적 연금의 확대는 기금의 안정성과 거의 관련이 없고, 실제 비용과 위험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의 책임, 소유, 그리고 선택의 원리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 민영화의 실질적인 피해는 여성들,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연금제도의 원래 취지인 소득재분배 문제,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노후보장 달성이란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연금제도 민영화-사적 연금의 확대를 막아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둘째, 연기금의 투자를 위한 적립을 반대해야 한다. 적립형 사적 연금제도의 도입 및 전환을 통한 재정부담의 축소, 자본시장의 발달, '더 빠른 경제성장', 그리고 주식 투자 수익을 통한 '노후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연금 개혁의 목표는 실제 객관성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며, 적립재정방식은 연기금의 금융자본화를 위한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 혹자들은 재정을 적립해서 사회적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화·세계화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저축으로 형성된 거대한 자본의 집합은 사회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게임규칙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게임규칙을 따라 움직인다.시장은 그들의 안마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한 금융자본의 집합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연금제의 도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이 말은 현재의 논의지형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노후안정 저축기금'으로서 연금제도의 본래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도의 도입을 실천적으로 저지시켜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현재 기업연금 도입에 대한 논쟁 지형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의 특징상 적립재정방식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확정기여형이냐 확정급여형이냐'에 한정된 선택을 거부해야 한다. 강요된 선택 이외에도 '보험'방식을 버린다거나 부과방식을 전제하는 새로운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민중들이 연기금의 금융화·민영화에 반대하여 공동으로 싸우지 않는 한 현실적인 정책선택을 지배하는 쟁점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넷째, 연기금의 시장자유화 조치를 반대해야 한다. 연금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 대표적으로 공적연금의 주식투자비율 확대, 투자대상 금융상품에 대한 자유화, 해외투자 액수의 증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연금을 전문펀드에 용역하청의 형태로 위탁하는 것 등 연기금의 금융자본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조치들, 이외에도 연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에게 자산운용의 자유를 부여하는 보험업법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자산운용법 등의 개정과 제정을 반대해야 한다. PSSP
그림 1 (nasdaq 이란 간판앞에 서있는 사람들)
금융자본이 전후의 '노동계급-산업자본-국가'의 우위와 공적 통제에서 벗어나 헤게모니를 확고하게 복원한 것으로 묘사되는 현 국면에서 부각되는 정치적 주체는 역시 거대 금융자본이다. 연금제도 등 복지제도에 대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역할은 산업자본에 비해 조명을 받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용'이란 차원에서 산업자본이 복지제도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는 만큼이나 금융자본 또한 '시장'창출면에서 국가복지체계 민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더욱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림 2(노인들이 일렬로 앉아있는 모습)
경제개발기구(OECD)를 필두로 각국 정부와 초민족적 자본은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고용·임금·연금·보험 정책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전망에 금융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결합시켜왔다.
그림 3 (ibrd- 세계은행 사진)
연금개혁은 비단 선진국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 등을 망라하는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에 세계은행은 강제적립부분 도입을 강조하는 다층체계개혁을 전세계적인 벤치마크로 제시해왔으며, 이러한 입장은 1990년대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남미와 동유럽 국가들의 공적 연금개혁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