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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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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병원 노동조합투쟁,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박주영 | 기자,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2002년 하반기, 보건의료노조는 수많은 중소지부의 정상화 공동대책위를 구성해야 했다. 지금도 병원정상화 공동대책위는 서울의 방지거병원에서, 목포의 카톨릭병원에서, 진주의 늘빛정신병원에서 나날이 투쟁의 결의를 다져나가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병원의 구조조정은 결국 노동조합의 투쟁에 부딪혀 병원폐업과 고의부도, 자본철수로 이어지는 이들 중소병원노동조합의 상황은 그 자체로 딜레마에 빠져있다. 2002년 1월 1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병원활성화대책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중소병원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각종 구조조정에 맞서 끈질기도록 단결된 조합원의 힘과 연대의식 속에서 자신의 투쟁을 사수해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수세적으로 변해가는 병원 자본과의 역관계, 이젠 일상화 된 폭력적인 노조 탄압, 고립된 채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개별사업장의 현안사업, 훗날을 알 수 없는 병원정상화, 아무도 책임져주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생계….
이 글에서는 병원노동조합, 특히 중소병원 노동조합의 투쟁이 현재의 수세적인 투쟁국면을 벗어나 한 걸음 전진하기 위해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를 고민할 것이다. 이에 대한 많은 비판과 논쟁이 중소병원 노동조합 투쟁의 돌파구를 열어갈 작은 단초가 되길 바란다.

사방에 구조조정, 그리고 자본철수!

병원자본의 구조조정은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병원노동자의 노동과 생존조건을 구성하는 모든 부문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임금부문에서는 고전적 형태인 임금체불 및 삭감에서부터 성과급, 인센티브, 연봉제 도입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어디나 그렇듯이, 특히 성과급, 인센티브, 연봉제 등은 노동자 분할을 통해 노동조합의 조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도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약화되면 다시 병원자본의 구조조정이 강화되고 결과적으로 노동조건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을 그리게 된다.
둘째, 노동조건 부문에서는 결원 인원에 대한 미충원과 이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부서통페합, 일방적 인사이동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병원의 저임금과 노동강도 강화는 높은 이직률로 원인이고, 또한 병원 노동자의 높은 이직률은 노동조합의 조직력 축적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병원업무의 체계성을 떨어뜨리면서 노동강도 강화를 야기한다.
셋째, 고용조건 부문에서는 외부용역, 계약직 확대로 고용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다. 특히 병원 기능 축소(병동 폐쇄, 진료과 축소 등), 기능 및 구조전환(개방병원, 요양병원, 전문병원, 시설임대 등. 이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은 병원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환자가 몰리는 시간에만 근무하는 파트타임 채용, 근무 주기와 시간을 병원 사정에 따라 맘대로 조정하는 사례,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까지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 활동의 근간에 대한 위협도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비조합원과 조합원을 차별하면서 조합 탈퇴를 유도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방식이고, '노동조합 미가입'을 직원 채용 조건으로 내걸기도 하며 노조 와해를 위한 폭력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병원자본의 의도대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본 철수' 위협을 서슴치 않으며, 실제로 폐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심각한 경영 위기'라는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은 병원 자본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타 산업분야와 비교했을 때, 중소병원의 노동자들이 '자본철수'에 대한 더 큰 위협감을 느끼며 이에 상당히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여온 병원자본의 행태를 볼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멀리는 1999년 군산개정병원의 휴업단행, 2000년 동광주병원의 폐업부터 시작하여 2002년 1월 1일 새양산병원 폐업선언(이후 재개업), 최근에는 파업을 진행해온 목포카톨릭병원에 이르기까지 병원자본의 '철수위협'은 그 자체로 노동조합의 발목을 묶어버리는 주된 요인이었다.
'노조 있는 병원을 운영하기 싫다'는 이유로 병원을 폐업했던 새양산병원이나 '외부 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으면서 불법쟁의행위'를 한 노조에게 병원폐업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동광주병원의 사례는 중소병원에선 특이할만한 일은 아니다. 결국 중소병원 노동조합은 적절한 수준에서 임금/고용/노동조건의 악화를 받아들이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으며, 내년에도 '경영위기'와 '자본 철수'를 앞세워 임금/고용/노동조건을 개악하려고 하면 불가피하게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조건은 계속 악화되어 간다. 중소병원노동조합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병원자본의 논리와 협박을 탈피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중소병원 노동조합이 직면한 질곡은 비단 병원사업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양보와 타협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다른 모든 산업 부문에서 유사하게 벌어지지 않았던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30대 그룹 중 16개가 퇴출되거나 구조조정을 겪었고, 은행부문만 보아도 퇴출, 청산 등을 통해 전체 직원의 3분의 1인 10만 명을 감원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재편은 노동운동의 근간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경제발전 논리가 세련된 형태로 다시금 지배 논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단일한 대응전선을 형성해내지 못한 역사적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본의 강력한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운동은 고용을 위해서라면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임금삭감, 희망퇴직 등 노동의 유연화를 일정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노동조합 경영참가론, 기업별 부도와 실업의 문제보다는 산별 차원의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력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의 논리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국가적 경영위기를 등에 업고 전사회적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던 지난 5년 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이러한 담론들 자체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는 자명하다. 이제는 오히려 병원경영의 위기를 들이대며 협박하는 병원자본에게, 그들 자본의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그들의 위기를 돌파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병원노동자 스스로의 정치적 각성이 필요할 뿐이다.

병원의 경영위기론, 본질은 무엇인가?

정부가 요약하는 현재 우리나라 병원의 경영상황은 다음과 같다(보건복지부, 병원활성화 대책(2002. 1.)).
{{{{□ 의료환경의 변화와 병원의 위기
○ 의약분업 실시이후 병원의 외래진료는 의원에 비해, 입원진료는 종합전문요양기관에 비하여 가격과 기술력에서 각각 경쟁력이 취약
○ 전년 대비 2001년 상반기 종합병원의 외래환자수가 10% 이상 감소하여 병원수입이 감소되는 결과 초래
□ 의료자원의 과잉공급속에 병원의 빈곤
○ 인구 10만명당 병상수가 514개에 이르러 WHO 권장치인 300병상을 크게 상회, 병원의 병상가동율(70%내외)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 내포
○ 의사수는 1만명당 15.5인으로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만 개업열풍에 의해 병원의 전문의 구인난은 심각한 수준
※ '99년말 대비 2001.11월 현재 의원수 : 18,507→21,277개소
□ 수입감소와 지출증가 구조속의 경영난 심화
○ 전속의사의 높은 이직과 취약한 경쟁력에 의한 환자수 감소로 병원의 진료수입이 감소한 반면
○ 의사·간호사 구인난은 인건비 지출증가요인으로 작용
※ 모병원의 매년9월 급여중 세금등을 공제한 순지급 의사급여변화추이 : 386만('99) → 475만('00) → 511만원('01)
☞ 최근 병원의 폐업율이 6.5%에 이르면서 병원의 경영난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
}}
}}
병원 경영자들의 접근법이 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위기의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쟁력의 취약이다. 이에 따라 해결의 기본방향이 병원의 경쟁력의 강화로 설정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무릇 경쟁이란 경쟁의 당사자와 경쟁이 이루어지는 조건, 장(場)을 필요로 한다. 즉, 당사자로서 병원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대형병원과 의원, 그리고 경쟁의 조건을 형성하는 사적 의료체계가 병원의 현재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병원의 위기가 전체 의료의 체계(system)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병원 경영자들이 대형병원 및 의원과의 무한 경쟁에서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경영상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 이상의 대안이 나올 수 없다.
현재 병원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사적, 자유방임적 의료 시장 내에서 병원의 지위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1970-80년대 개인 의원에서 출발하여 자본 축적의 일정 단계에 이르러 의원의 규모를 확장한 것이다. 1985년까지 이 병원들은 총 병원수의 2/3를 점유하였고 총 병원병상의 40%를 점유하였다. 그 경영자들이 비교적 '성공한' 개업의였을지라도 의료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던 또다른 한 축,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한 대형병원과 경쟁에서 그들은 서서히 뒤질 수밖에 없었다{{) 조병희, 한국의사의 위기와 생존전략(명경, 1994) p.153.
}}. 1980년대 병원 경영자들의 요구와 2000년 병원경영자들의 요구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적 시장 내에서 소자본의 필연적 운명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약분업이나 최근의 의사 구인난, 환자 수 감소 등으로 병원의 위기를 진단하는 것에 대해 피상적인 진단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위기의 현상일 뿐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병원의 성장의 역사와 사적 의료체계에 숨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실시 이후 병원의 외래진료는 의원에 비해, 입원진료는 종합전문요양기관에 비하여 가격과 기술력에서 각각 경쟁력이 취약"해졌다고 하면서 사실상 병원 경영난의 원인을 의약분업으로 들고 있다. 이렇게 피상적인 진단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병원 경영자들이 정부 의료정책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병원 자본 입장에서는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형태로의 전환이 절박한 문제가 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 자본은 '경영위기론'을 명분으로 병원 자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현재 병원의 구조조정은 단순한 수가 인상과 표피적인 병원활성화 대책으로 대체될 수 없는, 전체 병원자본에 의해 추진되는 병원산업의 구조조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경영위기에 빠진 일부 병원은 존재한다. 그러나 전체 병원자본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이런 일부 병원의 회생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병원의 존재는 병원자본이 '경영위기론'을 증폭시키며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제도적·정책적 조건을 만드는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일부의 위기를 전체의 위기로 증폭시키며 정부를 압박해 구체적인 구조조정 실행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한편, 병원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에 순응하며 따라오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익 창출 토대를 만들기 위한 병원자본의 이 같은 움직임은 보건의료체계의 비효율성과 무정부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병원자본의 '경영위기론'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방향으로의 기능 개편을 외면한 채, 수익 창출에 유리한 방향으로 병원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병원자본의 속내를 가리는 보호막으로 활용되고 있다. 병원자본은 개별 사업장의 구조조정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힘들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예컨대 개방병원제, 병상 임대, 요양병상 도입, 전문병원화와 요양병원화 등은 개별 병원의 기능과 역할 전환에 필요한 조치로서 이러한 제도의 요구는 자본 스스로 자발적인 기능 개편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병원노동운동은 병원자본의 흐름을 단지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 확보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에만 머무르게 되면, 오히려 병원노동운동이 전망으로 삼아야 할 병원의 역할에 대한 논투와 실천투쟁의 계기를 놓칠 뿐만 아니라 병원자본의 공세에 대해 수세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병원 구조조정의 양상

병원자본이 내놓은 나름의 구조조정 방안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1)병원 기능 특화 : 전문병원, 요양병원
병원이 점차적인 수익중심의 구조로 재편되면서, 오히려 종합적 진료기능을 담보해야 할 종합병원은 특정한 진료과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문병원은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병원 급 이상의 시설·장비 및 인력 등을 갖추고 결핵, 나병, 정신질환, 심장질환, 재활치료,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전염성질환과 만성질환 중 1개의 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료기관으로서 해당 특정질환의 진료실적이 총 진료실적의 80% 이상(심장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심장수술의 실적이 연간 300건 이상)인 병원"을 말한다.
그런데, 전국 300병상 미만의 73개 병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1), 자신의 병원을 전문병원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35%, 일반병원 중에서 전문병원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는 비율은 81%로 나타났다. 즉, 종합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진다 싶어지면, 가장 먼저 자본측에서는 특정한 전문화영역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문화 영역은 특정 질환보다는 특정 진료과(산부인과, 정형외과, 안과, 내과 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중소도시 이상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진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진료과의 전문화에 따른 의료비 상승, 영리 위주의 특정 전문과목 난립,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요양병원 또한 마찬가지로 중소병원 자본의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전환하기 쉬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제공하는 장기요양서비스는 만성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저하된 이들에게 신체, 정신, 사회, 심리적 기능을 유지 증진시키기 위해서 제공되는 진단, 예방, 치료, 재활, 지지서비스를 의미한다.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양병원은 "요양환자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주로 장기요양을 요하는 입원환자에 대하여 의료를 행할 목적으로 개설하는 의료기관"을 말한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장기요양서비스는 유효 수요로 드러나지 못한 채 대부분 잠재적 수요로만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만성퇴행성질환과 노인 인구의 급증, 가족 구조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장기요양병상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까지는 정부에서도 요양서비스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폭발적인 수요 발생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적극적인 요양서비스의 제도화 추진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보건복지부는 <2002년 병상 기능전환사업 계획>을 제출하면서 중소병원이 대거 요양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일정비율의 병상을 요양병동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2002년 예산 100억 원을 확보하면서 대거 중소병원의 신청과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중소병원 자본의 대부분이 요양병원으로 전환하면서, 병원노동자의 약 50%를 감축할 수 있는 인건비 삭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당에 이런 계획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오히려 우리나라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보다는 전체적으로 종합적 진료기능을 담당했던 중소병원이 축소될 뿐만 아니라, 중소병원의 구조조정 자체를 더욱 추동하고 이를 강제하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2) 진료기능의 외주: 개방병원, 시설임대

개방병원 "병원 외부에서 독자적으로 개원한 의사가 외래환자의 진료를 수행하면서 입원환자의 진료와 수술, 고가의료장비의 이용 등과 같은 복잡한 처치 및 수술, 검사 등이 필요할 경우 자신과 계약을 맺고 있는 병원의 인력, 장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말한다. 즉, 쉽게 말하면 자신이 일하게 될 공간과 장비를 제공할 병원과 계약을 맺고, 그로 인한 수익은 병원과 계약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다. 시설임대는 이와 다르게, 병원 내 별도의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그 안에서 독자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상 개방병원제 도입의 실질적인 이유는 "환자가 없어서 병동을 비워두느니, 그래도 의사와 계약해서 병동을 돌리는 게 낫지 않냐" "의사 자체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개방병원이라도 도입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도입되는 개방병원은 '병원의 공백 진료과를 메우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한 이런 식으로 의사와 병원간의 계약관계로 인해 수익을 분배하다 보니, 당연히도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수익이 그만큼 커야만, 의사와 병원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수익자체도 커지기 때문이다.
2001년에 시작된 개방병원제 시범사업 초기에는 건당 총진료비가 일반병원의 진료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방의 진료가 본격화되면서 각종 검사와 처치의 남발, 비급여 진료의 증가 등으로 인해 진료비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진료비 증가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진료의 양과 진료비의 수준이 자신의 수익과 직결되는 개방의는 본질적으로 과잉 진료의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네트워크와 체인병원 현황

우리나라의 병원간 협력체계는 실제로는 단지 병원의 이미지 제고("○○대학병원의 협력병원이다")로 활용되는 측면이 컸다. 더군다나 최근에 주목받는 체인병원 혹은 네트워크병원은 기존의 병원간 협력체계와는 다른 양상, 즉 기존의 협력체계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결합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의료기관의 체인는 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내 첫 의료 체인인 O치과 네트워크는 현재 21개의 가맹 의원이 있는데, 체인에 가입하려면 3천만∼5천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매달 매출액의 1%안팎을 회비로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과에서 시작된 공동브랜드 도입과 전략제휴 바람은 피부과, 성형외과를 거쳐 안과로 번지고 있으며, 앞으로 내과, 정형외과 등 다른 진료과목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체인병원은 브랜드 사용으로 인한 홍보시너지 효과로 실제로 환자가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체인 가맹점이 되면 전문 홍보와 마케팅, 전문경영지원센터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O치과의 경우 체인본부로부터 직원 서비스교육과 경영컨설팅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으며, M치과는 가맹점 관리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따로 두고 있다.
}}. 또한 의약품과 장비 구입, 광고비 절약 등으로 인해 20%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체인병원이 야기하는 문제점 역시 만만치 않다. 환자 집중으로 인해 대기시간이 늘어나고, 진료시간은 줄어드는 대학병원의 진료양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브랜드 가맹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의료비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피부과 체인의 경우 신규 가맹점은 매달 매출액의 최고 10%까지 본부에 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체인화는 의원의 대형화와 개원비용의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체인병원의 이윤 중심적인 진료행태이다. 체인화가 치과, 피부과, 안과 등 비보험 진료가 많은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체인화의 목적은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데 있다. 가입 목적을 이윤 창출을 위한 비보험 첨단 의료서비스 도입, 이윤 창출 기법 도입 등을 내세우는 이들 체인병원은, 결과적으로 보건의료의 상업성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4) 최신 경영기법과 노무관리기법의 도입

과거에는 주로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경영·개업 컨설팅이 최근에는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에 이르기까지 확산되면서 이미 일반적인 성향이 되고 있다. 유수한 외국계 컨설팅회사의 경영진단을 받은 대형병원이 컨설팅 결과를 구조조정의 객관적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영컨설팅은 이와 함께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왜곡된 구조를 악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 혹은 사회적인 기획 기능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민간 컨설팅 회사에 의해 공공성과 무관한 수익성 중심의 기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개별 병원의 수익성 중심의 기획은 개별 병원 차원에서는 수익 창출의 합리성을 제고시킬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전체 보건의료체계 측면에서 볼 때에는 수익성 중심의 경쟁 구도를 심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의료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의료자본에 맞서야 하는 중소병원의 경우에는 더욱 세련된 방식의 경영방식의 도입, 노무관리기법을 내세워야만 할 것이고 노동자에 대한 당근과 채찍은 노동자의 분열과 계층화를 조장하게 될 것임은 뻔하다. 규모면에서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적 방식을 일삼았던 중소병원 자본은 지금처럼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노동탄압보다는 더욱 합리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관리, 통제를 강화해나갈 것이다.

보건의료체계의 상업화 저지, 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병원자본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경쟁과 임박한 의료시장개방, 민간의료보험 확대, 노인 의료 수요의 증대 등과 같은 미래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돈벌이 중심으로의 기능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공급체계는 민간부문의 압도적 우위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상업적 보건의료체계가 전면화되면서 보건의료의 경쟁적 구도가 한층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쟁의 심화가 지속되는 한,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한 병원자본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병원노동자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개별 중소병원의 투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점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향후 병원노동운동이 처한 조건과 위치 자체를 바꾸는 투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투쟁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현안 중심의 반복적인 투쟁 양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한 병원노동운동의 전망 수립 방향은 두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이윤 동기를 약화시키고 비영리성을 강화시키는 투쟁이다. 비록 민간 소유일지라도 행위의 주요 동기가 '이윤 창출'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건강권 확대'가 되도록 하는 것으로, 이 투쟁은 보건의료체계를 구성하는 재원조달체계, 의료전달체계에서부터 좁게는 의료기관의 비영리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정책적 변화를 포괄한다.
다른 축은 공공의료체계를 양적, 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최소한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의료기관의 30% 이상이 되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대는 민간부문에 대한 견제 효과를 가지면서 영리추구적 진료행태를 일정하게 제어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며, 전체 국민을 위한 제반 프로그램의 시행과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적 속성 변화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할 것이다. 물론 공공의료기관의 양적 확대가 이 같은 효과를 가져오려면 공공의료기관의 질적 수준의 향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공공의료기관의 질적 수준으로는 민간부문에 대한 견제 효과를 가지기 힘들 뿐 아니라 더 이상의 양적 확대에 대한 설득력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적 수준이라 함은 단지 기술적 수준의 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의료기관이 가져야 할 '질적 수준'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의 질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병원노동자들이 공공성 확보투쟁의 중심으로 서야

결국 이는 병원 노동운동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투쟁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별 병원의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병원노동자의 노동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일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의 건강권에 대한 적극적 옹호는 단지 병원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 이를테면 생색내기용으로 단협 요구안 말미에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내용을 끼워 넣는 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실질적으로 병원노동자의 노동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일치시키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을 막론하고, 병원의 '이윤 발생'과 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이 구조적으로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조가 유지된다면 병원 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을 둘러싼 현실 투쟁은 지금 수준에서 한치도 나아질 수 없다. '이윤 발생'에 관련된 병원 측의 의향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은 휘둘리게 되며, 병원 노동운동의 대응 양상과 정도도 그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이런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사실이든 허구이든 "경영이 어렵다"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병원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본 철수'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투쟁을 접거나 적절한 수준에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즉 현재 상황에서는 '구조조정 수용'은 기본적 전제에 해당한다. 단지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병원이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한다고 해서 임금/고용/노동조건이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병원의 이윤 증대는 병원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구조의 희생자는 병원 노동자만이 아니다. 해당 병원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 역시 희생자에 포함된다.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모두 '수익성'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의료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정말 중요한 건강증진, 질병예방, 지역사회보건사업 등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그 대신 돈이 되는 치료 중심의 고가의료서비스, 비보험 의료서비스가 통제불능의 상태로 환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은 전적으로 환자 개인이 짊어지고 있다. 즉 이윤 증대에 따른 경영상태 개선은 지역 주민의 부담 증대와 질병 발생 이전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결과이다. 이처럼 병원의 '이윤 발생'과 병원 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이 연동된 현재의 구조에서는 병원 노동자의 이해관계(임금/고용/노동조건의 개선)와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 이용)가 일치하지 않는다.
새삼 강조하지만, 민간병원 노동운동은 '병원 경영상태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영상태의 개선이 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현행과 같은 상업적 보건의료체계에서 병원 경영상태의 개선은 지역 주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병원노동운동이 직면한 현재의 질곡은 보건의료체계의 무한 경쟁적 구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망이 수립되고, 이를 위한 실질적 운동이 전개될 때 극복 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경쟁적 구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처방도 효과가 없으며, 현재의 상황을 단지 유보시키거나 악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무한 경쟁적 구도를 약화시키는 투쟁을 병원노동운동 전체의 과제로 받아 안아야 하며, 개별 병원의 투쟁도 이런 방향에 부합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방향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원노동운동은 개별 병원노동운동 차원에서는 차선의 선택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으로 귀결되며, 다시금 그 악영향이 다시금 개별 병원노동운동으로 환원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뿐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전망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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