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 대선대응, 무엇을 남길 것인가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국빈민연합, 한총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등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공동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정, 11월 22일 "2002년 대선 승리를 위한 범진보진영 공동선거운동본부"(이하 '공선본')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에 돌입하였다. 이미 수 차례의 선거를 통해 명실상부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은 든든한 외곽지원마저 확보한 셈이다. 이로써 일찌감치 독자 선거 대응 방침을 천명한 사회당 및 기타 '좌파' 진영, 그리고 여전히 정치방침을 확정하지 못한 전농을 제외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역대 민중운동 진영의 대통령 선거 대응 중 가장 폭넓은 세력을 결집시켜 선거운동에 나서는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지방선거를 통해 제3당으로 부상한 탓에, 언론 역시 민주노동당에 대해 예우를 생략하지 않고 있으며 이회창, 노무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TV 토론까지 확보하는 유리한 조건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인지도와 정책선호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실로 '마(魔)의 30만 표' 돌파는 물론 급기야 2004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한 원내 진출의 꿈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후보 단일화와 진보진영의 선거 대응
그러나 노무현으로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서 대선 지형은 급격히 재편되기 시작했다. 우선 '노풍'이 재점화되기 시작하면서 대결구도가 보수-개혁 양강 형태를 띠게 된 결과, 관망세력(부동층)이 분극하기 시작했고 정치 일반에 대해 무관심하던 대중들이 선거의 자장(磁場) 내로 유인되고 있다. 바닥을 치던 노무현의 지지도가 40%를 상회하면서 '3김(보스)-지역-금권' 정치에 환멸 하던 자유주의적 지향의 시민운동 진영이 부정부패 개혁-선거참여운동의 형태로 재결집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전조다. 386세대와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역시 한국사회의 재민주화를 주장하며 노무현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나섰고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한 향후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당초 '이회창 반대'라는 정치적 목표(?)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조직적 목표(?)를 사실상 분리해온 일부 운동 진영의 선거전술이 크게 동요한다는 점이다. 현 시기 대립의 핵심지점을 反통일-수구 세력의 집권 저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미 9월부터 노무현 지지를 선언한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를 필두로, 코포러티즘적 지향의 노동운동 진영 역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 전교조를 비롯한 연맹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많은 수의 조합원이 총연맹의 민주노동당 지지 방침에 대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계급적 이해관계나 정책적 선호도 측면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이유로 당장은 개혁세력을 차선책으로 선택한다는 현실 논리가 주되게 작동한 탓이다.
결국 개혁세력의 붕괴를 만회하기 위한 반동적 정계개편 놀음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라는 희대의 정치 쇼를 통해, 실패한 '제3의 길'의 망령이 노무현을 등에 업고 되살아난 꼴이다. 이로써 김대중의 실정과 이회창의 보수성을 동시에 타격 한다는 구상 하에 '상황의 지대'를 구축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시민운동 진영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고질적인 '신비판적지지론'과 '사표심리(死票心理)'에 다시 한번 발목을 잡히는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선거 전략의 문제점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재빨리 대책 마련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노동당이 2백만 표를 얻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10년 걸리고, 5백만 표를 얻으면 5년 걸린다"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표심리차단에 나섰다. 선거 전략 역시 유동층보다는 핵심 지지계층인 노동자·농민 등 대중조직과의 접촉부면 확장에 주력하는 한편, 부유세와 반미 기조 등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소간 수정되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선거운동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현직 노동운동 지도자 100명이 11월 28일 권영길 후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노동자 1만인 선언 운동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조합원들의 계급투표를 독려하고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 교육 및 당 정책을 중심으로 한 현장 순회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방식이 '신비판적지지론'이나 '사표심리'의 본질을 전진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는 노동자 집단이 이미 지난 수년 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운동 전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로 일관해왔다는 사실이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코포러티즘적 경향과 명확히 단절하지 못한 것이 개혁주의 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차선(차악)을 방조한 셈이다. 이를 타개할 구체적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 이상,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유혹은 향후 지속적으로 민주노동당 스스로의 행보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교육의 미비와 '계급의식'의 부재(즉 조합원의 낮은 정치의식)에서 찾는 탓에 선거 시기 정치활동은 대중 스스로 갈등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치학'이 아니라 일방적인 교양과 정책설명이 주가 되는 '교육학'으로 대체된다. 투쟁과 토론과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급투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대중의 수동적 경향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며 역으로 '조합원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논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노동자주의적' 의미 이상을 획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수동적·실리적 경향을 보이는 대중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생략되고 대중 스스로 계급적 단결을 지속할 수 있는 경로는 '의식화-조직화' 속으로 용해된다.
'정치세력화'라는 관념의 동요
11월 들어 진행된 노동자·농민 투쟁은 외형적으로는 유례 없이 대규모로 조직된 대중적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은 사실상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압박하여 실리를 획득하기 위한 청원형 투쟁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3대 악법 폐기'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만 하더라도 조직화의 주된 매개는 임금보전 논리였으며 그 투쟁 형태 역시 법안 상정에 대비한 대 국회 압박 투쟁이었다. 전농의 쌀 수입-WTO개방 반대 상경 투쟁 역시 10만 대오를 결집시켰다는 조직적 성과는 있지만, 실제 양상은 대선 후보들에게 분노한 '농심(農心)을 위로할' 정책적 대안을 촉구한 셈이다. 모두 민중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특히 대중투쟁만으로 승리의 전망이 어둡다는 인식 하에 지배 정치권의 정책전환을 촉구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더는 지배 정치권에 기대하지 않겠다'는 대중 스스로의 인식이 '경제적' 이해를 대변할 '정치적' 조직으로서 '(의회)당'이 필요하다는 관념으로 미끄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규모 농민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수렴시킬 방도를 찾지 못한 농민운동 진영에서 특히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국연합,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등 민족민주 운동 진영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대선 실천단 615의 힘"(615실천단)을 구성하여 현재의 진보정당이 농민의 이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선 이후 농민을 포함, 본격적인 '민족민주정당'으로의 확대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차원은 다르지만 한국노총 역시 이미 독자 정당(민주사회당)을 창당, 이번 대선에 후보를 출마하지는 않지만 향후 개혁진보세력의 통합과 '진보적 대중정치의 실현'에 복무할 것을 선언한 바 있으니, 바야흐로 '정치세력화'의 전성시대라 칭할만하다.
한편 '정치세력화'의 선발주자로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기간의 성과를 집약하여 2004년 원내에 진출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주대환씨는 후보단일화가 당장의 득표율에는 도움이 안될지언정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진보정당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보수 양강 구도를 갈라 치면서 "권영길 후보가 제3의 후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를 환영한다. 그의 말대로 "16대 대선을 경과하면서 (……) 3김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퇴조하면서, 미국식 보수 양당 구도"가 성립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보수 양당의 카운터 파트를 전담하는 '2+1' 구도의 성립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 마디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관계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라 동반상승 효과를 불러오는 '윈윈(win & win) 게임'이라는 식이다.
전진을 위한 모색: 하나의 사례로부터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당·사회당·사회민주당·민중통일행동운동·독립민중행동 등 6당파로 구성된 민중연합(UP)의 아옌데 후보가 미국 및 국내 독점자본, 대지주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던 국민당 및 중도 좌파의 기독교민주당을 누르고 마침내 민중연합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의 친미·반동적 공세에 대항하여 장기간에 걸쳐 민중운동 세력이 공동의 투쟁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미 1956년부터 칠레 좌파 정당들은 민중행동전선을 꾸린 상황이었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농민·노동자·학생의 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1969년에 민중연합의 기본강령이 채택되어 공통의 행동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칠레의 민중연합은 단순한 선거사령부에 머물지 않고 민중권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대중의 요구획득투쟁의 제1선에 위치한 정치지도기관으로서 민중통일위원회를 정치적 기초로 보유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례다. 여기에 8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전국노동자통일노조, 농민전국연합, 대학자치연합의 결집이 그 주된 동력이 되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좌파 정당들 간에 시도된 좌익연합 전술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민중연합, 즉 대중적 기초에 충실하지 못하고 "상부에서" 만들어지는 정당들 간의 계약정책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 두 나라의 사례는 노동자 민중 내부의 차이와 분할을 넘어 단결과 연대를 지속시킬 수 있는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에 기초하여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이행'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의 구체적 양상(노동자와 농민(혹은 도시와 농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고유한 분할, 성적 분할)과 모순의 구체적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올바른 대중노선에 입각하여 다양한 대중운동들 간의 조정과 교통을 가능케 하는 운동 형태와 조직에 대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
* *
유례 없이 심원한 위기에 봉착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장된 장기-구조적 모순은 이행의 '객관성'과 동시에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물론 '위기'가 보다 나은 사회로의 이행을 자동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행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실현 가능할 뿐이다. 지난 5년 간 DJ-IMF 체제 하에서 피눈물을 흘려야했던 민중운동 진영으로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제 이행의 주체적 조건에 관한 고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선 투쟁에서도 득표율보다 오히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현존하는 운동의 재개를 위한 출발점을 명확히 하고 대중운동 및 전선 재편의 실마리를 찾는 작업이다. 지배 정치권의 립서비스에 미혹되거나 소기의 성과에 집착하여 실리적으로 경도된 '정치세력화'에 집착하기보다는 민중운동의 표상(조직과 이데올로기)을 새로이 정립, 확장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대선을 경과하며 보다 반동적인 형태로 편재, 새로 탄생하게될 정권에 맞서 전선재편을 향한 구체적인 행보에 돌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대선을 경과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다짐해야 할 약속이다. PSSP
후보 단일화와 진보진영의 선거 대응
그러나 노무현으로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서 대선 지형은 급격히 재편되기 시작했다. 우선 '노풍'이 재점화되기 시작하면서 대결구도가 보수-개혁 양강 형태를 띠게 된 결과, 관망세력(부동층)이 분극하기 시작했고 정치 일반에 대해 무관심하던 대중들이 선거의 자장(磁場) 내로 유인되고 있다. 바닥을 치던 노무현의 지지도가 40%를 상회하면서 '3김(보스)-지역-금권' 정치에 환멸 하던 자유주의적 지향의 시민운동 진영이 부정부패 개혁-선거참여운동의 형태로 재결집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전조다. 386세대와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역시 한국사회의 재민주화를 주장하며 노무현 지지를 공식 선언하고 나섰고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한 향후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당초 '이회창 반대'라는 정치적 목표(?)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조직적 목표(?)를 사실상 분리해온 일부 운동 진영의 선거전술이 크게 동요한다는 점이다. 현 시기 대립의 핵심지점을 反통일-수구 세력의 집권 저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미 9월부터 노무현 지지를 선언한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를 필두로, 코포러티즘적 지향의 노동운동 진영 역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 전교조를 비롯한 연맹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많은 수의 조합원이 총연맹의 민주노동당 지지 방침에 대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계급적 이해관계나 정책적 선호도 측면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이유로 당장은 개혁세력을 차선책으로 선택한다는 현실 논리가 주되게 작동한 탓이다.
결국 개혁세력의 붕괴를 만회하기 위한 반동적 정계개편 놀음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라는 희대의 정치 쇼를 통해, 실패한 '제3의 길'의 망령이 노무현을 등에 업고 되살아난 꼴이다. 이로써 김대중의 실정과 이회창의 보수성을 동시에 타격 한다는 구상 하에 '상황의 지대'를 구축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시민운동 진영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고질적인 '신비판적지지론'과 '사표심리(死票心理)'에 다시 한번 발목을 잡히는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선거 전략의 문제점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재빨리 대책 마련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노동당이 2백만 표를 얻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10년 걸리고, 5백만 표를 얻으면 5년 걸린다"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표심리차단에 나섰다. 선거 전략 역시 유동층보다는 핵심 지지계층인 노동자·농민 등 대중조직과의 접촉부면 확장에 주력하는 한편, 부유세와 반미 기조 등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소간 수정되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선거운동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현직 노동운동 지도자 100명이 11월 28일 권영길 후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노동자 1만인 선언 운동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조합원들의 계급투표를 독려하고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조합원 교육 및 당 정책을 중심으로 한 현장 순회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방식이 '신비판적지지론'이나 '사표심리'의 본질을 전진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는 노동자 집단이 이미 지난 수년 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운동 전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하고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로 일관해왔다는 사실이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코포러티즘적 경향과 명확히 단절하지 못한 것이 개혁주의 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차선(차악)을 방조한 셈이다. 이를 타개할 구체적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 이상,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유혹은 향후 지속적으로 민주노동당 스스로의 행보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교육의 미비와 '계급의식'의 부재(즉 조합원의 낮은 정치의식)에서 찾는 탓에 선거 시기 정치활동은 대중 스스로 갈등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치학'이 아니라 일방적인 교양과 정책설명이 주가 되는 '교육학'으로 대체된다. 투쟁과 토론과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급투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대중의 수동적 경향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며 역으로 '조합원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논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노동자주의적' 의미 이상을 획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 수동적·실리적 경향을 보이는 대중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생략되고 대중 스스로 계급적 단결을 지속할 수 있는 경로는 '의식화-조직화' 속으로 용해된다.
'정치세력화'라는 관념의 동요
11월 들어 진행된 노동자·농민 투쟁은 외형적으로는 유례 없이 대규모로 조직된 대중적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은 사실상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압박하여 실리를 획득하기 위한 청원형 투쟁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3대 악법 폐기'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만 하더라도 조직화의 주된 매개는 임금보전 논리였으며 그 투쟁 형태 역시 법안 상정에 대비한 대 국회 압박 투쟁이었다. 전농의 쌀 수입-WTO개방 반대 상경 투쟁 역시 10만 대오를 결집시켰다는 조직적 성과는 있지만, 실제 양상은 대선 후보들에게 분노한 '농심(農心)을 위로할' 정책적 대안을 촉구한 셈이다. 모두 민중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세력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특히 대중투쟁만으로 승리의 전망이 어둡다는 인식 하에 지배 정치권의 정책전환을 촉구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더는 지배 정치권에 기대하지 않겠다'는 대중 스스로의 인식이 '경제적' 이해를 대변할 '정치적' 조직으로서 '(의회)당'이 필요하다는 관념으로 미끄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규모 농민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수렴시킬 방도를 찾지 못한 농민운동 진영에서 특히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국연합,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등 민족민주 운동 진영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대선 실천단 615의 힘"(615실천단)을 구성하여 현재의 진보정당이 농민의 이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선 이후 농민을 포함, 본격적인 '민족민주정당'으로의 확대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차원은 다르지만 한국노총 역시 이미 독자 정당(민주사회당)을 창당, 이번 대선에 후보를 출마하지는 않지만 향후 개혁진보세력의 통합과 '진보적 대중정치의 실현'에 복무할 것을 선언한 바 있으니, 바야흐로 '정치세력화'의 전성시대라 칭할만하다.
한편 '정치세력화'의 선발주자로서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기간의 성과를 집약하여 2004년 원내에 진출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주대환씨는 후보단일화가 당장의 득표율에는 도움이 안될지언정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진보정당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보수 양강 구도를 갈라 치면서 "권영길 후보가 제3의 후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를 환영한다. 그의 말대로 "16대 대선을 경과하면서 (……) 3김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퇴조하면서, 미국식 보수 양당 구도"가 성립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보수 양당의 카운터 파트를 전담하는 '2+1' 구도의 성립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 마디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관계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라 동반상승 효과를 불러오는 '윈윈(win & win) 게임'이라는 식이다.
전진을 위한 모색: 하나의 사례로부터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당·사회당·사회민주당·민중통일행동운동·독립민중행동 등 6당파로 구성된 민중연합(UP)의 아옌데 후보가 미국 및 국내 독점자본, 대지주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던 국민당 및 중도 좌파의 기독교민주당을 누르고 마침내 민중연합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의 친미·반동적 공세에 대항하여 장기간에 걸쳐 민중운동 세력이 공동의 투쟁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미 1956년부터 칠레 좌파 정당들은 민중행동전선을 꾸린 상황이었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농민·노동자·학생의 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1969년에 민중연합의 기본강령이 채택되어 공통의 행동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칠레의 민중연합은 단순한 선거사령부에 머물지 않고 민중권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대중의 요구획득투쟁의 제1선에 위치한 정치지도기관으로서 민중통일위원회를 정치적 기초로 보유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례다. 여기에 8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전국노동자통일노조, 농민전국연합, 대학자치연합의 결집이 그 주된 동력이 되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좌파 정당들 간에 시도된 좌익연합 전술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민중연합, 즉 대중적 기초에 충실하지 못하고 "상부에서" 만들어지는 정당들 간의 계약정책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 두 나라의 사례는 노동자 민중 내부의 차이와 분할을 넘어 단결과 연대를 지속시킬 수 있는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에 기초하여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이행'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의 구체적 양상(노동자와 농민(혹은 도시와 농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고유한 분할, 성적 분할)과 모순의 구체적 원인에 대해 파악하고, 올바른 대중노선에 입각하여 다양한 대중운동들 간의 조정과 교통을 가능케 하는 운동 형태와 조직에 대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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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이 심원한 위기에 봉착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장된 장기-구조적 모순은 이행의 '객관성'과 동시에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물론 '위기'가 보다 나은 사회로의 이행을 자동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행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실현 가능할 뿐이다. 지난 5년 간 DJ-IMF 체제 하에서 피눈물을 흘려야했던 민중운동 진영으로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맥락에서 이제 이행의 주체적 조건에 관한 고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선 투쟁에서도 득표율보다 오히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현존하는 운동의 재개를 위한 출발점을 명확히 하고 대중운동 및 전선 재편의 실마리를 찾는 작업이다. 지배 정치권의 립서비스에 미혹되거나 소기의 성과에 집착하여 실리적으로 경도된 '정치세력화'에 집착하기보다는 민중운동의 표상(조직과 이데올로기)을 새로이 정립, 확장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대선을 경과하며 보다 반동적인 형태로 편재, 새로 탄생하게될 정권에 맞서 전선재편을 향한 구체적인 행보에 돌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대선을 경과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다짐해야 할 약속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