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에너지를 생산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에 부쳐
정부의 오래된 숙원사업 - 핵폐기장 건설
86∼89년 영덕·영월·울진, 90년 안면도, 91∼92년 청하, 93∼94년 장안·울진, 94∼95년 굴업도... 지난 십여년간 정부는 끈질기게 핵폐기장 건설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번번히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핵운동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월 4일 핵폐기장 후보지 4군데(영광, 울진, 영덕, 고창)를 전격 발표하였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탄 졸속적인 후보지 발표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핵폐기장 건설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처리 한계에 직면한 핵폐기물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는 어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건 지금 당장 핵폐기장 건설에 돌입해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이다. 왜냐하면 지금 착공에 들어가 완공될 때까지, 배출될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행해진 '자율유치' 과정에서도 드러나 듯 다급해진 정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을 정해놓고 사업자인 한수원(주) 직원을 파견하여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유치위원에 급여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금품을 살포하여 거짓 찬성서명을 받아서 자율유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2002년 6월말까지 290차례에 걸쳐 12,270명의 지역주민을 관광시키는데 10억 원이 넘는 돈을 사용하는 등 핵폐기장 후보지 추진을 위해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2,476억 원을 사용했다. 지난 15년간 핵폐기장 유치에 실패한 찬핵론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에 대해서 결말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이러한 핵폐기장 건설은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계획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5, 6호기 (각각 1,000MW) 이외에 7, 8, 9, 10호기(각각 1,400MW)가 작년 5월 지정고시 되었으며, 2015년까지 18개를 더 짓는다는 구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탈핵화의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과 정말 대조적이다. 독일 의회는 2001년 12월 향후 20년 안에 독일 내 19개 원자력 발전소 전부를 폐쇄할 것을 규정한 원전폐쇄 법안을 승인했다. 또한 한전이 '원자력선진국'이라고 홍보하던 프랑스조차 최근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지난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빌미로 2010년까지 총 20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던 일본조차도 지난 10년 동안 연이은 대형사고를 겪은 후 국민여론의 반대로 더 이상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찬핵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왜 이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초기 건설비용은 물론이고 사후 처리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위험비용에 따른 외부손실을 따졌을 때 경제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한 원전이나 핵폐기물 처리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보관 기간과 안정성의 문제, 그리고 크고 작은 원전사고 둥은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인 탈핵의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대규모 원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에너지 부족이라는 이유가 주된 논리인데,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메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라는 것이다.
두 가지 갈등
이는 결국 앞으로 펼쳐질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는 핵산업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쟁점이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정부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을 주장할 것이고 그래서 핵폐기장 건설이 필수라고 선전할 것이다. 반핵단체들은 대체에너지를 통한 대안 모색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핵폐기장 건설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핵발전을 둘러싼 이 세 주체들 간의 갈등의 결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관철 여부를 판가름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선명한 대립이 그대로 드러나기보다는 '지역개발'과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非산유국의 대안'이라는 왜곡된 쟁점을 가지고 드러난다.
첫 번째 갈등 : 지역개발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에도 드러난 바 지역개발논리가 항상 작용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의 경우를 보아도 영덕과 울진(경상북도 동해안 접경 지역), 고창과 영광(전라남북도 접경지역)을 선정하여 지역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역개발 약속과 경제적 보상은 몇 년째 지역경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는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당근이다. 현재 정부는 3000여 억 원의 지역지원금을 주겠다며 핵폐기장 유치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장이라는 것이 워낙 혐오시설이라 다른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던 지역의 현실을 보아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것은 원전건설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부대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전건설이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했다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생산물은 그 지역의 이름으로 팔리기보다 모호한 이름을 걸거나. 다른 주변지역의 이름을 걸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현실만이 명백할 뿐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이나 여러 혐오시설물의 건립과정에서도 보여지듯, 시설물과 거주지의 거리에 따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코앞에 맞닿은 경우는 이주가능한 엄청난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약간 거리가 떨어진 경우는 보상금이 그리 높지도 않다. 그리고 아예 좀 멀리 떨어진 경우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지역주민의 이러한 의식지형을 최대한 악용하려 할 것이다. 경쟁과 차등 대우를 통해서 틀림없이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쉽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두 번째 갈등 :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에너지 정책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은 그 자체로도 위험 시설에 대한 안정성 여부를 걸고 싸우는 생존권 싸움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핵발전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핵발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처리 곤란한 핵폐기물은 계속 발생할 것이며, 핵폐기물의 처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발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종착지는 에너지 정책 일반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이다. 현재 전력 생산의 30-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고 있으며, 50-60%를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화력발전의 경우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탈핵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전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숨은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화력발전의 매각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화력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장되어 가는 핵산업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의도도 짙게 깔려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로 2015년까지 대규모 원전사업을 진행할 경우 유럽 선진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의 1.5배나 되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결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만은 아닌 것이다. 이는 친환경적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절약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 핵발전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여 화력보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를 간단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친환경적 대체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력확보'이라는 논리까지 첨가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원전사업 추진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핵발전 정책 일반을 철회시키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핵산업을 수십년 먼저 시작한 서구의 예를 보아도 핵발전의 최후가 비극적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에게 다소 때이른 경고처럼 비춰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또한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찬핵론자들은 이미 한 수를 두었다. 비록 시대착오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연대를 아직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에 대한 대응으로 범국민대책위와 지역대책위가 구성되었다. 정당,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연구소, 지역주민단체 등이 모인 폭넓은 연대기구가 구성된 것이다. 단체간 성향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사활이 걸린 당면 핵폐기장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한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핵폐기장 건설의 가부의 문제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은 핵에너지 정책중단을 전면적으로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할 때, 지금까지 환경단체들의 외로운 목소리나 해당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로 닫혀 있었던 핵폐기장의 문제가 에너지 정책 일반의 문제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국민대책위는 이에 대한 투쟁과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갈 주체로 발전할 것이다.
분명 정권은 시간을 끌면서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의제로 이 문제가 설정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기만적인 깜짝쇼를 여러 번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지난 정권의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또한 핵에너지의 문제가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에 불과하며 진행 중에 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드리마일'과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것인가?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값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PSSP
86∼89년 영덕·영월·울진, 90년 안면도, 91∼92년 청하, 93∼94년 장안·울진, 94∼95년 굴업도... 지난 십여년간 정부는 끈질기게 핵폐기장 건설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번번히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핵운동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월 4일 핵폐기장 후보지 4군데(영광, 울진, 영덕, 고창)를 전격 발표하였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탄 졸속적인 후보지 발표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핵폐기장 건설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처리 한계에 직면한 핵폐기물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는 어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건 지금 당장 핵폐기장 건설에 돌입해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이다. 왜냐하면 지금 착공에 들어가 완공될 때까지, 배출될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행해진 '자율유치' 과정에서도 드러나 듯 다급해진 정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을 정해놓고 사업자인 한수원(주) 직원을 파견하여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유치위원에 급여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금품을 살포하여 거짓 찬성서명을 받아서 자율유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2002년 6월말까지 290차례에 걸쳐 12,270명의 지역주민을 관광시키는데 10억 원이 넘는 돈을 사용하는 등 핵폐기장 후보지 추진을 위해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2,476억 원을 사용했다. 지난 15년간 핵폐기장 유치에 실패한 찬핵론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에 대해서 결말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이러한 핵폐기장 건설은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계획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5, 6호기 (각각 1,000MW) 이외에 7, 8, 9, 10호기(각각 1,400MW)가 작년 5월 지정고시 되었으며, 2015년까지 18개를 더 짓는다는 구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탈핵화의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과 정말 대조적이다. 독일 의회는 2001년 12월 향후 20년 안에 독일 내 19개 원자력 발전소 전부를 폐쇄할 것을 규정한 원전폐쇄 법안을 승인했다. 또한 한전이 '원자력선진국'이라고 홍보하던 프랑스조차 최근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지난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빌미로 2010년까지 총 20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던 일본조차도 지난 10년 동안 연이은 대형사고를 겪은 후 국민여론의 반대로 더 이상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찬핵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왜 이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초기 건설비용은 물론이고 사후 처리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위험비용에 따른 외부손실을 따졌을 때 경제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한 원전이나 핵폐기물 처리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보관 기간과 안정성의 문제, 그리고 크고 작은 원전사고 둥은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인 탈핵의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대규모 원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에너지 부족이라는 이유가 주된 논리인데,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메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라는 것이다.
두 가지 갈등
이는 결국 앞으로 펼쳐질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는 핵산업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쟁점이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정부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을 주장할 것이고 그래서 핵폐기장 건설이 필수라고 선전할 것이다. 반핵단체들은 대체에너지를 통한 대안 모색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핵폐기장 건설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핵발전을 둘러싼 이 세 주체들 간의 갈등의 결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관철 여부를 판가름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선명한 대립이 그대로 드러나기보다는 '지역개발'과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非산유국의 대안'이라는 왜곡된 쟁점을 가지고 드러난다.
첫 번째 갈등 : 지역개발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에도 드러난 바 지역개발논리가 항상 작용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의 경우를 보아도 영덕과 울진(경상북도 동해안 접경 지역), 고창과 영광(전라남북도 접경지역)을 선정하여 지역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역개발 약속과 경제적 보상은 몇 년째 지역경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는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당근이다. 현재 정부는 3000여 억 원의 지역지원금을 주겠다며 핵폐기장 유치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장이라는 것이 워낙 혐오시설이라 다른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던 지역의 현실을 보아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것은 원전건설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부대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전건설이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했다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생산물은 그 지역의 이름으로 팔리기보다 모호한 이름을 걸거나. 다른 주변지역의 이름을 걸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현실만이 명백할 뿐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이나 여러 혐오시설물의 건립과정에서도 보여지듯, 시설물과 거주지의 거리에 따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코앞에 맞닿은 경우는 이주가능한 엄청난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약간 거리가 떨어진 경우는 보상금이 그리 높지도 않다. 그리고 아예 좀 멀리 떨어진 경우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지역주민의 이러한 의식지형을 최대한 악용하려 할 것이다. 경쟁과 차등 대우를 통해서 틀림없이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쉽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두 번째 갈등 :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에너지 정책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은 그 자체로도 위험 시설에 대한 안정성 여부를 걸고 싸우는 생존권 싸움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핵발전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핵발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처리 곤란한 핵폐기물은 계속 발생할 것이며, 핵폐기물의 처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발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종착지는 에너지 정책 일반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이다. 현재 전력 생산의 30-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고 있으며, 50-60%를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화력발전의 경우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탈핵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전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숨은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화력발전의 매각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화력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장되어 가는 핵산업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의도도 짙게 깔려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로 2015년까지 대규모 원전사업을 진행할 경우 유럽 선진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의 1.5배나 되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결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만은 아닌 것이다. 이는 친환경적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절약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 핵발전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여 화력보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를 간단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친환경적 대체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력확보'이라는 논리까지 첨가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원전사업 추진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핵발전 정책 일반을 철회시키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핵산업을 수십년 먼저 시작한 서구의 예를 보아도 핵발전의 최후가 비극적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에게 다소 때이른 경고처럼 비춰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또한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찬핵론자들은 이미 한 수를 두었다. 비록 시대착오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연대를 아직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에 대한 대응으로 범국민대책위와 지역대책위가 구성되었다. 정당,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연구소, 지역주민단체 등이 모인 폭넓은 연대기구가 구성된 것이다. 단체간 성향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사활이 걸린 당면 핵폐기장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한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핵폐기장 건설의 가부의 문제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은 핵에너지 정책중단을 전면적으로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할 때, 지금까지 환경단체들의 외로운 목소리나 해당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로 닫혀 있었던 핵폐기장의 문제가 에너지 정책 일반의 문제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국민대책위는 이에 대한 투쟁과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갈 주체로 발전할 것이다.
분명 정권은 시간을 끌면서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의제로 이 문제가 설정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기만적인 깜짝쇼를 여러 번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지난 정권의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또한 핵에너지의 문제가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에 불과하며 진행 중에 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드리마일'과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것인가?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값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