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위기에 딴지걸기
이공계 위기를 둘러싼 쟁점
이공계 위기에 대한 말은 이미 익숙한 말이 되었다. 박사급의 고학력 실업자들 중에 이공계열의 비율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만큼 더 이상 이공계열은 장래가 보장되는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다. 심지어 올해 상대적으로 나은 일류대학의 이공계열 등록 취소율이 40%에 이르는 상황은 이공계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을 확대한다는 기본 방침을 발표하고 또 이에 발맞추어 과학기술계에서는 보다 많은 지원을 요구하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이공계열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이공계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 확대, 과학기술인력 양성, 연구개발비의 투자확대로 요약된다. 2002년 민주당에서 발표한 대선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이공계열 정책으로서 노무현 정부하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것으로 "신산업정책 활성화를 위한 이공계 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이공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등록금 혜택 제도 마련하고 '국공립및사립학교보조금'에 명시하여 정부가 지원, 이공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등록금 5년간 상환제 실시,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 채용시 이공계 출신의 할당제 도입하며, 특히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환경부, 건설교통부등에는 전문성을 갖는 행정인력의 대외개방직은 이공계위주로 채용하도록 유도, 기업의 이공계 우수 인력에 대한 학자금 혜택 확대 유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이공계열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수가 증가할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공계열 위기의 내부
요즘 이공계열의 위기에 대해 가장 커다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의 대학교수들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현재 이공계열의 위기가 심각하며 이는 곧 국가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공계열의 위기를 차분히 보면 이는 과학기술 학문의 위기 혹은 과학기술 분야의 위기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그네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공계열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역시 이공계 위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된다. 하지만 이공계열의 위기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변화된 노동구성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산업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국면에서는 이공계열 노동력에 대한 수급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금융적 투자가 확대되고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금융자본을 경유하면서 기술개발에 대한 일차적 투자는 줄어들었고 이는 이공계열을 졸업한 이들에 대한 고용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금융적 이해에 입각한 산업구성에서는 불안한 연구소 혹은 기업에 취직하는 방향보다는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등)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공계열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데 비해 취업에 필요한 교육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공부량에 비해 학점을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공계열 위기를 논의하는 데 있어 앞서 언급했던 가장 3개 대학 출신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학력저하는 이공계열 위기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 서있다. 학력저하는 대다수 대학에서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강화된 상대평가와 과목수의 증가로 인해서라는 점 그리고 고교 교과과정과 입시가 변화함에 따라 대학교육 역시 그것을 감안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음으로서 야기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들 수 있는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치변화이다. 이미 한국은 과거와 같은 축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는 직접적인 생산보다는 금융에 의한 이윤이 이미 상당한 비율에 이른 것으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산업분야는 여전히 생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과거 자동차, 철강이 산업을 이끄는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정부는 나노기술과 바이오 기술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밝히고 있으나 이에 대한 투자를 집중한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첨단기술의 경우 아직까지 시장성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투자는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BK21등과 같은 선별적인 지원을 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공계열 전반에 대한 지원의 확대라는 것 보다는 위기에 대한 체감지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주된 불만층(물론 이공계열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공계열 졸업자, 학생이다.)인 3개 대학의 교수, 연구자 층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공계열 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
이공계열 학생들이나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정부의 지원확대나 이공계열 확대 방향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지원이 현재의 연구자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구시설은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난 98년 이후 전멸된 상황이며 산업구조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현재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적극적인 문제제기 집단으로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기에 이공계 위기의 피해자들인 이들을 제외한 이공계열의 전문가들의 대안이 이공계열 회생의 대안으로 부상한다. 물론 전문가들의 대안은 이공계열 전반을 위한 대안은 아니다. 지원의 확대는 선별된 연구집단들에게 돌아가며 이는 막대한 예산에 비해 전반적인 영향력은 적다. 결국 이공계 위기는 이들에게 호기다. 보다 많은 지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를 이공계 위기 담론이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과 3개 대학 연구자-교수간에 맺어진 카르텔은 이공계열 위기의 배후에 자리잡은 중요한 배후이다.
이공계 위기? 대학교육과 노동의 위기!
더 나가보자. 이공계 위기가 특별하게 이야기되는 맥락은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는 위기를 넘어 고사에 이르렀다. 또한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의 학과 체계가 의미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고시에 전념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금융화의 여파로 산업과 연관을 맺고 있던 학과체계가 붕괴한 것이다.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전문직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학과체계 아니 대학교육의 붕괴로 이어졌다. 학과와 적성보다는 대학과 고시에 전념하는 속에서 이공계열 위기는 다만 작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만연한 지금에 있어 어떤 노동을 택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전문직의 꿈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공계 위기는 과거 인문학의 위기가 등장했을 때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다만 시류에 대한 개탄으로 끝났던 것과는 달리 이공계열의 위기는 사회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막대한 예산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적인 성격은 소수 분파에 대한 집중으로 위기를 무마하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 마저 잃는다. 지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대학과 학생들은 여전히 심화되는 위기를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주 쉽고 분명한 대안이 있다.
사회화된 학문, 그리고 안전한 노동
이공계 위기의 배후인 대학과 학문의 위기 그리고 노동의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노동력 수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우회하고서는 이공계 위기를 해소할 방법이란 없다. 연구능력이 특출한 몇 명을 위한 지원이라면 굳이 새삼스런 지원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는 지원 이전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시와 소위 전문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고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진정 '이공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공계열 위기가 상징하는 대학교육의 위기이다. 이 역시 보다 안전한 노동을 보장함으로써 배제된 노동을 제거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대학 그리고 학문을 위한 길은 사회적으로 학문의 수요를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본의 논리이다. 자본의 요구에 맞는 학문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의 요구에 따른 학문이 있을 뿐이다. 하기에 학문을 사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의 수요를 전 사회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간단하다. 위기를 양산한 것이 신자유주의라면 그 미친 레이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수요자를 시장에서 사회로 돌리는 것이다. PSSP
이공계 위기에 대한 말은 이미 익숙한 말이 되었다. 박사급의 고학력 실업자들 중에 이공계열의 비율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만큼 더 이상 이공계열은 장래가 보장되는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다. 심지어 올해 상대적으로 나은 일류대학의 이공계열 등록 취소율이 40%에 이르는 상황은 이공계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을 확대한다는 기본 방침을 발표하고 또 이에 발맞추어 과학기술계에서는 보다 많은 지원을 요구하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이공계열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이공계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 확대, 과학기술인력 양성, 연구개발비의 투자확대로 요약된다. 2002년 민주당에서 발표한 대선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이공계열 정책으로서 노무현 정부하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것으로 "신산업정책 활성화를 위한 이공계 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이공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등록금 혜택 제도 마련하고 '국공립및사립학교보조금'에 명시하여 정부가 지원, 이공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등록금 5년간 상환제 실시,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 채용시 이공계 출신의 할당제 도입하며, 특히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환경부, 건설교통부등에는 전문성을 갖는 행정인력의 대외개방직은 이공계위주로 채용하도록 유도, 기업의 이공계 우수 인력에 대한 학자금 혜택 확대 유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이공계열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수가 증가할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공계열 위기의 내부
요즘 이공계열의 위기에 대해 가장 커다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의 대학교수들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현재 이공계열의 위기가 심각하며 이는 곧 국가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공계열의 위기를 차분히 보면 이는 과학기술 학문의 위기 혹은 과학기술 분야의 위기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그네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공계열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역시 이공계 위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된다. 하지만 이공계열의 위기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변화된 노동구성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산업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국면에서는 이공계열 노동력에 대한 수급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금융적 투자가 확대되고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금융자본을 경유하면서 기술개발에 대한 일차적 투자는 줄어들었고 이는 이공계열을 졸업한 이들에 대한 고용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금융적 이해에 입각한 산업구성에서는 불안한 연구소 혹은 기업에 취직하는 방향보다는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등)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공계열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데 비해 취업에 필요한 교육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공부량에 비해 학점을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공계열 위기를 논의하는 데 있어 앞서 언급했던 가장 3개 대학 출신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학력저하는 이공계열 위기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 서있다. 학력저하는 대다수 대학에서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강화된 상대평가와 과목수의 증가로 인해서라는 점 그리고 고교 교과과정과 입시가 변화함에 따라 대학교육 역시 그것을 감안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음으로서 야기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들 수 있는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치변화이다. 이미 한국은 과거와 같은 축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는 직접적인 생산보다는 금융에 의한 이윤이 이미 상당한 비율에 이른 것으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산업분야는 여전히 생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과거 자동차, 철강이 산업을 이끄는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정부는 나노기술과 바이오 기술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밝히고 있으나 이에 대한 투자를 집중한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첨단기술의 경우 아직까지 시장성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투자는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BK21등과 같은 선별적인 지원을 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공계열 전반에 대한 지원의 확대라는 것 보다는 위기에 대한 체감지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주된 불만층(물론 이공계열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공계열 졸업자, 학생이다.)인 3개 대학의 교수, 연구자 층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공계열 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
이공계열 학생들이나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정부의 지원확대나 이공계열 확대 방향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지원이 현재의 연구자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구시설은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난 98년 이후 전멸된 상황이며 산업구조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현재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적극적인 문제제기 집단으로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기에 이공계 위기의 피해자들인 이들을 제외한 이공계열의 전문가들의 대안이 이공계열 회생의 대안으로 부상한다. 물론 전문가들의 대안은 이공계열 전반을 위한 대안은 아니다. 지원의 확대는 선별된 연구집단들에게 돌아가며 이는 막대한 예산에 비해 전반적인 영향력은 적다. 결국 이공계 위기는 이들에게 호기다. 보다 많은 지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를 이공계 위기 담론이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과 3개 대학 연구자-교수간에 맺어진 카르텔은 이공계열 위기의 배후에 자리잡은 중요한 배후이다.
이공계 위기? 대학교육과 노동의 위기!
더 나가보자. 이공계 위기가 특별하게 이야기되는 맥락은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는 위기를 넘어 고사에 이르렀다. 또한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의 학과 체계가 의미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고시에 전념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금융화의 여파로 산업과 연관을 맺고 있던 학과체계가 붕괴한 것이다.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전문직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학과체계 아니 대학교육의 붕괴로 이어졌다. 학과와 적성보다는 대학과 고시에 전념하는 속에서 이공계열 위기는 다만 작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만연한 지금에 있어 어떤 노동을 택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전문직의 꿈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공계 위기는 과거 인문학의 위기가 등장했을 때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다만 시류에 대한 개탄으로 끝났던 것과는 달리 이공계열의 위기는 사회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막대한 예산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적인 성격은 소수 분파에 대한 집중으로 위기를 무마하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 마저 잃는다. 지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대학과 학생들은 여전히 심화되는 위기를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주 쉽고 분명한 대안이 있다.
사회화된 학문, 그리고 안전한 노동
이공계 위기의 배후인 대학과 학문의 위기 그리고 노동의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노동력 수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우회하고서는 이공계 위기를 해소할 방법이란 없다. 연구능력이 특출한 몇 명을 위한 지원이라면 굳이 새삼스런 지원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는 지원 이전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시와 소위 전문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고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진정 '이공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공계열 위기가 상징하는 대학교육의 위기이다. 이 역시 보다 안전한 노동을 보장함으로써 배제된 노동을 제거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대학 그리고 학문을 위한 길은 사회적으로 학문의 수요를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본의 논리이다. 자본의 요구에 맞는 학문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의 요구에 따른 학문이 있을 뿐이다. 하기에 학문을 사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의 수요를 전 사회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간단하다. 위기를 양산한 것이 신자유주의라면 그 미친 레이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수요자를 시장에서 사회로 돌리는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