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역 실업계학교는 학교 서열화의 상징
오늘 있었던 학생과의 짧은 상담 내용 하나를 소개하면서 얘기를 시작해보자. 성규는 지난 주 목요일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가 금요일에야 학교를 나오고는 다시 3교시 끝나고 무단으로 조퇴하였다. 토요일, 평소 같으면 녀석이 먼저 와서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벌 받으러 왔어요." 할텐데 아무 말이 없고 슬슬 나와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한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오늘 녀석을 불러놓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합니다, 선생님" , "무슨 일 있는 거냐?" , "아버지가 술 마시고 와서는 자꾸 때리면서 학교 가지 말라잖아요. 그래서 기분 나빠서 학교 올 수 없었어요." , "넌 아버지 싫어한다면서 그럴 땐 왜 아버지 얘길 따르는 거지?" ,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버지에게 복수할 거예요. 학비 한 번 대 준 적도 없으면서, 아픈 엄마 병원 한 번 데리고 간 적도 없으면서 나한테 행패를 부리잖아요, 자기한테 돈 달랠까봐요." , "그래도 학교는 빠질 수 없는 곳이다. 네가 싫어하는 아버지 때문에 너의 인생까지 함부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우리 반에 최성규(가명)라는 학생을 처음 본 것은 2001년 봄,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들어올 때이다. 작은 체구에 똘망똘망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듯한 눈동자를 하고서 녀석은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을 수업 시간에 보고, 녀석이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얘길 들었다. 곧 녀석은 나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이듬해 3월에 성규는 우리 반으로 재입학을 했다. 녀석의 모친은 신장병을 심하게 앓고 계셨고 백내장까지 더해져 앞을 볼 수 없으며 일주일에 세 번씩 아주대병원에 혈액 투석을 한다고 하였다. 재입학을 위해 성규를 데리고 온 사람은 성규가 일하고 있는 주유소 아주머니였다. 성규는 일주일에 세 번씩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고 자정까지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번 돈은 동생 학비와 생활비,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가고 자신은 학비 보조를 받고 있다. 지각이 잦고 친구들과 술도 한 잔씩 마시는 눈치다. 많이 노력은 한다고 하지만 벌써 삶에 지쳐버린 아이는 세상이 온통 돈으로 거래되는 냉정한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국가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아이는 알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농업계 고등학교다. 주로 용인 시내와 인근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교가 면소재지에 있다 보니, 용인 시내에서 버스로 통학을 하는 학생이 많고 심지어는 안성, 오산에서도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한 학년에 3개 학과가 있으며 각 학과는 하나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교생 221명에 총 9개 학급이고, 교사는 교장, 교감을 포함하여 23명이다.
작년에 34명이 입학하여 1명이 복학(자퇴하였다가 다시 들어오는 학생)을 했고 1명이 전학을 왔으며 6명이 학교를 떠났다. 그 반을 그대로 이어서 올해에 다시 담임을 하게 되었다. 3월 한 달 사이에 2명이 새로 들어오고 3명이 그만두었다. 그래도 우리반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옆반은 34명이 입학하여 13명이 그만두고 21명만이 2학년으로 진급하였다.
출석을 보면, 작년 30명의 아이들이 총 328일의 사고결석을 하고 460회의 지각과 159회의 무단조퇴, 38회의 사고결과를 기록하였다. 옆반의 사고 결석은 1,000일이 넘는다.
우리반 29명의 가정 상황을 보면, 편부 또는 편모인 학생이 9명이고 사찰에서 다니는 학생이 1명, 40대 만학도가 1명, 부친이 장기간 병환중인 학생이 3명이다. 사실상 절반 이상이 학생에 대한 교육적 배려라든지 하는 여력이 없는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접하게 된 사실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이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된 아이들은 심지어 영양 결핍도 있고, 결핵이나 간염과 같은 전염성 질병에 노출된다. 몸이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마음의 병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신과 질환으로 의심되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여럿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여기 학교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다. 흡연이나 음주의 경우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꾸준히 출석할 것만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그쯤은 최소한의 반대급부로 용인되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가출이나 폭력, 금품 갈취와 같은 경우는 학교로서도 예방보다는 사후 뒷처리에 급급하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로 학급이나 학교 내에서 아이들간에 서열화가 이루어지며, 힘 센 아이가 약한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당연시된다.
지역사회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곱지 않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없으니 지각은 아침 9시부터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 버스 터미널 주변이나 오락실에는 가방도 없는 아이들이 교복만을 엉성하게 입고 배회하고 있다. 이들의 호주머니에서는 담배나 라이터가 쉽게 발견된다. 필자가 가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 상점에 가면 버스표를 판매하시는 할머니가 항상 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한다.
수업에 대한 집중도는 거의 교사들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정도이다.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1/3은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자고,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3-4명에 불과하다.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런 소수만을 위하거나 아니면 다수를 위해 수업 내용의 난이도를 하향시켜야 할 지 고민이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인문계 학교에 비해 수행평가나 지필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부모나 학생들도 없다는 점은 교사들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얘기지만, 오히려 평가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적으므로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학교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근의 초등학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에 산업체가 많다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은 한 학년에 5-6학급이 될 만큼 규모가 크다. 하지만 5-6학년이 되면 2개반으로 줄어든다. 모두들 중학교 배정을 위해 용인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나 수원지역으로 전학을 가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중학교로 진학하는 인원은 한 학급도 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간다는 것은 가족이 이사를 하든, 학생만 유학을 가든, 학부모의 열의가 있고 그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학생의 실력이 진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어쩌면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부모의 경제 수준이 그처럼 잘 들어맞을까? 결국, 실력과 경제력이 갖추어진 가정의 자녀들은 도시 인문계 학교로 진학하고, 도시 빈민의 자녀들이나 지역 빈농의 자녀들은 우리 학교로 들어온다. 학교는 다시 이러한 아이들을 지역의 영세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면 이들의 자녀들이 다시 미래의 우리학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그 때까지 학교가 존속하기나 한다면). 한 마디로 사회, 경제적 서열화의 구조 속에 종속된 교육 체계의 맨 말미에 농촌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앞장서서 교육을 개방하겠다고 한다. 좌절에 빠진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것이란다. 그리고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겠단다. 경기도는 한술 더 떠서 경제특구에 외국인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한다. 지금 공교육이 부실해진다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것이다. 지금도 학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실력과는 무관하게 실업계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으며, 농촌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는 매년 미달사태에 직면한다.
농업계 고등학교 교사들마저도 농업계 고등학교가 필요 없는 학교이며 그 수는 축소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찾지 않으니 수요가 없는 학교는 존립의 근거가 없다는 논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농촌지역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부모가 뒷받쳐주지 못한 아이들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역적 소외로 인하여 교육에 질적 차이가 생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농어촌 지역에 대한 역차별 전략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편이 필요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신경 써주지 않아도 알아서 외국 가서 공부하고 알아서 사교육비 펑펑 쓸 줄 아는 계층 때문에 전체 교육을 팔아먹을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교육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우리 반에 최성규(가명)라는 학생을 처음 본 것은 2001년 봄,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들어올 때이다. 작은 체구에 똘망똘망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듯한 눈동자를 하고서 녀석은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을 수업 시간에 보고, 녀석이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얘길 들었다. 곧 녀석은 나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이듬해 3월에 성규는 우리 반으로 재입학을 했다. 녀석의 모친은 신장병을 심하게 앓고 계셨고 백내장까지 더해져 앞을 볼 수 없으며 일주일에 세 번씩 아주대병원에 혈액 투석을 한다고 하였다. 재입학을 위해 성규를 데리고 온 사람은 성규가 일하고 있는 주유소 아주머니였다. 성규는 일주일에 세 번씩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고 자정까지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번 돈은 동생 학비와 생활비,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가고 자신은 학비 보조를 받고 있다. 지각이 잦고 친구들과 술도 한 잔씩 마시는 눈치다. 많이 노력은 한다고 하지만 벌써 삶에 지쳐버린 아이는 세상이 온통 돈으로 거래되는 냉정한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국가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아이는 알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농업계 고등학교다. 주로 용인 시내와 인근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교가 면소재지에 있다 보니, 용인 시내에서 버스로 통학을 하는 학생이 많고 심지어는 안성, 오산에서도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한 학년에 3개 학과가 있으며 각 학과는 하나의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교생 221명에 총 9개 학급이고, 교사는 교장, 교감을 포함하여 23명이다.
작년에 34명이 입학하여 1명이 복학(자퇴하였다가 다시 들어오는 학생)을 했고 1명이 전학을 왔으며 6명이 학교를 떠났다. 그 반을 그대로 이어서 올해에 다시 담임을 하게 되었다. 3월 한 달 사이에 2명이 새로 들어오고 3명이 그만두었다. 그래도 우리반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옆반은 34명이 입학하여 13명이 그만두고 21명만이 2학년으로 진급하였다.
출석을 보면, 작년 30명의 아이들이 총 328일의 사고결석을 하고 460회의 지각과 159회의 무단조퇴, 38회의 사고결과를 기록하였다. 옆반의 사고 결석은 1,000일이 넘는다.
우리반 29명의 가정 상황을 보면, 편부 또는 편모인 학생이 9명이고 사찰에서 다니는 학생이 1명, 40대 만학도가 1명, 부친이 장기간 병환중인 학생이 3명이다. 사실상 절반 이상이 학생에 대한 교육적 배려라든지 하는 여력이 없는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접하게 된 사실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이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된 아이들은 심지어 영양 결핍도 있고, 결핵이나 간염과 같은 전염성 질병에 노출된다. 몸이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마음의 병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신과 질환으로 의심되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여럿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여기 학교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다. 흡연이나 음주의 경우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꾸준히 출석할 것만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그쯤은 최소한의 반대급부로 용인되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가출이나 폭력, 금품 갈취와 같은 경우는 학교로서도 예방보다는 사후 뒷처리에 급급하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로 학급이나 학교 내에서 아이들간에 서열화가 이루어지며, 힘 센 아이가 약한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당연시된다.
지역사회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곱지 않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없으니 지각은 아침 9시부터이다. 그러나 이 시간에 버스 터미널 주변이나 오락실에는 가방도 없는 아이들이 교복만을 엉성하게 입고 배회하고 있다. 이들의 호주머니에서는 담배나 라이터가 쉽게 발견된다. 필자가 가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 상점에 가면 버스표를 판매하시는 할머니가 항상 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한다.
수업에 대한 집중도는 거의 교사들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정도이다.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1/3은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자고,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3-4명에 불과하다.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런 소수만을 위하거나 아니면 다수를 위해 수업 내용의 난이도를 하향시켜야 할 지 고민이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인문계 학교에 비해 수행평가나 지필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부모나 학생들도 없다는 점은 교사들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얘기지만, 오히려 평가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적으므로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학교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근의 초등학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에 산업체가 많다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은 한 학년에 5-6학급이 될 만큼 규모가 크다. 하지만 5-6학년이 되면 2개반으로 줄어든다. 모두들 중학교 배정을 위해 용인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나 수원지역으로 전학을 가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중학교로 진학하는 인원은 한 학급도 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간다는 것은 가족이 이사를 하든, 학생만 유학을 가든, 학부모의 열의가 있고 그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학생의 실력이 진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어쩌면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부모의 경제 수준이 그처럼 잘 들어맞을까? 결국, 실력과 경제력이 갖추어진 가정의 자녀들은 도시 인문계 학교로 진학하고, 도시 빈민의 자녀들이나 지역 빈농의 자녀들은 우리 학교로 들어온다. 학교는 다시 이러한 아이들을 지역의 영세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면 이들의 자녀들이 다시 미래의 우리학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그 때까지 학교가 존속하기나 한다면). 한 마디로 사회, 경제적 서열화의 구조 속에 종속된 교육 체계의 맨 말미에 농촌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앞장서서 교육을 개방하겠다고 한다. 좌절에 빠진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것이란다. 그리고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겠단다. 경기도는 한술 더 떠서 경제특구에 외국인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한다. 지금 공교육이 부실해진다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적다는 것이다. 지금도 학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실력과는 무관하게 실업계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으며, 농촌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는 매년 미달사태에 직면한다.
농업계 고등학교 교사들마저도 농업계 고등학교가 필요 없는 학교이며 그 수는 축소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찾지 않으니 수요가 없는 학교는 존립의 근거가 없다는 논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농촌지역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부모가 뒷받쳐주지 못한 아이들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역적 소외로 인하여 교육에 질적 차이가 생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농어촌 지역에 대한 역차별 전략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편이 필요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신경 써주지 않아도 알아서 외국 가서 공부하고 알아서 사교육비 펑펑 쓸 줄 아는 계층 때문에 전체 교육을 팔아먹을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교육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