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운동 평가와 지금 필요한 것
0/ 2002년의 기억
2002년은 장애해방 투쟁에 있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큼 치열했던 한해였다. 시작은 3월 26일 최옥란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열사의 마지막 길과 열사를 위한 분향소마저 군화발로 짓밟아 버린 김대중 정부의 야만적 처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우리들을 몰아갔다.
얼마 후인 4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일주일의 기간을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주간으로 삼고, 그 기간 동안 지금까지의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가 가지고 있던 기만성을 폭로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장애 해방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였다. 한편 5월 월드컵을 앞두고 발산역에서 지하철역에 설치된 경사형 리프트를 사용하던 중증장애인이 리프트에서 추락·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계속되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던 날 발산역 항의방문을 시작으로 동대문운동장역에서의 전면적인 선전·서명운동을 진행하였으며, 드디어 8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 40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는 데까지 나아갔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뒤늦게나마 진상조사에 착수하였고,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과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평택에서는 또다른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6년째 해아래집을 중심으로 완강하게 이어져 오던 에바다 정상화 투쟁은, 5월 18일 투쟁 2000일을 기념하는 문화제를 거친 후 7월에는 불법점거 세력에 의해 폐쇄되어 있던 에바다 학교 / 농아원 진입투쟁을 전격적으로 시작했다. 일주일 간의 농성을 통해 부르주아 법질서와 경찰의 기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한편, 그동안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며 폭력을 행사해 오던 구 재단 측이 더 이상 전과 같은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 있었다. 이 2002년 7월의 투쟁은 이후 민주적 이사진에 의한 에바다 장애인 복지관(에바다 복지회 소속 3개시설 중 하나) 장악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지난 2003년 3월 26일 최옥란 열사의 1주기를 기해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선포식' 및 최옥란 열사 추모 문화제가 있었다. 이는 올해 역시 장애 해방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많은 사회적 이목이 이들 장애인 투쟁의 주체들에게 - 어쩌면 작년 수준의 기대를 가지고 - 집중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런 기대섞인 시선을 다시금 반복하기보다는, 작년의 치열한 기억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평가를 통해 장애해방투쟁이 놓치고 왔던 문제의식들을 살펴보고 올해 투쟁의 전망을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1/ 2002년 투쟁의 성과
2002년은 장애 해방 투쟁에 있어 분명히 '남는' 한 해였다. 우선 가시적인 성과 차원에서 그렇다. 예컨대 이동권 연대의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바다 투쟁 역시 승리를 위한 발판을 확보했으며,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은 지난 해 벌어졌던 각종 투쟁 중에서 속된 말로 '흥행에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는 뭐니뭐니해도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 있다.
최옥란 열사의 죽음은 '장애를 가진 여성'이 어머니로서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조목조목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동안 언론에서 핫이슈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또 작년부터 계속되어 온 이동권 연대의 투쟁은 발산역 참사를 계기로 가일층 본격화되면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이동권'이라는 매개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동권 연대가 꾸준히 진행한 서명운동과 선전전은 적어도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권리를 장애인의 공식적인 권리로서 정식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 실제로 서울시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도 전에 쓰지 않던 '이동권'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음 -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장애인권 등과 관련한 특별 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장애인과 관련된 용어도, 적어도 운동진영 내부에서는, 이전의 「장애인-정상인의 구조」식의 관념이 「장애인-비장애인의 구조」로 점차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의식의 성장은 분명 2002년 투쟁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의식의 성장이 처음에는 일정 정도의 '안타까움'이나 '동정심'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안타까움과 동정은 장애 해방 투쟁 주체들의 강고한 투쟁의지와 실천 속에서, 점차 '사회적 연대'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올해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에는 지난 해보다 한층 폭넓은 주체들의 참여 및 장애 유형에 따른 장애인의 더욱 다양한 요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바로 작년 장애 해방 투쟁으로부터 귀결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것이다.
2/ 놓치고 있는 것.
지난 달 장애인 이동권 연대를 비롯한 장애운동진영을 전반적으로 혼란스럽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동권 연대를 통해 활동하던 비장애인 활동가에 의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행위 공개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많은 장애운동 활동가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은 그것의 발생 및 그후 처리 과정을 통해, 이동권 연대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 운동 주체들이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이동권 연대의 활동가들(또는 그와 관련된 많은 활동가들)은 사건이 폭로된 직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믿고 있던 동지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지만, 더큰 문제는 성폭력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한 스스로의 의식 수준이 열악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2차 가해가 무엇인지', '장애 여성의 문제가 무엇인지' 등등 내부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쟁점이 한두개가 아니었으며, 도처에서 혼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같은 혼란의 원인 중 하나는, 이동권 연대가 단일 쟁점에 대한 연대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와중에서, 다른 많은 쟁점들 예컨대 여성(장애여성 포함), 노동, 빈민 등등에 대한 고민을 거의 진척시키지 못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동권 연대'의 목적이 '이동권 쟁취'인 것과, 이동권 연대를 통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지향'은 분명히 구별되어 사고될 필요가 있다. 즉 '이동권 연대'의 문제의식은 일차적으로 '이동권 쟁취'를 중심으로 집약되지만, 그 속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폭넓은 고민들이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동권 연대의 활동가들은 알게모르게 '이동권 연대' = '이동권 쟁취'라는 등식 속에서 스스로의 고민을 제한시킨 점이 없지 않았던 바, 이번 성폭력 사건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혼란을 느꼈던 것은 이같은 인식의 제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연대체의 목적'에 의해 그 속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고민과 지향'이 제약되는 예는 비단 이동권 연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장애운동 내부에는 장애의 유형과 성적 차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많은 쟁점들이 있고 그에 따라 많은 연대 단체들이 조직되고 있지만, 각각의 연대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고민과 지향이 서로의 쟁점에 대해 좀처럼 서로 소통되면서 폭넓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의 가장 좋은 예는 역설적으로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이다. 비록 작년의 흥행(?)에 힘입어 더 많은 단체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다채로운 쟁점들이 요구안으로 제출되긴 하였으나, 자칫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될 우려도 높다. 그것은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요구안을 제기하기에 바쁠 뿐, 무엇을 중심에 놓고 함께 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쟁점을 요구안으로 취합하는 데 주된 관심이 기울여진 나머지 그 요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함께 해야 하는지가 논의되지 못하고 있고 그 와중에 활동가들은 그저 실무자로서 각각의 요구안을 양식에 맞춰 인터넷에 올리는 데만 여념이 없는 현실적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다시 활동가 재생산의 문제로 귀결되어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3/ 장애해방 투쟁의 전망과 필요한 것.
간단하게 상반기 장애해방 투쟁의 전망을 정리해 보면, 에바다에서는 승전보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7년을 싸워온 투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는 장애 해방 투쟁 뿐만 아니라 이제 변화가 싹트고 있는 사회복지 현장 그리고 부천장애인복지관이나 한시련 복지관 노조와 같이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성폭력 문제로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장애인 이동권 연대가 활동력을 보존하고 있고, 작년의 흥행에 힘입어 더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는 데다 '이동권 연대'라면 전담을 두고 쫓아다니는 언론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예상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애 해방 투쟁의 주체들은 일이 끝나면 허탈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은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 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방안'에 대해 언급해 보자면 크게 대상과 내용의 견지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상은 이동권 연대를 비롯한 장애운동 단체에서 장애 해방 투쟁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로 하여금 더욱 폭넓은 사고와 고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각각의 단체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쟁점을 넘어서 다른 단체들에서는 어떤 쟁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서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고민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들의 제공이 절실하다.
다음으로 내용에 있어서는 이제는 보다 '사회적인' 내용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운동의 쟁점이 '이동권'과 같이 자신의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한 즉각적인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적인' 고민을 통해 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즉 사회적인 관계들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통해 장애인 운동 진영의 내·외적으로 실질적인 연대의 고리들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장애인 운동의 활동가들이 그야말로 장애해방투쟁의 주체들로 올곧이 설 수 있을 것이다. 장애해방투쟁은 지난 몇 년간 정말 치열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왔다. 그런 만큼 더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앞으로를 준비해 나갈 수 있기 바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PSSP
2002년은 장애해방 투쟁에 있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큼 치열했던 한해였다. 시작은 3월 26일 최옥란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열사의 마지막 길과 열사를 위한 분향소마저 군화발로 짓밟아 버린 김대중 정부의 야만적 처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우리들을 몰아갔다.
얼마 후인 4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일주일의 기간을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주간으로 삼고, 그 기간 동안 지금까지의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가 가지고 있던 기만성을 폭로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장애 해방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였다. 한편 5월 월드컵을 앞두고 발산역에서 지하철역에 설치된 경사형 리프트를 사용하던 중증장애인이 리프트에서 추락·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계속되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던 날 발산역 항의방문을 시작으로 동대문운동장역에서의 전면적인 선전·서명운동을 진행하였으며, 드디어 8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 40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는 데까지 나아갔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뒤늦게나마 진상조사에 착수하였고,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과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평택에서는 또다른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6년째 해아래집을 중심으로 완강하게 이어져 오던 에바다 정상화 투쟁은, 5월 18일 투쟁 2000일을 기념하는 문화제를 거친 후 7월에는 불법점거 세력에 의해 폐쇄되어 있던 에바다 학교 / 농아원 진입투쟁을 전격적으로 시작했다. 일주일 간의 농성을 통해 부르주아 법질서와 경찰의 기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한편, 그동안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며 폭력을 행사해 오던 구 재단 측이 더 이상 전과 같은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 있었다. 이 2002년 7월의 투쟁은 이후 민주적 이사진에 의한 에바다 장애인 복지관(에바다 복지회 소속 3개시설 중 하나) 장악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지난 2003년 3월 26일 최옥란 열사의 1주기를 기해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선포식' 및 최옥란 열사 추모 문화제가 있었다. 이는 올해 역시 장애 해방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많은 사회적 이목이 이들 장애인 투쟁의 주체들에게 - 어쩌면 작년 수준의 기대를 가지고 - 집중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런 기대섞인 시선을 다시금 반복하기보다는, 작년의 치열한 기억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평가를 통해 장애해방투쟁이 놓치고 왔던 문제의식들을 살펴보고 올해 투쟁의 전망을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1/ 2002년 투쟁의 성과
2002년은 장애 해방 투쟁에 있어 분명히 '남는' 한 해였다. 우선 가시적인 성과 차원에서 그렇다. 예컨대 이동권 연대의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바다 투쟁 역시 승리를 위한 발판을 확보했으며,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은 지난 해 벌어졌던 각종 투쟁 중에서 속된 말로 '흥행에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는 뭐니뭐니해도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 있다.
최옥란 열사의 죽음은 '장애를 가진 여성'이 어머니로서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조목조목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동안 언론에서 핫이슈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또 작년부터 계속되어 온 이동권 연대의 투쟁은 발산역 참사를 계기로 가일층 본격화되면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이동권'이라는 매개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동권 연대가 꾸준히 진행한 서명운동과 선전전은 적어도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권리를 장애인의 공식적인 권리로서 정식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 실제로 서울시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도 전에 쓰지 않던 '이동권'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음 -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장애인권 등과 관련한 특별 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장애인과 관련된 용어도, 적어도 운동진영 내부에서는, 이전의 「장애인-정상인의 구조」식의 관념이 「장애인-비장애인의 구조」로 점차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의식의 성장은 분명 2002년 투쟁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의식의 성장이 처음에는 일정 정도의 '안타까움'이나 '동정심'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안타까움과 동정은 장애 해방 투쟁 주체들의 강고한 투쟁의지와 실천 속에서, 점차 '사회적 연대'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올해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에는 지난 해보다 한층 폭넓은 주체들의 참여 및 장애 유형에 따른 장애인의 더욱 다양한 요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바로 작년 장애 해방 투쟁으로부터 귀결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것이다.
2/ 놓치고 있는 것.
지난 달 장애인 이동권 연대를 비롯한 장애운동진영을 전반적으로 혼란스럽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동권 연대를 통해 활동하던 비장애인 활동가에 의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행위 공개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많은 장애운동 활동가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은 그것의 발생 및 그후 처리 과정을 통해, 이동권 연대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 운동 주체들이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이동권 연대의 활동가들(또는 그와 관련된 많은 활동가들)은 사건이 폭로된 직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믿고 있던 동지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지만, 더큰 문제는 성폭력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한 스스로의 의식 수준이 열악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2차 가해가 무엇인지', '장애 여성의 문제가 무엇인지' 등등 내부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쟁점이 한두개가 아니었으며, 도처에서 혼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같은 혼란의 원인 중 하나는, 이동권 연대가 단일 쟁점에 대한 연대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와중에서, 다른 많은 쟁점들 예컨대 여성(장애여성 포함), 노동, 빈민 등등에 대한 고민을 거의 진척시키지 못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동권 연대'의 목적이 '이동권 쟁취'인 것과, 이동권 연대를 통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지향'은 분명히 구별되어 사고될 필요가 있다. 즉 '이동권 연대'의 문제의식은 일차적으로 '이동권 쟁취'를 중심으로 집약되지만, 그 속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폭넓은 고민들이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동권 연대의 활동가들은 알게모르게 '이동권 연대' = '이동권 쟁취'라는 등식 속에서 스스로의 고민을 제한시킨 점이 없지 않았던 바, 이번 성폭력 사건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혼란을 느꼈던 것은 이같은 인식의 제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연대체의 목적'에 의해 그 속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고민과 지향'이 제약되는 예는 비단 이동권 연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장애운동 내부에는 장애의 유형과 성적 차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많은 쟁점들이 있고 그에 따라 많은 연대 단체들이 조직되고 있지만, 각각의 연대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고민과 지향이 서로의 쟁점에 대해 좀처럼 서로 소통되면서 폭넓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의 가장 좋은 예는 역설적으로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이다. 비록 작년의 흥행(?)에 힘입어 더 많은 단체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다채로운 쟁점들이 요구안으로 제출되긴 하였으나, 자칫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될 우려도 높다. 그것은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요구안을 제기하기에 바쁠 뿐, 무엇을 중심에 놓고 함께 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쟁점을 요구안으로 취합하는 데 주된 관심이 기울여진 나머지 그 요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함께 해야 하는지가 논의되지 못하고 있고 그 와중에 활동가들은 그저 실무자로서 각각의 요구안을 양식에 맞춰 인터넷에 올리는 데만 여념이 없는 현실적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다시 활동가 재생산의 문제로 귀결되어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3/ 장애해방 투쟁의 전망과 필요한 것.
간단하게 상반기 장애해방 투쟁의 전망을 정리해 보면, 에바다에서는 승전보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7년을 싸워온 투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는 장애 해방 투쟁 뿐만 아니라 이제 변화가 싹트고 있는 사회복지 현장 그리고 부천장애인복지관이나 한시련 복지관 노조와 같이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성폭력 문제로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장애인 이동권 연대가 활동력을 보존하고 있고, 작년의 흥행에 힘입어 더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는 데다 '이동권 연대'라면 전담을 두고 쫓아다니는 언론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예상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애 해방 투쟁의 주체들은 일이 끝나면 허탈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은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 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방안'에 대해 언급해 보자면 크게 대상과 내용의 견지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상은 이동권 연대를 비롯한 장애운동 단체에서 장애 해방 투쟁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로 하여금 더욱 폭넓은 사고와 고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각각의 단체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쟁점을 넘어서 다른 단체들에서는 어떤 쟁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서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고민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들의 제공이 절실하다.
다음으로 내용에 있어서는 이제는 보다 '사회적인' 내용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운동의 쟁점이 '이동권'과 같이 자신의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한 즉각적인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적인' 고민을 통해 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즉 사회적인 관계들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통해 장애인 운동 진영의 내·외적으로 실질적인 연대의 고리들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장애인 운동의 활동가들이 그야말로 장애해방투쟁의 주체들로 올곧이 설 수 있을 것이다. 장애해방투쟁은 지난 몇 년간 정말 치열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왔다. 그런 만큼 더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앞으로를 준비해 나갈 수 있기 바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