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에 맞서 어떤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반전투쟁은 결국 패배했는가? 근 5개월 동안 지구 곳곳의 거리에서 줄기차게 이어진 '반전'의 행진은 미국의 전쟁종료의 선언과 함께 끝나야 하는 것인가? 미군의 점령과 후세인 체제의 몰락으로 미군 스스로 '이라크 자유화'라고 부른 작전은 종료되었고, 반전투쟁이 미군의 침략과 점령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도 우리의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반전투쟁은 승리하지 못했을 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미군의 점령과 지배를 둘러싼 크고 작은 분쟁들은 계속될 것이다. 중동지역의 질서를 완전히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시리아를 새로운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라크에서 보여준 엄청난 군사력과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포를 활용하여,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잠재적 위협 세력들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려 할 것이고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계속해서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중동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이 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자국의 헤게모니와 초민족적 자본의 세계화된 네트워크를 보호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것이다. 지금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전쟁 ― 국가 자체의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국가 내부에서의 게릴라전, 그리고 저항세력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 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생존과 민주주의, 인권이 제국의 폭력 앞에 항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만큼 이에 맞선 저항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러한 장기적인 국면에서 보자면 이라크 침략전쟁을 두고 벌어진 제국과 세계 반전투쟁의 격돌은 이제 겨우 1 라운드를 마쳤을 뿐이다.
국제적인 반전투쟁의 배경
: 반세계화 운동의 성과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결합
이라크 침략전쟁처럼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시작하기도 전에 거대한 반전운동을 일으킨 전쟁은 일찍이 없었다. 2002년 9월 28일의 런던에서의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11월 9일 이라크 피렌체에서 유럽사회포럼 마지막 날 행사로 진행된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 100만인 행진'을 시작으로 수개월 동안 연인원 수천만 명이 참가한 반전투쟁이 계속되었다. 2월 15일에는 600만-1200만 명이 참가한 국제적인 반전 집회가 개최되었고 국제적인 동시 반전행진은 3월 15일, 4월 12일로 계속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9·11 직후 좌파단체, 평화운동가, 무슬림 공동체 등이 결성한 <전쟁중단동맹>(the Stop the War Coalition)이 중심이 되어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이 진행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스페인의 '학생동맹(Sindicato de Estudiantes)'은 3월과 4월 내내 시위 때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 80-100만을 조직했고 미국의 대학생들 역시 동맹휴업 등으로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철도와 항만에서 미군의 군사물자 수송을 저지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 이어졌고, 스페인의 대표적 노동조합 연맹체인 UGT와 CGT 산하 노조들은 국제행동의 날에 맞춰 24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고 대거 시위에 참여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도 학생과 노동자가 시위의 큰 축을 이루었다. 민간부문노총(GSEE)과 공공부문노총(ADEDI)은 4월 3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진행해, 이날 아테네에서 개최된 시위에 100만이 운집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제적인 수준에서 대규모의 반전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유엔결의에 근거하지 않아 최소한의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 폭발적인 반전운동의 전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유엔 창설 이후 미국은 유엔의 결의 없이 수많은 침략과 정권전복을 시도했지만 이번처럼 폭발적인 반전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전쟁의 참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될 뿐 아니라 거대 방송사의 미국 편향적인 보도가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의 보도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전쟁 이전부터 광범위한 반전운동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 역시 미흡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수준에서 전쟁 이전부터 완강한 반전운동이 개시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대규모 국제 반전집회가 열리게 되는 맥락을 추적해 보면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2월 15일 대규모 국제반전공동행동은 유럽사회포럼 행사에서 제안이 되었으며, 카이로선언과 3차 세계사회포럼을 거치며 전지구적인 집회로 확장되었다. 특히 올해 초에 열린 제3회 세계사회포럼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맞서 세계사회운동의 연대를 실현할 것'을 주된 의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즉, 지난 몇년 간 점차 확산되고 성숙되어 온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들이 빠르게 국제적인 반전행동을 조직하는 기능을 했으며 선도적으로 투쟁을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제국주의가 결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인식과 공유가 반신자유주의 시위에 참여했던 활동가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반전 시위를 조직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반전투쟁은 '전쟁반대(중단)'이라는 시급한 구호 아래 광범위한 대중들이 결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원인이 다소 '석유'라는 측면에서 제한된 범위 내에 폭로되기는 했지만 몇몇 사례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주체들이 반전운동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이러한 노력이 광범위한 대중들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이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후 국내적인 수준에서 복지국가의 형성과 국제적인 수준에서 민족자결권의 개념에 입각한 민족국가간 체계로 노동자들의 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저항을 무마하는데 성공했던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최후의 신호였다. 이론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 전쟁에 끔찍하게 잘못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그것과 더불어 무엇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할 것이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대중적 불만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조직화는 바로 정확하게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에 대해 취했던 태도에서 드러났다. 유엔의 결의 없는 침략에 반대한 프랑스-독일의 연합은 한 달 전에 있었던 프랑스-독일 정상 회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유럽연합의 정치적-경제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미국의 일방적 독주로 인하여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이었다. 세계화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적 개입전략은 이류의 전(前) 세계 열강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지위를 위협한다. 영국 정부가 미국의 전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면, 독일-프랑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불안정성의 시대를 '유럽 연합'이라는 지역적 블록의 형성을 통해 극복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독일-프랑스의 구상과 미국과의 갈등이 향후 어떠한 수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계속될 것인지는 다소 불확정적이기는 하나 전쟁의 조기 종료가 가시화되면서 미국의 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우회적으로라도 강화하는 등의 모습에서 그 폭과 수위가 크지 않을 것이 확인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결과를 불러 온 것과 다르게,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초강제국인 미국의 독주 속에 주변부에서의 크고 작은 분쟁들의 출현과 미국에 의한 군사적 개입의 강화와 독주로 귀결되고 있는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세계적 규모의 반전운동은 폭탄과 달러를 앞세워 독주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과 친숙하던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른 불안과 공포에, 98년 시애틀 투쟁 이후 점차 성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의 흐름이 결합되면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전쟁반대/부시반대"라는 단일한 구호 아래 다양한 입장을 가진 흐름들, 다양한 조건에 처한 대중들이 결집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유사한 대중들의 불안과 공포가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엄청난 전쟁 찬성과 부시 지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수준에 달한 미국 내 총기사고의 문제의 원인을 파헤치고자 하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는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미국인의 '공포'가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지적한다. 공포를 조장하여 이득을 챙기는 것은 군산복합체와 정치가들이며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인은 점점 더 타인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 정계를 휩쓸고 있는 신보주의의 열풍의 배경에는 몰락하는 제국에 대한 위기감이 놓여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쟁반대/부시반대"라는 구호와 직접행동의 과정에서 형성된 주체들이 이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전쟁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전선이 이후 어떻게 진전할 것인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쟁반대의 구호로 다양한 대중들이 공동의 행동을 했다는 정치적 경험에 기반하여 전쟁을 통해 드러난 세계의 변화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조직하고 반전운동의 성과를 올바른 방향으로 갈무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반대, 파병저지 투쟁은 어디에서 걸려 넘어 졌는가?
: 감성적 반미와 도덕적 평화에 기반한 반전투쟁의 한계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평가하면서 전진의 방향을 모색해보자. 유럽 등에 비해 남한에서는 이라크 문제 자체의 사회적인 쟁점화가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규모 면에서 볼 때 반전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2월 15일 서울에서는 불과 2,000명 정도가 시위에 참여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부터 조금씩 반전운동의 흐름이 고조되어 한국군 파병안이 쟁점이 되기 시작한 3월 22일 서울에서 7-8천명이 모인 집회가 있었고, 파병안 국회처리를 앞두고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전쟁과 파병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진행되었다. 파병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와 여야 정당은 파병안 처리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국익'이니 '전략적 선택'이니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포장하면서 파병반대의 공세를 애써 피하려 하였고, 정부와 여야 정당은 칼자루를 서로에게 넘기느라 급급했고 2번이나 국회 통과가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계기로 대통령이 최종적인 정치적 부담을 지는 모양새를 연출하고서야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남한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반전투쟁이 벌어진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 반전의 물결이 세계를 뒤흔든 베트남전쟁 당시 남한은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전투쟁이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적으로 형성되었던 '반전'과 '평화'의 열풍과 정치적 경험들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만큼의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80%에 육박하는 전쟁반대의 여론을 이라크 침략전쟁과 남한 정부의 한국군 파병을 저지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힘으로 형성해 내는 데에는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단지 파병저지 투쟁이라는 반전투쟁의 일부분에서의 한계가 아니라 남한의 반전투쟁 전반의 한계인데, 실상 파병문제가 남한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핵심 쟁점이었을 뿐 아니라 남한의 반전투쟁이 실질적으로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남한 사회의 특수한 조건이 작용하였다. 작년에 불거져 나온 북한의 핵의혹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고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결정함에 있어 가장 주요한 변수가 되었다.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사실 여부와는 별도로)이 전해지고 있고 미국은 여차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하며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조장시켰다. 더구나 TV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참혹한 전쟁의 광경은 이를 지켜보는 자신의 위치 역시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과 만나며 더욱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다. 압도적인 현실의 힘과 대면하여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자기보호의 감정 앞에, 막연한 평화의 주장은 '이상적인 것', '시효만료된 것'으로 비추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파병에 대한 현실적 지지가 기반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허구적 명분 따위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생산하는 공포와 불안이다.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나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욕망,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인 반전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대중적인 불안감이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또다른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북한의 핵의혹 문제와 이에 따른 한반도의 특수한 정세로 인하여, 미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불안감,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인도주의적 명분만으로 전쟁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적 투쟁이 형성되기 어려운 조건이 객관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전쟁반대의 주장과 논리는 이러한 조건을 넘어서는데 실패했다.
'반미'의 가능성과 위험성
일각에서는 '반미'의 주장이 너무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오히려 노무현 식 '국익' 논리에 취약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 대한 반대는 민족주의적 경향의 강화, 심지어는 '국익'을 우선하는 전체주의적인 요소의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논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반미에 대응하여 반자본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거나 반미가 아닌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식의 흐름이 대체로 이러한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국제적 반전운동에 내재된 '반미' 이데올로기의 양면성을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현재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민족적 감성과 결합되는 바로 그 속에 대중들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우선 현재의 신중세적 무질서는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위기, 즉 중심부 국가 간의 제국주의전쟁과 식민지해방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고안한 민족국가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주의 프로젝트가 냉전의 해체와 더불어 종료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 시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표상된 자본주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수행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민족-국가간체계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는 계기 속에서 비판의 초점이 미국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을 제국(Empire)이라고 규정하건 혹은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규정하건 말이다. 따라서 반미 일반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 비판'의 실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런 정세에서 중심부에서의 민족국가의 위기는, 정치적·문화적 보편주의들로서 나타나던 중심부의 지배적 민족주의(따라서 잘 보이지 않는)가 매우 방어적이고 때로는 공격적(따라서 잘 보이게 되는)인 형태로 이행하는 것과 체계적으로 결부된다. 부시 대통령과 매파들의 발언들을 보라. 이들은 미국의 이익과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는 주장들 속에서 인종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인 우월의식과 배타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구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계기들 속에서 그러한 민족주의의 끔찍한 폭력은 더욱 증폭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이를 '모방'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배타성에 대한 반성과 내재적 비판 그리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특히 지구적인 규모로 동시에 벌어지는 공동의 행동들 속에서 형성되는 '투쟁하는 동시대인'으로서의 경험과 일체감들은 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저항의 보편주의'가 어디로 수렴될 것인가는 매우 불확정적이다.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저항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그 자체로 지금의 민족국가(간) 체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더욱 점증하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미국인들, 혹은 세계인들의 공포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민족-국가가 붕괴된 곳에서는 국가의 무장력의 독점 역시 붕괴되며, 그 결과 '사적'인 무장집단이 이를 대체하여 인종·종교에 따른 가상적 공동체를 경계선으로 새로운 전투부대들이 형성되고 있으며, 일상적이고 극단적인 폭력과 잔혹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전쟁은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상업과 금융 네트워크, 수송과 에너지, 환경 등 세계의 주요 체계들의 안정과 원활한 작동의 유지"를 위해 우선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 따라 국가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에서 경쟁의 격화와 국가의 붕괴에 대한 반응으로, 종족적·인종적 또는 종교적 노선에 따라 '새롭지만 오래된' 가상의 공동체를 창조하거나 온존하는 것이 국경 또는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계급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지만, 舊유고슬라비아의 경험이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손쉬운 처방은 병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쁜 치료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권리,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자격을 의미하는 '시민성'의 범위를 민족주의의 배타적 경계를 넘어 확장시켜 나가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영국의 전쟁 저지 연합에 무슬림 공동체가 포함되어 있고, 미국의 반전운동이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내걸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흐름과 반전투쟁이 결합되지 못했는가?
한편,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세계화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들과 주체들이 반전투쟁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비해,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일차적으로는 계획의 부재와 의식적 조직화의 미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중요한 동력을 형성해 온 민주노총, 전농, 학생 등의 기층 대중조직과 공동투쟁의 흐름을 형성해 온 전국민중연대(준)에서 반전투쟁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주도해 온 주체들이 반전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 하에 계속되어 온 투쟁들이 방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구조조정 저지, WTO 개방 반대 등의 구체적인 현안을 중심으로 한 투쟁에서 형성되는 주체들 역시 이 투쟁들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비판의 맥락에서 구성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을 때 반전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합은 체제의 위기가 현실 속에서 출현하는 정세적 계기 속에서 각각의 투쟁의 정치적 수준을 상승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민중운동 진영에 만연한 투쟁과제에 대한 형식적 분류와 실용적인 역할분담의 논리도 여기에 한몫 했다. '반전-평화'라는 독립적인 투쟁의 영역과 주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 계기에서 '반전-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농민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이 있는 것이다. 또한 민중연대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만을 담당하는 조직이고 반전투쟁을 담당하는 공동투쟁조직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민중연대 역시 반전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주저했고, 민중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민중운동 단위들 역시 반전투쟁은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이나 여중생 범대위 등의 어떤 전담기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성을 의식적으로/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등의 사안별 연대기구를 통해서 전선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공통점을 가지고 광범위한 연대를 추구하면서도 투쟁을 전진시키거나 혹은 급진화시키기 위한 독자적인 실천을 모색해야 했고 그럴 수 있는 조직적 구심이 있어야 했고 그런 역할을 전국민중연대가 수행해야 했다.
이후 반전투쟁,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이라크의 자유화(해방)' 작전은 이제 '점령과 지배'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조기 승전에 고무된 부시 행정부 매파 세력들은 곧장 시리아에 대해 위협을 가하면서 중동 전역에 대한 개입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침략과 학살) 중단의 의미를 단순한 군사행동의 중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미국의 이라크 및 중동에 대한 점령반대의 의미로 확장시켜야 한다. 이라크 근방에서 지속될 군사적 위협과 소탕작전의 실체를 폭로하는 한편, 재건,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외피를 띠고 드러날 이후 점령행위의 실체를 폭로해야 한다.
지난 미국의 아프간 침략전쟁에서도 미군이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사실상 아직까지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도 미군은 아프간에서 수천명의 지상군을 동원해 남부 칸다하르와 남동부에서 '용맹한 타격'과 '사막의 사자'라는 이름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이 내세운 과도정부가 종파적으로 운영되면서 보복과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미군이 '잔당 소탕'의 명분으로 무차별적 공중폭격과 수색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이 계속되면서 그에 대한 저항도 다시 거세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미군은 바그다드 점령을 계기로 더욱 잔인하게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일 것이며, 이는 더 많은 이라크인의 희생을 낳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과 이후 재건활동이 마치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 인들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친미정부를 세우고 석유자원 등 일부 거대 기업들의 이권이 걸려 있는 부문을 장악하고, 독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인도주의적 원조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석유-식량 프로그램이란 이라크 민중의 것이 되어야 할 석유를 팔아 그 돈으로 식량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10년 간의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으로 이라크 민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범죄자가 인도주의의 가면을 쓰고 자원을 약탈하여 남은 이윤의 일부를 되돌려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원조가 아니라 날강도 같은 행위다. 이런 미국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어떠한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이나 재건 사업도 결국은 이라크인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를 위한 주요한 투쟁의 매개 고리로 한국군 파병저지 투쟁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4월 12일 국방부는 이라크전 파병 의료부대(제마부대, 100명)과 건설공병부대(서희부대, 573명)를 4월 17일 선발대 30명, 4월 30일 제1제대 300여명, 5월 14일 제2제대 300여명을 각각 파견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파병에 대해 많은 시위가 있었으나 복구사업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이라크전 파병이 전쟁 참여에서 복구라는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된 만큼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재차 파병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파병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들의 허구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령과 지배의 실체에 대한 반대투쟁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한편 이번 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기반으로 중동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당장에 군사적인 대응을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시리아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북한 역시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쉽게 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적 해결'의 주장이 결국 한-미동맹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들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전쟁을 통해 럼스펠드식 '속전속결론'이 현실화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래한미동맹회의에서 거론된 주한 미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는 자국군을 북한의 장거리포와 다연장포 사정권 밖으로 빼내는 대신 전술핵을 포함한 본격적인 공격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일련의 군사적 긴장을 강화하는 행위를 폭로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물론 지금의 국면은 다시 전쟁이 가시적으로 진행되던 국면에 비해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레닌은 '전쟁이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언급하며 전쟁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여 전쟁을 '정치화'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선언과 종전 이후 근거없이 떠도는 낙관적 관측에 맞서 우리는 전쟁 그 자체와, 전쟁을 둘러싸고 형성된 대중의 저항과 그 주체들을 재-정치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반전투쟁의 주체들을 세계화된 공간 속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인 폭력의 문제들과 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PSSP
그러나 미국의 전쟁도 우리의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반전투쟁은 승리하지 못했을 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미군의 점령과 지배를 둘러싼 크고 작은 분쟁들은 계속될 것이다. 중동지역의 질서를 완전히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시리아를 새로운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라크에서 보여준 엄청난 군사력과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포를 활용하여,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잠재적 위협 세력들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려 할 것이고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계속해서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중동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이 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자국의 헤게모니와 초민족적 자본의 세계화된 네트워크를 보호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것이다. 지금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전쟁 ― 국가 자체의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국가 내부에서의 게릴라전, 그리고 저항세력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 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생존과 민주주의, 인권이 제국의 폭력 앞에 항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만큼 이에 맞선 저항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러한 장기적인 국면에서 보자면 이라크 침략전쟁을 두고 벌어진 제국과 세계 반전투쟁의 격돌은 이제 겨우 1 라운드를 마쳤을 뿐이다.
국제적인 반전투쟁의 배경
: 반세계화 운동의 성과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결합
이라크 침략전쟁처럼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시작하기도 전에 거대한 반전운동을 일으킨 전쟁은 일찍이 없었다. 2002년 9월 28일의 런던에서의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11월 9일 이라크 피렌체에서 유럽사회포럼 마지막 날 행사로 진행된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 100만인 행진'을 시작으로 수개월 동안 연인원 수천만 명이 참가한 반전투쟁이 계속되었다. 2월 15일에는 600만-1200만 명이 참가한 국제적인 반전 집회가 개최되었고 국제적인 동시 반전행진은 3월 15일, 4월 12일로 계속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9·11 직후 좌파단체, 평화운동가, 무슬림 공동체 등이 결성한 <전쟁중단동맹>(the Stop the War Coalition)이 중심이 되어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이 진행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스페인의 '학생동맹(Sindicato de Estudiantes)'은 3월과 4월 내내 시위 때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 80-100만을 조직했고 미국의 대학생들 역시 동맹휴업 등으로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철도와 항만에서 미군의 군사물자 수송을 저지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 이어졌고, 스페인의 대표적 노동조합 연맹체인 UGT와 CGT 산하 노조들은 국제행동의 날에 맞춰 24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고 대거 시위에 참여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도 학생과 노동자가 시위의 큰 축을 이루었다. 민간부문노총(GSEE)과 공공부문노총(ADEDI)은 4월 3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진행해, 이날 아테네에서 개최된 시위에 100만이 운집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제적인 수준에서 대규모의 반전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유엔결의에 근거하지 않아 최소한의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 폭발적인 반전운동의 전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유엔 창설 이후 미국은 유엔의 결의 없이 수많은 침략과 정권전복을 시도했지만 이번처럼 폭발적인 반전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전쟁의 참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될 뿐 아니라 거대 방송사의 미국 편향적인 보도가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의 보도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전쟁 이전부터 광범위한 반전운동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 역시 미흡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국제적인 수준에서 전쟁 이전부터 완강한 반전운동이 개시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대규모 국제 반전집회가 열리게 되는 맥락을 추적해 보면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2월 15일 대규모 국제반전공동행동은 유럽사회포럼 행사에서 제안이 되었으며, 카이로선언과 3차 세계사회포럼을 거치며 전지구적인 집회로 확장되었다. 특히 올해 초에 열린 제3회 세계사회포럼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맞서 세계사회운동의 연대를 실현할 것'을 주된 의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즉, 지난 몇년 간 점차 확산되고 성숙되어 온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들이 빠르게 국제적인 반전행동을 조직하는 기능을 했으며 선도적으로 투쟁을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제국주의가 결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인식과 공유가 반신자유주의 시위에 참여했던 활동가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반전 시위를 조직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반전투쟁은 '전쟁반대(중단)'이라는 시급한 구호 아래 광범위한 대중들이 결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원인이 다소 '석유'라는 측면에서 제한된 범위 내에 폭로되기는 했지만 몇몇 사례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주체들이 반전운동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이러한 노력이 광범위한 대중들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이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후 국내적인 수준에서 복지국가의 형성과 국제적인 수준에서 민족자결권의 개념에 입각한 민족국가간 체계로 노동자들의 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저항을 무마하는데 성공했던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최후의 신호였다. 이론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 전쟁에 끔찍하게 잘못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그것과 더불어 무엇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할 것이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대중적 불만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조직화는 바로 정확하게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에 대해 취했던 태도에서 드러났다. 유엔의 결의 없는 침략에 반대한 프랑스-독일의 연합은 한 달 전에 있었던 프랑스-독일 정상 회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유럽연합의 정치적-경제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미국의 일방적 독주로 인하여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이었다. 세계화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적 개입전략은 이류의 전(前) 세계 열강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지위를 위협한다. 영국 정부가 미국의 전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면, 독일-프랑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불안정성의 시대를 '유럽 연합'이라는 지역적 블록의 형성을 통해 극복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독일-프랑스의 구상과 미국과의 갈등이 향후 어떠한 수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계속될 것인지는 다소 불확정적이기는 하나 전쟁의 조기 종료가 가시화되면서 미국의 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우회적으로라도 강화하는 등의 모습에서 그 폭과 수위가 크지 않을 것이 확인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결과를 불러 온 것과 다르게,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초강제국인 미국의 독주 속에 주변부에서의 크고 작은 분쟁들의 출현과 미국에 의한 군사적 개입의 강화와 독주로 귀결되고 있는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세계적 규모의 반전운동은 폭탄과 달러를 앞세워 독주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과 친숙하던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른 불안과 공포에, 98년 시애틀 투쟁 이후 점차 성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의 흐름이 결합되면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전쟁반대/부시반대"라는 단일한 구호 아래 다양한 입장을 가진 흐름들, 다양한 조건에 처한 대중들이 결집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유사한 대중들의 불안과 공포가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엄청난 전쟁 찬성과 부시 지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수준에 달한 미국 내 총기사고의 문제의 원인을 파헤치고자 하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는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미국인의 '공포'가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지적한다. 공포를 조장하여 이득을 챙기는 것은 군산복합체와 정치가들이며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인은 점점 더 타인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미 정계를 휩쓸고 있는 신보주의의 열풍의 배경에는 몰락하는 제국에 대한 위기감이 놓여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쟁반대/부시반대"라는 구호와 직접행동의 과정에서 형성된 주체들이 이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전쟁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전선이 이후 어떻게 진전할 것인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쟁반대의 구호로 다양한 대중들이 공동의 행동을 했다는 정치적 경험에 기반하여 전쟁을 통해 드러난 세계의 변화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조직하고 반전운동의 성과를 올바른 방향으로 갈무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반대, 파병저지 투쟁은 어디에서 걸려 넘어 졌는가?
: 감성적 반미와 도덕적 평화에 기반한 반전투쟁의 한계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평가하면서 전진의 방향을 모색해보자. 유럽 등에 비해 남한에서는 이라크 문제 자체의 사회적인 쟁점화가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규모 면에서 볼 때 반전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2월 15일 서울에서는 불과 2,000명 정도가 시위에 참여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직후부터 조금씩 반전운동의 흐름이 고조되어 한국군 파병안이 쟁점이 되기 시작한 3월 22일 서울에서 7-8천명이 모인 집회가 있었고, 파병안 국회처리를 앞두고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전쟁과 파병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진행되었다. 파병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와 여야 정당은 파병안 처리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국익'이니 '전략적 선택'이니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포장하면서 파병반대의 공세를 애써 피하려 하였고, 정부와 여야 정당은 칼자루를 서로에게 넘기느라 급급했고 2번이나 국회 통과가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계기로 대통령이 최종적인 정치적 부담을 지는 모양새를 연출하고서야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남한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반전투쟁이 벌어진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 반전의 물결이 세계를 뒤흔든 베트남전쟁 당시 남한은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전투쟁이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적으로 형성되었던 '반전'과 '평화'의 열풍과 정치적 경험들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만큼의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80%에 육박하는 전쟁반대의 여론을 이라크 침략전쟁과 남한 정부의 한국군 파병을 저지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힘으로 형성해 내는 데에는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단지 파병저지 투쟁이라는 반전투쟁의 일부분에서의 한계가 아니라 남한의 반전투쟁 전반의 한계인데, 실상 파병문제가 남한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핵심 쟁점이었을 뿐 아니라 남한의 반전투쟁이 실질적으로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남한 사회의 특수한 조건이 작용하였다. 작년에 불거져 나온 북한의 핵의혹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고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결정함에 있어 가장 주요한 변수가 되었다.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사실 여부와는 별도로)이 전해지고 있고 미국은 여차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하며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조장시켰다. 더구나 TV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참혹한 전쟁의 광경은 이를 지켜보는 자신의 위치 역시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과 만나며 더욱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다. 압도적인 현실의 힘과 대면하여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자기보호의 감정 앞에, 막연한 평화의 주장은 '이상적인 것', '시효만료된 것'으로 비추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파병에 대한 현실적 지지가 기반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허구적 명분 따위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생산하는 공포와 불안이다.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나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욕망,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인 반전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대중적인 불안감이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또다른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북한의 핵의혹 문제와 이에 따른 한반도의 특수한 정세로 인하여, 미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불안감,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인도주의적 명분만으로 전쟁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적 투쟁이 형성되기 어려운 조건이 객관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전쟁반대의 주장과 논리는 이러한 조건을 넘어서는데 실패했다.
'반미'의 가능성과 위험성
일각에서는 '반미'의 주장이 너무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오히려 노무현 식 '국익' 논리에 취약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 대한 반대는 민족주의적 경향의 강화, 심지어는 '국익'을 우선하는 전체주의적인 요소의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논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반미에 대응하여 반자본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거나 반미가 아닌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식의 흐름이 대체로 이러한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국제적 반전운동에 내재된 '반미' 이데올로기의 양면성을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현재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지금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민족적 감성과 결합되는 바로 그 속에 대중들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우선 현재의 신중세적 무질서는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위기, 즉 중심부 국가 간의 제국주의전쟁과 식민지해방운동 및 사회주의 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고안한 민족국가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주의 프로젝트가 냉전의 해체와 더불어 종료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 시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표상된 자본주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수행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민족-국가간체계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는 계기 속에서 비판의 초점이 미국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을 제국(Empire)이라고 규정하건 혹은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규정하건 말이다. 따라서 반미 일반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 비판'의 실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런 정세에서 중심부에서의 민족국가의 위기는, 정치적·문화적 보편주의들로서 나타나던 중심부의 지배적 민족주의(따라서 잘 보이지 않는)가 매우 방어적이고 때로는 공격적(따라서 잘 보이게 되는)인 형태로 이행하는 것과 체계적으로 결부된다. 부시 대통령과 매파들의 발언들을 보라. 이들은 미국의 이익과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는 주장들 속에서 인종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인 우월의식과 배타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구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계기들 속에서 그러한 민족주의의 끔찍한 폭력은 더욱 증폭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이를 '모방'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배타성에 대한 반성과 내재적 비판 그리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특히 지구적인 규모로 동시에 벌어지는 공동의 행동들 속에서 형성되는 '투쟁하는 동시대인'으로서의 경험과 일체감들은 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저항의 보편주의'가 어디로 수렴될 것인가는 매우 불확정적이다.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저항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그 자체로 지금의 민족국가(간) 체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더욱 점증하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미국인들, 혹은 세계인들의 공포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민족-국가가 붕괴된 곳에서는 국가의 무장력의 독점 역시 붕괴되며, 그 결과 '사적'인 무장집단이 이를 대체하여 인종·종교에 따른 가상적 공동체를 경계선으로 새로운 전투부대들이 형성되고 있으며, 일상적이고 극단적인 폭력과 잔혹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전쟁은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상업과 금융 네트워크, 수송과 에너지, 환경 등 세계의 주요 체계들의 안정과 원활한 작동의 유지"를 위해 우선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 따라 국가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에서 경쟁의 격화와 국가의 붕괴에 대한 반응으로, 종족적·인종적 또는 종교적 노선에 따라 '새롭지만 오래된' 가상의 공동체를 창조하거나 온존하는 것이 국경 또는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계급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지만, 舊유고슬라비아의 경험이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손쉬운 처방은 병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쁜 치료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권리,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자격을 의미하는 '시민성'의 범위를 민족주의의 배타적 경계를 넘어 확장시켜 나가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영국의 전쟁 저지 연합에 무슬림 공동체가 포함되어 있고, 미국의 반전운동이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내걸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흐름과 반전투쟁이 결합되지 못했는가?
한편,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세계화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들과 주체들이 반전투쟁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비해, 남한에서의 반전투쟁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일차적으로는 계획의 부재와 의식적 조직화의 미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중요한 동력을 형성해 온 민주노총, 전농, 학생 등의 기층 대중조직과 공동투쟁의 흐름을 형성해 온 전국민중연대(준)에서 반전투쟁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주도해 온 주체들이 반전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 하에 계속되어 온 투쟁들이 방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구조조정 저지, WTO 개방 반대 등의 구체적인 현안을 중심으로 한 투쟁에서 형성되는 주체들 역시 이 투쟁들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비판의 맥락에서 구성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을 때 반전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합은 체제의 위기가 현실 속에서 출현하는 정세적 계기 속에서 각각의 투쟁의 정치적 수준을 상승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민중운동 진영에 만연한 투쟁과제에 대한 형식적 분류와 실용적인 역할분담의 논리도 여기에 한몫 했다. '반전-평화'라는 독립적인 투쟁의 영역과 주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 계기에서 '반전-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농민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이 있는 것이다. 또한 민중연대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만을 담당하는 조직이고 반전투쟁을 담당하는 공동투쟁조직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민중연대 역시 반전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주저했고, 민중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민중운동 단위들 역시 반전투쟁은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이나 여중생 범대위 등의 어떤 전담기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성을 의식적으로/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등의 사안별 연대기구를 통해서 전선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공통점을 가지고 광범위한 연대를 추구하면서도 투쟁을 전진시키거나 혹은 급진화시키기 위한 독자적인 실천을 모색해야 했고 그럴 수 있는 조직적 구심이 있어야 했고 그런 역할을 전국민중연대가 수행해야 했다.
이후 반전투쟁,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이라크의 자유화(해방)' 작전은 이제 '점령과 지배'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조기 승전에 고무된 부시 행정부 매파 세력들은 곧장 시리아에 대해 위협을 가하면서 중동 전역에 대한 개입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침략과 학살) 중단의 의미를 단순한 군사행동의 중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미국의 이라크 및 중동에 대한 점령반대의 의미로 확장시켜야 한다. 이라크 근방에서 지속될 군사적 위협과 소탕작전의 실체를 폭로하는 한편, 재건,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외피를 띠고 드러날 이후 점령행위의 실체를 폭로해야 한다.
지난 미국의 아프간 침략전쟁에서도 미군이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사실상 아직까지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도 미군은 아프간에서 수천명의 지상군을 동원해 남부 칸다하르와 남동부에서 '용맹한 타격'과 '사막의 사자'라는 이름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이 내세운 과도정부가 종파적으로 운영되면서 보복과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미군이 '잔당 소탕'의 명분으로 무차별적 공중폭격과 수색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이 계속되면서 그에 대한 저항도 다시 거세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미군은 바그다드 점령을 계기로 더욱 잔인하게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일 것이며, 이는 더 많은 이라크인의 희생을 낳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과 이후 재건활동이 마치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 인들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친미정부를 세우고 석유자원 등 일부 거대 기업들의 이권이 걸려 있는 부문을 장악하고, 독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인도주의적 원조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석유-식량 프로그램이란 이라크 민중의 것이 되어야 할 석유를 팔아 그 돈으로 식량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10년 간의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으로 이라크 민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범죄자가 인도주의의 가면을 쓰고 자원을 약탈하여 남은 이윤의 일부를 되돌려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원조가 아니라 날강도 같은 행위다. 이런 미국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어떠한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이나 재건 사업도 결국은 이라크인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를 위한 주요한 투쟁의 매개 고리로 한국군 파병저지 투쟁을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4월 12일 국방부는 이라크전 파병 의료부대(제마부대, 100명)과 건설공병부대(서희부대, 573명)를 4월 17일 선발대 30명, 4월 30일 제1제대 300여명, 5월 14일 제2제대 300여명을 각각 파견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파병에 대해 많은 시위가 있었으나 복구사업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이라크전 파병이 전쟁 참여에서 복구라는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된 만큼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재차 파병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파병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들의 허구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령과 지배의 실체에 대한 반대투쟁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한편 이번 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기반으로 중동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당장에 군사적인 대응을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시리아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북한 역시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쉽게 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적 해결'의 주장이 결국 한-미동맹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들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전쟁을 통해 럼스펠드식 '속전속결론'이 현실화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래한미동맹회의에서 거론된 주한 미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는 자국군을 북한의 장거리포와 다연장포 사정권 밖으로 빼내는 대신 전술핵을 포함한 본격적인 공격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일련의 군사적 긴장을 강화하는 행위를 폭로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물론 지금의 국면은 다시 전쟁이 가시적으로 진행되던 국면에 비해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레닌은 '전쟁이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언급하며 전쟁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여 전쟁을 '정치화'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선언과 종전 이후 근거없이 떠도는 낙관적 관측에 맞서 우리는 전쟁 그 자체와, 전쟁을 둘러싸고 형성된 대중의 저항과 그 주체들을 재-정치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반전투쟁의 주체들을 세계화된 공간 속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인 폭력의 문제들과 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