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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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옵바와 화로

카프 활동 당시의 임화 시를 중심으로

김예니 | 편집부장
카프문학이 온전한 평가의 대상이 되고 그 문학적 가치와 문학사적 의의가 밝혀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소위 순수문학을 중심으로 이어진 주류 시인과 유파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왜곡됐었다. 대표적으로 조연현은 시문학파를 중심에 놓고 시단을 평가하면서 문학사를 몇 몇 유파가 이어지는 단선적인 구조로 파악하고 카프를 비롯한 문단에 포괄할 수 없는 시인들을 배제하였고, 서정주는 '한국의 현대시'에서 사회주의 시운동은 무모한 횡포와 추잡안가한 예술품으로 많은 시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하면서 순수문학은 이에 반기를 든 유파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다분히 순수문학을 중심으로 문단을 재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기서 순수문학은 하나의 비평용어가 아니라 1920-30년대 당시 사회주의 문학,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반대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순수문학 또한 무척 정치적인 입장을 중심으로 사용된 세력화의 한 도구라는 것인데 핵심은 순수시를 묶어낼 수 있는 내용과 바운더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카프문학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박용철은 '시문학' 창간사에서 시란 한낱 존재라고 말하면서 시가 어떤 효용적 가치를 갖는 것을 반대한다. 시는 시일 뿐 그 이상일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리고 '시란 고처라는 인식'은 '평상인 보다 남달리 고귀하고 예민한 심정'을 가진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과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이런 인식은 박용철을 비롯하여 시문학파가 가지고 있는 주된 인식의 전제였다. 하지만 당시는 일제식민 치하였다. 그리고 당대 문인은 소위 지식인이었다. 근대이념으로 계몽주의가 당대 지식인들에게 핵심 화두였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입장과 실천을 강제 받는 사회적 조건이 있었다.
바로 이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카프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시문학파는 바로 역사적으로 강제되는 화두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시창작 활동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획득하고자 했던 문인들의 집합이었다고 한다면, 카프는 당대의 역사적 화두로부터 자유롭기를 거부하고 정면 대결하고자 했던 집단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카프는 예술과 사회 사이의 연관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식의 전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카프는 대중과는 구별되는 선민으로써의 시인이 아니라 계몽의 주체로서 시인을 전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몇 가지 평가가 가능하다. 우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몽'에 대한 선입견을 털어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계몽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식을 갖지 못한 자를 개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진화론이고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의 논리였다. 계몽은 사회의 진보를 위한 교육이 그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상이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누구나 교육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에 들어와 생긴 인식이라 할 것이다. 하기에 또한 이 과정에 제기되는 것은 예술과 대중의 관계, 그리고 지식인/시인과 대중의 관계의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도구가 아니라 매개체가 된다. 한 사람이 예술을 한다는 것이 특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예술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창작을 하고 어떻게 대중에게 지식/시작품을 전달하며 어떻게 대중으로부터 배울 것인가. 문제는 직접적이고 목적의식적인 교훈성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대중과 교감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임화를 시인으로써 조명하고 싶다. 시인보다는 신문학사를 연구한 비평가로 더욱 유명한 임화의 카프활동 당시의 시작을 중심으로 시인 임화를 연구하고 앞서 카프문학을 중심으로 평가했던 내용을 증명하고자 한다. 물론 임화에 대한 연구가 카프문학 일반의 평가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카프문학 내에서도 다양한 조류가 있었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적하고자 하는 핵심은 '얼마나 올바른 내용의 논쟁이었나'가 아니라 이 논쟁의 근저에 흐르는 바탕이 대중과 시인의 만남, 그리고 '그 매개체로써 시를 어떻게 창작하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하지만 굳이 임화를 다루는 이유는 카프의 서기장이라는 직함과 카프에서 책임감 있는 활동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카프당시 그가 펼쳤던 시작 활동, 특히 단편서사시라 불리는 시작을 중심으로 그가 시안에 배치한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통해 카프문인이었던 임화가 생각한 대중과 시인의 관계, 대중과 예술의 관계를 중심으로 임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임화가 계급사상을 기반으로 대중과 시인,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그것을 시로 형상화했던 시기는 카프활동을 왕성히 하던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이다. 그 첫 시도는 '曇-一九二七'(예술운동 창간호, 1927. 11)인데 이어서 그는 '젊은 巡邏의 편지'(조선지광, 1928. 4), '네 街里의 順伊'(조선지광, 1929. 1), '우리 옵바와 火爐'(조선지광, 1929.2), '어머니'(조선지광, 1929. 4), '봄이 오는구나'(조선문예, 1929. 5), '다업서젓는가'(조선지광, 1929. 8), '病監에서 죽은 녀석'(무산자, 1929.8), '雨傘밧은 요꼬하마의 埠頭'(조선지광, 1929. 9), '洋襪속의 편지'(조선지광, 1930. 3), '제비'(조선지광, 1930. 6), '오늘밤 아버지는 퍼렁이불을 덮고'(제일록, 1933. 3), '한톨의 벼알도'(동아일보, 1933. 9. 28) 등 모두 13편의 시에서 계급적 관점을 일관되게 노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임화가 아나키스트들과의 논쟁을 거쳐 카프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후이고 대중화논쟁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카프의 소장파들은 문예운동의 방향전환론을 통하여 문학이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한 부분으로 되어야 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제는 주객관적인 정세파악을 기초로 하여 방향전환론의 구체적인 수행전술을 세우는 것이 소장파들의 제일의 과제였다. 이러한 과제에 입각한 논쟁이 대중화논쟁이다.
1924년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프로문학운동을 탄압하는 객관적인 요소였다. 소장파의 급진적인 정치주의는 때론 이상에 경도되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혁명적 낭만주의로 이해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많은 의식적인 요소들에 의해 그 창작의 과정에 많은 질곡을 낳았다. 어떤 이론에 입각하여 그에 합당한 창작을 하겠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고 그 시도 자체로 일정한 완성도를 바라기에는 한국 현대문학의 토대가 빈곤하였다. 또한 현실의 운동과 괴리될 수 없던 문학인만큼 현실 대중운동의 진군정도가 낮은 상황에서 그 암울함을 혁명적 비전으로 바꿔내는 것이 일정한 낭만적 감수성(혁명적 낙관주의)에 의해 채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과 민중의 분리상태를 극복하고 민중을 예술의 주체로 내세우고자 하는 창작방법론의 요구가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런 논쟁의 시기에 발표된 시작들을 검토해보자. 그리고 그 안에서 추출되는 대중에 대한 임화의 인식을 살펴보자.

임화의 단편서사시에는 모두 이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임화의 단편서사시에서 이야기의 시간은 과거로, 이미 완결된 사건들의 이야기가 서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화자가 놓인 서술의 시간은 현재로써, 과거의 사건들과 유기적 관련을 가지면서 완료된 이야기를 현재의 경험 속으로 가져와 더욱 생생하게 반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단편서사시는 서정의 순간성 속에 서사적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가 도입되어 그 시적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임화는 이런 방법으로 시가 대중에게 친절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화자가 가지는 서정의 순간성은 분명 사회적 맥락이 있고 개인적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동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완결된 시점의 이야기,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널리 알려진 사실), 그리고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이나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시인과 대중은 더욱 극대화된 공감을 누리게 된다. 결국 현실의 반영과 문학적인 총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사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기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현장을 제시하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고 때문에 임화의 단편서사시는 서사적 사건이나 이야기를 시에 도입함으로써 시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민중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력 있게 다가감으로써 나름의 시적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 옵바와 화로>는 1인칭 화자인 '저(누이동생)'가 감옥에 갇힌 오빠를 청자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누이가 오빠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누이의 독백이자 호소이다. 하지만 또 하나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은 바로 임화의 단편서사시는 낭송을 위한 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자신의 예술작품을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과 교감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하기에 결국 화자는 낭독하는 자가 된다. 바로 그 낭독자가 어떤 편지를 읽는 형식인 것이다. 하기에 여기서 누이는 숨은 화자가 되고 또한 청자인 오빠도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화자가 숨은 것은 바로 화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낭독의 어려움 때문이다. 하기에 이 시를 듣는 대중은 화자의 입장이 되기도 하고 청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숨어있는 화자와 청자를 느끼지 못하고, 그 안에 내포작가가 염두한 의식성을 눈치채지 못한 채 시 내적인 전개와 화자의 감정적 변화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PSSP



사랑하는 우리 옵바 어저께 그만 그렇게도 워하시든 옵바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永男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야 지금은 화적가락만이 불상한 영남이하구 자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웨-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실 그날밤에
연거푸 말는 卷煉을 세 개식이나 피우시고 게셨는지
저는요 잘 알었에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골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든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웨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연기로 방속을 미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저는 잘 알었에요
천정을 향하야 긔어올라가든 외줄기 담배 연긔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백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에요
그리하야 제가 영남이에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었을 동안에
門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바루를 밟는 거치른 구두소리와 함께-가버리지 안으섰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상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연기에 싸두고 가지 안으섰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고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줍을 때
저는 製絲機를 떠나서 百장의 일전짜리 封筒에 손톱을 뚜러트리고
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封筒꽁무늬를 뭅니다
지금-萬國地圖같은 누더기 밑에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든 쇠같은 거북紋이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얘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모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에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火적갈은 旗ㅅ대처럼 남지 안엇에요
우리 오빠는 가섰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슬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게집아희와 동생
저의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꼬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밤을 새어 二萬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홈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에요
-누이동생
'우리 옵바와 화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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